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기적의 꽃

담마다사 이병욱 2011. 5. 30. 16:25

 

 

기적의 꽃

 

 

 

 

따사로운 햇볕이 사정 없이 내려쪼이고 있다. 조금만 걸어도 더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늘에만 들아가면 선선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습도가 낮기 때문일 것이다.

 

오월의 끝자락에서

 

오월도 끝자락에 접어들 무렵 가까운 산으러 갔다. 항상 이맘 때 쯤 피는 꽃을 사진찍기 위해서이다. 벌써 수 년째 같은 일을 반복 하다 보니 어느 곳의 어느 나무에 꽃이 피었을지 이제 눈을 감고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 동안 보아 두었던 불두화가 만발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이주일전 보았던 불두화는 갓 피어나 있었다. 부처님의 머리모양의 육계가 형성되기는 하였으나 어린아이 주먹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색깔 또한 푸르스름 하였다. 그런데 이주일후 같은 장소의 같은 나무에서 피어난 꽃을 보니 어른 주먹만큼 커졌고, 꽃 색깔 또한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불두화가 만개 하여 절정을 구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야생의 불두화를 보기 위하여 찾아간 계곡에는 각종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아무도 관리해 주는 이가 없지만, 때가 되어 피는 꽃 중에 만개한 것이 보였다. 꽃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지금이 한창 적기 같았다. 마치 불두화 처럼 꽃다발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에는 작은 꽃다발이 여러개 모여 있고, 주변에 하얀꽃이 원을 이루고 있다. 이 꽃 이름은 무엇일까.

 

(p.s : 본 글에 대한 댓글로 알려준 꽃 이름은 산수국이다)

 

 

 

산수국

 

 

 

 

 

 

산수국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이 계곡에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위쪽에서 나이 드신 할아버지와 머리가 완전히 하얀 백발의 할머니 부부가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는데, 등산객을 상대로 라면과 파전, 막걸리등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었다. 또 그 이전에는 닭과 오리등을 기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몇 해전 큰 비가 내렸을 때 연못의 제방이 무너져 연못이 황폐화 되었다. 그런 상태로 또 몇년간 흘러 갔는데,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백발의 꼬부랑 할머니는 손녀와 함께 라면, 막걸리등을 팔았는데,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집은 폐쇠되었고, 연못 또한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가운데, 연못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란 노랑빛깔의 화초가 따사로운 햇볕아래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왜 몰랐을까

 

연못을 내려 오는 길에 또 하나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였다. 지난 십수년간 평소 자주 다니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이처럼 고결하고 순결해 보이는 듯한 꽃이 있는 줄 몰랐다.

 

꽃 잎이 여섯개이고, 가운데 노랑 꽃술이 다발져 있는 꽃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순수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이 꽃 이름은 무엇일까

 

(p.s : 본 글에 대한 댓글로 알려준 꽃 이름은 때죽나무이다)

 

 

 

 

 

때죽나무

 

 

 

 

 

 

때죽나무

 

 

 

 

첫 더위가 올 무렵 나무에서 피는 꽃들의 특징은 화려 하지 않다. 대부분 꽃이 작고, 다발로 피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공통적으로 꽃의 색깔은 하얀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첫 더위가 시작 될 무렵 총림에서 피어 나는 꽃이 부처님의 드높은 가르침과 같은 것이라고 라따나경(Ratana sutta, 보배경)에서 비유적으로 설명하였다.

 

 

야생의 꽃은 누가 돌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을 피워 낸다. 그것도 오래도록 핀다. 흔히 화무십일홍이라 하여 10일 이상 가는 꽃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야생에서 피는 꽃들은 10일 이상 한달 가량 피는 것 같다.

 

기적의 꽃

 

이처럼 야생의 꽃은 꽃이 필 조건만 맞으면 피는데, 악조건에서도 피는 꽃이 있다. 흔히 잡초라고 하는 꽃들이다. 그런 꽃을 사람들의 왕래가 심한 곳에서도 보았다. 도저히 꽃이 필만한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송이 꽃을 피워 내는 것을 보면 하나의 우주가 열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내의 은행에 갈 일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화강석 계단아래에 풀 한 포기가 보였다. 그런 현상도 놀라운 일인데, 거기에서 매우 작은 꽃까지 피었음을 발견하였다.

 

 

 

 

 

 

 

 

평소에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물의 계단에 피어난 꽃은 계단의 돌출부 아래 쪽에 매달려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보아도 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는데, 어떻게 꽃을 피워 낼 수 있었을까. 가지고 있던 디카로 급접촬영 하였다. 하지만 꽃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찍혀 지지 않는다. 아니 디카의 성능이 따라 주지 않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 꽃이름은 무엇일까. 꽃 잎이 열송이인 하얀 초소형꽃인데학명에 등재되기나 한 꽃일까. 돌계단에서 기적적으로 피어난 꽃이름을 몰라서 그냥 기적의 꽃이라고 이름 붙였다.

 

산천초목성불

 

대승불교에서는 두두물물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는 산천초목도 부처가 될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사람과 같은 유정물에게 불성이 있다면, 산천초목에 부처가 될 성품을  법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천초목도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산천초목이 어떻게 성불할 수 있을까.

 

저 바위덩어리가 있을 때, 저 바위도 사람처럼 성불할 수 있을까. 김종욱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바위가 바위로서의 고유성이 잘 드러났을 때 성불한 것으로 본다고 말하였다. 이는 바위가 바위 다울 때성불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인도불교식으로 따지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본래 성품이 가장 잘 발현되었을 때 성불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중국화된 불교의 특징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돌계단에 피어난 기적의 꽃역시 악조건하에서도 꽃을 피워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모두 들어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성불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악조건속에서도 꽃을 피워낸 이름없는 잡초도 성불할 수 있다면, 인간 또한 인간의 고유성을드러낸다면 성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고유성은 무엇일까. 대승불교에서는 불성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초기불교에서는 근본마음자리와 같은 불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유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을 담마(법)로 본다. 그런 담마의 특징은 무엇일까.  

 

자신의 할 바를 다하여

 

이름 없는 잡초가 꽃을 피워 열매을 맺듯이 인간 또한 수행을 통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도(, Magga)을 이루어 열매(, Phala)를 맺는 단계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렇게 네 가지단계로 구분한다.

 

 

잡초가 꽃을 피워내어 자신의 할 바를 다하여 성불하였음을 알리듯이, 열매를 맺은 성인들도 할 바를 다 하였을 때 외침이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성자의 흐름에 든 자(수다원)가 담마의 고유성을 알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을 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

 

(상윳따니까야 :56  삿짜상윳따11, 율장 마하왁가 1,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에서)

 

 

형성되어진 모든 것들은 결국 소멸하기 마련이라는 담마의 고유성을 알게 되었을 때 수다원이 되는데, 위의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라는 문구를 수다원의 오도송이라고 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으면, 그는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고 앞으로 일곱생이내에 나고 죽는 일이 없는 닙바나에 들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아라한의 깨달음에 대한 오도송은 어떤 것일까. 초기경전에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상윳따니까야 :22  삿짜상윳따59, 율장 마하왁가 1,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에서)

 

 

아라한은 더 이상 배울것이 없는 무학(無學)이라 한다. 그런 그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대표되는 번뇌를 남김 없이 말려 버렸을 때, 더 이상 마음의 찌꺼기가 남아 있지않아 업이 형성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번 생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나고 죽는 일이 없는 열반에 들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할일 다 해 마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윤회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이를 아라한의 오도송이라고 한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이름없는 한송이의 꽃이 돌계단과 같은 악조건 속에서 꽃을 피워 내어 자신의 할 바를 다 했을 때, 그 꽃은 성불하였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악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할 일을 다 해 마쳤을 때 성불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초기불교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부처님이 몸소 겪으신 해탈과 열반을 그대로 실현 하였을 때 삶이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부처님이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였듯이, 부처님의 제자들 역시 똑 같이 그와 같은 선언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한송이 피어난 꽃은 자신의 할 바를 다 했기 때문에 비록 미물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성불한 것으로 본다.  

 

  

 

기적의 꽃,  Imee Ooi 의 하모니(Harmony)

 

 

 

 

 

 

2011-05-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