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종편 JTBC의 ‘TBC 31년만의 귀환’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2. 5. 11:51

 

 

종편 JTBC‘TBC 31년만의 귀환을 보며

 

 

 

여보, 부모님댁에 종편채널 지워드려야겠어요

 

고화질 HDTV로 바꾼 후 자주 TV를 자주 보고 있다. 특히 EBS의 다큐프로를 주로 보는데, 전 세계 곳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자신이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화질이 실감난다.

 

그런데 최근 채널에 변동이 생겼다. 생각지도 않은 불청객처럼 새롭게 네 개의 채널이 밀고 들어 온 것이다. 그것도 10번대의 목 좋은 채널이다. 이른바 종편채널이 그것이다.

 

네 개의 종편방송은 국민적 동의 없이 탄생하였다.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어 생겨난 종편채널은 모두 보수신문들이 만든 것들이다. 그런 종편채널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종편 개국 축하쇼

출처; 뉴스

 

 

 

 

보수신문들의 논조가 그렇듯이 방송채널 역시 그러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약간 편견적이고 단견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뉴스를 보아도 어떤 왜곡 보도를 할지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되고, 이런 선입견은 다큐, 드라마, 오락 등 전 분야에 걸쳐서 가지게 되는데, 사실 방송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인터넷 매체에 여보, 부모님댁에 종편채널 지워드려야겠어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뜨기도 하였다. 이는 리모콘 조작으로 채널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1년만의 귀환

 

이른바 조중동방송으로 불리우는 종편방송 중에 JTBC를 유심히 보았다. 다른 보수방송과 달리 차별화된 프로를 내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옛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31년만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를 보면 1980년도에 사라진 TBC를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30년전의 프로를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관심있게 본 것은 출연자들의 얼굴이다.

 

종영방송당시 출연하였던 텔런트, 가수, 코메디언, MC 등의 얼굴과 30년이 지난후의 모습이 너무나 대비 되어 있다.  30년 전 40대는 이제 70대 되어 형편없이 늙어버린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30대는 60대가 되어 중후한 모습이고, 20대는 50대가 되어 원숙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화장을 진하게 하여 자신의 본얼굴을 감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30년의 세월은 모두의 얼굴을 바꾸어 버렸는데, 그래서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의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늙은 자신의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 주기 싫어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탤런트들은 이제까지 죽 활동해 왔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변화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지만, 그런 활동없이 30년만에 불쑥 나타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아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산자들의 잔치이다. 30년이라는 세월 속에 죽은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아 버렸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않다

 

30년전의 필름을 보면서 과거를 자연스럽게 되돌아 보게 만든다. 그런 과거는 항상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이다. 그런 젊은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로서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30년전의 프로에는 70년대 인기 있었던 드라마나 쇼프로등을 소개 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 TV를 보는 것 외에 달리 소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더 옛날에 일어났었던 일을 자극하게 된다. 그런 사건들은 모두 좋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신경숙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않다고 하였다. 그녀의 젊은 시절의 역정은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자신은 항상 현재에 살고 싶다고 하였다.

 

왕년에 내가~”

 

하지만 화려하고 빛나고 영광스런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옛날 그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어 할 것이다. 이는 현재의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말 중에 왕년에 내가~”라고 시작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지금 여기에서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음은 항상 과거에 가 있다고 한다. 그런 과거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할 때 나빴던 일보다 주로 좋았던 것들을 더 많이 떠 올린다. 과거에 좋지 않았던 일들은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하고, 좋았던 일들만 떠 올리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을 과거로 돌려서 가감없이 본다면 좋았던 일 보다 좋지 않았던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 없는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되는데 즐거웠던 순간보다 즐겁지 않은 감정이 더 많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과거로 되돌아 가 보았자 지금 여기서 겪고 있는 감정의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지나간 시절이 그런 것이라면 태어나기 이전 전생의 삶은 어떤 것일까.

 

너무나 끔찍한 과거전생

 

윤회를 믿든 믿지 않든 사람들은 전생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은 한 때 전생신드롬을 낳았다. TV에서 보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최면을 걸어 전생으로 퇴행시킨 다음에 들어보는 유명연예인들의 전생이야기는 한결같이 좋았던 것들이다. 어느 나라의 공주나 왕자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자신의 전생을 실제로 들여다 본다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대담을 불교TV사이트에서 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윤호의 수레 안에 있는 무한한 과거 생을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뇌와 고통, 끔찍한 불행이고 부처님이 계셨던, 우리 모두가 있었던 그 모든 곳은 지옥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숱한 시간동안 지옥에 있었습니다.

 

(로버트 서먼, <특집>21세기 그리고 화두1 - 로버트 서먼과 혜민스님, 불교TV 2011-11-09)

 

 

세계적인 불교학자 로버트 서먼교수가 혜민스님과 대담에서 전생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전생이 너무나 끔찍한 것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옥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떠올리면 매우 비참한 기분이 들겄이라 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능력 숙명통

 

범부들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생을 기억하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수행을 통해서 전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전에서는 사선정을 닦으면 초월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초월지는 어떤 것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초월지는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이렇게 다섯가지로서 일반적으로 오신통이라 한다. 이중 숙명통을 얻으면 전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숙명통이란 과거의 전생에서 살았던 무더기(, nivuttha kkhandha)’를 기억하는 지혜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더기는 자기 안에서 일어났고, 경험했고, 자기의 상속에 생겼다가 멸하였던 법들을 말한다.

 

이런 무더기를 모두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다.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모든 전생을 낱낱이 기억해 낼 수 있는데, 이는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챙김으로 가능한 것으로 본다.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정형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생 전, 두생 전,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우주 수축의 여러 겁,

우주팽창의 여러 겁,

우주수축과 팽창의 여러 겁 전까지.

 

거기에서 나는 이름이 무엇 이었고,

종족의 성[種姓]이 무엇이었으며,

용모는 어떠했으며,

어떤 음식을 취했고,

내가 겪은 즐거움 과 괴로움은 어떤 것이었고,

수명의 종말은 어떠했고,

거기서 죽어서는 어디에 태어났으며,

거기서는 다시 이름이 무엇이었고,

… 거기서 죽어서는 여기에 다시 태어났다.’

 

(맛지마니까야의  마하삿짜까 경, 디가 니까야 사문과경 등에서)

 

 

일체지를 아는 부처님이 기억하는 전생은 한계가 없다. 우주가 몇 번 생겼다가 깨졌어도 자신이 태어난 전생에 대하여 원하는 곳에 옮겨 다니며 볼 수 있다.

 

그런 전생에 대하여 부처님이 불안으로 본 것은 어느 종족으로 태어나 용모는 어떠했으며, 심지어 어떤 음식을 취했는지까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겪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 하였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윤회하며 흘린 눈물

 

범부들은 전생을 알 수 없다. 사선정을 닦아 초월지를 얻은 극히 일부 수행자들만 전생을 알 수 있을 뿐, 범부들은 전생을 알 수 없는데, 이는 범부들이 전생을 보았자 그다지 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

 

이것은 전생에 대한 매우 끔찍한 기억 때문인지 모른다. 특히 자신이 전생에 어떻에 태어나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하여 안다면 매우 비통해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범부들의 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해오는 동안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비탄해하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과

사대양에 있는 물의 양과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

 

(앗수경- Assusutta- Tears-눈물경, 상윳따니까야 SN15, 전재성박사역)

  아나마딱가 상윳따(S15).docx  아나마딱가 상윳따_S15_.pdf

 

 

눈물경(Assusutta, Tears)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한량없는 전생에서 인연맺은 사람들과 헤어짐, 이별, 죽음을 지켜 보며 흘린 눈물의 양이 사대양의 바다물 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윤회하며 흘린 피

 

사대양보다 더 많은 것은 눈물만이 아닐 것이다. 흘린 피의 양 또한 사대양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띰사경-Tisamattasutta-Timsa Sutta: Thirty:삼십명경, 상윳따니까야 SN15, 전재성박사역)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린 피의 양이 사대양 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한량없는 윤회과정에서 언젠가 소나 개, 돼지, , 염소로 태어나 목이 잘려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도둑으로 살다가 붙잡혀 목이 잘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남의 부녀자를 겁탈하다 잡혀 목이 잘려 죽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범부의 과거 전생을 들여다 보면 흘린 눈물과 피의 양이 사대양 보다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범부들의 전생을 들여다 보면 끔찍할 것이라는 말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버려라

 

날치기로 통과 되어 탄생한 새로운 방송에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시켜 주며 채널를 고정하게 하는 프로를 보았다. 그런 과거는 어떤 이들에게는 빛나고 영광스러운 것일지 모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두 번 다시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은 서럽고 쓰린 나날이었는지 모른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남는 것은 허탈감이다. 이미 지나가 버려 기억속에만 남아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과거에 가 있으면 대부분 후회의 감정이 앞선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 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후회를 불선법으로 보는 것이다.

 

후회는 불선과보를 낳게 하는 해로운 마음이다. 마찬가지로 근거 없는 기대나 아직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도 역시 해로운 마음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라고 하였다. 마음을 현재에 두면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행복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Muñca pure muñca pacchato        문짜 뿌레 문짜 빳차또

majjhe muñca bhavassa pāragu     맞제 문짜 바왓사 빠라구

sabbattha vimuttamānaso            삽밧타 위뭍따마나소

na puna jātijara upehisi.          나 뿌낭 자띠자랑 우뻬히시.

 

다섯 쌓임에 대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버려라.

윤회의 바다를 멀리 건너서

네 마음을 다섯 쌓임의 모든 깜마로부터 청정히 하면

태어남과 늙음을 다시는 받지 않으리라.

 

(Dhp348, 거해스님역)

 

 

 

2011-12-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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