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양귀비의 로맨스무대 화청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6. 16. 11:46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양귀비의 로맨스무대 화청지

 

 

 

새로운 가이드가

 

5 21일 오후 순례팀은 낙양에서 고속철 CRH를 타고 350Km떨어진 서안에 1시간 40분만에 도착하였다.

 

고속철을 타고 오는 동안 바깥풍경은 우리와 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끝없는 평원이고, 두 번째는 끝없는 밀밭이었다. 그런 밀밭은 6월에 수확을 하고, 그 다음에 옥수수를 심는데 이는 사료용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지방사람들은 밀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는다고 하는데,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의 종류만해도 교자연, 만두등을 비롯하여 3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서안에 도착하니 새로운 가이드가 맞이해 주었다. 30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조선족 교포3세라고 소개한다. 가이드한지는 7년 정도 되었는데, 말이 청산유수이다. 서안의 역사, 문화, 생활등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는 곳 마다 상세히 설명해 주어서 마치 살아있는 녹음기처럼 들린다.

 

 

서안역에서 호텔로 이동중에 본 서안의 풍경은 정다웠다. 하남성의 정주나 낙양과 달리 첫째 공기가 더 좋다는 느낌을 받았고, 도시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안정된 느낌이었다. 이는 역사의 고도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서안이 있는 섬서성의 면적은 21만평방키로미터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한을 합하여 24만평방키로미터이니 이 보다 약간 작은 면적이다.

 

인구는 3500만명인데, 이중 800만명이 서안에 몰려산다고 한다. 그런 서안 역시 뉴타운과 올드타운으로 나누어져 있다. 뉴타운의 경우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하지만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장안성이 바로 그것이다.

 

구시가지의 도심에 조성된 장안성의 길이는 14Km라고 한다. 잘 보존된 성곽은 당나라시절 부터 있었던 것인데, 명나라시절 수리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성곽을 구경하면 좋으련만 패키지여행 일정에 잡혀 있지 않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기만 해야 했다.

 

그런데 멀리서나마 일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저녁식사를 대안탑이 있는 부근의 한식당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대안탑

삼장법사 현장스님이 역경작업을 하던 곳이다.

 

 

 

 

화청지(華淸池)

 

다음 날 5 22일 일요일은 화청지와 진시황릉, 병마총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다. 호텔에서 창 밖을 내다 보니 서안시내가 보였다.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그런데 60층 정도 되는 빌딩이 눈에 띤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빌딩이 기울어져 빈채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밤이 되면 컬러풀한 조명을 설치해 놓아 하나의 랜드마크로 보여진다.

 

 

 

 

 

 

서안의 도심

고층아파트와 고층빌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전은 화청지(華淸池)’관람이 예정되어 있다. 화청지는 당나라 시대 당현종과 양귀비가 로맨스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온천지이면서 동시에 당나라 황제들의 휴양지이기도 한 화청지는 또한 장개석이 머물던 곳으로 서안사건의 시발점이 기도 하다. 이처럼 고대와 근대에 있어서 두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 화청지이다.

 

화청지는 일종의 황제의 별장이라고 볼 수 있다. 당나라 시절 수도인 장안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화청지는 온천휴양지로 무려 30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산세도 좋고 온천수도 좋아 역대 황제들이 별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특히 당현종 시절에 지은화천궁’은 양귀비와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화청지는 어떤 곳일까.

 

화청지에 도착하니

 

화청지에 도착하자 수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중국인관광객들이다. 그들은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가이드가 들고 있는 깃발을 따라 움직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런 중국가이드는 서안의 경우 3만명이라 한다.

 

 

 

 

 

 

화청지 매표소

 

 

 

 

 

 

 

 

중국인관람객

깃발을 든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설명을 듣고 있다.

 

 

 

중국식오페라 장한가의 야외무대로도

 

 

화청지안에 들어 왔다. 황제들의 휴양지이어서 일까 화청지는 연못과 전각과 뒤에 보이는 여산(驪山, 해발1274m)이 특징이다. 그런데 전각들은 대부분 최근 지어진 것이라 한다.

 

 

 

 

 

 

 

화청지의 전각

전각은 최근에 지어졌다. 뒤에 보이는 산은 여산이다.

 

 

 

 

화청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밤에 공연이 있다는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슬픈 사랑을 그린 장한가야외공연이다.

 

중국식 오페라로 불리우는 장한가는 여산과 화청지가 그대로 무대가 된다. 400명에 달하는 초대형가무단의 공연이 볼만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대형포스터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산과 화청지

밤이 되면 이곳에서 여산과 화청지의 연못, 전각을 무대로 대형 야외공연이 열린다.

 

 

 

 

 

 

 

 

 

장한가 안내 포스터

400명에 달하는 가무단의 공연이 매일 밤 열린다.

 

 

 

 

 

 

 

 

야외무대로 활용되는 화청지와 여산

 

 

 

서안의 꽃, 석류꽃

 

화청지가 황제의 휴양지이어서일까 곳곳마다 아기자기 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 특히 서안의 꽃이라 불리우는 석류꽃이 만개하였는데, 붉은 꽃잎이 매우 정열적으로 보인다. 그런 석류꽃은 2300년의 재배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무제 당시 실크로드를 통하여 들여왔다고 한다. 그런 석류를 서안시내에서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석류꽃 나무

2300년 한무제가 실크로드를 통하여 들여왔다. 사진의 석류나무는 수령이 400년 된 것이라 한다.

 

 

 

 

 

 

 

 

붉은 석류꽃

붉은 빛깔이 특징으로서 서안의 꽃이라 한다.

 

 

 

 

 

 

 

 

석류열매

 

 

 

 

 

 

 

 

피파나무

 

 

 

 

 

 

 

 

 

 

 

 

 

 

 

 

 

 

 

 

 

 

 

한폭의 그림과 같은

 

이처럼 꽃나 나무와 연꽃이 잘 어우러져 있는 화청지는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화청지전경

 

 

 

 

 

뚱뚱한 몸매의 양귀비

 

화청지는 황제들의 온천 휴양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온천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양귀비를 조각해 놓은 곳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 양귀비는 155cm정도에 약 65kg정도로 뚱뚱한 몸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암내가 나서 화청지를 자주 찾아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양귀비상

양귀비는 키 155cm정도에 약 65kg정도로 뚱뚱한 몸매이었다고 한다.

 

 

 

 

 

 

 

  

온천수를 만져 보는 관광객들

 

 

 

 

 

 

 

 

양귀비상 주변의 인파

 

 

 

 

불륜인가 로맨스인가

 

화청지의 주인공 양귀비는 어떤 인물일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양귀비는 중국 당나라시대 일곱번째 황제인 현종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에게 시집을 갔으나 현종이 양귀비를 빼았아 간것이라 한다. 즉 며느리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그때 당시 양귀비의 나이가 22세이고, 현종은 56세이었다.

 

그런 양귀비에 대하여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서일까 현종은 양귀비를 5년간 절에 살게 한 후 27살에 궁전으로 데리고 왔는데, 37살에 안록산의 난으로 죽을 때 까지 15년간을 함께 한 것이다.

 

또 양귀비는 현종의 아내이기도 하였지만 안록산의 애인이기도 하였다. 양귀비는 안록산을 수양아들로 삼았는데, 40대의 안록산과 20대의 양귀비가 만나서 또 로맨스를 벌인 것이다.

 

양귀비와 현종과 안록산의 삼각관계 로맨스에 대하여 어떤 이는 불륜의 극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애절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당현종이 모든 정사를 팽개치고 양귀비와 화청지에서 즐긴 것과 양귀비가 죽고 나서 눈물로 낮과 밤을 지세운 현종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한편의 긴시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백거이의 장한가이다.

 

글씨의 달인 모택동의 초서체

 

그런 장한가를 화청지에서 볼 수 있는데, 모택동이 직접 썻다는 칱필 초서체가 전시되어 있다.

 

 

 

 

  

모택동의 친필 장한가

모택동 초서체로 작성한 친필이다. 모택동은 정치에도 달인이었지만 글씨도 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택동의 친필 두보시

유려한 초서체로 쓰여있다

 

 

 

해당탕(海棠湯), 연화탕(蓮華湯), 성진탕(星辰湯)

 

화청지는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이다. 그런데 화청지는 최근 발견 되었다고 한다. 1986년 농부가 발견하여 1996년 부터 개방되었는데, 특히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을 해당탕(海棠湯)이라 한다. 해당탕은 일종의 양귀비 개인 목욕탕으로서 자그마한데, 수온 약 43도 정도라고 한다.

 

 

 

  

해당탕

양귀비 개인목욕탕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황제목욕탕이 있다. 당현종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계단이 1개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쪽에 기둥을 박을 수 있도록 홈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처마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황제목욕탕을 연화탕(蓮華湯)이라고 한다.

 

 

 

 

 

 

 

연화탕

당현종이 사용하던 목욕탕이다.

 

 

 

 

황제탕이 하나 더 있다. 당태종인 이세민이 목욕하던 곳이다. 그 곳을 성진탕(星辰湯)이라 하는데,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볼 수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성진탕

당태종 이세민이 목욕하던 곳이다.

 

 

 

화청지와 장개석

 

화청지는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만 있었던 곳이 아니다. 근대 중국에 있어서 격변기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서안사건(西安事件)’이 바로 이곳 화청지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서안사건이란 무엇일까.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서안사건은 1936년 12월 12일 중국 동북지방의 군벌인 장학량이 국민당 총통인 장개석을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화청지에서 납치하여 구금하고 항일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국민당은 중국공산당토벌을 중지하고, 그 대신 일본에 대항하는 국공합작을 추진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아시아 정세는 급변하였는데, 그 사건의 시발지가 바로 화청지인 것이다.

 

그 때 당시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였을 때 화청지에서 머물렀는데, 장학량군이체포하러 왔을 때 여산으로 피신하였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지금도 화청지에는 오간청(五間廳)이라 하여 장개석이 사용하던  물품과 침실, 집무실, 회의실, 비서실, 접견실등 다섯가지 방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

 

 

 

 

 

 

  

장개석 침실

 

 

 

 

 

 

 

 

 

장개석 집무실

 

 

 

 

 

 

 

 

 

장개석 회의실

 

 

 

 

 

 

 

 

  

장개석 비서실

 

 

 

 

 

 

 

 

 

장개석 접견실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연리지(連理枝)가 되어

 

요즘 흔히 하는 말 중에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있다. 화청지에서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양귀비와 안록산의 연애는 우리식의 잣대로 본다면 불륜의 극치이다.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불륜도 로맨스가 될 수 있다.

 

당나라시대 시인 백거이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대하여 한이 어린 슬픈사랑가를 지었는데, 그것이 장한가이다. 영어로 A Song of everlasting sorrow 라고 번역된 장한가는 일종의 장편서사시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장한가는 806년에 지어졌다.

 

장한가는 모두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애절함의 극치이다. 양귀비를 잃고 낮과 밤을 쓸쓸함으로 보내는 현종은 죽어서 신선이 되는데,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일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한다는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시로서 표현한 것이다.

 

 

上天願作比翼鳥 (상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하늘에선 날개를 짝지어 날아가는 비익조가 되게 해주소서

땅에선 두 뿌리 한 나무로 엉긴 연리지가 되자고 언약했지요

(백거이, 장한가)

 

  長恨歌.docx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어 영원한 사랑을 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여기서 비익조(比翼鳥)는 암 수가 각각 눈 하나와 날개 하나씩만 갖고 있어서 두마리가 한 몸이 되어야만 날아갈 수 있다는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는 두개의 가지가 서로 얽혀 하나로 된 나무를 말한다.

 

이처럼 세기적인 불륜도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애절한 로맨스로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보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애절한 전설속의 장한가는 화청지에서 되살아 났다. 2008년 부터 장예모 감독이 화청지와 여산전체를 무대로 하여 엄청난 스케일의 중국식 오페라 공연을 매일밤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한가 가무오페라

화청지와 여산을 무대로 하여 400명의 배우가 출연하여 장한가를 공연한다.

 

 

그래서 가이드는 오늘 밤 이 공연을 꼭 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우리돈으로 약 5만원가량 들어가지만 보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2011-06-16

진흙속의연꽃

 

長恨歌.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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