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산중승(山中僧)의 이중생활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1. 29. 11:56

 

 

산중승(山中僧)의 이중생활

 

 

 

어느 산중승이

 

산에서 사는 스님을 산승또는 산중승이라 한다. 특히 산중승이라는 말은 블로그에 댓글을 올려 준 어느 스님으로 부터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산에서만 사는 산중승도 세상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불교관련 인터넷 신문에 어느 산중승이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번 종교평화선언 소위 ‘21세기 아쇼카선언에 대한 소감을 밝힌 것이다. 이 소감문에서 산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스님,
제가 머물고 있는 이곳은 벌써 오래 전부터 얼음이 얼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충분하게 때고 잠자리에 눕지만 새벽이 되기도 전에 구들이 식어서, 때로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그게으름이라는 사치를 누릴 자유조차 없습니다. 낮에는 또 산중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쓰러진 나무 등걸이나 나뭇가지들을 모아 지게에 짊어지고 오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냅니다. 이래서 요즈음 젊은 출가자들이 산 속에 머물기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툰 지게질로 비탈길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옮기며 순간순간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기름보일러 덕분에 뜨끈뜨끈해진 선방에서 좌복을 깔고 앉아 참선에 드는 것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지게질을 하거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 불길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을 때면 문득 무상을 실감하고, “내가 출가하길 잘 했구나!”하며 제 자신의 선택에 감동을 하기도 합니다.

 

(종정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불교포커스 2011-11-28)

 

 

이 글은 어느 산중승이 조계종 종정인 법전스님에게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다. 최근 세간에 논란이 되었던 21세기 아쇼카선언에 대한 발표를 유보시킨 종정스님에게 쓴 글이다.

 

글을 보면 산중생활이 잘 묘사 되어 있다. 번거로운 세속을 떠나 산중에서 유유자적 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무척 부러워 보인다. 하지만 게으름을 부릴 사치는 없다고 말한다. 혼자 살기때문에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중생활이 몹시 행복하다고 한다. 비록 산중이긴 하지만 혼자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척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행복은 기름보일러가 갖추어진 선방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과 떨어져 혼자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갖출 것 다 갖추며 혼자서 사는 것에 대한 소감은 내가 출가하길 잘 했구나!”라는 것이다.

 

 

 

 

 

 

 

산중승의 생각은

 

 

이렇게 혼자 산속에서 생활하는 산중승에게 아마도 인터넷도 갖추고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소식도 알고, 인터넷을 통하여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깊은 산중에서 생활하는 산중승에게 위성안테나와 인터넷, 휴대폰등 각종 첨단기기들이 갖추어진 삶을 살아간다면 이중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산중승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번 종교평화선언이 유보된 것에 대하여 표현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저는또 다시 종단 분규의 악몽을 겪지는 않겠구나!”하며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래야 자신들이 할 역할이 있을 것이라 계산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며 평화선언 발표를 방해하였던 일부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종정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불교포커스 2011-11-28)

 

 

종교평화선언이 유보된 것에 대하여 크게 안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언을 발표함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될 불교내 분규를 차단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분규를 일으키려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산중승의 지적에 따르면 이번  종교평화선언에 대하여 반대하고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규를 일으켜 어떤 이익을 챙기려는 매우 몰지각한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의 꾐에 빠져 종정스님이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정스님의 조치에 대하여 간접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산중승은 글의 말미에 다음 종정스님을 모시고 여법하게 <종교평화선언>을 온 세상에 널리 선포하고 모든 종교인들이 기쁨의 춤을 덩실덩실 추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현재 추진중인 종교평화선언이 선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록 현재 종정스님이 제동을 걸어서 좌절 되었지만, 새로 종정스님이 선출되면 선언이 발표되어 종교평화를 가져오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산중승의 이중생활

 

그런 산중승은 산속에서 생활하는 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지게질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순간이 참선 명상에 최고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이 감히 종정스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리저자거리가 싫고 종단 정치같은 것은 나와 아무 상관 없다며 도시를 떠나온 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총무원과 조계사 주변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또한 벗어버리기 쉽지 않은 업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종정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불교포커스 2011-11-28)

 

 

깊은 산속에서 사는 산중승이 저자거리가 싫어서 산속에 들어 왔다고 한다. 몸은 사람사는 곳을 떠나 와 있지만 항상 세속의 일에 귀를 기울이고 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중적인 산중생활을 하는 산중승이 있다.

 

발언을 하려거든

 

법우들과 순례법회를 다니다 보면 깊은 산속에 있는 산사를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절이든지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위성안테나이다. 물론 인터넷도 가능하다. 아무리 깊은 산골이라도 네트워크가 깔리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위성안테나를 통하여 영화, 스포츠등 수십개의 채널을 선택할 수 있고, 휴대폰을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통화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 또한 산중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몸은 비록 심산유곡에 있지만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산중승들은 세속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인터넷을 보는 것은 세속에서 사는 것 보다 더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득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플레시로 넘처나는데, 이런 광고물이 산중이라고 해서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산중에서 위성안테나, 휴대폰, 인터넷을 갖추고 사는 것이 과연 수행자의 삶의 모습일까.

 

이렇게 산중에서 사는 스님들은 냉난방이 되는 방에서 각종 정보통신기기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은 세속을 떠났지만 삶의 모습은 세속과 다름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며 국민들은 물론 불자들과 소통을 거부 하며 살아가는 산중승들이 종종 인터넷매체를 통하여 한마디씩 던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발언을 하려거든 산속에서 하지 말고 저자거리로 나와서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두려워 숨어만 사는 것일까.

 

 

201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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