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잊혀진 존재와 고독사(孤獨死)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2. 2. 10:32

 

 

잊혀진 존재와 고독사(孤獨死)

 

 

 

최악의 계절

 

달력을 한 장 떼어 내니 이제 달랑 한 장만 남았다. 12월을 알리는 달력에는 눈덮힌 산하의 설경이 담겨 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 된 것이다.

 

요 몇 일전부터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비바람이 불 때 마다 간신히 매달려 있었던 나뭇잎들은 거의 대부분 다 떨어져 나갔다. 이제 남아 있는 잎파리도 몇 차례의 비바람, 눈바람이 몰아치면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떨어져 나가고 말것이다. 이렇게 계절이 또 바뀌었다. 그런 계절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상 최악의 계절이다.

 

일년 사계절 중에 겨울만큼 삭막한 계절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겨울의 특징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앙상한 나뭇가지이다. 나뭇잎파리가 없는 나무를 쳐다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저 나무도 봄에는 꽃을 피웠다. 그리고 여름에는 무성함을 자랑하다가, 마치 황혼녁의 붉은 하늘처럼 벌겋게 물든 단풍을 보이다가 마침내 비바람이 들이쳐 모든 잎파리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런 나목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무를 관심을 가지고 쳐다 볼 때 딱 두번 있을 것이다. 그것은 봄에 꽃이 피었을 때, 가을에 벌겇게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이다. 이 때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멋진모습을 담아간다. 하지만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고독사(孤獨死)

 

잊혀진 존재는 나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잊혀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잊혀진사람은 대게 노인들이다. 마치 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모든 잎파리가 다 떨어져 나간 나목을 보는 것 같다. 그런 노인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더구나 홀로사는 노인들의 경우 죽음마져 혼자 마주한다. 이런 죽음을 일반적으로 고독사(孤獨死)라고 한다.

 

 

 

 

 

 

 

 

고독사라는 말은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 고독사는 영어권에서도 코도쿠시(Kodokushi, Lonely Deaths))’라 하여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노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일본에서 보는 것과 같은 고독사가 발견되곤 하는데, 이런 고독사할 가능성이 있는 인구가 현재 79만 세대라 한다. 이는 70세 이상으로서 혼자사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임종을 지켜 보아 줄 사람이 없어서 고독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이런 고독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날 것이라 한다.

 

고독사한 곳에 가 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TV가 켜져 있다는 것이다. 고독한 노인들이 말상대가 없다보니 늘 TV를 켜놓고 사는데,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고독한 노인을 지켜 보는 것은 TV라고 한다. 그래서 고독사한 곳에 가보면 죽은 사람 앞에서 쉴새 없이 말을 토해내고 TV를 볼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존재들의 종착역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지금 여기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게 됨에 따라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것은 항상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여기에서 나목을 보는 것처럼 결국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꽃을 피우고, 단풍져서 아름다움을 뽐 내지만 결국 나목으로 귀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역시 결국 늙음과 죽음에 직면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부처님은 숫따니빠따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과일이 익으면 어느 날 떨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존재들은

언젠가는 죽음에 떨어져야 하는

두려움이 따라다닌다. (576)

 

마치 옹기장이의 점토로 만든 그릇들이

마침내는 부서지듯이

죽어 부서지는 인생도 이와 같다. (577)

 

젊은이도 늙은이도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이도

모두 다 죽음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모든 존재들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578)

 

(숫따니빠따 3 8: 살라 수따)

 

 

모든 존재들의 종착역은 죽음이라 하였다. 과일이 익으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도자기도 언젠가 깨어지고, 견고하게 쌓아 놓은 담벼락도 무너진다. 이런 현상은 살아 있는 존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부도로 종결되고, 아이들도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못된 길로 빠지는 것과 같이 항상 모든 현상은 일어남이 있으면 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미찬가지로 인간의 삶 또한 죽음으로 종결된다는 것이다. 

 

몸이 내것이라면

 

그러고 보면 항상 과거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같다. 대표적으로 몸이 아팠을 때이다.

 

몸이 아프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하게 된다. 감기에 걸려서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마음만 있을 뿐이지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때 무상함과 고통과 무아를 느끼게 된다.

 

만일 몸이 내것이라면 아프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마음이 내 마음이라면 무엇이든지 나의 의지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통제권에 들어와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거의 대부분은 나의 마음과 무관하게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제까지 나의 몸, 나의 마음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제로 나의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일부만 통제력을 발휘할 뿐 거의 대부분 통제력밖에 있어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물질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낫따락카나경-Anatta-lakkhana Sutta-무아의 특징경-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상윳따니까야 S22.59, 전재성박사역)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docx

 

아낫따락카나경_무아의 특징경.pdf

 

 

이처럼 나의 몸과 나의 마음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몸이 아파 누워있다면 마음만 있을 뿐이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죽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기법은 조건법이다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진정코 나의 것이라면 결코 죽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죽는 다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이 때 죽는 다는 것은 죽을만한 조건이 되어서 죽는 것이다. 병이 나도 병이 날 만해서 병이 난 것처럼, 죽는 것도 죽을만해서 죽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죽음에 대하여 죽을 짓을 해서 죽었다라고 말한다. 이는 다른 말로 죽을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런면으로 본다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 역시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원인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한자어로 ()’이라 한다. 흔히 연이 되어서~” 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조건이 성숙되어서~”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이런 연은 연기법(緣起法)’에서 연으로 사용된다. 연기법의 의미는 조건지워져 함께 일어남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 연기법의 요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연기란 조건짓는 법들이고 연기된 법들이란 이 조건따라 생긴 법들이다.”

(청정도론, 17장 통찰지의 토양, 4)

 

 

이처럼 연기법은 조건에 따라 법이 일어나고, 조건에 따라 법이 사라지고, 조건에 따라 다음 법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이 발견한 법

 

사람이 늙는 것도 조건에 따른 것이고, 사람이 죽는 것도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현상 역시 연기법에 따른다. 그래서 부처님은 연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이며, 법의 확립된 성질이고, 법의 결정된 성질이며, 이것에게 조건됨이다.

 

여래는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투철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이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죽음이 있다. 이것을 보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들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꼐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이며, 법의 확립된 성질이고, 법의 결정된 성질이며, 이것에게 조건되는 성질이다.

 

여래는 이것을 투철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투철하게 깨닫고 관통하시고는 이것을 천명하고 가르치고 알게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무명을 조건으로 상카라들이 있다. 이것을 보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와같이 여기서 진실한 성질, 거짓이 아닌 성질,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 성질, 이것에게 조건되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라 한다.

 

(상윳따니까야-S..25-26, 청정도론 17장 통찰지의 토양 5절에서 )

 

 

부처님은 연기법에 대하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에도 연기법이 있었는데, 단지 부처님이 발견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기 이전 과거불이 발견한 것도 모두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법을 진실한 것이라 하였다. 이는 연기법이 거짓이 아님을 말한다. 조건 지워져 발생하는 법으로서 연기법은 진리임을 말한다.

 

이런 연기법은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에는 이런 법이 있는 줄 조차 몰랐는데, 부처님이 출현하여 투철하게 깨달아 발견해 낸 법이라 한다. 그런 연기법에 따르면 늙음과 죽음은 조건지워져 발생되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늘 괴로움이 따르기 때문에 나쁜 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늙음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기의 역관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성제와 팔정도, 십이연기를 통하여 늙음과 죽음을 국복할 수 있다고 희망의 메세지를 준 것이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끝자락에 와 있음을 올해 역시 다시 한 번 느낀다. 병이 들어 병석에 누워있을 때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느끼듯이, 계절이 바뀌어 최악의 날씨가 되자 결국 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이렇게 될 줄 아는 것은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과거를 뒤돌아 보면 지금 여기에서 늙고 병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지하 단칸방 셋집에서 TV가 켜진채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을 지 모른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느낄 때 공통적인 현상은 무질서가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엔트로피법칙으로도 설명된다.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 뜨리면 이내 골고루 퍼지듯이 결국 모든 현상은 무질서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파괴되는 것도 엔트로피 증대로 인한 무질서가 극대화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불교용어로 말하면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로 설명 될 수 있다.  

 

이럴때 사람들은 비로서 모든 현상이 변하기 때문에 무상하고, 행복이 오래가지 않아 이고, 몸과 마음이 자신의 통제밖에 있어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무아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죽음에 임박하여 알게 된 무상, , 무아라는 지혜는 이미 늦다. 마지막 죽음의식이 일어 날때 이미 지은 업의 힘에 따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음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안다는 것은 행운이다.

 

 

 

2011-12-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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