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성불하세요”vs “아라한되세요”, 마하빠다나경(大傳記經)과 십바라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1. 24. 17:23

 

 

성불하세요”vs “아라한되세요”,  마하빠다나경(大傳記經)과 십바라밀

 

 

 

우리나라는 대승불교권국가이다. 그러다보니 불자들은 대승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매우 익숙하다. 그 중에 보살사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승의 보살사상은 영웅사상이라 볼 수 있다. 커다란 신심과 거대한원력을 가지고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보살들은 이상적인 인간상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이었다.

 

과거 7, 과거 25, 과거 28

 

고따마 부처님은 보살로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위없는 바른 깨달음(무상정등각)’을 얻어 부처가 된 분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4아승지겁 이상이라는 한량없는 세월동안 바라밀을 닦은 것으로 되어있다. 우주가 몇 번이나 생겨났다가 깨졌다하는 기간이다.

 

이처럼 오랜세월 동안 보살로서 수행을 하여 마침내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는데, 초기경전에 따르면 고따마붓다 한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소부아함(小部阿含)중의 하나인 붓다왐사(佛種姓經. Buddhavasa)에 따르면 이제까지 모두 25분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세 분의 부처님이 더 있다. 검색된 자료로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29분의 부처님 이름(The 29 named Buddhas)

이름

출현시기

인간수명

과거불

 

7

25

28

1

Tahakara

딴한까라

 

 

 

28

2

Medhakara

메단까라

 

 

 

28

3

Saraakara

사라난까라

 

 

 

28

4

Dīpankara

디빤까라(연등불)

 

 

 

25

28

5

Koṇḍañña

꼰단냐

 

 

 

25

28

6

Magala

망갈라

 

 

 

25

28

7

Sumana

수마나

 

 

 

25

28

8

Revata

레와따

 

 

 

25

28

9

Sobhita

소비따

 

 

 

25

28

10

Anomadassi

아노마닷시

 

 

 

25

28

11

Paduma

빠두마

 

 

 

25

28

12

Nārada

나라다

 

 

 

25

28

13

Padumuttara

빠두뭇따라

 

 

 

25

28

14

Sumedha

수메다

 

 

 

25

28

15

Sujāta

수자따

 

 

 

25

28

16

Piyadassi

삐야닷시

 

 

 

25

28

17

Atthadassi

앗타닷시

 

 

 

25

28

18

Dhammadassī

담마닷시

 

 

 

25

28

19

Siddhattha

시닷타

 

 

 

25

28

20

Tissa

띳사

 

 

 

25

28

21

Phussa

풋사

 

 

 

25

28

22

Vipassī

위빠시

91겁전

8만세

7

25

28

23

Sikhī

시키

31겁전

7만세

7

25

28

24

Vessabhū

웻사부

31겁전

6만세

7

25

28

25

Kakusandha

까꾸산다

현겁

4만세

7

25

28

26

Koāgamana

꼬나가마나

현겁

3만세

7

25

28

27

Kassapa

깟사빠

현겁

2만세

7

25

28

28

Gautama

고따마(석가모니)

현겁

100

7

25

28

29

Maitreya

마이트레야(미륵)

현겁

 

미래불

1) 28불 근거;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the_twenty-eight_Buddhas

2) 25불 근거 ; 소부아함(小部阿含) 중의 하나인 붓다왐사[佛種姓經. Buddhavasa]

3) 7불 근거 ; 디가니까야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

 

 

이 표에서 네 번째인 디빤까라부처님은 불자들도 잘 알고 있는 금강경에 등장하는 연등불이다. 고따마부처님이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수기를 받고 나서 무려 4아승지겁이라는 무량한 세월 동안 보살행을 하여 마침내 부처를 이룬 것이다. 그런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초기경전에 실려있는 자따까(본생담)이다.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에서

 

표에서 칠불의 경우 초기경전에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부처를 이룬 부처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를 과거칠불이라 하는데, 디가니까야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에 실려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칠불

 

위빳시

시키

웻사부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고따마

시기

91겁이전

31겁 이전

31겁 이전

현겁

현겁

현겁

현겁

태생

끄샤뜨리야

끄샤뜨리야

끄샤뜨리야

바라문

바라문

바라문

끄샤뜨리야

종족

꼰단냐

꼰단냐

꼰단냐

깟사빠

깟사빠

깟사빠

꼬따마

수명

8만 년

7만 년

6만 년

6만 년

3만 년

2만 년

백 년

정각나무

빠딸리

뿐다리까

살라

시리사

우둠바라

니그로다

앗삿타

상수제자

칸다

아비부

소나

위두라

비요사

띳사

사리뿟따

띳사

삼바와

웃따라

산지와

웃따라

바라드와자

목갈라나

시자

아소까

케망카

우빠산나까

붓디자

솟티자

바밋따

아난다

출처; 디가니까야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

 

 

 

과거칠불이 출현한 시기를 보면 위빳시붓다가 91겁 이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30겁이라는 한량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 시키붓다가 출현한다. 같은 겁 시대에 웻사부붓다가 출현하였고, 이후 30겁이라는 긴 공백기간을 거쳐 현겁시대에 까꾸산다붓다가 출현한다. 그리고 고따마붓다까지 내리 세 분의 붓다가 출현하였다.

 

이처럼 같은 겁시대에 네 분의 붓다를 보게 된것은 행운이다. 그것은 부처의 출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부처가 출현하는데 보통 몇 십겁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겁에서는 네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였고, 더구나 미래에도 미륵부처님이 출현한다하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현겁을 행운의 겁(bhadda-kappa)’이라 한다.

 

정해진 법칙(dhammata)에 따라

 

과거에 출현하였던 부처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고따마부처님의 전기와 매우 유사하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아들 한명을 얻고, 정각수아래에서 깨닫고, 두명의 상수제자를 두는 등 거의 비슷하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 부처님은 정해진 법칙(dhammata)이라고 하였다. 그런 정해진 법칙이란 무엇일까.

 

경의 주석에 따르면 정해진 법칙이란 고유성질(sabhava, 自性)’이나 정해진 규칙(niyama)’같은 것이라 한다. 경에서 보살의 어머니의 태에 드는 것도 정해진 법칙에 따른 것인데, 모든 현상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따마붓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마찬가지라 한다. 그래서 경에서는 위빳시보살의 출가, 성도, 전법에 대한 일대기가 소개 되어 있는데, 이는 고따마붓다의 일대기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팔상도(八相圖)에서

 

경에서 본 위빳시붓다의 일대기에서 북방대승불교와 다른 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태어남과 관계된 된 것이다.

 

북방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팔상도(八相圖)라고 불리우는 것이 그것이다. 이 팔상도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초기불교와 다른 것도 발견된다. 설산수도상이 대표적이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설산에 들어가서 수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다른 점은 탄생당시의 모습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비람강생상이다.

 

대승에서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

 

비람강생상은 룸비니에서 탄생에 대한 것을 말한다.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한글대장경에 따르면 이 장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산월이 되어 어머니 마야는 룸비니 동산에서 손으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앉지도

눕지도 않은 자세로 보살을 오른쪽 옆구리로 나오게 하셨다.

그 때 두 줄기의 샘물이 솟아났으니 한줄기는 따뜻한 물이 솟아나왔고, 한줄기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쏟아져 나와 그 물로 보살을 목욕시켰다.

그러자 보살은 마치 사자가 걸으면서 두루 사방을 살펴보듯이 하시며, 일곱걸음을 걸으셨는데 이 세상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시며, 사방을 둘러보고는 손을 들어 “하늘 위 아래 오직 인간 스스로가 존귀하도다. 모든 중생이 고통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 기필코 이를 구원하리라.”고 탄생게를 외치셨다.

 

(출처: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미증유법경,구담미경,미증유법경,유행경)

 

이 문구는 한역아함경에 나타난 부처님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경에서 부처님이 옆구리에서 나온 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그리고 태어나자 마자 일곱걸음을 걸으며 “하늘 위 아래 오직 인간 스스로가 존귀하도다. 모든 중생이 고통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 기필코 이를 구원하리라(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라 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초기경에서는 어떻게 표현 되어 있을까.

 

보살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디가니까야의 마하빠다나경에서 부처님이 탄생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1.27 "비구들이여, 이것도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보살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보살은 아주 깨끗한 상태로 나온다.

        양수도 묻지 않고 점액도 묻지 않고 피도 묻지 않고,

        그 어떤 불결한 것도 묻지 않으며, 청정하고 깨끗하다.

 

        비구들이여, 애를 들면

        보석이 까시의 비단 위에 놓여 잇을 때

        보석이 까시의 비단을 더럽히지 않고, 까시의 비단도 보석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둘 모두 청정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보살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 보살은 아주 깨끗한 상태로 나온다.

        양수도 묻지 않고 점액고 묻지 않고 피도 묻지 않고,

        그 어떤 불결한 것도 묻지 않으며, 청정하고 깨끗하다.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대전기경, 디가니까야 D14)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docx  마하빠다나경_Mahapadana Sutta 대전기경 D14_.pdf

 

 

 

부처님은 경에서 정해진 법칙을 설명하면서 위빳시붓다의 탄생에 대한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위빳시붓다의 경우 태어날 때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고 분명히 쓰여 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옆구리로 탄생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에 따르면 역대부처님들은 모두 자궁에서 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정해진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고따마(석가모니)부처님 역시 자궁에서 난 것이다. 다음으로 탄생게에 관한 것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

 

한역경전에서는 탄생게에 대하여 천상천아유아독존삼계고아당안지(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로 되어 있다. 해석하면 “하늘 위 아래 오직 인간 스스로가 존귀하도다. 모든 중생이 고통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 기필코 이를 구원하리라라는 뜻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하여 초기경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다음의 내용을 보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29 "비구들이여, 이것도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보살은 태어나면서 두 발로 가지런히 땅에 서서

        북쪽을 향해 일곱 발자국을 걸어간다.

 

        하얀 일산이 펴질 때 모든 방향을 굽어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어른이요,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대장부다운 말을 한다.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마하빠다나경-Mahapadana Sutta-대전기경, 디가니까야 D14)

 

 

 

이 부분 역시 석가모니부처님이 위빳시붓다의 정해진 법칙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탄생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부처님들은 태어날 때 말하는 게송이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어른이요,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 구원론 아라한송

 

이 게송은 대승불교의 탄생게와 아주 다르다. 대승에서는 삼계개고아당안지라 하여 일종의 구원론적성격을 말하고 있지만, 초기경에서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다시는 나고 죽는 일 없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경의 탄생게가 오로지 자신만의 구원에 대한 것이고 중생의 구원에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이는 대승에서 막연하게 구원에 대하여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초기경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구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아라한의 게송에서도 볼 수 있다.

 

 

경에서의 탄생게는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여 가 아라한이 되었을 때 깨달음에 대한 오도송 즉, ‘아라한송과 매우 유사하다. 그 아라한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khīā jāti,                          키나 자띠

vusita brahmacariya,        위시땅 브라흐마짜리양

kata karaīya nāpara      까땅 까라니양 나빠랑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잇탓따야띠 빠자니띠띠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SN III_utf8, 1. 2. 1. 7, Pañcavaggiya sutta)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이 위없는 깨달음에 관하여 공통적으로 노래한 것은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이 한결 같이 발견한 진리이다. 따라서 더 이상 나고 죽는 일이 없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무상정등각)은 다름아닌 구원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부처님의 탄생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말은 모든 존재들에 대한 구원의 메세지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수기(授記)를 받을 조건 8가지

 

이와같이 경에서 부처님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은 정해진 법칙에 다라 태어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처가 되려면 부처가 되기 전에 정해진 법칙을 따른다면 매우 오랜기간동안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마찬가지이었다.

 

부처님은 아득한 옛날 연등불로 부터 수기(授記, 예언)를 받았다.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수미다(선혜동자)와 디빤까라붓다(연등불)

수미다(Sumedha, 선혜동자)가 물웅덩이에 배를 깔고

디빤까라붓다(Depankara Buddha, 연등불)에게 연꽃공양을 올리고 있다.

옆에 수밋따(sumitta, 구리천녀)가 연꽃공양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수기를 받는 것일까. 수기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수기를 받을 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기를 받을 조건 8가지

 

       

1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

2

인간중에서도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

3

부처님의 게송 몇 구절만 들어도 깨침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4

살아계신 부처님을 직접 만나 뵙고 어떤 이름으로 정득각자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아야 한다.

5

바른 견해를 가진 출가자이어야 한다.

6

세간의 8선정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7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8

무상정등각을 성취하려고 서원해야 한다

 

 

 

미래 부처가 되려면 위와 같이 8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고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남자라는 조건에 대하여 발끈하는 여성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량없는 윤회과정에 있어서 지금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음생에 역시 남자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여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면으로 본다면 남자라는 조건에 대하여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겁의 시간속에서 번갯불과 같은 부처님법

 

이처럼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부터 수기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살아 있는 부처님이 태어난 시대에 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부처님을 보면 모두28불이었고, 그 간격은 한량없이 긴세월이다. 그래서 부처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또 부처님이 얻은 법 역시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량없는 세월속에 드믄 드믄 부처님이 출현하여 법을 펴고, 그 법이 유지 된 기간은 매우 짧았던 것임을 의미한다. 마치 영겁의 시간속에서 번갯불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처님이 법을 펴긴 폈지만 정법(正法)은 오래가지 않고 상법(像法)과 말법(末法)시대가 도래하여 마침내 정법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량없는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부처님에게선가 수기를 받았던 어느 보살이 마침내 깨달아서 부처가 다시 탄생하는데, 그 깨달음의 내용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항상 똑같다는 것이다. ,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이 연기법에 바탕을 둔 근본가르침을 말한다.

 

이런 연기법은 부처가 출현하여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부터 있던 법이었다. 단지 그런 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부처가 출현할 때 마다 매번 그 법을 다시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기를 받은 보살은 부처를 이룰 때 까지 몸을 아끼지 않고 바라밀행을 닦아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자따까에 실려 있다. 그렇다면 보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라밀행을 해야 할까. 초기불교에서는 10가지로 보고 있다.

 

십바라밀이란 무엇인가

 

석가모니부처님은 보살로 삶을 살았을 때 십바라밀을 닦아서 부처가 되었다. 십바라밀은 다음과 같다.

 

 

 

① 보시(布施 dāna)

② 지계(持戒 sīla)

③ 출리(出離 nekkhamma)

④ 지혜(智慧 paññā)

⑤ 정진(精進 viriya)

⑥ 인욕(忍辱 khanti)

⑦ 진실(眞實 sacca)

⑧ 결의(決意 adhiṭṭhāna)

⑨ 자애(慈愛 mettā)

⑩ 평온(平穩 upekkhā)

 

 

이와 같은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의 실천으로서의 바라밀과 다르다. 십바라밀은 부처가 되기 위한 바라밀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십바라밀이 단지 부처가 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십바라밀은 열가지의 덕목을 완성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십바라밀을 실천하면 가장 좋은 것은 정신건강이다. 십바라밀을 외워서 실천하면 어제 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미래에도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십바라밀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보시(Dāna):

관대함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나누어 줌으로써 사물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나누어 주는 집착 없음으로 표현되고 근접 원인은 시물(施物로)이다.

 

② 지계(Sīla):

몸과 말로 하는 선한 행위를 유지하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불선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몸이나 말의 행동을 제어한다. 그것은 언행이 청정해짐으로써 표현된다. 근접원인은 양심(hiri)과 수치심(ottappa)이다.

 

③ 출리(Nekkhamma):

감각적 쾌락을 버려서 존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감각적 쾌락과 존재의 위험스러움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감각적 욕망을 멀리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사려 깊은 두려움으로 감각적 쾌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④ 지혜(Paññā):

참된 성질로 사물을 보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감각의 모든 대상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혼동하지 않음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삼매(samādhi)이다.

 

⑤ 정진(Viriya) :

부지런함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분발하게 하는 것이다. 끈질김으로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과 부수적으로 수반하는 모든 괴로움에 대한 사려깊은 두려움에서 일어나는 긴박감이다..

 

⑥ 인욕(Khanti):

 참을성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싫어함이나 좋아함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극도로 성을 돋구는 상황에 처해서도 참는 것으로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⑦ 진실(Sacca):

말로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않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보거나 아는 그대로 발견하는 것이다. 감미롭고 상냥한 언어로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모든 중생들에 대한 동정적인 상냥함이다.

 

⑧ 결의(Adhiṭṭhāna):

바라밀을 완성하기 위해 공덕행을 하고자 하는 결심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자신의 길에 놓인 모든 반대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기 입장을 확고히 함으로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바라밀을 수행할 때 보시와 같은 매우 공덕이 되는 행위이다.

 

⑨ 자애(Mettā):

다른 중생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다른 중생의 행복을 열렬히 바라는 것이다. 도움을 주려는 태도로써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다른 이들의 좋은 점만을 보는 것이다.

 

⑩ 평온(Upekkhā):

칭찬과 비난에 직면해서 평등심을 유지하는 것이 특성이다. 그 기능은 감정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놓는 것이다. 공평함으로 표출되며, 근접원인은 자신의 과거행위에 대한 사려 깊은 지혜이다.

 

(십바라밀, 마하시사야도의 빠띳짜사뭅빠다-12연기 주석서)

 

 

 

십바라밀을 닦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아낌없이 주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하여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또 나쁜 짖도 하지 않게 된다. 계를 지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알게 되면 지혜가 생겨  세상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십바라밀을 닦는 보살의 특징 11가지

 

이와같은 십바라밀을 닦는 사람을 보살이라 하는데, 그런 보살의 특징은 무엇일까. 불교TV사이트에서 정신과 전문의 전현수박사의 강좌(제40 보살의 삶에서 배울 것1)를 보면 잘 설명되어 있다.

 

첫째, 보살은 삶의 목적이 뚜렸하다.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은 일체지이다. 그래서 일체지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친다. 자따까에서 눈을 바친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일체지를 위해서라면 문제가 되지 않음을 말한다.

 

둘째, 보살은 본질적으로 본다.

 

떠도는 가치관이나 관습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다. 그래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자식이 죽어도 밥은 먹고 울지도 않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오해 받을 수 있는 요인일지 모르지만 울어서 도움이 된다면 우는데, 울어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울지 않는 것이다.

 

셋째, 보살은 용기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도 상상못할 일을 하는 것이다.

 

넷째, 보살은 어떤 난관도 뚫고 나간다.

 

무슨일을 하든지 철저하게 한다. 예를 들어 저사람을 내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한다면 순리대로 하여 목적을 달성한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철두철미하고 최선을 다 한다.

 

다섯째, 보살은 보시를 잘한다.

 

남 돕는 일을 잘한다. 보시공덕을 알기 때문이다. 보시를 하면 몇 만배를 받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보시를 하더라도 훌륭한 사람에게 보시 하는 공덕이 무척 크다.

 

경전에 따르면 동물에게 보시하면 준 것의 백배를 받고, 훌륭한 사람에게 보시를 하면 몇 만배를 받게 되기 때문에 가급적 훌륭한 사람에게 보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면 , 나를 위해서 나타났구나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보살은 자애를 닦는다.

 

일곱째, 보살은 관찰력이 예리하다.

 

여덟째, 보살은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아홉째, 보살은 애욕(여자)의 위험을 잘 안다.

 

열째, 보살은 어떤 일에도 참는다.

 

열한째, 보살은 어떤 경우에도 남을 해치지 않는다.

 

 

성불하세요”vs “아라한되세요

 

흔히 불자들은 법회가 끝날 때 사방을 향하여 성불하세요라고 말하며 합장한다. 이런 인사법은 아마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보여진다. 대승불교권 국가에서 부처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접하고 부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안다면 함부로 부처가 되라고 말을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부터 직접수기를 받아야 하고 4아승지 겁이라는 한량없는 세월동안 십바라밀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경에서 이제까지 총 28분의 부처가 출현하였다. 그런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이 깨달은 법은 모두 똑 같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았던 내용과 모두 같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2,600년 부처님이 깨달은 법이 지금까지 전승되오 내려오는 이 때 또 부처를 이룰 이유가 있을까.

 

불자들이 성불을 목표로 하여 깨달았을 때 그 법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깨닫고 보니 과거 부처님들이 깨달았던 내용과 동일한 것이라면 부처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혹시 선불교의 견성성불식 깨달음이라면 성불하세요라는 말이 의미가 있고, 그런 목적을 가졌을 경우 4아승지겁이라는 보살행을 닦을 필요없이 이번 생에서도 부처를 이루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부처가 되려고 하기 보다 부처님이 발견한 법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럴경우 불자들과의 인사에서 성불하세요는 맞지 않는 것이 된다.

 

불자들은 부처가 되려 하기 보다 아라한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이 이미 길을 개척해 놓았기 때문에 그 길로 죽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자들끼리 만나면 성불하세요대신 아라한되세요라고 하면 어떨까.

 

 

 

2011-11-2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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