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병마용(兵馬俑)의 영웅은 누구일까, 만든 진시황제와 발견한 농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6. 17. 22:46

 

병마용(兵馬俑)의 영웅은 누구일까, 만든 진시황제와 발견한 농부

 

 

 

5 22일 오전에 화청지를 관람한 순례팀은 오후에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관람하기 위하여 이동하였다. 거리는 차로 15분 거리이다. 먼저 진시황릉을 관람하였다. 병마용이 있는 곳으로 부터 1.5km 거리이다.

 

불가사의한 진시황릉

 

진시황릉은 사진으로 보던 대로 작은 산처럼 생겼다. 높이는 87미터라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 발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발굴계획도 없다고 한다. 먼 후대에 발굴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의 입구도 모른다고 한다.

 

 

 

 

 

 

 

진시황릉

입구조차 파악되지 않았고, 발굴계획도 없다고 한다. 높이는 87미터이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릉의 지하에는 도굴방지용 수은으로 가득 차 있어서 도굴하게 되면 수은중독이 걸려 죽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진시황릉의 유물은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는데, 기록에 따르면 지하 깊숙한 곳에 있고, 그것도 옆으로 500(1장은 3m, 1500m) 더 파야 나온다고 한다.

 

또 모두 9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고, 무덤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는데, 4,500명이 순장되었다고 한다.

 

 

 

 

 

 

 

퍼포먼스

능앞 특설무대에서 매일 특정한 시간에 공연을 한다.

 

 

 

 

진시황이 13살부터 만들기 시작한 무덤은 37년 동안 건설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황제가 된후에도 12년을 더 공사 했다고 한다. 이런 진시황릉은 병마용과 함께 세계 8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데, 이는 1998 6 26일 방문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붙여 주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세계7대불가사의는 중국 만리장성,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로마 콜로세움,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을 말한다. 여기에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합하여 세계 ()8대불가사의라고 부른다고 한다.

 

병마용가는 길

 

진시황릉은 발굴되지 않아 멀리서 산처럼 생기 거대한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곧바로 병마용으로 향하였는데, 가게가 즐비하다. 주로 병마용과 관련된 기념품과 다양한 먹거리를 품을 파는 가게가 매표소 입구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병마용가는 길

가게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병마용을 파는 가게

이런 가게를 수 없이 많이 볼 수 있다.

 

 

 

 

 

 

 

 

먹거리가게

중국전통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공항검색대처럼 생긴 정문을 통과하면

 

가게거리를 지나면 병마총 입구가 나타나는데 관람객으로 매우 북적인다.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단체관람객들이 대부분이다. 공항검색대처럼 생긴 정문을 통과하면 외국인의 경우 단편 홍보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우선이다. 영어로 진시황제와 진시황릉에 대한 사전 정보를 알려 준다.

 

 

 

 

 

 

 

 

관람객들

주로 중국인들로서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깃발부대

중국각지에서 몰려든 단체관람객들이 대부분이다.

 

 

 

 

 

 

 

 

 

단편홍보영화관람

외국인들을 위하여 진시황릉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용이다.

 

 

 

 

 

병마용을 보는 순간

 

병마총안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사진으로 만 보던 병마용을 보는 순간이다. 가장 먼저 1호갱으로 들어갔다. 1호갱은 세로 260미터, 가로 60미터로서 모두 벽과 천정으로 덮혀 있다.

 

 

 

 

 

 

 

1호갱

규모가 가장 크고 주력부대의 성격이다.

 

 

 

 

 

 

 

 

1호갱

세로 260미터, 가로 60미터이다.

 

 

 

 

모두 6000개가 출토 되었는데, 진짜사람과 똑같게 만들어 놓았다. 키는 평균 185cm이고, 무게는 110kg~300kg이라고 한다. 그런데 185센티미터는 실제사람보다 더 큰 사이즈라고 한다. 모두 흙을 구워서 만들었는데, 진흙과 황토이다.

 

 

 

 

 

 

 

 

병마용의 인물

평균 185cm이고, 무게는 110kg~300kg이고, 진흙과 황토를 구워서 만들었다.

 

 

 

 

귀신붙은 땅

 

이런 병마용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을까.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병마총이 발견되던 때가 1974년이라 한다. 그 때 당시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한 것이라 한다.

 

그 농부의 나이는 올해로 80세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병마용 기념품 판매 코너의 책파는 곳에서 책에 자신의 친필 서명을 해주고 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중국의 영웅과 같은 존재라 한다. 1998년 클린턴이 방문하였을 때 그 농민을 만났고, 지금도 그 때 사진이 기념품 가게에 걸려 있을 정도이다. 그는 매일 책파는 곳에 나온다는데 오늘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병마용을 발견할 당시 때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동네에서는 농사가 잘 되는데, 유독 자신의 땅에서만 농사가 잘 안되어서 예로 부터 귀신붙은 땅으로 소문나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땅 아래에 엄청난 규모의 병마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병마용 위에 통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 흙을 덮었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될 리 없었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 그 높이는 불과 몇 미터에 지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농민이 우물을 파던 장소

사진의 6번이라고 써진 곳이다.

 

 

 

 

1호갱은 주력부대의 성격이라고 한다. 폐허화 된채로 오랜 세월 땅속에 있다가 발굴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다 발굴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호갱에는 아직 발굴이 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도 함께 볼 수 있다.

 

 

 

 

 

 

 

발굴되지 않은 부분

미래의 발굴을 위하여 남겨 두었다고 한다.

 

 

 

 

병마용은 총 3개의 갱이 공개되어 있다. 이중 1호갱의 경우 1974년에 발견되어 1979년 부터 공개되었는데, 진시황릉의 주력부대성격이라 한다. 그렇다면 2호갱과 3호갱은 어떤 성격일까.

 

지휘부대의 성격의 3호갱

 

우선 3호갱을 보면 가장 작은 규모이다. 그리고 깊이도 깊다. 이런 3호갱은 장군들이 많아서 지휘부대의 성격이라 한다다. 그런데 모두 머리가 잘려 있다. 이는 항우부대가 이곳을 유린하였을 때 모두 머리를 잘라버렸는데, 머리를 자름으로서 영혼이 붙지 못하게 조치한 것이라 한다. 1994년 공개되었다고 한다.

 

 

 

 

 

 

 

3호갱

장군형상이 많아서 지휘부성격이다. 머리가 모두 잘려진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3호갱

파손된 채로 보여주고 있다

 

 

 

 

 

 

 

3호갱

1994년 공개되었다.

 

 

 

 

 

발굴중인 2호갱

 

다음으로 2호갱이다. 2호갱은 1호갱의 반정도 규모이다. 현재 발굴중이라 한다. 특징은 활을 쏘고, 말을 탄 기마형이 많다는 것이다.

 

 

 

 

 

 

 

 

2호갱의 내부

1호갱의 절반정도로 기마형이 많다.

 

 

 

 

 

 

 

 

2호갱의 내부

2호갱은 현재 발굴중이다.

 

 

 

 

왜 병마용(兵馬俑)인가

 

병마용갱의 특징은 으로 구분된다. 가이드의 설명에다따르면()은 병사를 말하는데 1호갱에서 보는 주력부대이다, ‘()기마부대를 말하는데 3호갱에 주로 있다.‘()’은 장군을 말하는데 2호갱의 지휘부대를 말한다.

 

이렇게 병마용으로 구분되어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입구 뿐만 아니라 박물관 내부에서도 팔고 있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파는 기념품은 좀 특별나다고 한다.  2천년전 2호갱의 진흙을 구워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인증서까지 첨부 된 것이었다.

 

판매하는 사람이 설명하기를 박물관에서 파는 것이 진짜이고 다른 곳에서 파는 것은 떨어뜨리면 깨지는 짝퉁이라고 한다. 그런 병마용 3기를 반값 300위안에 가져 가라고 하였다.

 

 

 

 

  

병마용기념품

2호갱의 진흙으로 만들었다.

좌측이 주력부대를 상징하는 병사로서 ()’이고,

중앙이 기마부대를 상징하는 ()’이고,

우측이 장군을 상징하는 지휘부대로서의 ()’이다.

 

 

 

 

후대의 몫으로

 

이렇게 3개의 갱을 다 보았다. 이미 발굴된 것도 있지만, 발굴중인 것도 있고, 미래를 위하여 남겨 놓은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백제의 무녕왕릉을 단 하루 밤만에 발굴하여 후회하였다는 발굴단장의 이야기를 글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서두르지 않은 것 같다. 발견된 유물을 훼손함이 없이 최대한 보존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진시황릉의 경우 일본의 기술로 공동발굴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를 후대의 몫으로 남겨 놓은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진시황릉

후대에 발굴할 몫으로 남겨 놓았다고 한다.

 

 

 

누가 영웅인가

 

병마용은 진시황이 만들었다. 그는 만리장성을 쌓고 자신의 능을 만들고, 또 죽어서도 자신을 지켜 줄 병마용군단을 지하에 만들었는데, 이는 건설에 참여한 수 많은 기술자와 종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오늘날 만리장성과 병마용은 수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

 

피와 땀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불가사의를 만들어낸 진시황은 영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유적과 유물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시황 못지 않은 영웅이 현재 살아 있다. 그는 병마용을 발견한 농부이다.

 

원래 일자무식이었던 농부는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알게 된 농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였다. 책파는 곳에서 사인을 해주며 일을 한다는데, 그는 과연 있을까.

 

1호갱과 3호갱 구경을 마치고 2호갱을 가기전에 기념품점에 들렀는데, 가이드가 말한대로 그 장소에 나와 있었다. 한쪽 코너에서 책에 사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인들이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하여 줄을 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친필사인하는 병마총발견자

올해 80세라 한다.

 

 

 

 

 

 

 

 

병마총을 발견한 농부

매장에 나와 책에 친필사인하는 것이 일과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병마총에서 영웅은 병마용을 만든 진시황제가 아니라 이를 발견한 80세의 농부가 영웅처럼 보였다.

 

 

 

2011-06-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