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종교평화선언과 한국불교의 정체성갈등, 대승불교와 주류불교의 관점차이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1. 12. 29. 13:47

 

 

종교평화선언과 한국불교의 정체성갈등, 대승불교와 주류불교의 관점차이인가

 

 

 

매년 연말이면 10대뉴스를 발표한다. 그런 10대 뉴스는 국내의 것도 있고 외국의 것도 있다. 주로 사건과 사고등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종교계에는 10대 뉴스가 없을까.

 

종교계에 아직까지 10대 뉴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에 핫이슈가 없을 수 없다.

 

개신교의 권력비리와 불교의 정체성갈등

 

최근 한겨레 종교전문 기자는 올해 종교계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을 발표 하였다. 그 중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개신교가 이처럼 목사의 비리 의혹과 ‘권력욕’에 의해 파문을 일으켰다면, 이명박 정권 들어 ‘아웃사이더’로 내몰린 듯한 피해의식에 젖은 불교계는 불교적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이들과 열린 불교를 지향하려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개신교교회 권력비리 몸살..불교는 정체성갈등, 한겨레신문 조현기자 2011-12-28)

 

 

일간지 종교전문기자는 올해 종교계의 커다란 이슈로서 개신교의 경우 권력비리를 들었고, 불교계는 정체성갈등을 겪고 있다고 전하였다. 전자는 부자집안에서 재산다툼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후자의 경우는 망조가 든 집안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듯 하다.

 

불교계에서 정체성을 겪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종교평화선언때문이다. ‘21세기 아쇼카선언이라 불리우는 종교평화선언에 대하여 찬반 양론으로 갈리어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계 바깥에서 볼 때는 내분내지 분열양상으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하극상을 보는 듯

 

특히 선언의 본발표를 앞두고 조계종 종정스님의 유보지시에 따라 본선언이 무산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선언문 추진측에서 반발하는 모습이 마치 군대에서 하극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극상이 또 다시 일어났다.

 

선언문추진측인 법안스님이 해인사측을 향하여 발표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예경실장은 능히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분이란 판단을 다수의 대중들이 하고 있습니다.

 

(법안스님, [전문]예경실장께 보내는 편지-법안 스님, 불교닷컴 2011-12-28)

 

법안스님이 해인사 예경실장을 향하여 편지형식을 사용하여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편지 내용을 보면 칼날은 종정스님을 향하고 있다. 이것이 하극상이고 더구나 종정스님을 잘 못 보필하였다고 말하면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극한 표현까지 사용하였다. 이제 인신공격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내분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집착할까

 

하지만 내분과 분열의 모습이 보이건 말건 선언문 추진측에서는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썼을 것이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종단 지도부가 앞장서서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한 자성과 쇄신 결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봅니다. 결사는 공염불로 끝날 것입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정법의 당간을 쓰러뜨린 큰 죄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법안스님, [전문]예경실장께 보내는 편지-법안 스님, 불교닷컴 2011-12-28)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21세기 아쇼카 선언문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선언문에 모든 것을 다 보장하는 것처럼 집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종교평화선언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이다.

 

열린진리관과 닫힌자세

 

그런데 이 선언에 대하여 문제를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다. 이는 타종교와 타종교나 타종교인에 대해서는 열린자세를 취하고, 내부적 비판에 대해서는 닫힌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대체 누구를 위한 선언문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기독교에 대해서는 열린자세, 내부지적에 대해서는 닫힌자제를 취하고 있는 선언문추진자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모두 한국불교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하고 또 정법(正法)을 세우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선언문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정법이 아닌 사법(邪法)이라는 것일까. 이는 한국불교에 있어서 심한 정체성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는 삿된견해

 

이제까지 조계종에서 추진하던 것은 관례대로 한다면 모두 정법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화 되는 시대에 있어서 조계종에서 추진 하는 모든 것이 정법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진리관에서 더욱 더 그렇다.

 

이번 아쇼카선언문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열린진리관때문이다. 선언문의 열린진리관에 따르면 기독교의 교리도 진리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따르면 이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르면 기독교의 교리는 삿된견해일 뿐 진리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부터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와 주류불교의 관점

 

이런 괴리는 마성스님의 글에서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불교관과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쟁위 관계자들은열린 진리관’(실제로는열린 종교관이라 해야 옳다)이 옳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용도 폐기된 종교다원주의를 근거로 불교와 타종교가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이웃종교는 나의 종교를 비추는 거울입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불교는 타종교와 다른 차별성을 강조한다. 불교는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러한 불교 고유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곧 불교의 자멸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처럼 불교관과 타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필자는 다섯 번째 글에서초안의 근간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몇 군데 수정만으로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이미 말했던 것이다.

(마성스님, ‘21세기 아쇼까 선언’ 수정본을 읽고, 불교포커스 2011-11-25)

 

21세기 아쇼까 선언’의 수정본을 읽고.docx 21세기 아쇼까 선언’의 수정본을 읽고.pdf 

 

 

 

 

 

Bodhi Tree

 

 

 

 

글에서와 같이 서로 다른 불교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대승불교의 관점과  주류불교(테라와다불교)의 관점이 서로 다른 것과도 같다. 대승불교와 주류불교가 추구하는 진리관은 아주 다르기 때문에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침묵할까

 

따라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언문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불교를 연구한다는 스님이나 학자들 대부분은 침묵하고 있다.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초기불교의 경전을 번역하고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한다는 스님이나 교수, 재가법사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전면에 나서서 강력하게 선언폐기 주장을 해야 하나 침국하고 있다.

 

그들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아마도 보신주의 때문일 것이다. 종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종권을 장악한 스님들의 눈치이다.

 

스님들의 의식수준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이학종기자는 단지불회 컬럼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몇몇 잘못된 승려들이 활개를 치도록 허용하는 절집 대중의 안타까울 만큼 한심한 수준임을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 대중이 늘 깨어있다면, 불조의 혜명과 불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현재와 같은 무법천지와 안하무인의 종단권력 행태를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학종기자, [이학종기자의 불교이야기] 강한 이빨을 가진 동물에게 뿔을 주지 않고 날개 새에게 다리만 이치 간과 말라, 단지불회 2011-12-07)

 

[이학종기자의 불교이야기] 강한 이빨을 가.docx [이학종기자의 불교이야기] 강한 이빨을 가.pdf

 

 

 

몇몇 정치승들에 의하여 불교가 망가져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불교를 연구하고 전파한다는 스님이나 교수, 재가법사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나서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겁내는 신물나는보신주의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더 한심스런 현상은 절집안에서 사는 스님들이다.

 

정법이 훼손되고 망조가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무지랭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스님들의 의식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되다면 한국불교에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소수 승려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한국불교를 구하고 불교의 정체성을 회복 하려면 스님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법시대란

 

이런 깨어남은 스님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불자들도 관심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고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몇몇 소수 정치승들의 놀이터로 변한 종단에서 만든 종교평화실천을 위한 불교인 선언문소위 ‘21세기 아쇼카선언문은 정법에 어긋나는 것이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침묵하고, 교수나 재가법사들이 모르는 체 한다면 불자네티즌이라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법이 널리 퍼져나가 정법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정법시대는 어떤 것일까.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

 

 

첫째,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이 담겨 있는 경전이 전승되어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팔정도를 실천수행을 할 수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셋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반을 성취한 사쌍팔배의 성자가 츨현하면 정법시대이다.

 

 

한국불교 정체성에 대한 검증을

 

이제 뚜껑은 열렸다. 종교평화실천을 위한 불교인 선언문이 발표 되어 열린진리관을 인정하는 측과 이에 대하여 비판하는 측의 대결양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극상과 내분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언문사건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정법, 깨달음, 진리 등 불자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불교는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정체성 논쟁에 접어든 것이다.

 

이런 정체성논쟁은 매우 바람직하다. 유일신교가 득세하는 한국적 특수한 상황속에서 불교가 살아남기 위하여 한번쯤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하여 되돌아 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이번 종교평화실천을 위한 불교인 선언문이 발표 되든 되지 않든 간에 이제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011-12-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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