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닥치고 믿어라? 이병철회장의 24가지 영적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2. 20. 16:07

 

 

닥치고 믿어라? 이병철회장의 24가지 영적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서

 

 

 

창조주는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문제이다. 이와 같은 종교적 의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지난 12 1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의 내용을 보면 삼성그룹창업주 이병철회장이 타계하기 한달전에 작성한 ()적질문이라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병철회장의 영적질문 24가지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아닌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 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었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폴랜드등 동구제국, 니카라구아등.

 

20. 

우리나라는 두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맣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그리 많은가?

 

21. 

로마 교황의 경정에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왜 독신인가?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 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이병철회장 관련 기사에 따르면 생전의 이병철회장은 당대 최고의 부자이었고 독실한 불교신자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회장이 타계 한달전에 작성한 문건의 내용을 보면 천주교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건이 불교나 기독교에도 발송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고인이 불자이었음을 감안 한다면 불교에 대한 지식은 이미 가지고 있었으리라 본다. 다만 유일신교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에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을 정리하여 물어 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회장의 질문은 종교인이든 아니든 또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져 봄직한 무거운 주제이다.

 

이와같은 이회장의 영적질문에 대하여 24년만에 천주교 차동엽신부가 답변을 했다고 전한다. 그 중에 몇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창조주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이냐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하여 차동엽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그러나 가청영역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차동엽신부, [j Story]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드러내지 않나”, 중앙일보 2011-12-17)

 

이병철 회장의 영적질문에 대한 차동엽신부.docx

이병철 회장의 영적질문에 대한 차동엽신부.pdf

 

차신부는 공기와 소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인데, 이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신의 영역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질문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회장의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프레시안의 윤재석 컬럼니스트는 매우 가혹하게 몰아 부치고 있다. 이회장의 자세가 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질문이 반말이 끝나는 것을 문제삼으며 이는 종교를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한다. 그러면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당신이 존재를 믿으면 신은 있는 거고, 당신이 믿지 않으면 신은 없다.
믿는 이에게 신은 존재를 똑똑히 내보이신다.

(윤재석, [윤재석의 '쾌도난마']<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 답한다, 프레시안 2011-12-18)

 

윤재석의 쾌도난마 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docx

윤재석의 쾌도난마 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pdf

 

신을 믿으면 신이 있는 것이고, 신을 믿지 않으면 신은 없다고 말한다. 이회장의 질문에 대한 자세를 비판하면서 답변을 주고 있는데, 답변 하는 자세가 마치 비아냥 거리는 듯하다.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차동엽신부는 어떻게 답을 하였을까. 차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성경에는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돼 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말씀은 로고스 (Logos). 로고스의 뜻이 뭔가. '원리'. 다시 말해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원리가 있었다"가 된다. 우주에는 기가 막히게 섬세한 질서가 있다. 결국 그러한 존재원리, 그리도 섬세한 질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거다.”

 

(차동엽신부, [j Story]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드러내지 않나”, 중앙일보 2011-12-17)

 

 

차신부는 근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 실재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차신부는 한송이의 꽃을 예로 들면서 근원에 대하여 설명한다.

 

한송이 꽃을 보면서 신을 체험할 수 있고, 이것이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윤재석 컬럼니스트는 신의 존재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 그대는 자꾸만 신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라고 투정하고 있다. 돈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믿는 자이니 그렇겠지. 하지만 신은 5감으로 느끼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따라서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도, 증명할 필요도 없어. 1번 답변과 비슷하지만, 한 존재가 신을 만나면 신의 존재가 입증되는 거고, 만나지 못하면 입증하지 못하는 거다.

 

(윤재석, [윤재석의 '쾌도난마']<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 답한다, 프레시안 2011-12-18)

 

 

한마디로 신은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신을 만나면 신의 존재가 입증되는 것이고, 만나지 못하면 입증되지 못하는 것이라는 단순명쾌한 논리이다.

 

이상 첫번째와 두버째 질문에 대한 기독교측의 답변을 보면 한 마디로 신의 영역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또 하나 핵심적인 질문이 있다. 다섯번째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여섯번째의 ()’에 대한 것이다.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차 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 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 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 생명이 피어난다 / 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 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 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 의지가 있다.

 

(차동엽신부, [j Story]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드러내지 않나”, 중앙일보 2011-12-17)

 

 

고통과 불행등은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라 한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썻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고통과 불행등이 신이 준 선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더 성숙하게 만드는 방편인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시인 루미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 분이 우리를 돕고자 고통과 불행을 준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논리는 전형적인 병주고 약주고의 논리나 다름 없다. 이런 논리에 대하여 윤재석은 어떻게 답변하였을까.

 

 

<> 주어의 토씨가 틀렸네. '신은~'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야지. 당신은 돈 버는 덴 천재지만, 종교에 대해선 정말 맹추구만. 그대도 자식이 귀하고 예쁠수록 질타와 편달(鞭撻)을 하지 않는가!

(
) 마찬가지.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피조물을 연단(鍊鍛)하기 위해 고통과 불행, 죽음을 선사하는 거야. 이쯤에서 성경 구절 하나 가르쳐 주지.

'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언 13 24, 이하 개혁
한글판)

 

(윤재석, [윤재석의 '쾌도난마']<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 답한다, 프레시안 2011-12-18)

 

 

윤재석의 답 역시 차동엽신부의 답과 거의 유사하다. 인간이 고통이나 불행을 겪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를 더욱 더 단련시키기 위한 그분의 배려로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악인에 대한 문제이다.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전지전능한 창조주라면 이와 같은 악을 만들어 놓지 않아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악은 엄연하게 존재한다. 이에 대하여 차신부는 무엇이라고 답변하였을까.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차동엽신부, [j Story]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드러내지 않나”, 중앙일보 2011-12-17)

 

 

차신부는 신이 악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악이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인간탓으로 본 것이다. 다음은 윤재석 컬럼니스트의 답변이다.

 

 

<> 그대는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자기의 노비로 생각했을 뿐, 결코 자율을 주지 않았어. 그러니 신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자유의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신께선 히틀러나 스탈린 뿐 아니라, 악덕 기업인, 친일파, 매국노, 불법 경영권승계자 부자(
父子)는 물론, 조세포탈범까지 창조하셨어. 그게 모두 우리 사회, 지구촌을 구성하는 다양한 군상(群像)이거든.

 

(윤재석, [윤재석의 '쾌도난마']<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 답한다, 프레시안 2011-12-18)

 

 

윤재석은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답을 하고 있다. 윤재석 역시 신이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악이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간탓으로 돌리는

 

이상 존재의 근원으로서 창조주와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행, 그리고 악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에 대하여 차동엽신부와 윤재석컬럼니스트의 답변을 들어 보았다.

 

이들 답변의 큰 줄기는 신의 영역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인간이 고통과 불행을 겪고 악이 창궐하는 이유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의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나머지 질문에 대한 답변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런 식의 답변이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신의 존재 즉 창조주의 존재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창조주가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는 악이 없어야 한더. 하지만 현실은 각종 범죄등 악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과연 창조주로서 그분은 이에 대하여 책임은 없을까.

 

이처럼 현실에서 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체 악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뉴스를 보면 종종 자연재앙에 대하여 방송하고 있다. 쓰나미를 비롯하여 지진, 해일등 대규모적 자연재해에 대하여 인간은 속수 무책이다. 그런데 이런 자연재해 현상에 대하여 일부 기독교지도자들은 그분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근거로서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들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만약 악()이 하나도 없다면, 하느님[]도 없다. 왜냐하면 선()[美德]의 질서가 사라진다면 악도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만약 하느님[]이 세상에 악()을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하셨다면, 수많은 선한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공기가 더럽혀지지 않았다면 불이 나지 않을 것이고, 당나귀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사자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그분이 악을 방조한 것은 한마디로 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기독교인을 제외하고 누구도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착한 일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다.

 

병주고 약주고

 

하지만 실제로 기독교 종교인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논리도 성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에게 치료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암()이 있어도 좋다.

-준법 시민이 되기 위해서 죄를 저지르는 범법자들도 있어야 한다.

-평화와 휴전협상을 펼칠 수 있도록 때때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병주고 약주고가 될 것이다. 단지 선행을 하기 위하여 때로 악도 필요 하다는 논리라면 어느 누구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논리 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자연재해에도 적용되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하는 종교인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창조주일까.

 

악은 어디서 왔을까?

 

기독교에서는 악에 대하여 잘 설명하지 못한다.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인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지 않았을 텐데 현실에서는 여전히 악이 존재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인 앞서 차동엽신부와 윤재석 컬럼니스트가 답변을 하였듯이 인간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나님이 악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 못 사용하였을 때 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불교tv사이트에서 본 동국대 김종욱 교수의 강의내용을 옮겨 보았다.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기독교의 창조주를 ‘선 그 자체’라고 한다. 이 말 뜻은 ‘악이 없다’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악은 분명하게 존재 한다. 그렇다면 그 악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크게 세가지로 추론 해 볼 수 있다. , 신에게서 왔거나, 악마에게서 왔거나, 인간에게서 왔거나 이 세가지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신은 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올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간과 악마 밖에 없다.

 

먼저 인간을 보면 ‘원죄’가 있다.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창조주가 세상과 사물 창조 하였지 인간의 행위까지 창조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악이 시작 된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 이전에 ‘선악이 먼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악은 인간에게서 시작 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악마밖에 없다.

 

악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악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을 설명 하기 위해서는 악마도 ‘필요’ 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는 ‘두 개의 신’이 존재 한다. 즉 선신과 악신이다.

 

선신과 악신 둘 중에 누구를 믿어야 할까. 당연히 선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지구상에 악신을 믿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왜냐 하면 악을 응징하고 악을 콘트롤 하려면 악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선신에게 악은 없고, 악이 그 어디에도 소속 되어 있지 않아, 악이 콘트롤 되지 않는 다면 그 신은 무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할 일은

 

기독교에서 신을 위하여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일까. 신을 닮아 가려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악을 제거’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신은 ‘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의 제거는 ‘절대적(絶對的, absolute)’이다. 이 말은 ‘절상대(絶相對)’라는 말과 같다. 상대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선과 악 중에 맞은 편에 있는 악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선악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선이란 무엇일까. 그 선은 그들에게만 좋은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라는 아()가 철저 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김종국 교수, 불교 TV, http://blog.daum.net/bolee591/16154475)

 

 

 

 기독교에서는 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못한다. 창조주가 전지전능하고 절대선을 추구한다면 절대로 악이 생겨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창조주는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이다.

 

요모양 요꼴로 만들어 놓고

 

더구나 인간이 겪는 고통이나 불행,죽음등도 전지전능한 창조주라면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현상 역시 현실에서 엄연히 있는 것인데, 이 또한 창조주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왕 만들어 놀려면 완전하게 만들어 놓든가 해야지 요모양요꼴로 만들어 놓아 고통받게 하는가라며 푸념하며, 창조주가 진짜 있다면 맞짱이라도 뜨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분은 진짜 있기나 한 것일까?

 

신을 본적이 있는가?

 

부처님당시 인도에는 오늘날 유일신교와 유사한 종교가 있었다. 이 세상을 브라만이 창조하였다고 믿는 브라만교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그대는 그들 모두가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끈다고 말하는가?

“그렇게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님.

“그러나 와셋타,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 중 어느 한사람이라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또는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의 스승의 스승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고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또는 그 스승들 중 7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 한 사람이라고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
디가니까야:13 떼윗자 경 1-15,19,24,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부처님은 브라만을 믿는 브라흐민들에게 “신을 본적이 있는가?”하고 물어 본다. 그러자 누구하나 신을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 것도 7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신은 본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역시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승된 내용만 믿어서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와셋타,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 중에 어느 누구도, 또한 그들의 스승들 중 어느 누구도, 또한 그 스승의 스승들 중 어느 누구도, 또한 그 스승들 중 7대를 거슬러 올라가 어느 누구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베다 시구의 저자이며 암송자들인 고대 브라흐민 선인들이 쓰고 암송한 것을 오늘날 브라흐민 선인들이 쓰고 암송한 것을 오늘날 브라흐민들은 전승된 그대로 정확하게 그대로의 어조로 암송한다.

 

전승을 그대로 암송하는 이들조차도 ‘브라흐마 신이 언제 나타나고 어떻게 나타나고 어디에 나타나는 지를 알고 본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브라흐마 신과의 하나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이것만이 해탈에 이르는 곧은 길이며, 바른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은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민들이 말하는 것이 터무니없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
디가니까야:13 떼윗자 경 1-15,19,24,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느 누구도 신을 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과 합일하는 범아일여를 주장하지만, 이는 고대 브라흐민들이 전승한 내용을 그대로 암송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터무니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신다.

 

이는 마치 알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는 여인을 사랑하려는 것 같이 공허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름명칭으로만 존재하는 그분

 

사람들은 실재하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대상에 대하여 마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만일 실재하고 실체가 있다면 우리 앞에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분을 믿든 믿지 않든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유는 그분이 관념적으로 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오로지 이름명칭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볼 수 도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그분이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닥치고 믿어라?

 

그런데 왜 자꾸 믿으라고 말할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믿기지 못하니까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믿긴다면 믿지말라고 해도 믿을텐데 닥치고 믿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믿기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돌린다. 그런데  고통과 불행, 악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자유의지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잘 되면 신의 뜻이고, 못 되면 인간탓일까.

 

 

 

 

 

2011-12-20

진흙속의연꽃

 

 

윤재석의 쾌도난마 35 이병철의 종교적 질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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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영적질문에 대한 차동엽신부.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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