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컴퓨터사경(寫經)과 붓티즌(Budtizen)시대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1. 7. 2. 10:12

 

 

 

컴퓨터사경(寫經)과 붓티즌(Budtizen)시대에

 

 

 

아침에 불교방송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가 시작 되는데, 아침예불이 끝나고 곧바로 경전공부로 이어진다. 대승경전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전공부 강좌는 단지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경전강좌는 좀 독특하다. 스님이 직강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법문하였던 것을 녹음기 틀어 주듯이 들려 주는 것이다. ‘도림스님의 법화경강좌가 그것이다.

 

법화경사경과 법화행자

 

도림스님의 강좌는 매우 구수하다. 호남지방의 느릿하고 맛깔스럽고 정겨운 말씨는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것 같다. 그런 매력이어서일까 스님을 따르는 수 많은 신도들이 있다고 한다. 알고 지내는 어느 법우님도 도림스님의 법화경 법문에 감동받아 스님이 있는 절에 다닌다고 들었다. 불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도림스님의 법화경강의를 들어 보면 가장 강조하는 사항이 사경(寫經)’이다.

 

스님은 법화경 사경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법문에서 늘 강조한다. 이른바 법화경 사경공덕에 관한 것이다. 그런 사경을 열심히 하는 불자를 법화행자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도림스님을 따르는 법화행자는 얼마나 될까. 매스컴에 따르면 2010 10월 천안 구룡사에서 법화행자 1만명이 모여서 사경봉안 독송기도 대법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에 걸쳐 법화행자는 100만명 가량된다고 한다.

 

독특한 불교경전

 

법화경은 불교경전에서 매우 독특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타력적인 요소가 강하고 유신적인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경우 7난에 있어서 염피관음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법화경을 사경한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사경을 의미한다. 실제로 사경용 관세음보살보문품이 불교용품점에서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신격화되고 초월적 존재로 부각되어 있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생각하며 법화경을 사경하였을 때 반드시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한다.

 

불교경전에는 법화경과 같이 타력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 경전도 있지만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철저하게 자력적이다. 그런 경전이 부처님당시부터 전해져 오는 니까야이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아

 

니까야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84천법문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법문을 다 읽을 수 없어도 핵심적인 경을 봄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아 맞다는 것이 증명 되었을 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 들이게 된다. 설사 경전의 내용중에 비현실적이거나 자신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유보하는 것이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경은 모두 84천개로서 너무나 방대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재가불자가 다 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핵심가르침만 뽑아 요약해 만든 한권시리즈도 유행하고 있다.

 

진정한 자비심을 가졌다면

 

한권시리즈라 하여 설명이 곁들인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나열한 경을 말한다. 수행의 가르침에 대한 경, 자비실천에 관한 경, 마음챙김에 관한 경등을 모아 놓고 단지 생소한 용어에 대한 주석만 해 놓은 것을 말한다.

 

사실 이런 요약본이 많이 출판되어야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더 많이 보급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또 번역된 니까야를 인터넷에 올려서 누구나 다운 받아 볼 수 있도록 조치해 주어야 한다. 중생에 대한 진정한 자비심을 가졌다면 가능한 일이라 본다.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한권으로 요약된 빠알리경전을 보게 된 것은 이 시대의 행운이다. 늘 가까운 곳에 놓고 보는 부처님의 말씀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새로 들어온 비구에게 “오너라,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라고 말씀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설해졌다는 것은 니까야를 아무 곳이나 들추어 보아도 확인 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을 아무 곳이나 펴 보면 구구절절 나의 삶과 현실에서 부딪치는 실제적인 이야기들이다. 사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사경해야 한다. 그저 한 번 읽는 것과 사경하는 것과는 매우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사경을 하게 되면

 

사경을 하게 되면 내용을 한 번만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0번 정도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머리로 이해하고, 쓰는 과정에서 가르침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 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종이위에 펜으로 사경하는 것만이 사경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사경도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컴퓨터 사경을 말한다.

 

붓티즌(Budtizen)

 

요즘의 시대를 정보통신시대라고 한다. 각 가정이나 직장, 현장에 네트워크가 깔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고도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그에 따라 어느 집, 어느 직장, 어느 현장이건 간에 누구나 접할수 있는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따따라서 이런 추세에 발 맞추어 사경 역시 컴퓨터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종이와 펜을 이용한 사경은 공덕이 되지만, 컴퓨터 사경은 공덕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는 한자로 된 한문경전으로 공부하면 깨달을 수 있지만 영어로 된 불경을 읽으면 깨달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종이사경이나 컴퓨터 사경이나 모두 효과는 동일하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고 또 새겨서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어서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컴퓨터로 사경하여 인터넷에 널리 유포하는 불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불자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면 붓티즌(Budtizen)’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컴퓨터 사경에서 한 발 더 나가면 글쓰기가 된다. 경전사경과 글쓰기를 병행하는것이다.

 

글쓰기 삼매에 들게 되면

 

글을 쓰면서 경전을 자주 열어 보게 된다. 그리고 주석서도 참고 하게 되고, 인터넷검색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는데, 이를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하나의 수행으로 생각한다.

 

수행이라는 것이 반드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좌선한다거나, 108배를 매일 한다거나, 염불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 새기는 것 자체가 수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글쓰기도 좋은 수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 순간 만큼은 잡 생각이 끼여들 틈이 없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동안 집중이 되기 때문에 글을 쓰고 나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른바 글쓰기 삼매에 들게 되면 시간이 훌러덩 지나가 버린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쓰기의 장점은 글이 남는 다는 것이다. 물론 종이 사경을 하는 것도 남는 것이 되지만 컴퓨터 사경을 하여 인터넷에 올리면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파하는데 있어서 매우 요긴한 것이다.

 

종이사경이 오로지 자신의 공덕만을 위한 것임에 비하여, 컴퓨터 사경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컴퓨터 사경이나 글쓰기야말로 가장 큰 공덕을 짓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201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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