담마의 거울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된다,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담마다사 이병욱 2011. 4. 27. 11:39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된다,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유일신교와 기도

 

누구나 그렇듯이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이 소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늙어 갈수록 몸의 기능은 망가지고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더구나 중병이 들었거나 임종을 눈 앞에 둔 사람이라면 인생이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낄 것임에 틀림없다. 이는 누구든 한 번쯤 아파 보았기 때문에 추론으로 알 수 있는 사항이다.

 

몹시 아플 때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누군가 낫게 해준다면 모든 것을 다 바칠 것이라고 다짐을 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기도를 할 것이다. 유일신교라면 자신의 주인에게 어서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할 것이고, 이는 언제 어느 때이건 간에 기도를 할 것이다.

 

유일신교는 기도가 생활화 되어 있다. 그런 것을 이미 고교시절 미션스쿨에서 보았다.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은 불가항력적인 것에서 부터 사소한 것까지 모두 신에게 기도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에게 떠 넘기기도 될 수 있다. 이처럼 틈만 나면 기도하라는 말은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평화방송에 멈추었는데, 신부는 성호 긋는 것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었다. 또 신부는 틈만 나면 기도할 것을 말하였다. 시험볼 때도 성호를 긋고, 밥먹기전에도 성호를 긋고, 틈만 나면 성호를 긋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예를 운동선수들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외국에서 천주교를 믿는 선수들은 축구장에서 골을 넣으면 성호를 긋고, 권투선수 역시 시합에 임하기전에 성호를 긋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선수 모두 성호를 그으면 신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또 도둑이 도둑질하기전에 성호를 긋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이 모두에 대하여 신부는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불교와 기도

 

기도는 유일신교에서 매우 어울리는 말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서 주종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재롱을 부리거나 떼를 쓰듯이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창조주나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은 불교에서 기도라는 말은 매우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도라는 용어가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래 불교에는 기도라는 말이 없었다. 기도는 초월적 존재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이어서 비불교적이다. 불교에 기도와 유사한 것이 있다면 발원일 것이다.

 

발원은 무엇인가를 해달라는 구걸형기도가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예로 부터 기도라는 말 대신 발원이라고 하였고, 더 정확한 표현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불공이다. 따라서 요즘 절에서 하는 각종 기도는 불공으로 이름을 바꾸어 불러야 할 것이다.

 

불성의 밝고 하얀 빛 속에

 

기도가 유일신교의 전용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방송을 통하여 기도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 기도중에 치유의 기도가 있다. 불교방송의 음악프로에서 내 보내는 치유의 기도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그 중 병상에 있거나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한 기도가 있다. 그 기도문의 내용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지나 온 생애에서 얻었던 기쁨과 지혜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전생에서 느꼈던 슬픔과 두려움, 질병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성의 밝고 하얀 빛 속에 녹아들도록 놓아 버리십시오.

(병상에 있는 분,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한 치유의 기도 , bbs불교방송 마음으로 듣는 음악에서)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한 치유의 기도.docx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한 치유의 기도.pdf

 

 

이 기도문이 어느 경전에 근거하고 있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으니 알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기도문의 키워드는 이다.

 

오래도록 육체를 따라 다니던 통증이나 아픔, 정신적 괴로움을 불성의 밝고 하얀 빛속에 녹아들게 하자고 한다. 이는 빛을 초월적 존재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정도로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이다.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그렇다면 부처님은 중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 하셨을까.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병상의 환자들에게 설한 대표적인 경으로서 기리마난다경보장가경이 있지만 생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경이 있다. 상윳따니까야의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이다.

 

이경에서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나꿀라삐따장자가 다음과 같이 부처님에게 말한다.

 

 

“부처님, 저는 노령이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늙은이 입니다. 육신의 병은 항상 저를 괴롭힙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시는 부처님이나 비구들을 거의 친견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제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저에게 활기와 안락함을 주십시오.

(상윳따니까야 :22  칸다상윳따1,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docx

나꿀라삐따경_Nakulapita Sutta_.pdf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

 

늙고 병든 장자가 죽음에 임박하여 병고로 부터 벗어나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부처님에게 여쭈는 장면이다. 이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장자여! 정말 그렇습니다. 그대의 육신은 쇠약하고 그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육신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잠깐 동안의 건강을 건강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나의 몸이 병들어도 나의 마음은 병들지 않으리라.'고 이와 같이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상윳따니까야 :22  칸다상윳따1,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부처님과 나꿀라삐따(The Buddha and Nakulapita)

사진 http://www.natthamichitthu.co.cc/2011/02/blog-post_9149.html

 

 

 

부처님은 장자에게 육신이 있는 상태에서 잠깐동안의 건강을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한다. 이는 보왕삼매론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를 연상시킨다. 늘 병을 달고 다니는 것이 인간인데 잠시동안 몸이 건강하다 하여 그 건강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말이다.

 

무엇이 몸은 병들고 마음도 병드는 것일까

 

부처님은 경에서 비록 나의 몸이 병들어 고통을 받고 있을지라도 마음마저 병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몸이 아프다하여 아파 죽겠네!”하며, 육체적고통(아파!)을 정신적고통(죽겠네!)으로 가져 가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사리뿟따존자가 부처님을 대신하여 나꿀라삐따장자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장자여! 무엇이 몸은 병들고 마음도 병드는 것 입니까? 가르침을 모르는 범부들은 ‘물질이 나의 것이다.’라는 생각에 서로 잡혀 있기 때문에, 물질이 항상 하지 않고 변하는 본성 때문에 물질이 변하고 바꾸어지면, 그 때 슬픔과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몸도 마음도 병드는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 :22  칸다상윳따1,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범부들은 병이 들었을 때 내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리뿟따존자는 내가 병든 것이 아니라 오온중의 하나인 물질()이 병든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물질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병 또한 물질이 변해서 발생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변하는 물질에  불과한 몸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애착이 생겼기 때문에 그로인하여 슬픔,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몸은 병들었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사리뿟따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입니까? 가르침을 잘 배운 제자들은‘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이 항상 하지 않고 변하는 본성 때문에 물질이 변하고 바꾸어져도 슬픔과 괴로움, 한탄, 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 :22  칸다상윳따1, 나꿀라삐따경-Nakulapita Sutta,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사리뿟따존자는 나의 몸에 대하여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물질은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건강 또한 항상 유지 될 수 없어서 결국 병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물질(육체)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몸은 비록 병들어 아플지언정 마음까지 병들어 아프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갈애의 화살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의 몸과 마음이 나의 몸, 나의 마음, 나의 자아라고 집착하지 말것을 말씀하셨다. 이는 내 몸이 아프다고 하여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거나 기도하거나 떠 넘기지 않는 것과 같다.

 

몸이 아프면 하나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현상은 무상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말 운명이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통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라도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단지 주기를 가지고 있어서 일파 다음에 이파, 삼파식의 고통이 엄습하지만  고통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 고통이 사라질 뿐만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육체적고통을 1의 화살을 맞는것으로 본다. 1의 화살은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라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인 2의 화살은 피할 수 있다. 이는 단지 현상을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라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제1의 화살 뿐만 아니라 제2화살을 맞게 되어 무수한 육체적, 정신적 화살을 맞게 된다. 이는 아픈 것(육체적고통)을 빨리 낫고자 하는(정신적고통) ‘갈애의 화살이다.

 

그런데 갈애의 화살이 반드시 괴로운 느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느낌에도 있기 때문이다. “아파 죽겠네!”가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갈애의 화살을 맞는 것이라면, “좋아 죽겠네!”는 현재의 즐거움이나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또 하나의 갈애의 화살을 맞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나 즐거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괴로움에도 집착하지 말고,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시에 두가지를 성취한 자

 

병이 나서 몸이 아프면 고통스럽다. 또 죽음에 임박하여 누워 있는 환자들 역시 하루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이럴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질과 같은 몸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자나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은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일 뿐만 아니라 비불교적이다.

 

만일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지라도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라고 그 순간에 알아차렸다면 다시는 나고 태어남이 없는 완전한 열반에 들어 갈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주석서에서 병의 사마시시(rpoga-samasisi)라 한다.

 

사마시시(samasisi)란 죽음과 함께 아라한이 되는 동시에 빠리닙바나(반열반)’를 성취하는  자를 말한다. 따라서 호랑이 물려가서 머리가 먹히는 순간에도 일어나고 사라짐의 알아차림을 유지한다면 이 또한 동시에 두가지(아라한, 빠리닙바나)를 성취하는 자가 될 것이다.

 

 

 

2011-04-27

진흙속의연꽃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한 치유의 기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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