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지금 장난해?”21세기 아쇼카선언 수정안과 매불노(賣佛奴)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1. 22. 10:01

 

 

지금 장난해?”21세기 아쇼카선언 수정안과 매불노(賣佛奴)

 

 

 

21세기 아쇼카선언 임박

 

21세기 아쇼카선언이 임박했나 보다.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에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소위 ‘21세기 아쇼카 선언이 곧 발표 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지난 8 23일 발표되었던 초안에서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열린진리관·종교다원주의·아쇼까 부제 ‘고수’) 이다.

 

 

이에 대하여 그동안 줄곧 선언문의 문제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해 왔던 법응스님은 기사에서 최종본은 일부 단어와 문장을 바꾸었으나 사실상 그대로 이며, 역시 굴종적이며 신학적 종교다원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최재천 교수의 한미 FTA 쪽집게 특강

 

요즘 우리나라는 한미FTA처리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이를 추진하는 여당입장에서는 강행처리방침을 세워 날치기 통과도 불사 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입장에서는 21세기판 을사늑약과 같은 굴욕적인 조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한미FTA에 대하여 자세히 모른다. 단지 신문과 방송등 매스컴에서 전하는 뉴스를 통하여 그저 좋은 것인줄 안다. 그러나 FTA에 대한 강연을 들어보면 도저히 해서는 안될 조약이다.

 

불교중흥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회를 보아 불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전 17대 국회의원인 최재천 교수가 인터넷시사전문 사이트에서 강의한 한미 FTA 쪽집게 특강에서 현재 가장 현안으로 떠 오른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영상 강의를 들은 국민들은 현재의 한미FTA조약에 관한 문구가 얼마나 위험스런 것인지 뼈져리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반드시 저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이 바뀐다. 마찬가지로 현재 불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쇼카선언문 역시 한미FTA조약문 못지 않게 반불교적선언문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런 선언문이 공식화 된다면 앞으로 불교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을사늑약 당시 민중들은 대부분 내용을 알지 못하였고 일부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 먹었듯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자들이나 아쇼카선언을 추진하는 자들 역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자신의 입맛대로 밀어 붙이려 하고 있다.

 

을사늑약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강제로 체결한 조약을 말한다. 이때 이 조약에 협력한 자들이 소위 을사오적(乙巳五賊)이다.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로서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을 가리킨다.

 

이들 을사오적들은 나라를 팔아 먹은 댓가로서 일제로부터 모두 작위를 받아 조선귀족이 되어 한평생 호위호식하며 살아갔다.

 

누가 작성하였는가

 

불교계의 을사늑약과 다름 없는 아쇼카선언에도 그런 인물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아쇼카 선언을 만들고 추진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언론에 공표된 기사를 근거로 명단을 만들었다.

 

 

아쇼카 선언문 작성자 및 참여자

 

이 름

직업

   

1

도법

승려

화쟁위원장, 아쇼카선언 발표자및 책임자

2

명법

승려

초안 중 불교도 서원 부분을 작성함

3

지홍

승려

불광사 회주

4

법안

승려

불교사회연구소장

5

원택

승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6

혜일

승려

결사추진본부 사무총장

7

조성택

교수

아쇼카선언문 초안 실질적 주도자로 초안을 마무리함

8

성태용

교수

아쇼카선언의 당위성을 사설로 밝힘

9

박경준

교수

동국대 교수

 

 

아쇼카선언문은 조계종 화쟁위에서 작성되었다. 화쟁위원장은 도법스님이다. 도법스님은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매스컴과 인터뷰를 진행하여 선언문의 당위성을 설명한 선언문에 대한 최고 책임자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조성택 고려대 교수이다. 그는 이번 아쇼카 선언문의 작성에 있어서 초안을 마무리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언문이 나오게 되기 까지 실질적 주도자이다.

 

그는 선언문이 발표되고 난후 조선일보에 언, 라는 제목으로 기고 하기도 하였다. 이 기고문에서 나의 진리는 더 큰 진리의 한조각이라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였고,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여 칭조론등으로 대표되는 유일신교의 교리를 진리라고 사실상 인정하였다.

 

또 그는 기독교 비판하면서 닮아 가자는 건가라는 도발적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불자들에게 근본주의자’ ‘패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주었다. 이는 교계의 내부적 지적에 대하여 닫힌 자세로 일관하며, 유일신교에 대해서는 열린진리관등으로 열린 자세로 일관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쇼카선언 동조자

 

이번 아쇼카선언문 발표에 작성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논리에 동조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언론에 발표된 기사를 근거로 표를 만들었다.

  

 

아쇼카 선언 동조자

 

이 름

직업

   

1

백승권

종무원

화쟁위 사무국장, 아쇼카선언 실무자

2

장영섭

기자

불교신문에 아쇼카 선언 옹호기사 남발

3

이찬수

목사/교수

목사신분으로 아쇼카 선언문 작성 참여

4

한형조

교수

불교 밖에도 불교가 있다는 글을 불교신문에  실음

5

박병기

교수

초안에 동의하는 사설을 실음

6

성타

승려

“불교계의 쾌거”라며 교구본사회의 동의이끌어냄

7

심산

승려

대중공사 토론에서 종단측 대표로 찬성발언함

8

정웅기

재가단체대표

초안에 동조함

9

정우식

대불청회장

초안에 동조함

 

 

 

이들 명단중에 특이한 존재가 있다. 그것은 목사이다. 왜 목사가 선언문 작업에 참여 하였을까. 그것은 지난 1 27일자 불교관련 인터넷 신문에 난 기사를 근거로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쟁위는 올해 주요의제로 선정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벌어나가기 위해 성태용 건국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기획위원회를 구성했다.

 

기획위원회는 학계를 대표해 박경준 동국대 교수, 조성택 고려대 교수, 정윤선 KIST 연구원, 이찬수 강남대 교수와 갈등해결 분야의 강영진 갈등해결센터 대표, 김정희 ()케이씨엔컨설팅 대표, 언론계의 김종락 문화일보 전 문화부장, 오상광 MBC 시사교양국차장 외에 NGO와 문화기획, 종단 인사로 짜여졌다.

 

(불교닷컴, 화쟁위, 아쇼카 종교평화 선언 내놓는다, 2011-1-27)

 

 

이처럼 이찬수목사가 선언문 작업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놀라웁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더구나 이찬수 목사는 불교평론에서 기독교를 끌어 안으라는 논리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선언문의 열린진리관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화쟁위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왜 목사가 선언문 작성에 참여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선언문 작성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전 불교인의 문제

 

이번 아쇼카선언문은 스님들과 교수들의 합작품이다. 여기에 종무원과 기자 목사까지 가세하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서 초안을 선언한 바 있다.

 

조계종이 한국불교를 대표하기 때문에 본 선언문이 발표된다면 자동적으로 모든 불교종파와 불자들에게 해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언문이 조계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불교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선언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승려의 경우 명법, 지홍, 법안, 도법, 원택, 혜일이고, 교수의 경우 조성택, 성태용, 박경준이다.

 

부처님과 불자들에 대한 배신행위

 

선언문은 한번 발표되면 되돌릴 수 없다. 한미FTA가 국민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국가와 국가가 맺어진 조약으로서 비록 불평등한 것일지라도 한번 발효 되면 을사늑약처럼 되돌리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아쇼카선언도 초안이 발표된 이래 수정 보완작업을 거쳐서 새롭게 완성되었다고 할지라도 뼈대는 유지된 채 표현방법만 수정되어 공표 된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겨자 먹기로 발표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이는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다. 종단과 불자들에게 아무런 통보없이 어느 날 일방적으로 발표 하였기 때문에 본 선언문을 발표 해야 된다면 이는 불교계의 비극이자 최악의 매불행위이고 부처님과 불자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열린리관을 보면

 

그런 아쇼카선언의 수정보완문을 보면 여전히 열린리관과 전법의 원칙이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뀐 선언문에서 열린진리관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서로 연관된 존재이며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웃종교는 나의 종교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인연이 엮어내는 다양성이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입니다. 연기법은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불교가 우리사회의 다원적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이며 이웃종교와 관계 맺기를 원하는 바탕입니다.

(21세기 아쇼카 선언 최종본)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수정본.docx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수정본.pdf

 

 

초안과 비교하여 열린진리관이 바뀌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골격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단지 표현만 살짝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연기법에 대하여 법계연기를 고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서로가 서로를 창조해 내는 법계연기에 따르면 모두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연기법은 대승 화엄사상의 법계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설한 연기법에 따르면 상견과 단견은 논파의 대상이었다.

 

연기법이란

 

연기법은 조건하여 함께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조건없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원인없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법들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조건이 계속생겨나는 한 단멸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래서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영속론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다음생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단멸론은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명확하게 영속론과 단멸론이 삿된 견해임을 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후기 대승에서는 법계연기 개념을 적용하여 오늘 날 동아시아에서 여래장 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앙의 불교를 보게 되었다.

 

개종이 속출하는 이유

 

오랜만에 법우님들 모임에 갔었다. 불교교양대학동기생들의 모임이다. 그 모임에서 한 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모임에 잘 나왔던 어느 법우님이 교회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몇 해전 들은 적이 있다. 법우님들에게 법보시용을 선물을 준비해 놓고 택배로 보내기 위하여 준비하던중 교양대학초기의 얼굴을 보였던 어느 법우님과 오랜만에 통화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그 법우님은 , 성당나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먼 친척이 있는데, 그분은 강남에서 전통사찰인 B사에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최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고 들었다. 이유는 집안일에 있는 것 같다. 아들의 이혼등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년간 다니던 B사를 그만두고 교회로 향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변에서 개종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개종소식은 온라인에서도 듣는다. 어느 법우님은 글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오랬동안 절에 다니다가 나이가 들어 몸도 불편해지고 하고 집 근처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한 마디로 불교를 기복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들이 말로는 일체유심조, 인연법을 이야기하지만 신도들에게는 기도만을 하게 하는 것이 커다란 요인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신도들은 이른바 사대기도  즉, 학업, 승진, 사업, 치유에 관하여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잘 경우도 있지만 잘 되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했건만 불보살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더 큰 기도대상을 찾아 떠날지 모른다.

 

이처럼 불교를 단지 기복으로만 신봉하였을 때 개종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문에서 주어만 빼면

 

법의 불교가 아닌 신앙의 불교는 불자들을 크게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유일신교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적 종교상황에서 유일신교로 개종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기도의 대상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기도문에서 주어만 빼버리면 불교인지 유일신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쉽게 개종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주어만 빼버리면 어느 종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특징이다. 그런 한국불교의 특징중의 하나는 영혼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아를 근본으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다. 한국불교가 여래장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앙불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본다.

 

이처럼 영혼을 인정하다 보니 죽은 자를 위한 각종 재를 지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천도재를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유일신교의 영혼개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에서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유일신교의 창조론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아쇼카 선언으로 인하여 유일신교의 교리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진리는 모두에게, 모든 믿음에 열려 있습니다.”라 하여 선언문의 열린진리관 초안과 골격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혼을 인정하고, 더구나 창조론도 인정하게 된다면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개종은 더욱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전법이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고?

 

아쇼카선언문에서 항상 문제되었던 것은 열린진리관 더불어 전법의 원칙에 대한 것이었다. 비록 이번 최종본에서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표현대신에 전법은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 뭇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로 바뀌었지만, 문제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최종본에서 전법이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그렇다면 교세확장을 위한 포교를 하지 말란 말인가. 전법의 목적이 교세확장이 아니라면 조계종의 포교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들도 포교에 대한 의무가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이 깊은 산속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도만 닦고 살아 왔지 저자거리로 나와 포교를 한 스님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스님들이 이제까지 교세확장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진한 것인양 전법은 교세확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도 유일신교의 목사를 대상으로 한 말이 잘못 표기 되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우리스님들은 너무 포교를 안해서 이제까지 문제가 되어 왔다. 도시에서 불교를 볼 수 없는 요인도 스님들이 세상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심지어 불자들과도 소통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도시에 불교가 없고 십자가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법은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니 이게 웬말인가. 정녕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부터 교세확장을 위한 포교는 올스톱해야 한다.

 

포교와 관련하여 전법은 교세확장이 아니라고 선언한다면 한국불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지금도 스님들이 포교전선에 나서지 않는 마당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님들은 심산유곡에서 부처님의 준엄한 전도명령을 어기고 포교에 대하여 직무태만과 직무유기를 하여 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기를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 연무대에서 볼 수 있다.

 

 

군포교에 올인하는 개신교

 

현재 논산훈련소에는 큰 법당이 세워지고 있다. 3,500석 규모의 체육관식 호국연무사 법당이라 한다.

 

 

 

 

 

호국연무사 상량식

2011 11 7일 논산훈련소에서 열렸다.

2012 5월 부처님오신날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사진 ; http://www.buddhism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5363

 

 

 

이 법당의 특징은 군화를 신고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기존 법당은 1500석 규모로 군화를 벗고 들어가는 불편함이 있는데, 이는 타종교의 시설과 비교하여 가장 낙후되고 불편하여 매우 불리한 조건이라 한다. 개신교와 천주교, 원불교의 경우 군화를 신고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차이로 인하여 불교법당에 훈련병들이 적게 들어오고, 반면에 타종교 시설에 훈련병들로 넘친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둡다.

 

개신교의 경우 병사들을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하여 각종 공연을 준비하여 축제의 장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격주로 약 3,500명이 세례를 받아 연 15만명의 신자가 탄생하는데, 이 수치는 전 훈련병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개신교에서는 90년대 이후 정체상태에 빠진 성장률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군대포교에 올인하고 있다. 마치 최첨단 어군탐지기 기능을 갖춘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 밑바닥부터 물고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훝어 가듯이, 1004개의 군부대 교회와 일반교회가 자매결연을 맺어 군선교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있는 것이다.  

 

 

 

 

 

 

 

 

논산훈련소의  개신교 교회

3500명 입장가능하고, 격주로 3,500명이 세례받는다.

사진 ; http://blog.daum.net/green-k7/13727968

 

 

 

또 천주교의 경우 연간 논산에서 세례 받는 숫자가 천주교 전체 세례자의 1/5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개신교와 천주교는 군대선교를 위해 올인하고 있다시피 한다. 이는 군대가 전도의 황금어장임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의 경우 이제 군화를 신고 들어 갈 수 있는 법당이 신축중인데 자금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내년 5월 부처님오신날 개원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실정인데 아쇼카 선언문에서 전법은 교세확장이 아니라~”운운한다면 과연 선언 추진자들은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하여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자들일까.

 

개신교인 선언문인 듯한

 

아쇼카선언문 최종본에서 열린진리관과 전법의 원칙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이 선언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불교인선언문이 아닌 것 같다. 명칭이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이라고 되어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불교인 선언문이 아니라 개신교인 선언문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왜그럴까.

 

그것은 선언문의 문구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의 경우 불교인 보다 개신교에 해당되는 것 같고, “전법이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운운하는 것도 개신교에 적용하면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언문의 실천사항 다섯가지에서 주어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를 빼고, ‘불교’ 대신 ‘개신교’를 집어 넣어 바꾸어 보았다.

 

 

첫째, 우리는 오직 개신교를 통해서만 평화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내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이웃 종교를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넷째, 우리는 내 믿음을 전하기 위해 공적 지위나 권력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우리는 어떤 갈등과 분쟁의 상황에서도 평화로운 방업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겠습니다.

 

이렇게 바꾸어 보니 아쇼카선언문은 불교인에게 적용될것이 아니라 개신교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맞아 보인다. 이제까지 개신교의 경우 공격적인 선교행위로 인하여 불교인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놀고 있네!” 됐거든!”

 

개신교인은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하여 예천불지를 부르짖어 남의 종교를 비방하였고, “사찰이 무너져라고 기도회를 가졌는가 하면, 서울시를 자신의 신께 봉헌한다는 발언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선언문은 개신교인을 위한 선언문이 되었어야 했다. 개신교로 가야할 선언문이 불교로 잘못 번지수를 찾아 온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선언문은 종교평화을 위한 개신교인선언문이 되었어야 했다.

 

본 선언문은 개신교인에게 해당된다. 엄밀히 따져보면 불교인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하여 타종교에 아픔도 준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법이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본 선언문은 개신교에 보내서 그들이 선언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한마디로 놀고 있네!” “됐거든!”이라고 말할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장난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쇼카선언 초안을 종단과 불자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 발단이다. 이미 발표를 해 버렸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 전언론에 공표되었고, 언론마다 대서특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 최종본이라는 것이 골격은 유지한채 표현만 바꾼 것으로서 꼼수를 부린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를 하나의 정치도구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진리는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항상 최선(最善)’만을 추구해야한다. 만일 대화와 타협과 양보를 통하여 안이 나왔다면 이는 정치적 행위이고 그것은 차선책(次善策)’이다.

 

정치에는 여와 야가 있어서 대화와 양보와 타협으로 항상 차선 또는 차차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일 뿐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종교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쟁위 멤버들은 마치 정치하듯이 진리를 양보와 타협의 산물로 여겨 차선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화쟁위의 추진멤버들은 이제 발표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언문은 엄밀히 말하면 불교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신교인에 관한 것이다. 이는 선언문의 내용이 개신교인에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선언문이 발표 된다면 이는 개신교인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그럴경우 그들로 부터 놀고 있네!” “됐거든!”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장난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매불노(賣佛奴)가 될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두 개의 선언문이 발표 되려 하고 있다. 하나는 한미FTA조약이고 또하나는 21세기 아쇼카 선언문이다. 그런데 이들 선언문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에도 마찬가지이었다. 국민들은 내용도 모르고 내막도 모른채 체결된 을사늑약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인들이 밀려 들어 왔을 때 그제서야 망국적인 조약임을 알 수있었다.

 

마찬가지로 한미FTA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국적인 조약임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관여한 인물들은 을사오적 못지 않는 지탄을 받게 될 지 모른다. 불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21세기아쇼카 선언이 발표 되어 개종이 속출하고 불교의 교세가 크게 악화되는 요인이 발생한다면 선언문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매불노(賣佛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2011-11-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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