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바이블(성경)을 지니는 것은 ‘쪽팔리는 행위’

담마다사 이병욱 2011. 7. 5. 10:54

 

 

 

바이블(성경)을 지니는 것은 쪽팔리는 행위

 

 

 

일요일 오전 늘상 보는 광경중의 하나가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여자는 최고로 좋은 옷을 꺼내 입고 교회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손에는 반드시 바이블이 들려져 있다.

 

 

 

 

 

 

 

 

여자의 경우 핸드백에 넣어서 보이지 않으나 남자의 경우 고급가죽에 둘로 쌓여진 바이블을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이 마치 보라는듯이들고 다닌다. 대체 그 바이블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혜문스님의 알기 쉬운 불교이야기를 듣고

 

매일 아침 즐겨듣는 프로가 있다. 아침6시에 방송하는 bbs불교방송불교강좌시간이다. 이 강좌에 주목을 하는 이유는 강사스님이 법문을 매우 잘 하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듣는 것이 재미 있어서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그 프로를 듣고 나서 다른 일과가 진행될 정도인데, 프로를 진행하는 분은 대구 상락선원혜민스님이다. ‘알기쉬운 불교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매일 방송하는 스님의 최근 이야기는 기독교에 관한 것이다.

 

스님이 기독교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하여 잘 알기 때문이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기독교를 믿었었고, 또 청소년기에 교회에서 생활하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 기독교의 교리나 신행행태 특히 바이블에 대하여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잘 모르는 불자들에게 바이블의 정체에 대하여 알려 주기 위해서 강의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불교를 우상숭배의 종교로 낙인찍으면서 불교말살을 시도하려는 것에 대하여 기독교의 실상을 더 잘 알려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명이나 이름은 고유명사를 붙여야 하건만

 

옛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자들이 불교에 대하여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이웃종교의 신행행태와 그들의 교리, 더구나 바이블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아는 것도 불교를 바르게 아는 방법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 마디로 바이블은 파렴치하고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야훼라는 이스라엘족속의 부족신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런 야훼는 여호와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느님또는 하나님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중대한 범죄행위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신앙대상을 아무 허락없이 도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지명이라든가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는 원어로 불러주는 것이 원칙이다. 부처님은 붓다(Buddha)’에서 유래하였고, 비로자나불은 바이로차나(Virocana)’에서 유래 하였듯이 불교에서는 지명이나 이름에 대하여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경우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선교용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는데, 바이블을 성경이라 부르고, 야훼를 하느님또는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한국에서만큼은 대성공을 거둔듯한 느낌이다.

 

기독교가 성공한 나라, 명예일까 수치일까

 

진보적 신학자라 불리우는 길희성교수의 글에 따르면 기독교가 성공한 곳은 한국, 필리핀, 그리고 아프리카뿐이라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아프리카 토착신앙과 결합된 아프리카적 기독교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기독교보다 낫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구의 낡은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적 주체성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이웃종교들-길희성.docx

 

 

아시아에서 필리핀과 우리나라만이 기독교가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명예로 생각해야 할까 수치로 생각해야 할까.

 

필리핀이나 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성공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불교나 유교, 도교와 이슬람같은 깊은 철학과 사상을 가진 고등종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길희성 교수는 말한다.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종교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와 같은 길교수의 주장은 아프리카에 적용하면 맞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도 그런 상황이었을까.

 

필리핀에도 불교가 있었다!

 

블로그에 필리핀불교에 대한 글 (가톨릭에 불교의 흔적이, 마리안축제와 필리핀불교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을 올린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필리핀은 카톨릭 국가로 알려져 있어서, 마젤란이 발견하기 이전에 부족국가시대로서 문화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는 필리핀에서도 불교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이미 7세기에 금강승불교가 수마트라에 기반을 둔 스리비자라(Srivijara)왕국의 일어남과 함께 전래되었다고 한다. 9세기에는 남부월남에 기반을 둔 참파(Champa)왕국과 교역을 하면서 인도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11세기에는 송나라와도 교역을 하였다고 송나라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비록 부족국가시대이었지만 주변국가와 교역을 하면서 문화와 불교를 받아들여 불교문화가 꽃 피운 곳이 필리핀이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서 필리핀의 메이저 원어중의 하나가 타갈로그(Tagalog)’인데, 거기에25%정도는 산스크리트어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타갈로그어로 고통이라는 말은 ‘dukha’인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dukkha’와 같고, ‘스승이라는 뜻의 ‘guro’역시 산스크리트어 ‘guru’와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타갈로그어 뿐만아니라 또 하나의 메이전 언어인 카팜판간(Kapampangan)어 역시 산스크리트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식민지 시절 이전에 불교문화가 꽃 피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은 어떻게 하여 기독교국가가 되었을까.

 

길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가 보잘 것 없어서 또는 고등종교가 없어서 기독교화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필리핀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필리핀이 기독교화 되는 과정에 대하여 자세하게 모르고 한 말임에 틀림없다.

 

가혹한 종교탄압

 

필리핀이 기독교화 되는 과정은 매우 가혹하였다. 스페인 식민통치기간 중에 필리핀 민중은 가혹한 종교탄압을 당했다. 4세기 걸쳐 식민정부는 불교도, 힌두교도, 무슬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탄압을 하였는데, 강제개종은 비일비재하였고, 이를 어기면 추방하거나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처벌하기 까지 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종교를 지켜 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가혹한 스페인식민정부의 종교 탄압에 불교도들 역시 수행이나 축제, 또는 종교적 조형물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페인 박해에서 살아남으려면 가톨릭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페인에서는 매우 독특한 가톨릭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토착종교와 가톨릭이 결합된 혼합주의로서의 종교라고 한다. 바로 이 혼합주의의 산물이 필리핀에서 볼 수 있는 동정녀마리아(Virgin Mary)’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동정녀마리아의 상은 사실상 불교의 타라(Tara)보살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다고 한다. 참고로 타라보살은 네팔·티베트·몽골에서 널리 숭배하는 여성 보살이다.

 

이처럼 필리핀이 기독교화한 것은 고등종교가 없어서라기 보다 무려 4세기 걸친 식민통치기간중에 가혹한 종교탄압에 대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한국은 조롱의 대상

 

 

아시아 국가에서 필리핀과 더불어 유일하게 기독교국가화된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조롱의 대상이라고 한다.

 

길희성교수의 글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한국이 기독교화 한 것에 대하여 감탄의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외국인들은 당신들은 문화적 주체성도 없는가?”라고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화함으로서 문화적 주체성도 없고 민족적 자존심도 없는 나라로 전세계의 조롱거리임에 틀림 없다.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불교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불교국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특별한 나라일 것이다.

 

일본식민통치 때문에 기독교가 번성하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그토록 기독교가 번창하게 되었을까. 야훼가 우리민족을 특별히 더 사랑해 주어서 일까. 이에 대하여 길교수는 기독교가 번창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의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둘째, 종교적 진공상태를 겪고 있었다.

셋째,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이다.

 

 

길교수는 기독교가 번성한 이유에 대하여 가장 먼저 일본의 식민통치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길교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만일 우리가 서구 기독교국가의 통치를 받았다면 기독교가 번성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로 보아서는 다행이겠지만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번성하였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압제자의 종교로 청산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말을 바꾸어 말하면 일본의 종교는 불교인데, 식민통치가 종식됨과 동시에 압제자의 종교인 불교도 청산대상이 되었다는 말과 같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불교가 힘을 못쓰고 그 대신 해방의 종교로서 기독교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해방은 미국이 한반도를 접수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는 한반도에서 지배세력의 교체를 뜻한다.

 

미군이 진주함에 따라 미국의 종교는 해방의 종교로, 일본이 물러감에 따라 일본의 종교는 청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독교가 번성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일 것이다.

 

한반도는 실질적으로 미국의 식민지

 

하지만 길교수는 미국의 영향 때문에 기독교가 번성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기독교가 번성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간접적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길교수의 주장과 달리 이도흠 교수는 기독교가 번성한 이유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기독교가 불교를 압도한 원인 12가지

No

  

  

1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흐름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흐름에 기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기독교

2

기독교=서구화=근대화

한국 대중은 기독교와 서구화와 근대화를 동일시함

3

종속된 한미관계

미군정이래 사회 전분야의 미국의 식민지화

4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결합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 수용

5

근대적 담론의 확대재생산

합리성, 인권, 자유, 평등 등 근대적 담론을 확대재생산

6

사립학교설립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설립하여 기독교신앙 확산

7

엘리트들의 기독교도화

기독교엘리트와 유대강화가 출세의 지름길로 인식

8

사회민주화와 참여

빈민구제등 활발한 사회적 실천과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

9

공격적인 선교와 조직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교와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신도관리

10

좋은 성직자와 훌륭한 설교

우수한 인재의 의한 입맛에 맞는 설교로 급속히 신도가 늘어남

11

목회자와 신도의 협력

신앙과 사회봉사의 실천적 주체로서 유대관계 강화

12

신부들의 청렴과 의례의 대중화

성직자의 절제된 삶은 존경의 대상이고, 의례의 대중화에 따른 적극참여

 

출처 :    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이도흠교수.docx 

 

 

 

위의 표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세 번째의 종속된 한미관계이다. 이도흠교수는 미군정이래 한미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미국은 한국을 미국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하기 위하여 기독교로 사상적이고 종교적인 식민지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이후 한국이 정치, 경제, 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실질적인 미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국 엘리트 및 대중의 기독교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도흠교수, 한국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

 

 

이교수는 한반도가 실질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우리나라가 36년간 식민지로 편입되었듯이. 해방후 미군의 진주로 인하여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전분야에 걸쳐서 식민지화가 진행되었고, 이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지배가 끝난다면

 

이는 단지 일본제국주의에서 미국에 의한 질서로 교체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배세력이 바뀌다 보니 지배세력의 종교가 득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식민지배는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 기독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다행스러운 것이었고, 불교적 입장으로 보았을 때 재수없는 것임에 틀림 없다. 더구나 지배세력이 바뀐 후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역시 다행스러운 것이었고, 불교적 입장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재수없는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미국의 지배가 끝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의 종교라 불리우는 기독교도 청산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의 지배세력에 따라 종교가 흥망성쇠함을 역사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찌기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던 한반도는 당나라시절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고, 원나라 시절 라마교의 영향권에 있었고, 조선시대의 경우 유교의 영향권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미국의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득세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지정학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블의 내용을 제대로 안다면 지배자의 종교가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의 야훼의 행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잔인하고 극악무도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내용

 

야훼는 살인을 저지르고 피신한 모세에게 명령을 내려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이집트의 파라오군을 수장시킨다.  또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여리고성공략에 대한 기록이 바이블에 기록되어 있는데,  상대방의 씨를 말리는 잔인하고 잔혹한 살육장면 또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도들이 믿는 창조주의 실체이다.

 

이외 수 많은 패륜적 이야기와 반인륜적인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바이블의 정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교의 경전에는 그 어느 곳에도 패륜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조장하는 문구를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84천개의 법문만 있을 뿐이어서 바이블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미국의 지배하에 있다 보니 그들의 종교가 득세하고 심지어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 보라는 듯이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쪽팔리는 행위

 

하지만 정상적인 두뇌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부끄러워서라도 가지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독인은 구약을 바이블에서 떼어내 버리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건 말건 반인륜경이자 패륜경인 바이블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은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한다. 속된 말로 바이블을 보라는 듯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쪽팔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2011-07-05

진흙속의 연꽃

 

그리스도교와 이웃종교들-길희성.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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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비판 및 나아갈 길-이도흠교수.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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