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향산사(香山寺)에서 본 중국의 젊은 남녀불자
용문석굴과 향산사(香山寺)는 강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5월 21일 오후 용문석굴을 참배하고 관람한 순례팀은 곧바로 강건너에 있는 향산사로 향하였다.
용문석굴과 향산사사이를 흐르는 강
용문석굴과 향산사는 마주보고 있다.
뛰어다닌 향산사
용문석굴에서 다리를 건너자 향산사를 가기위한 무료 운송수단이 있었다.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 보는 코끼리열차와 같은 것이다
코끼리열차
향산사로 이동하기 위해 마련 되어 있다.
코끼리열차에서 내리자 마자 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관람이 끝난후 서안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KTX와 같은 중국판 고속열차를 타는 시간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산사관람은 문자그대로 ‘주마간산’이 되어 버렸다.
향산사는 용문석굴과 매우 관계가 깊은 절이다. 북위시대 용문석굴이 조성될 때 향산사가 지어졌고, 당나라시대 봉선사대불등이 조성될 때 측천무후가 이 곳에서 시를 짓는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향산사는 당나라시대 최고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와 매우 인연이 깊은 절이다. 우리에게 백낙천으로 잘 알려진 백거이는 ‘장한가(長恨歌)’를 지은 시인으로 유명한데, 58세부터 18년간 이 절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호가 ‘향산(香山)’이라서 후에 ‘향산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향산사 입구
이곳 부터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향산사로 올라가는 계단은 매우 가파르다. 더구나 시간이 없어서 뛰다시피 하였는데, 계단 역시 뛰다시피 하여 올라갔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이곳 저곳을 보면 좋으련만 본 것은 오직 법당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중국절의 법당
향산사의 주불은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전각도 ‘미타보전’이라 쓰여 있다. 2층으로 된 법당은 전형적인 중국식사찰이다.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로 절 앞에는 향나무가 있고, 절의 색깔은 붉은 빛 일색이다. 단청이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화려하지 않고, 공포역시 단순하다.
향산사 미타보전
아미타불을 모셔놓았다.
법당에 들어가 보았다. 우리나라 불상과 달리 중국적이미지이다. 중앙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고, 양옆으로 협시불이 있다. 불단은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매우 소박하다.
향산사 불상
아미타부처님을 모셔놓고 있다.
불단에 주로 꽃공양을 올려 놓고 있다. 양초와 향은 일체 볼 수 없는데, 이는 법당 밖에서 큰 향로에 역시 큰 향다발을 피우기 때문일 것이다.
향공양
법당안에서 향을 피우지 않고 밖에서 큰 향다발을 피우고 있다.
불단은 전반적으로 매우 소박한 분위기이다. 이런 소박한 분위기는 천정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인등이나 축원등이 일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불상위의 수미단도 보이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찰에 비교하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법당모습이다.
젊은 남녀 불자의 절하는 모습
법당안은 소림사와 백마사에서 보았듯이 신발을 신고 들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단 절을 할 수 있도록 방석이 깔려 있는데. 저렇게 조그마한 곳에서 어떻게 절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작다.
법당내부
신발을 신고 들어 갈 수 있고, 절을 할 수 있는 방석이 깔려 있다.
중국불자들의 절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중국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젊은 불자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날도 젊은 남녀 불자 둘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방석이 협소해서 인지 우리나라처럼 절을 하고 난 다음 두 손을 위로 올리는 ‘고두레’는 하지 않는다.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는 형식이다.
중국불자들의 절하는 모습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예경하고 있다.
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모든 종교행위가 거룩하고 성스럽지만 특히 불교에서 절하는 모습이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중국불자들 역시 절하는 순간만큼은 지극히 경건하고 성스러워 보였다.
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모든 종교행위가 거룩하고 성스럽지만 특히 불교에서 절하는 모습이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중국불자들 역시 절하는 순간만큼은 지극히 경건하고 성스러워 보인다. 그런 절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오체투지(五體投地)와 전체투지(全體投地)
중국의 불자들과 우리나라 불자들의 절하는 방식은 다르다. 중국불자들의 절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불자들은 신심이 더 있어 보인다. 몸의 사지와 이마를 맞대며 ‘오체투지’를 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체투지한 상태에서 두 손을 귀 위로 들어 올려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 보게 함으로서 부처님을 향한 극진한 예를 표하기도 한다.
오체투지(2008년 범불교도 대회)
우리나라에서 절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땅바닥에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추고 부처님을 최상으로 받드는 듯한 모습은 이 세상 그 어느 종교보다 가장 경건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티벳식 절하는 방식에 비교하면 약과이다.
티벳불자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면 그 신심을 알만하다. 그들은 온 몸을 날려 절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목나무가 쓰러지듯이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TV등에서 많이 보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절할까.
‘초펠스님’의 글을 보면 티벳불자들이 절하는 방식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그들은 우리와 달리 매우 독특하다.
우선 예배할 때 나무를 자르면 한쪽 방향으로 쓰러지듯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나 옷을 아끼지 않고 몸을 죽 펴서 전신이 땅에 닿게 하는 것이다. 이런 예배방식을 오체투지라고 하기 보다 ‘전체투지(全體投地)’라고 한다.
전체투지(全體投地)
자신의 옷이나 몸을 아끼지 않고 몸을 죽 펴서 전신이 땅에 닿게 하는 예배방식이다.
출처 http://www.travelwind.com/2072
또 전체투지할 때 합장하는 방식 또한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 불자들의 경우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두고 공손히 내려 앉아 사뿐히 절을 하지만, 티벳불자들의 경우 이와 다르다.
티벳불자들은 먼저 두 손을 합장하는데, 합장한 손을 딱 붙이면 안된다. 엄지손가락을 두 손바닥사이에 밀어넣은 후 서로 마주보게 한다음 합장한다. 이 상태에서 두 손을 정수리위로 높이 올린다.
티벳식 합장
손바닥을 붙이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어 마주보게 한후 합장한다.
사진 http://www.life.com/image/53076393
그리고 차례대로 정수리, 이마, 목, 가슴순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부처님을 닮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부처님의 지혜를 닮기 위하여 32상중에 가장 수승하다는 육계가 위치한 ‘정수리’에 예배하고, 부처님의 백호광명을 닮기 위하여 ‘이마’에 예배하고, 부처님의 사자후와 같은 목소리를 닮기 위하여 ‘목’에 예배하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닮고 싶어서 ‘가슴’에 예배한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온 몸을 날려 예배한 후 어떻게 해야 할까. 즉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 땅바닥에 업드린체 오래 있으면 죽어서 땅에 몸을 붙이고 사는 ‘뱀’이나 ‘지렁이’와 같은 존재로 태어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사를 보는 듯
향산사는 산중에 있는 절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산사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가파른 계단이 많고 축대를 쌓아 이곳 저곳에 전각을 만들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우리나라 사찰과 매우 유사하다.
향산사 내부
계단과 축대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나라 산사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향산사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바로 강건너의 용문석굴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치 용문석굴을 위해서 만들어진 듯한 향산사에서 당나라시대 시인인 백거이를 빼 놓을 수 없다. 향산사는 백거이가 말년에 머물기도 하였는데, 그런 백거이 무덤 역시 향산사 바로 옆에 있다. 그래서 향산사를 가게 되면 백거이의 묘는 자동으로 가게 되어 있다.
백거이묘소로 가는 길
백거이의 무덤은 용문석굴, 향산사와 더불어 반드시 찾게 되는 관광명소이다. 그래서 잘 가꾸어 놓았는데, 백거이묘소로 가는 길에 보는 정원은 아기자기한 일본풍의 정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거이 묘소 정원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은 것이 일본식 정원을 연상시킨다.
백거이상
낭만적이고 풍류를 즐기는 듯한 자태이다.
백거이 묘소에서
백거이 묘소는 지위가 높은 권력자의 무덤처럼 크게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무덤 앞에 서있는 비석이 눈에 띠는데, 이는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쓴 친필이 새겨져 있었다.
백거이 묘소
백거이묘소비문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세운것이라 한다.
묘소주변에 많은 비문이 있었는데, 그중 백거이의 대표작인 ‘장한가’가 커다란 돌에 전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백씨들이 자신들과 같은 성씨인 백거이를 기리는 기념비도 볼 수 있었다.
비문중에 눈에 띠는 것 중의 하나가 일본어로 된 비문이 있었는데. 일본과 중국의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백거이의 시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일 것이다.
실제로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의 주인공인 양귀비는 안록산의 난 때 죽지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여생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일본에서 일반화된 이야기라고 한다.
장한가비문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다룬 이야기이다.
한국비문
백씨종친회에서 만든 것이다.
일본비문
일중문화교류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서안(西安)으로
주마간산격으로 향산사와 백거이묘소를 보았는데. 이는 서안으로 이동하는 KTX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KTX는 가이드가 편의적으로 붙인 이름인데, 정식명칭은 중국고속철이다. 영문으로 CRH라고 쓰여 있었다.
낙양에서 서안까지의 거리가 약 350km정도이기 때문에 최고시속 350km로 달린다는 중국고속철에 탑승하여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낙양-서안지도
낙양과 서안은 약350Km거리이다.
중국고속철(CRH)
낙양에서 서안까지 약 1시간 40분만에 주파한다.
최고시속은 350Km 이다.
그런 고속철이 개통된지는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속철을 탑승하면 두시간안에 서안에 도착한다고 한다. 서안에서는 화청지, 진시황릉, 병마총을 보기로 되어 있다.
그동안 3박4일간 함께 하였던 가이드와도 이곳에서 작별하였다. 서안에 가면 새로운 가이드가 서안역으로 마중나올 것이라 한다.
2011-06-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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