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성도절과 유엔웨삭데이(UN Vesak Day), 미래불자들의 선택은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1. 12:42

 

 

성도절과 유엔웨삭데이(UN Vesak Day), 미래불자들의 선택은

 

 

 

해가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달력만 바뀌었을 뿐이다.

 

흔히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고, 내일은 오늘의 연속이라 한다. 그래서 어제, 오늘, 내일 이렇게 세 번에 걸친 삶을 살아가는데, 이에 대하여 선사들은 단지 마음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알고 보면 모두 하나인데 마음이 이를 구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이라면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성도절에

 

1 1일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중요한 명절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성도절이라 하여 부처님탄생일등과 더불어 사대명절 중의 하나로 기념한다.

 

특히 성도절을 앞두고 동안거에 들어간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용맹정진을 한다고 하는데, 이 성도절날 새벽에 피크를 이룬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이 이날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일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소승이라 부르고 전세계적으로는 주류불교라 부르는 테라와다불교가 유입된 이래 불자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 났다. 그것은 동아시아불교와 테라와다불교가 여러모로 상이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것 중의 두 가지를 들라면 깨달은 날깨달음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깨달은 날은 왜 다른가

 

먼저 깨달은 날에 대해서 살펴 보면 동아시아의 불교와 테라와다불교가 서로 다르다. 동아시아에서는 음력으로 12 8일을 깨달은 날로 보지만,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음력 4월 만월일(15)이다.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 깨달은 날은 부처님이 태어난 날이면서 동시에 열반한 날이다. 그래서 성도, 탄생, 열반에 대한 행사를 한꺼번에 한 날에 치루는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전통에서는 각기 다 다르다. , 성도절은 음력 12 8일이고, 열반절은 음력 215일이고, 탄생절은 음력 4 8일이다. 두 달 간격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전통이 맞는 것일까.

 

마성스님의 글에서

 

부처님의 성도날과 탄생일, 출가일과 관련하여 검색과정 중에 마성스님의 글을 발견하였다. 지난 2006년 불교포커스에 실린 글인데 제목은 마성스님의 유엔 웨삭데이 참관기로서 모두 3회에 걸쳐 연재 된 것이다.

 

글에서 마성스님은 유엔웨삭데이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불교도들은 음력 4 15일을웨삭(Vesak)’이라고 부른다. 웨삭은 빨리어 위사카(visākhā)에서 유래된 것이다. 빨리어 위사카(visākhā)가 웨사카(vesākhā)로 변했고, 지금의웨삭이라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산스끄리뜨어로는 위사캬(viśākyā)라고 하는데, 인도 달력으로는 2월에 해당된다. 남방불교의 전통에 의하면 붓다는 위사카월()의 보름날에 탄생·성도·열반하였다고 한다. 즉 붓다의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탄생·성도·열반이라는 세 가지 사건이 같은 날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1999 12 13일 제54차 국제연합총회에서 매년 음력 4 15일을유엔 웨삭데이(United Nations Day of Vesak)’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웨삭데이는 세계의 성스러운 날(Holy day, 聖日)이 되었다. 올해 유엔 웨삭데이와 태국 국왕 즉위 60주년 축하를 위한 제3차 국제불교회의가 2006 5 7일부터 10일까지 태국 방콕의 붓다몬톤(Buddhamonthon) 강당과 태국 방콕의 유엔 회의장에서 세계 45개국의 불교지도자 12백 명과 태국의 불교지도자와 신도 3천명, 합계 약42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마성스님, 마성스님,유엔 웨삭데이 참관기(1), 불교포커스 2006-5-17)

 

  마성스님,유엔 웨삭데이 참관기-2006년.docx  마성스님,유엔 웨삭데이 참관기-2006년.pdf

 

 

 

 

 

 

유엔 회의장에서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의 모습. 중간에 한국의 스님들이 많이 앉아 있다.

사진 : 유엔 웨삭데이 참관기(3)-

  

 

 

스님의 글에 따르면 남방불교전통에서는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이 모두 음력 4월 만월일(15) 한날이라 한다. 그리고 이날을 웨삭데이(Vesak Day)’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웨삭데이가 유엔에서 공식적인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의 날로 확정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처럼 성스러런 날(Holy day, 聖日)로 전세계에 공표되었는데 그때가 1999년이라 한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웨삭데이

 

이 기사를 읽고 1999년 당시 유엔의 문서를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 검색결과 근거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pdf형식으로 되어 있는 문서는 유엔의 General Assembly에서 발간한 자료로서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United Nations A/54/235

General Assembly Distr.: General

12 November 1999

Original: English

Fifty-fourth session

 

Request for inclusion of an additional item in the agenda of the

fifty-fourth session

 

International recognition of the Day of Vesak

 

Letter dated 28 October 1999 from the representatives of Bangladesh,

Bhutan, Cambodia, India, the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Maldives, Mongolia, Myanmar, Nepal, Pakistan, the Philippines,

Republic of Korea, Spain, Sri Lanka, Thailand and Ukraine to the

United Nations addressed to the President of the General Assembly

 

출처: http://www.un.org/ga/54/agenda/a235.pdf

 

a235.pdf

 

 

1999년 유엔의 일반의회(General Assembly) 54번째 회기에서 공표된 내용으로서 웨삭데이를 국제적으로 공인(International recognition of the Day of Vesak)한다는 유엔의 문서이다. 그런데 이 문서를 보면 이 안건을 제기한 불교국가명과 대표자의 명단이 보인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인디아, 라오스, 몰다이브, 몽고,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코리아, 스페인, 스리랑카, 타일랜드, 우크라이나 이렇게 16국으로 되어 있다. 남방불교를 대표하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이 모두 들어 가 있고 대부분 남방불교국가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 불교권인 중국과 일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특이 하게도 한국이 보인다. 문서에는 Permanent Representative of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명칭으로 되어 있고 대표자는 Lee See-young으로 되어 있다.

 

북한이라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이고, 남한이라면 Republic of Korea (ROK)인데, Permanent Representative of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명칭이 매우 생소하다. 그리고 대표자가 이시영(Lee See-young)으로 되어 있는데, 검색을 해도 알 수 없다.

 

반기문 총장의 연설에서

 

이렇게 16국이 모여 웨삭데이를 유엔웨삭데이라 하여 1999년 이후 매년 국제적인 행사로 개최해 오고 있는데, 남방불교국가에서는 이를 웨삭데이가 공인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로서 11번째 맞는 유엔웨삭데이에 대한 홈페이지(http://www.unvesak.org/ )가 별도로 개설되어 있는데, 작년 2011년 유엔웨삭데이에서 반기문 총장은 다음과 같이 연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Following is UN Secretary-General Ban Ki-moon’s message for the Day of Vesak:

The Lord Buddha, whose birth, enlightenment and passing we mark each year on Vesak Day, bequeathed to humanity profound teachings that can guide our efforts to resolve the severe problems facing today’s world.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Secretary-General, in Message for Vesak Day, Urges Solidarity with People Suffering Needlessly Worldwide by Applying Universal Values of Buddhism, 2011- May6)

 

 

반총장은 웨삭데이가 부처님의 탄생(birth) 과 성도(enlightenment)와 열반 (passing)인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유엔웨삭데이가 해가 갈수록 전 불교도들에게 공식화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명칭도 이제 ‘UN Day Vesak’으로 정착되는 듯 하다. 그런 예로서 유튜브 동영상에 올려진 제목을 보면 이를 실감나게 한다. 그런 것 중의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Tibetan song 1 UN Day Vesak 2011 @ Sydney Town Hall

 

 

 

이 동영상의 제목은 Tibetan song 1 UN Day Vesak 2011 @ Sydney Town Hall인데, ‘UN Day Vesak 2011’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의 경우 ‘UN Day Vesak 2012’라 할 것이다. 

 

이런식으로 웨삭행사가 공식화 된다면 전세계의 불교행사는 웨삭일로 통합될 지 모른다. 그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테라와다 불교전통을 주류불교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나라에서는 남방불교를 소승불교라하여 폄하하고 있지만, 동국대학술원장인 버스웰 교수는 불교tv사이트 강의에서 남방테라와다불교에 대하여 주류불교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인정하든 하지않든 테라와다불교는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계승한 불교로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남방테라와다 불교가 주류불교라는 것에 대하여 우리나라 불자들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하다. 그래서 선불교나 정토불교가 주류이지 어째서 남방불교가 주류냐고 발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전세계적 흐름을 보았을 때 테라와다불교가 주류임에 틀림없다. 그 증거로서 지난 1999년에 채택된 유엔웨삭데이가 대표적일 것이다.

 

혜민스님의 글에서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은 날이 동아시아의 대승불교의 전통과 동남아시아의 테라와다불교의 전통이 서로 다르듯이 깨달음에 대한 내용 또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선방에서 안거 기간동안 정진하는 스님들의 깨달음에 대한 것과 부처님이 깨달음은 것에 대한 내용이 다른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동안거 기간동안 정진하는 스님들이 성도절을 앞두고 일주일간 철야하며 용맹정진을 한다고 한다. 이는 부처님이 깨달았던 그 날을 기념하고 부처님처럼 반드시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본다. 그런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좋은 예가 혜민스님이 남긴 글일 것이다.

 

혜민스님은 불자들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리차드 기어가 방문하였을 때 통역도 하고 공중파 방송에 출연도 하였기 때문이다.

 

미국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한 스님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깨달음에 대한 글을 올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깨닫고 싶으면 봐라

 

 

진짜로 쉽게 직방으로 가르쳐 주겠다.

이것도 인연이니까.

 

하지만 한가지만 약속하자.

깨달음은 나를 위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생명들을 위한 것이라고.

결코 남을 위하는 보리심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으면 아래글을 보고

아니면 여기서 접어라.

 

*         *         *

 

그대가 깨닫고 싶은 것은 바로

그대의 본성이라고 하는

마음바탕이다.

 

마음바탕에서 생각이 올라왔다 사라지고

마음바탕에서 소리가 나왔다 사라지고

마음바탕이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다.

그놈이 바로 주인공이고 진안(眞我)고 성품이다.

 

부모에게 몸받기 전에 내 진짜 모습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가 돌아가는 낙처(落處)

이뭐꼬에서 가 바로 그거다.

그것이 바로 그 마음바탕이다.

 

그러면 이 마음바탕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생각이 모두 끊어지면 비교적

쉽게 그 마음바탕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 내용속으로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다 갑자기 영화 필름 돌아가는 것이 끊기면

하얀 스크린이 보이고 그후 스크린을 보고 있는

내가 인지된다. 않그런가?

영화가 멈춰버렸으니 갑자기 할일이 없어지니

영화를 보던 자가 인식이 된다.

아 나 지금 영화를 보고 있었지하고

 

이처럼 생각은 영화와도 같다.

생각이 있는한 생각에 끄달려가기 때문에

(마치 보는 놈을 잊고 영화이야기에 끄달려가기 때문에)

그 생각을 일으키는 근본 마음자리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생각을 잠시 끊어 버리면

마음이 하얀 스크린처럼 텅 비어 버리기 때문에

그 순간 그 텅빈 것을 보는 놈이 뭔지만 확인하면 끝난다.

 

그런데 생각을 다 끊는 거 좀 어렵다.

이거 어렵다는 거 나 인정한다.

이거하려고 수행자들이 화두잡고 평생 용쓰는 거다.

그러면 좀 더 지름길을 알려주마.

평생 용쓰지 않아도 되는 지름길을 알려주마.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순간순간 생각이 없는 때가 있다.

사람이 생각을 24시간 쭉 하지 못한다.

이러면 과부하걸려 피곤해서 죽어 버릴 것이다.

 

잘 들여다 봐라.

생각이 멸하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 직전.

그 상황에서 생각이 없는 상태다.

그때 자세히 봐라.

생각이 없다는 거

생각이 없는데도 무언가가 알아챈다.

지금 생각이 없다고

생각이 다 인줄 알았는데, 어라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도 또 뭐가(알아채는 놈) 하나 더 있다.

알아채는 놈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전부터 있었던 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숨죽이고 살펴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그 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알아채는 그 놈이 도대체 어디에 위치하나?

이 두가지 답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진짜다. 쉽게 가르쳐 준다고 우습게 보지 마라.

정말 그렇다.

 

하지만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지금 생각이 없다라고

/생각이 떠 오르면 아~ 지금 그 말/생각이 떠올랐구나 하고 또 알아채라.

그리고 그 알아챈 놈이 무엇인지 위와 같은 방식으로 확인해라.

알아채는  그 무엇이 도대체 어디에 위치하고 있지?

이 두가지 답만 찾아라. 찾으면 너가 바로 부처를 본것이다! 진짜다.

 

그런데 이거 하기 힘들다고 너는 투덜거린다.

좋다. 쪼매 힘든거 나도 인정한다.

(이거 완전 직방인데 못한다니 진짜 아쉽다~)

그래서 한가지 더 가르쳐 줄 테니

제발 잘 들으시길.

 

생각이 멸하고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전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생각이 마음의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지 봐라.

도대체 생각이 마음의 어느 구멍으로 사라지는지 봐라.

나오는 구멍과 사라지는 구멍은 같다.

생각이 나오는 마음 구멍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라.

그 구멍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봐라.

마음이 아주 조용할 때 자세히 들여다 봐라.

아주 섬세히 관찰해라.

이건 좀 쉽지 않은가?

 

이것도 못하겠으면 좀 아쉽지만

일단 그럼 남들 주로 하는 위빠사나 화두를 잡아라.

위빠사나를 해서 생각, 느낌, 감각들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보면

일체가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다 물어라 스스로에게.

지금 무상한 것을 보고 있는  이 놈은 뭐냐고.

보는 이 놈은 어떻게 생겼냐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냐고.

마치 포크로 과일을 찍어서 먹을 때 다양한 과일에만 신경쓰지 말고

과일(생각, 느낌)찍는 것을 가능케하는 포크(보는자)를 알려고 하는거다.

 

화두 들면서 물어봐라.

화두 의심을 일으키려고 용을 쓰는데 의심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잘 나지 않는다 라고 알아채는 그 놈이 뭔가? 뭐가 알아채나?

그 놈이 어떻게 생겼나? 알아채는 놈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의심에서 의정, 타성일편, 위단으로 전이되어 은산철벽이 타파되면 더 좋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똑같이 확인해야 된다.

 

뭐가 텅빈 것을 알지?

왜냐면 그 앎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말듣고 마음바탕을 깨달으면

쪽지로 깨달았다고 이실직고하고

나 한테 저녁 한끼 멋있게 쏴라.

나 너를 안고 춤을 한판 추리라.

 

우리 원래 고향, 본향(本鄕)에서 만나자.

파이팅!

 

 

 

(혜민스님)

http://blog.naver.com/monkhaemin/120148443644

 

  깨닫고 싶으면 봐라-혜민스님.docx  깨닫고 싶으면 봐라-혜민스님.pdf

 

 

 

스님은 깨달음에 대하여 본성, 마음바탕을 아는 것이라 하였다. 그것을 주인공이라고도 하고 진아라고도 한다. 이것이 선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일 것이다.

 

이뭐꼬 하는 이놈은 이뭐꼬

 

스님들이 성도절을 앞두고 일주일간 용맹정진하는 것도 바로 참나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화두를 드는데 대펴적인 것이 이뭐꼬라 한다.

 

 한자어로 시심마(是甚麽)라하는 이뭐꼬는 인생의 모든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서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이다.

 

그런데 이뭐꼬 하는 것은 6조 혜능대사가 설법한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앞도 없고 뒤도 없다. 밝기로는 태양보다 밝고 어둡기로는 칠흑보다 더하니 대중은 이것을 알겠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언제어디서나 이뭐꼬, 이뭐꼬..” 하는데, 심지어 이뭐꼬 하는 이놈은 이뭐꼬한다고 한다.

 

연기의 실상을 깨닫고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은 조사스님이 깨달은 내용과 다르다. 초기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하여 다음과 표현되어 있다.

 

 

깨달음을 얻다:  연기의 실상을 관찰하다

 

고따마 싯닫타는 음식을 먹어 몸의 기운을 회복하고 마음도 맑아져 깨달음의 결심을 굳히고 푸른 나무숲이 울창한[ 우루웰라] 숲 속의 보리수나무 아래 앉았다. 고따마 싯닫타는 스스로에게 깨달음의 서원을 말하였다. '깨달음의 목표를 이룸이 없이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라고 다부진 결심을 하였다. 그는 단호한 결단력과 고요한 성전에 의하여 온갖 마라의 유혹에도 전혀 동하지 않았다.

 

성자는 깊은 선정에 들어 윤회에 헤매는 중생들을 생각하니 그의 마음속에서 크나큰 자비심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청정한 혜안으로 우주의 실상을 꿰뚫어 관찰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리고 끊임없는 윤회에헤매니 다만 괴로울 뿐이다. 사람의 시야는 욕망과 착각의 어두움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생각한 후 고따마 싯닫타는 우주의 실상을 자세하게 관찰하였다.'

 

 -늙음과 죽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진리를 온전히 꿰뚫어 사유한 후에 그것은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면 태어남은 어디서 오는가? 업의 결과인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원인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러면 존재는 어디서 오는가? 집착에서 온다.

 -그러면 집착은 어디서 오는가? 갈애에서 온다.

 -그러면 갈애는 어디서 오는가? 느낌에서 온다.

 -그러면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 접촉에서 온다.

 -그러면 접촉은 어디서 오는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온다.

 -그러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어디서 오는가? 이름과 모양에서 온다.

 -그러면 이름과 모양은 어디서 오는가? 의식작용에서 온다.

 -그러면 의식작용은 어디서 오는가? 형성에서 온다.

 -그러면 형성은 어디서 오는가? 어리석음에서 온다.

 -그러면 어리석음은 모든 것의 원인이 된다.

 

이어서 이런 진리를 거꾸로 관찰하였다.

 

 -어리석음에서 형성이 생긴다.

 -형성에서 의식이 생긴다.

 -의식에서 이름과 모양이 생기며

 -이름과 모양에서 여섯 감각기관이 생기며

 -여섯 감각기관에서 접촉이 생기며

 -접촉에서 느낌이 생기며

 -느낌에서 갈애가 생기며

 -갈애에서 집착이 생기며

 -집착에서 존재가 생기며

 -존재에서 태어남이 생기며

 -태어남에서 늙고 죽음이 생긴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것이 소멸하는가를 관찰하였다:

 

 -태어남이 없으면 늙음과 죽음이 없다.

 -존재가 없으면 태어남이 없다.

 -집착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갈애가 없으면 집착이 없다.

 -느낌이 없으면 갈애가 없다.

 -접촉이 없으면 느낌이 없다.

 -여섯 감각기관이 없으면 접촉이 없다.

 -이름과 모양이 없으면 여섯 감각기관이 없다.

 -의식작용이 없으면 이름과 모양이 없다.

 -형성이 없으면 의식작용이 없다.

 -어리석음이 없으면 형성이 없다.

 -어리석음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

 

고따마 싯닫타는 이와 같이 최상의 지혜와 통찰력으로 우주의 실상을 관찰하였다. 그는 알아야 할 것을 마땀히 깨달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붓다로서 우뚝 섰다. 그는 어디에서도 영원한 아뜨만 [자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성자가 열망해온 목표에 신속히 도달케 된 팔정도의 최상의 통찰력으로 그의 마음은 고요함과 평온으로 가득 찼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서로 인연이 되어 생기고 저절로 생기지는 않으며, 인연에 의하여 사라지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존재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어느 것이고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는 무아이기 때문에 무상하게 인연에 의하여 생겼다가 잠깐 존재하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연기의 실상을 깨달았다. 우주만상은 고요에 잠겨있고 먼동이 틀 무렵 위대한 성인, 훌륭한 성인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드디어 고따마 싯닫타 수행자는 붓다, 즉 깨달은 성인이 되셨다.

 

이와 같이 연기의 실상을 깨달은 성인은 자비심으로 가득 차서 깨달은 사람, 붓다의 눈으로 중생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았다.

 

(율장 마하왁가 1 1,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내용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연기의 실상에 대한 것이다. 이를 연기법이라 한다. 이는 조사스님들이 말하는 한마음, 한물건, 주인공, 참나와 같은 궁극적실재와 다른 것이다.

 

미래의 불자들은 어떤 불교를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이 두 불교 전통사이에 다르듯이 깨다른 날 역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성도절은 우리나라 불교의 고유전통이다. 한국불교 1700년 역사의 유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화되는 정보화시대, 인터넷시대, 글로벌시대에 더 이상 전통만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불자들은 부처님당시의 불교를 계승하고 또 주류불교라고 불리우는 테라와다 불교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동아시아전통의 불교와 주류불교는 깨달음에 대한 기념일도 다르지만 깨달음에 대한 내용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미래의 불자들은 어떤 불교를 선택할까.

 

 

 

2012-01-01

진흙속의연꽃

 

깨닫고 싶으면 봐라-혜민스님.pdf
0.05MB
마성스님,유엔 웨삭데이 참관기-2006년.docx
1.38MB
마성스님,유엔 웨삭데이 참관기-2006년.pdf
0.37MB
a235.pdf
0.03MB
깨닫고 싶으면 봐라-혜민스님.docx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