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국은 테라와다불교국가인가, 1973년 태국고승들로 부터 받은 비구계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1. 30. 17:41

 

 

한국은 테라와다불교국가인가, 1973년 태국고승들로 부터 받은 비구계

 

 

 

 

한국의 비구계는 1973년부터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일까. 한국이 대승불겨권국가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라기 보다 테라와다 불교일 것이라는 주장을 보았다. 지난 11월 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종광스님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구계는 엄격하게 말한다면 1973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1973년 고승들의 태국 비구계 수계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고 있지만, 당시 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한국불교에 그동안 계맥이 끊겨서 비구가 없었는데 우리나라(태국) 스님 10분이 가서 수계를 주었다고 태국언론에 대서특필이 되었다고 한다.

 

(, 하면 부처님이 생각나지 않고 달마가 떠오르는 것, 문제 아닌가?, 미디어붓다 2011-11-25)

 

11월 불교중흥대토론회.docx

 

11월 불교중흥대토론회.pdf

 

 

토론회에서 종광스님은 한국의 비구계는 1973년 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지난 1973년도에 태국의 고승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스님들을 대상으로 비구계를 주었기 때문이라 한다.

 

 

 

 

 

 

 

 

태국고승들의 내한

 

그때 수계를 받은 스님들은 어떤 스님들일까. 이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불교평론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불교는 승단 정화 이후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비구라면 구족계를 받아야 하는데 구족계의 계맥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의 고승을 초청하여 구족계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태국의 고승들이 한국에 와서 남방 전통의 구족계를 수여했다. 이것은 한국불교 교단사에서 크나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 교단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한국의 승려들이 상좌불교 국가인 태국의 고승들을 초청하여 상좌부 전통의 비구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태국의 장로들은 한국불교의 승단에 태국의 계맥을 전해 준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세계불교에서의 태국불교(Thai Buddhism in the Buddhist World)》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스님들이 다른 불교국가에서 학업을 추구하도록 파견돼 왔다. 최근 몇 년간 상좌부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승단은 한국 스님들을 상좌불교 국가들로 보낼 뿐만 아니라, 자국 내에서의 상좌부 수계도 환영하고 있다. 1973(불기 2516)에 태국 상좌부 스님들이 서울에서 수계식을 열기 위해 초대를 받고 가서 약 마흔 분의 한국 스님들을 상좌부 계단에 맞아들였다.

 

위의 인용문 내용과 같이 한국불교계에서 태국의 고승들을 초청하여 비구계를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도성(道成) 스님(전 해인사·대흥사 주지, 현 부산 태종사 회주·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의 증언에 따르면, 1973 3월 말경 양산 통도사에서 남방 구족계 수계식이 거행되었다. 이때의 수계는 계첩을 발부하지 않았으며, 수계식 기념사진도 촬영하지 않았다. 다만 수계의 증표로 남방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았다. 수계를 받은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도성 스님은 당시 수계를 받은 스님들의 명단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통도사의 홍법·상우, 부산 선암사의 석암, 쌍계사의 고산, 송광사의 보성·학산, 해인사의 혜암·도견·일타·종진·운산·현우·도성, 대구의 수산, 법주사의 혜정 스님 등이 받은 것은 확실하게 기억하지만, 고암과 경산 스님은 계를 받았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이때 천축사의 천장 스님은 한 발은 계단 안에 한 발은 계단 밖에 두고 수계를 받았다는 일화도 전한다.

한편 그 이전에도 개인적으로 남방불교의 비구계를 받은 스님들이 있었다. 일각 스님은 인도에 가서 받았으며, 거해 스님은 태국에 가서 비구계를 받았다. 이때를 상좌불교의 도입 시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좌부의 장로들로부터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한국불교계에서는 이때 받은 수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수계 받은 사실 자체를 지금까지 숨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 / 마성, 불교평론 2011-9-6)

 

 

  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docx  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 .pdf

 

 

 

 

마성스님은 글에서 태국의 고승으로 부터 비구계를 받은 스님들이 매우 많았는데, 이를 숨기고 있다고 한다. 소승불교라고 불리우는 상좌불교의 비구로 부터 수계받은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테라와다 비구계는 누가 받았을까

 

그때 수계를 받은 인원중에 거명된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테라와다 비구계 수계자 명단

No

이름

소속사찰

테라와다 비구계

비 고

1

홍법

통도사

수계함

 

2

상우

통도사

수계함

통도사 전부방장

3

석암

부산 선암사

수계함

조계종 원로의원

4

고산

쌍계사

수계함

현쌍계사 조실, 전총무원장

5

보성

송광사

수계함

송광사 방장

6

학산

송광사

수계함

 

7

혜암

해인사

수계함

 

8

도견

해인사

수계함

 

9

일타

해인사

수계함

전은해사 방장

10

종진

해인사

수계함

 

11

운산

해인사

수계함

 

12

현우

해인사

수계함

 

13

도성

해인사

수계함

현 한국테라와다불교 종정

14

수산

대구

수계함

 

15

혜정

법주사

수계함

 

16

고암

 

수계설있음

 

17

경산

 

수계설있음

전총무원장

18

천장

천축사

한 발은 계단 안에 한 발은 계단 밖에 두고 수계설

 

 

출처: 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 / 마성, 불교평론 2011-9-6

 

 

위표의 명단을 보면 한국불교를 이끌어 가는 큰스님들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조계종 큰 절의 조실스님과 방장스님 그리고 총무원장을 지낸 스님들까지 그 이름만 보아도 무게가 느껴진다. 이중 어느 스님의 경우 조계종 차기 종정후보에도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표를 보면 도성스님이 있다.

 

도성스님의 경우 현재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종정스님(뿐냐산또, 현 부산 태종사 회주,·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을 맡고 있다. 그런면으로 본다면 계를 받은 스님들 중에 도성스님 한 분만이 테라와다불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성스님

도성 스님(왼쪽)200910 31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법회에서 상가라자로 추대됐다.

출처:

 

 

 

 

송광사 홈페이지에서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여 더 알아 보았다. 그 결과 송광사의 홈페이지에서 일각스님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72. 10.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근본불교 전통계맥 계승을 위하여 태국 고승 10인 초청, 비구계 산림 봉행 (시 동계 수계자 53)

1973. 2. 21.
태국불교사절단을 초청하여 한국불교계 순방, 한 태 불교 교류 증진

(역대큰스님 일긱스님(1924-1996),
송광사 홈페이지)

 

역대큰스님 일긱스님.docx

 

역대큰스님 일긱스님.pdf

 

 

 

홈페이지에서 일각스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1972년의 상황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 하고 있다. 1972 10월 태국고승 10명이 초청되어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53명이 테라와다불교의 비구계를 수계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마성스님의 글 1973 3월에 수계를 받았다는 내용과 다르다. 수계가 두 번 있었다는 의미로도 보여지는데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한국최초의 단일계단은

 

이렇게 테라와다불교의 스님들을 초청하여 수계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단일계단이 없어서라고 추측할 수 있다. 조계종에서 단일계단이 만들어진 것은 불교신문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1981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이 현재와 같은 수계제도를 만든 것은 1981년 초 부터다. 1981 217일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전계사(傳戒師)로 제1회 단일계단 수계산림(受戒山林)을 봉행한 것이 그 시초다. 사미 84, 사미니 77명이 처음으로 종단에서 합동으로 계를 받았다.

 

(1981년 2 통도사에서 종단차원 수계, 불교신문 2755/ 2011-10-04)

 

 

  1981년 2월 통도사에서 첫 종단차원 수계.docx  1981년 2월 통도사에서 첫 종단차원 수계.pdf

 

 

 

 

단일계단은 1981 217일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전계사(傳戒師)로 제1회 단일계단 수계산림(受戒山林)을 봉행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그때 당시 사미 84, 사미니 77명이 처음으로 종단에서 합동으로 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단일계단이 성립되기 전에는 어떻게 계를 받게 되었을까.

 

기차타고 가다 계를 주었다

 

단일계단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조계종스님의 경우 출가본사에서 계를 수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사마다 그 방식이 제각각 이었다고 한다. 이런 각양각색의 수계이다 보니 기차타고 가다 계를 주었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율장에 맞지 않은데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1970년대 종단분규를 거치면서 저질승려가 양산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통일된 수계체계 이었다. 1981년도에 생겨난 단일계단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1972년과 1973년의 테라와다불교 스님으로 받은 수계는 공식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조계종 단일계단이 성립되기 이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어느 면에서 있어서 국가와 국가간에 이루어진 공식적인 행사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리랑카 씨암파(Siam-Nikaya)의 경우

 

이는 스리랑카에서 외세에 의하여 법난이 일어나 법맥이 완전히 단절 되었을 때 태국의 스님들에 의하여 법맥이 복구 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에 대하여 마성스님의 논문 스리랑카법난사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씨암파는 1753년 태국스님을 초청하여 비구계를 받은 계통이며, 일명 우빨리(Upali)파라고도 한다. 씨암이란 태국의 옛 국명이다. 이것은 태국으로부터 법을 전수 받았기 때문에 남의 나라 이름이 그대로 종파명이 된 경우이다.

 

(마성스님, 스리랑카법난사)

 

  스리랑카의 불교 법난사-마성스님.docx  스리랑카의 불교 법난사-마성스님.pdf

 

 

현재 스리랑카에는 씨암(Siam-Nikaya), 아마라푸라(Amarapura-Nikaya), 라만냐(Ramanna- Nikaya) 3개의 종파가 있다고 한다. 이중 씨암파가 스리랑카의 최대종파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의 비구들에 의하여 법맥이 복구 되었다고 한다.

 

아마라푸라파는 미얀마의 아마라푸라로 부터 전승받았다고 해서 아마라푸라파라 한다. 또 라만냐파는 미얀마의 페구 왕조당시 법맥이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법맥이 완전히 단절 되었을 때 같은 불교권의 비구들을 모셔와 법맥을 이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1973년의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태국의 비구들로 부터 비구계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테라와다불교의 법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면으로 본다면 불교중흥토론회에서 종광스님이 말한것처럼 한국의 비구계는 1973년 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 맞는지 모른다.

 

한국은 태국의 계맥을 전승한 나라?

 

이런 사실에 대하여  태국의 스님들은 한국불교의 승단에 태국의 계맥을 전해 준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면으로 본다면 한국불교는 태국의 계맥을 전승받은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내용에 대하여 더 검색을 해보았다. 그결과 다음과 같은 영문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Korean Sangha welcomes Theravada ordination in its own country. In 2516/1973, a group of Theravada monks from Thailand went on invitation to hold an ordination ceremony in Seoul, admitting about 40 Korean monks into the Theravada Order.

 

한국의 승가는 자국내에서 테라와다 성직수임식을 환영하였다. 1973(불기2516), 일단의 태국출신 테라와다 승려들은 서울에서 성직서품식을 거행하였는데, 이 테라와다 서품식에서 약 40명의 한국의 승려들이 테라와다 승단에 들어가기 위한 계를 받았다.

 

(A Glimpse of Buddhist Developments in China and Korea )

 

 

  A Glimpse of Buddhist Developments in China and Korea.docx  A Glimpse of Buddhist Developments in China and Korea.pdf

 

 

 

이 기사는 마성스님의 글에 쓰여 있는 내용과 동일하다. 40명의 한국스님들이 태국의 스님들로 부터 테라와다 비구계(Theravada Order)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테라와다불교국가인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1973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약40명의 한국스님들이 테라와다 불교의 계를 받은 것은 한국불교가 테라와다불교의 법맥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더구나 송광사 홈페지에 실려 있는 일각스님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1972 10월에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53인에 대한 테라와다불교 비구계 수계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국가와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행사는 공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1981년에 조계종에서 단일계단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일로서 더욱 더 그 공신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종광스님은 토론회에서 한국불교의 비구계는 1973년 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은 테라와다불교국가인가 아닌가. 

 

 

2011-11-3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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