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고귀한 보시와 열등한 보시, 닥키나위방가경(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M142)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2. 3. 18:40

 

 

고귀한 보시와 열등한 보시, 닥키나위방가경(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M142)

 

 

 

노보살들의 헌신적인 보시

 

불교TV사이트에서 법문을 듣다 보면 이름있는 유명선사의 이야기 중에 자신의 불사에 대한 경험담을 종종 듣는다. 이 때 하는 말 중에 자신을 후원하던 노보살의 도움이 컷다는 말을 많이 한다. 노보살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인감을 자신에게 맡겨서 그 돈으로 불사를 추진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보시금으로 불사를 일으켜 여법한 가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도 몇 백년이 지나가면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적 감각을 곁들여 지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와 같은 불사는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 한다.

 

현재의 노보살들이 한 세대만 지나면 대부분 살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가람은 이들 노보살들의 헌신적인 보시가 밑바탕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재력있는 노보살들이 스님들에게 개인적으로 보시한 대표적 케이스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사찰의 상당부분이 사설사암이라 한다.

 

노후보장용 사설사암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은 총 2,787개라 한다. 이중 사설사암은 전체의 66% 1,541개라 한다. 이중 약 1/4은 주지스님이 없어서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사설사암은 해마다 계속늘어 이제 전체사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설사암은 대부분 산중에 있어서 포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 보다 스님들의 노후보장용으로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그래서 젊은 스님, 어른 스님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사설사암 갖기 경쟁이 붙었다고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에서 전한다.

 

사설사암은 모두 신도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보시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특히 스님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을 가진 노보살들의 보시금이다. 이들 노보살들의 신심과 쌈짓돈이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노보살들의 쌈짓돈이 종단으로 직접들어가는 케이스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논산훈련소 군법당 호국연무사

 

현재 논산훈련소에 군법당인 호국연무사가 내년 5월 부처님오신날을 목표로 공사중에 있는데, 법당건설에 필요한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3,500석 규모의 호국연무사는 훈련병들이 군화를 신고 들어 갈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고, 또 체육관식으로 되어 있어서 각종 공연도 가능할 수 있도록 계획 되어 있는데, 건립비용은 총 12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호국연무사

사진 ;

 

 

 

하지만 내년 부처님오신날까지 불과 6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과연 완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 한다. 이제 상량되어 공정은 65%에 불과하고, 더구나 모연금은 75억원 밖에 되지 않아 목표일까지 완공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포교의 황금시장이라 불리우는 군포교는 한국불교의 미래가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공사가 지지부진하다면 이는 한국불교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대형교회의 한달 헌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렇게 한국불교의 미래가 걸려 있는 호국연무사와 같은 대작불사는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개인사찰은 해마다 증가일로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들을 따르는 신도들은 공찰에 보시를 하기 보다 스님들이 소유하고 있는 사설사암에 보시를 하고 있어서 종단운영에 별다른 도움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계종의 경우 일년예산은 얼마나 될까.

 

조계종단의 경우 각 사찰에서 일정금액의 분담금을 받아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그래서 수입이 좋은 사찰의 경우 직영사찰로 만들었는데 조계사, 선본사, 보문사, 봉은사가 이에 해당된다. 또 특별분담금 사찰이라 하여 역시 수입이 많은 사찰을 지정하였는데 도선사, 연주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내장서, 보리암등이 있다. 이외 각 사찰에서 분담금을 받아 종단이 운영되는데, 2012년 예산은 221억원으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이런 금액은 대형교회의 한달 헌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산으로 절을 짓는등 각종불교관련사업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논산의 호국연무사 건립비용이 12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종단 예산의 절반에 해당되는 금액이어서 불자들의 모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 한다.

 

눈물겨운 모연금

 

이런 모연금에 대한 불교신문의 기사를 보면 스님, 불교단체, 사찰, 재가불자들의 명단을 볼 수 있는데, 스님이나 재가불자의 경우 몇 백만원에 달하는 보시금액도 보이지만 대부분 소액이 보통이다. 그런 금액중에 5,000원을 보시한 명단도 보인다. 참고로 불교신문에 실린 예를 하나 보면 다음과 같다.

 

 

스님 · 재가불자

 

정토사 보광스님 1000만원 사상호(사영환) 3000만원 불탑조성기금(무명) **(무명) 조은숙 태연스님(이상 500만원) 이동영 300만원 정명희 300만원 권영정 원건상 이명숙 이**(무명) 이승호 장경대 정태환(효원) 죽림정사 성오스님 한승엽(이상 100만원) 오한순 70만원 김건 오찬세 이상훈(이상 50만원) 정명희 40만원 연화사 지덕스님 31만원 권영암 권혁남 박준우 송명섭 염옥현(이상 30만원) 김태호 22만원 문선영(이복렬) 215000원 강이환 신순금 이재하 지향스님 하명애(이상 20만원) 김영희 이창병 한상활(이상 15만원) 강옥선 강정례영가 고나리 구상동 구순주 구자일 구정주 권도용 권순임 김민선 김민섭 김보영 김숙자 김순희 김영문 김옥순 김완순 김윤식 김재숙 김중근(감혜숙) 김지희 김형수 김홍규 김홍월 박명순 박신국 박정훈(박정수) 박주헌 백옥분 법공스님 법밀스님 법연스님 선문스님 선학스님 손대희영가 손승연 신삼범 신송자 신승연 오숙자 원진영 유병애 유은식 이민순 이상정 이성욱 이수동 이수만영가 이수진 이장원 이춘순 이혜순 임대라 임도훈 전재영 정대권 정명식 정복순 정은숙 정하윤 정하중 정희정 지수 지영숙 지환스님 진연숙 최용림 함원옥 허윤희 현영희 황순덕(이상 10만원) 무명 77000원 김경숙(선릉) 김명수 김영국 김영희 김종백 김철수 김태석 박미향 박윤화 박태준 서선덕 성기자 소준섭 이명조 이수천 이은남 정숙희 정옥순(이상 7만원) 김미자 6만원 이명희 52000원 김건석 김두희 김순희 김영선 김태호 신명근 영현장영석 유일경 이동길 이동화 이송희 이영애 이재각 이철순 장성인 정규석 최부승 최순애 최영곤 최홍덕 허곤 홍덕원 홍승덕 홍진헌(이상 5만원) 이혜주 4만원 경명수 37000원 정분임 31000원 김금욱 김인태 김춘화 박연숙 서동열 신병무 신현복 이창형 임종덕 정숙희 정점분 홍보라 황순욱 황혜연(이상 3만원) 손경희 22000원 김양배 김정애 김현자 김효정 노희산 문유미 박홍태 방극춘 송미화 송영욱 이정자 임순자 정지환 채순이 최혜성 허정순 홍수화(이상 2만원) 김길준 김명숙 김미연 김성구 김순덕 김순자 김용복(김석연) 김장석 남옥주 박계희 박기완 박상언 박은혜 송후종 신금화 신의섭 신철애 안남옥 안재란 옥규우 우진호 유주열 유진재 이명자 이숙연 이정경 이태순 이현숙 장옥기 정신숙(김복연) 정인실 정현순 조규택 조한주 최윤근 최인근 한병혁 한상진(서정남) 허남욱(이상 1만원) 김기하 5000원 김인범 5000원 김정자 5000

 

기간 : 2011821922일 현재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군법당 신축불사에 동참을!, 불교신문 2011-10-17일자)

 

 

2011821922일의 한 달간에모연된 스님과 재가불자에 대한 것이다. 몇 천원에서 몇 만원이 대부분이다. 이런 정성이 모여서 결국 불사가 완공되리라 본다.

 

삼성에서 원불교에 120억원을 기부

 

위 금액을 보면 눈물겹다. 한푼 두푼 모여서 언젠가 불사가 완성되겠지만, 이럴 때 재벌이라도 나서서 한 방에 해결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는 삼성에서 원불교에 120억원을 기부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가 원불교 해외포교 사업을 위해 모두 120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 뉴욕 허드슨강 상류에 건립 중인 원 달마 센터건립을 위해서 기부했다고 하는데, 홍여사는 독실한 원불교신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신자인 홍여사는 2008년 여성불자 108명의 명단에 올라간 적이 있다.

 

비록 보시금액이 적더라도

 

 

하지만 보시금은 액수가 크거나 작은 것으로 공덕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보시를 하는 순수한 마음이 공덕을 결정한다

 

 

참고로 불교신문에 실려있는 호국연무사 불사동참계좌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신축불사 동참 계좌

 

제일은행 325-20-221949

국민은행 477401-01-179603 

농협 301-0063-3042-71

예금주 : 군종특별교구

문 의 : (02)749-8646, 797-7266, 748-1395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 군법당 신축불사에 동참을!, 불교신문 2011-10-17일자)

 

 

비록 보시금액이 적더라도 그 보시를 하는 순간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찬 것이라면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으로 본다. 그런 보시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불교tv사이트에서 일묵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다음은 보시공덕에 대한 이야기이다.

 

명행족(明行足), 윗자짜라나삼판나(Vijjacarana sampanna)

 

부처님이 명호 중에 명행족(明行足)이 있다. 이를 빠알리어로 윗자짜라나삼판나(Vijjacarana sampanna)’라 한다. 이때 윗자로서 지혜를 의미하고, ‘짜라나로서 공덕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혜와 공덕이 구족한 분이라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은 지혜이지만, 지혜가 생기게 하기 위해서는 공덕행을 많이 필요로 한다. 따라서 공덕을 많이 쌓으면 쌓을 수록 점점 깨달음을 얻기 쉽다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어서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공덕이라는 것이다.

 

공덕행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깨달음은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밑바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을 성숙시켜야 하는데, 그런 과정중의 하나가 공덕행을 쌓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덕행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묵스님의 불교TV사이트의 법문 (제10 공덕과 지혜) 에 따르면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계율이다.

둘째,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

셋째, 법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넷째, 선정이다.

다섯째, 지혜이다.

 

 

이 다섯가지가 공덕행이다. 이런 공덕행을 하여 설사 금생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다음생을 위한 공덕을 쌓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런 공덕이 쌓이지 않고서 절대로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에 대한 조건이 성숙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중 첫번째 항목인 계율의 경우 일반적으로 계율보시로 불리운다. 계를 지키고 보시하는 것이 공덕행을 쌓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계생천이라 하였다. 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가르침은 불교입문자나 초심자, 재가자들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불교의 핵심교리를 설하기 전에 예비적인 가르침으로 본 것이다. 이중 보시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것은 공덕행을 쌓는 기본중의 기본으로 본다.

 

보시의 세 가지 조건

 

보시라는 말은 빠알리어로 다나(dāna)’라고 한다. 그런 보시는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보시자가 보시하겠다는 의도를 필요로 한다.

둘째, 보시 받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셋째, 보시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보시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중에 한 가지만이로도 성립이 되지 않으면 보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보시의 종류

 

그렇다면 이런 보시를 할 수 있는 종류는 어떤 것일까.

 

첫째, 재물보시이다.

 

정당하게 번 재물을 보시하는 것이다.

 

둘째, 노력하는 보시이다.

 

재물보시가 어려우면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당에 나와 청소를 한다든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회향하는 보시이다.

 

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사람을 향하여 회향하는 것이다. 절에 공양을 할 경우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죽어서 아귀가 된 자들이다. 이 경우 아귀들은 회향한 것에 대해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럴 경우 마음속으로 오늘 이 회향한 공덕이 나의 먼 옛날 먼 친척에게 회향되기를...”라고 한마디 해주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기뻐하는 보시이다.

 

남이 잘 되었을 때 배 아파하지 않고 같지 기뻐해주는 것을 말한다. 남방불교국가에서는 누군가 보시를 잘 한 경우 옆에서 지켜 보는 이가 사두, 사두, 사두라 한다. 이 말은 금강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재라고 번역된다. 우리말로 훌륭하다라는 뜻이다. 남이 공덕을 쌓는 것을 보고 사두, 사두, 사두하면 나도 같이 보시행을 하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10만원을 보시하였을 때, 내가 사두, 사두, 사두하면 동시에 나도 10만원을 보시한 공덕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 몸보시이다.

 

이는 부처님이 보살로서 삶을 살았을 때의 보시유형이다. 요즘의 경우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의 장기를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법보시이다.

 

보시중에 가장 수승한 보시로 본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서 경지에 오른 자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보시하면 어떤 공덕이

 

이와같이 다양한 보시가 있어서 보시가 반드시 재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보시를 하면 어떤 공덕이 있을까.

 

첫째, 복과 덕이 생긴다.

 

보시를 많이 하면 복과 덕이 생긴다. 그래서 보시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재물이 부족하지 않고, 몸도 편안하고 여러가지 이로운 점이 많다. 그런데 직접 보시하지 않고 권선(勸善)’을 많이 한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좋은 일에 대하여 보시를 할 것을 권하면 인덕이 생겨서 따르는 무리가 많아진다고 한다.

 

둘째, 악처에 태어나지 않는다.

 

보시를 많이 하면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와 같은 사악도에 태어나는 것을 면할 수 있고, 천상과 같은 선처에 태어 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런 보시에 대한 예로서 법구경 인연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때 코끼리가 이렇게 부처님을 잘 시봉하면서 크고 작은 일을 해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원숭이는 자기도 코끼리처럼 부처님을 위해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숭이는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닌 끝에 벌집 하나를 찾아냈다.

 

원숭이는 나뭇가지로 벌집 안에 있는 꿀을 꺼내어 커다란 나뭇잎에 담아 부처님께 공손하게 올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부처님께서는 그 꿀을 잡숫지 않으시었다. 원숭이는 이상하여 다시 그 꿀을 살펴보고는 그 속에 아기벌 몇 마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래서 원숭이는 그 부분을 잘라 내고 나머지를 다시 부처님께 바쳤고, 부처님께서는 그 꿀을 맛있게 잡수시었다.

 

부처님께서 자신이 공양한 꿀을 잡수시는 것을 본 원숭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마구 소리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밟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아래로 떨어졌고, 마침 거기에 솟아 있던 뾰족한 다른 나무등걸에 깊게 찔려 버렸다. 원숭이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렇지만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으로 공양을 올린 선업의 결과로 곧 33천상세계에 태어나 거대한 황금 누각에 살면서 수천명의 선녀를 거느리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법구경 인연담, 게송 6 꼬삼비 빅쿠들 이야기, 거해스님)

 

 

 

부처님에게 꿀을 보시한 원숭이가 죽어서 욕계천상인 삼십삼천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아주 작은 보시이지만 순수한마음으로 하였을 때 선처에 태어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탐욕과 성냄을 약하게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쁨으로 보시하는 행위는 선법이므로 탐욕과 성냄같은 불선법을 약화 시킨다.

 

고귀한 보시와 열등한 보시

 

보시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는 보시를 하기 시작 부터 보시 하는 중간, 그리고 보시를 하고 나서 오염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을 말한다. 기쁜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보시하고 난 다음에도 기쁜 마음이 지속되는 보시이다. 이런 보시를 고귀한 보시라 한다. 이렇게 수승한 보시가 있는 반면에 열등한 보시도 있다.

 

보시하기 전에 줄까 말까 망설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깝다는 마음이 들 때이다. 망설이다 마지못해 보시하는 것이다. 또 보시하고 난 다음에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보시하기 전이나, 보시 하는 도중이나,  보시를 하고 나서나 계속 오염된 마음 즉, 인색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보시하는 행위자체는 선업이다. 하지만 이 선업을 둘러싸고 있는 마음은 오염된 마음이다. 이 경우 선업이 익는 것을 막는다. 반면에 기쁜마음으로 보시를 하면 보시행의 공덕이 익을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보시는 큰 공덕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스님은 부자이고, 종단은 가난하고

 

보시를 하려면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한다. 이왕 준 것인데 번뇌로서 다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한 보시를 하는 데 있어서 개인에게 하는 보시와 상가에 하는 보시가 있다.

 

우리나라 불자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스님들에게 보시하는데, 이는 개인에게 보시하는 케이스에 해당된다. 그런 보시금을 받아 불사를 하여 절을 크게 짓는 것을 보아 왔는데, 대부분 사설사암이라는 것이다.

 

이는 공찰이 아니기 때문에 종단에서 추진하는 일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님들은 부자가 될지 모르지만 종단이 가난한 이유는 불자들이 개인에게 보시를 많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닥키나위방가경(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M142)에서

 

이런 현상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

 

(닥키나위방가경-Dakkhiāvibhagasutta- Classification of Offerings-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42, 전재성박사역)

 

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docx

닥키나위방가경_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M142.pdf

 

 

 

맛지마니까야 닥키나위방가경(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M142)에 따르면 부처님은 개인에게 보시하지 말고 승단에 보시하라고 하였다. 이 경은 부처님의 양어머니인 마하빠자빠띠가 부처님에게 새 법복을 지어 보시하려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5만원이 5백억원으로

 

이렇게 부처님이 부처님 개인에게 보시하려는 것을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양어머니 마하빠자빠띠는 두 번, 세 번 청하게 된다.

 

이렇게 삼 세번 청하게 되었을 때, 부처님은 어느 개인에게 보시하였을 경우 그 보시공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아난다여, 축생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백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십만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천억 배의 갚음이 기대된다.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그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갚음이 기대된다. 하물며 흐름에 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한번 돌아오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한번 돌아오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돌아오지 않는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거룩한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여래의 제자인 거룩한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연기법을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물며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에게 보시한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닥키나위방가경 -Dakkhiāvibhagasutta- Classification of Offerings-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42, 전재성박사역)

 

 

부처님은 개와 같은 축생에게 먹을 것을 주는 보시행만 해도 그 백배복을 받는 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것도 성자에게 보시하는 공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위 경의 내용에 대하여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보시대상

보시공덕

  

축생

백 배

,

부도덕한 일반 사람들

천 배

시정잡배

도덕적인 일반 사람들

십만 배

보통사람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난 밖의 사람

천억 배

수행자

흐름에 든 경지를 실현하는 길에 들어선 님 이상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음

예류자이상

 

 

 

지나가다 걸인에게 천원을 보시하였다면 미래 백만원의 갚음으로 되돌아 오고, 친척에게 용돈 만원을 주었다면 미래 ‘10,000,000,000(100억원)’의 갚음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논산 호국연무사에 ‘5만원을 보시 하였다면 미래 어느 때인가 ‘500억원의 되갚음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에게 보시하였을 경우 그 보시금액의 천억배를 받게 될 것이라 한다. 더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의 경지에 들어선 예류자 즉, 수다원이 되었을 경우 그 복덕은 셀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라 한다.

 

이는 법구경 인연담에서 원숭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꿀을 공양하였을 때 죽어서 욕계천상인 삼십삼천에 태어났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이다.

 

개인보다 승단에 보시하는 것이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 보다 승단에게 보시하는 것이 더 수승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난다여, 미래에 황색의 목을 하고 비도덕적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가문의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참모임을 위해 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게 보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모임에 주어진 보시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결코 개인에 대한 보시가 참모임에 대한 보시보다 더욱 커다란 과보를 낳지는 못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닥키나위방가경 -Dakkhiāvibhagasutta- Classification of Offerings-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42, 전재성박사역)

 

 

부처님사후 미래세 어느 때 부도덕한 승려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속해 있는 상가에 보시한다면 승려 개인들에게 보시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요즘 우리나라 현실을 그대로 예견하는 듯 보인다.

 

주머니에 돈 있으면 공부 안 합니다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비구나 비구들이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초기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만일 금과 은이 허용된다면 그들에게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도 함께 허용될 것입니다. 만일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이 허용된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사문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며, 사꺄 아들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42  가마니상윳따,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금과 은은 요즘말로 하면 이다. 스님이 돈을 받게 되면 타락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돈을 밝히는 자들에 대하여 사문의 자질이 없는 자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스님들은 돈을 받고 있다. 그 돈으로 도시에 사찰을 지어 포교 하는 것이 아니라 산중에 절을 지어 자신들의 노후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염불선을 주창하였던 청화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스님에게 절대로 돈 주지 마세요. 주머니에 돈 있으면 공부 안 합니다”

(청화스님)

 

 

 

재가자의 각성을

 

이렇게 스님에게 돈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승단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지난 11월에 열렸던 불교중흥토론회에 대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승가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재가자의 시주거부로 분쟁을 종식시킨 부처님 당시 코삼비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한 종광 스님은 “재가불자들이 좀 더 공부를 많이 해주셨으면, 사찰이 가난해지도록 힘써 주셨으면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종단은 건강해지지 않는다. 종교집단이 부자가 되어서 망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당부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우리 종단에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은 돈이라도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교단을 망치게 한다. 승가는 승가로서 역할을 하고 재가는 재가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거듭 재가자의 각성과 그에 따른 역할을 강조했다.

 

(11월 불교중흥대토론회, , 하면 부처님이 생각나지 않고 달마가 떠오르는 것, 문제 아닌가?, 미디어붓다 2011-11-25)

 

 

토론회에서 종광스님은 종단이 가난해 졌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는 돈이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포교를 위하여 절을 짖고,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를 하려 한다면 돈은 필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보시를 하려거든 스님 개인에게 하는 것 보다 승단에게 보시하는 것이  더 커다란 복덕을 쌓는 것이라 하였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모두 청정할 때

 

그런 보시도 스님이나 승단이 청정할 때, 그리고 보시자가 청정할 때 하는 것이 최상이라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경에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으시었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하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보시받는 자의 덕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만드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가 계행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

여법하지 않게 얻어진 것을 불신의 마음으로 보시하면

어느 쪽의 덕행도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지 못하네.

 

계행을 지키는 자가 계행을 지키는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굉장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탐욕을 떠난 자가 탐욕을 떠난 자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법하게 얻어진 것을 흔쾌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그 보시는 세간적 보시 가운데 최상이라고 나는 말한다.

 

(닥키나위방가경 -Dakkhiāvibhagasutta- Classification of Offerings-보시에 대한 분석의 경, 맛지마니까야 M142, 전재성박사역)

 

 

초기경전을 보면 비구와 비구니에 대한 보시품은 생활필수품이었다. , 음식, 거처, 의약품 이렇게 사대필수품이다. 그외 금이나 은을 받는 것을 금하였다.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자료를 보면

 

 이런 전통은 현재 테라와다 불교국가에서도 그대로 지켜지는 것 같다.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첫째, 재가 신자가 사원을 만든다.(출가 비구는 관계하지 않는다)

둘째, 재가 신자가 보수나 유지, 세금 등을 포함한 모든 관리 운영을 담당한다.(출가 비구는 관계하지 않는다)

셋째, 사원의 건립 후에 사방 상가에 보시한다.

 

(아짠 진용 빤냐와로, 까티나 가사 법요식, 해피법당)

 

까티나_가사_법요식.docx

 

까티나_가사_법요식.pdf

 

 

이 자료에 따르면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비구들의 사유재산이 허용되지 않고 기부는 승단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승단의 모든 재산관리는 재가자가 하게 되어 있어서 출가수행자들은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만 전념할 수 있는 제도로 되어 있다.

 

이런 시스템은 가톨릭도 동일하고 원불교도 동일하다. 한국불교에서 보는 것처럼 성직자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불교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

 

하지만 한국불교의 경우 스님들은 사설사암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노후보장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설사암에 건립되는 비용은 모두 신도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게 되어 있는데, 주로 신심깊은 노보살들의 쌈짓돈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스님들이 돈이 안되는 청소년과 군포교에 등한시하고 돈 많은 노보살에 목매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불교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노보살들은 앞으로 한 세대만 지나면 보기 힘들어지지만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청년불자들은 미래의 한국불교의  중추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주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불자들이 출가자 개인에게 보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굳이 보시를 한다면 입을 것, 먹을 것, 거처, 의약품 등 사대필수품으로 족하다.

 

종단협의회에서 추진하여야

 

불자들은 보시를 하긴 하되 승단에 해야 한다. 그것도 투명하게 관리하는 승단이다. 주는 자도 청정하고 받는 자도 청정한 보시이다. 그래서 그 보시금으로 청소년과 군대를 대상으로 포교하는 것이다. 지금 논산훈련소에 짓고 있는 호국연무사와 같은 대작불사에 보시하는 것이 현재 가장 수승한 보시라 여겨진다.

 

돈 있는 재벌이 나서서 한 방에 해결해 주지 않는 한 호국연무사불사는 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계종단에서만 추진할 것이 아니라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전 불교종단의 힘을 빌어야 한다.

 

법현스님의 지적( 4. 포교와 불교대학ㆍ불교언론)대로 군승을 조계종에서만 파견하고, 호국연무사도 조계종에서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단이 참여하는 종단협의회에서 추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교계 모두의 발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1-12-0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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