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일묵스님의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를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8. 13:37

 

일묵스님의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를 보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불교TV사이트에서 법문을 들었다. 불교TV 무상사 일요초청법회이다. 법회에서 법사스님은 장문의 아름다운 꽃에 대한 게송을 약 7분여가량 읊었다. 그리고 난후 마치 기합주듯이 으아하고 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법문에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목마르면 물 마실 줄 알고, 기쁘면 하하하 웃을 줄 알고, 슬프면 엉엉 울 줄 아는 자, 이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것이 참다운 지혜요 참다운 복입니다. 목마르면 물마실 줄 아는 것이 또한 참다운 지혜요 참다운 복이요 기쁘면 하하 웃을 줄 아는 것이 참다운 지혜요 참다운 복이요 슬프면 엉엉우는 것이 참다운 지혜요 참다운 복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스스로 배우지 않아도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목마르면 물 마실줄 알고 기쁘면 하하 웃을 줄 알고 슬프면 엉엉 울줄 아는 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고 또 누구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49년동안 설법하신 법문입니다.”

 

(어느 선사, 불교TV 사이트, 불교TV 무상사 일요초청법회 264,2011-12-08)

 

 

스님은 법문에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 목마르면 마실줄 아는 것이 참다운 지혜라고 하였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부처님이 49년동안 설법 하신 법문이라 하였다.

 

자막에서 종정을 지낸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득도 하였고, 제방선원의 유명선사들과 법거량을 하였다고 소개된 스님은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슬프면 슬퍼하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길이고 참으로 행복한 길이라 말하면서 그것이 ‘자등명’이요 스스로 등불로 삼으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한다. 그리고 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 싫으면 떠날 줄 알고 유정무정이 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불성이라 그것이 진여고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정무정 불성이 안 가진 것이 없다 어느 곳이든 어느 때든 누구든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성이 딴 것이 아니라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아는 것이 불성인데, 이 불성이란 것이 어떻게 생겼는가 이것을 또 분명히 알아야 되고 짚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선사, 불교TV 사이트, 불교TV 무상사 일요초청법회 제264회,2011-12-08)

 

스님은 배 고프면 밥먹을 줄 아는 것이 불성이라 하였다. 이렇게 스님의 법문을 들어 보면 배고프면 먹을 줄 아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또한 불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TV 시청률은

 

불교TV의 시청률은 얼마나 될까. 인터넷검색으로 확인한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교TV, 시청률 '급상승'

 

"71개 채널 가운데 시청률 31위"


불교TV가 “시청률이 최근 크게 상승해 71개 케이블 TV 채널 가운데 31위를 차지했다”고 6월 29일 밝혔다.

시청률 조사업체 TNS 미디어 코리아가 전국 1435가구(케이블 1102가구)를 표본으로 6월 25일 02:00부터 6월 26일 02:00까지 실시한 시청률ㆍ점유율 조사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

개신교 종교채널인 CBS는 50위, 가톨릭 종교채널인 PBC-TV는 53위에 머물렀다. 불교TV의 시청자 점유율은 0.69%로 CBS의 0.3%, PBC-TV의 0.22%보다 높았으며, 시청률은 불교TV가 0.1%를 차지해 CBS의 0.04%와 PBC-TV의 0.03%보다 높았다.

케이블TV 시청률 순위에서도 불교TV 시청률은 MBN, YTN Star, 휴먼TV, 내셔널지오그래픽, ETN연예TV 등보다 앞섰으며, GS홈쇼핑, CJ홈쇼핑, 우리홈쇼핑 등 여타의 홈쇼핑 채널들보다 시청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TV는 공중파 방송3사를 포함한 전체 채널 순위 39위,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채널 순위 42위를 차지했다.


붓다뉴스

(2006년, http://blog.daum.net/bolee591/9176074)

 

 

2006년도에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게시물이다. 블로그를 만들고 난 후 열심히 불교관련 기사를 올렸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중요한 자료가 되어 있음을 확인 하는 순간이다.

 

2006년도 당시 불교TV 시청률은 0.1%라 한다. 이는 전체국민을 4,800만명으로 하였을 때 약 48,000명 정도이다. 이런 수치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겨진다. 이는 불교TV를 비롯한 종교채널이 케이블 시청료를 더 지불하고 볼 수 있는 단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불교TV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얼마 든지 불교TV를 시청할 수 있다. 로그인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원하는 법문이나 강좌를 어느 때 이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불교TV를 접하는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스님들의 법문이나 강좌로 채워져 있다. TV법회도 마찬가지이다.

 

회전문출연을 보며

 

불교 TV TV법회를 보면 100% 스님들의 법문이다. 그런데 스님들의 면면을 보면 매우 익숙한 법명들이다. 다른 프로에서 출연하였던 스님들이 또 출연하는 식이다. 그래서 법문이나 강좌를 자주 보다 보면 출연한 스님들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불교관련 매체에서 법문을 하거나 기고하거나 강좌를 하는 인사들이 약 200명 안팍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보던 스님을 또 보고 또 그 강좌를 듣곤 하는 것이다. 이런면으로 보았을 때 불교관련 매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약 200명 안팍이라고 볼 수 있다.

 

한정된 소수의 선사들이 출연하는 불교TV에서 법문이나 강좌를 들어 보면 항상 진아론적법문으로 귀결된다. 이는 한국불교가 직지인심견성성불을 추구하고 선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TV에 출연하여 법문을 하는 스님들의 이야기도 진아론적 법문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아론적 법문은 불자들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이는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법문

 

불자들은 현실을 떠나서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아니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나를 찾자는 진아론적 법문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설령 진아를 찾았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의 고통스런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지도 의문이다.

 

산중에서 세상을 등지고 도를 닦는 선사들에게 본마음, 참나를 찾는 것은 절박할지 모르지만, 갖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세상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현실이 아니에요” “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기 쉽다.  

 

또한  진아론적 법문중에는 배고프면 먹고하는 식의 엉뚱하고 생뚱맞아 보는 것도 있는데, 이런 법문은 자칫 막행막식하라는 의미로 잘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프면 먹고하는 식의 법문이  부처님이 49년동안 설법한 것이고 , 그것이 불성이라 하니 보통불자가 보았을 때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법문이다.

 

보석 같은 법문

 

하지만 불교TV에서 진아론적 법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물에 콩나듯 보석같은 법문이나 강좌도 종종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런 법문중의 하나가 일묵스님이 진행하였던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일 것이다.

 

일회성 법문이 아닌 연속강좌로 이루어진 법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17

제17회 중도와 화합과 소통(마지막회)  (59)

11-11-21

3309

16

제16회 범부와 성자   (52)

11-11-14

3757

15

제15회 내려놓음과 지혜   (24)

11-11-07

4340

14

제14회 내려놓음과 삼매   (69)

11-10-31

5334

13

제13회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23)

11-10-24

5171

12

제12회 생활속의 위빠시나   (63)

11-10-17

5699

11

제11회 자애명상과 부정관   (28)

11-10-10

4438

10

제10회 공덕과 지혜   (50)

11-10-03

5047

9

제9회 바로알고 내려놓기   (31)

11-09-26

5790

8

제8회 윤회의 원인   (28)

11-09-19

6545

7

제7회 느낌과 인식   (30)

11-09-12

6146

6

제6회 알아차림과 지혜   (28)

11-09-05

7039

5

제5회 5장애요소와 무명   (21)

11-08-29

6762

4

제4회 마음의 두 얼굴   (34)

11-08-22

9104

3

제3회 오온  (39)

11-08-15

8827

2

제2회 팔정도란 무엇인가?   (51)

11-08-08

10520

1

제1회 <감각적 욕망>에 대해   (72)

11-07-25

15193

 

(출처: 불교TV사이트,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

 

 

제목을 보면 초기불교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현실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소멸하는 방법에 대한 법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 법문을 들어보면 어느 한 구절, 어느 한 마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 법문이다. MP3로 다운 받을 수 있다면 차에서나 전철에서 마치 노래 듣듯이 계속 듣고 싶은 법문이다.

 

일묵스님의 법문은 철저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다. 선사들의 진아론적 법문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또는 신변이야기위주로 법문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이 설한 사성제, 십이연기, 팔정도 등의  법문을 위주로 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교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행에 대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 삿다(saddha, )’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 힘들다. 불자들이 법문을 듣는다고 하여도 선사들의 진아론적인 법문에 대한 것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때 인터넷으로나마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접하였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현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이것이 고통이다라고 하여 생노병사우비고뇌를 설하였을 때 어느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방법이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하였을 때 아니에요, 그것은 현실이아니에요,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에요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자신의 현실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 부처님의 가르침이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비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적 믿음’, 빠알리어로 삿다(saddha, )’라 한다. 따라서 삿다는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을 말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 이를 실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맛보려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적 수행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불자들이 생활하면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강좌를 하였는데 그것이 제13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라 볼 수 있다.

 

단 한평의 공간에서도

 

수행은 출가수행자의 전유물일까.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이 화두를 드는 간화선만이 수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재가자들은 수행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일묵스님의 법문에 따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수행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단 한평의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수행인데, 강좌에서 호흡법과 경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수행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검색결과 스님의 제13회 강좌에 대한 녹취록을 입수할 수 있었다. 40분 분량의 법문에 대하여 토씨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녹취자료이다. 이는 그 만한 가치가 있어서 일것이다.

 

재가자도 삼매수행을 할 수 있다

 

재가자들이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위빠사나이다. 이는 살아가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자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순간 계는 자동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처럼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은 마음이 오염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불자들도 삼매수행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삼매수행은 선사들이 화두를 들어 수행하는 간화선이 아니다. 생활속에서 실현가능한 호흡법에 대한 것이다. 그런 호흡법 수행은 부처님이 제시한 가장 보편적 수행방법이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아 사용하는 방식이라 한다. 그런 호흡법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들숨 나숨, 우리가 숨이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해서, 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삼매를 계발하고, 그로인해서 다섯 가지 장애요소를 극복하는, 이런 수행법이 있는데요, 그 경전에 기록에 의하면요. 부처님께서도 이 들숨날숨에 대한 호흡법을 통해서 색계사선정 들어갑니다.

 

색계사선정이라고 하는 선정에 들어가고, 그 선정에 나온 다음에, 선정에 들어갔다 나오시고 나서, 숙명통을 얻고, 그리고 또 조금 있다 천안통을 얻고, 그리고 마지막 새벽녘에 누진통이라고 하는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신통, 그 누진통을 얻으므로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시게 되는 돼요.

 

(일묵스님, 제13회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불교tv사이트, 2011-10-24)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일묵스님.docx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일묵스님.pdf

 

 

호흡법은 들숨날숨에 대한 것이다.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서 오장애를 극복하고  사선정에도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이 호흡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완전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호흡법을 빠알리로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라 한다.

 

이 아나빠나사띠를 통하여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나빠나사띠(Anapanasati)수행이란

 

아나빠나사띠수행이란 어떤 것일까. 위빠사나 수행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 대상을 호흡에 두기 때문에 위빠사나의 요소가 있는 것이고, 호흡을 통하여 삼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마타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아나빠나사띠 수행이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 모두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삼매에 들기 위해서 호흡법이 사용되는데,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우리마음이 일반적으로 달리고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 있는데요. 이 삼매 수행을 통해서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거기 때문에, 이거는 어떤 하나의 대상을 정합니다.

 

하나의 대상을 정해서 그 대상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거죠. 다른 생각은 다 내려 놔야 됩니다.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숨이라고 하는 하나의 대상만 정하는 거죠. 그 하나의 대상만 정해서 다른 것은 다 놓는 거죠.

 

다른 대상에 대해서 가는 마음은 다 놓아 버리고, 오직 이 숨이라고 하는 여기에만 내 마음이 머물도록, 그렇게 애를 쓰는 것이 바로 이 호흡법수행의 기본적인 겁니다.

 

(일묵스님, 제13회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불교tv사이트, 2011-10-24)

 

 

위빠사나수행에서는 자극이 강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보통이다. 좌선시 다리가 저려서 아프면 그 아픈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극이 강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현상이 무상함을 보는 것이다.

 

밥과 반찬의 비유

 

그런데 아나빠나사띠의 경우 오로지 호흡만 보는 것이다. 그런 호흡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 또한 무상함을 보는 것이다. 그런 호흡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상의 밥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자극은 어쩌다 한번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밥상의 반찬과 같은 것으로 본다. 또 그런 자극은 마치 손님과도 같은 것으로 본다.

 

손님이 오면 쫓아 버리지 않고 마중 하듯이 자극이 오면 마중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따라서 몸, 느낌, 마음, 법등 강한 자극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이 사념처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호흡은 늘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극이 없을 때 호흡을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나빠나사띠의 경우 처음부터 호흡을 보는 것이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이렇게 호흡이 들고 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오로지 마음이 호흡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번뇌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굉장히 즐거워진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러분들이 진짜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하고 이렇게 같이 있으면 그 시간이 즐거워요? 괴로워요? 그 시간은 시간가는 줄 모르죠? 한 시간이 가는지, 두 시간이 가는지 저는 모른단 말이에요.

 

호흡하고 있는 그것도 처음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자꾸 움직이려고 하니까. 그런데 이 호흡하고 있으면서, 거기서 오는 이 호흡을 알아차림 하면서 다른 번뇌들이 놔진단 말이에요.

 

다른 번뇌 들이 놓아지면서, 이 내려놓으므로써 오는 행복이 점점점점 커지면 이 호흡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 집니다. 그러면은 딴 데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지겠죠. 그러면서 여기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런 상태를 삼매라고 하기 때문에, 결국은 행복한 마음이 삼매에 들 수가 있습니다.

 

(일묵스님, 제13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불교tv사이트, 2011-10-24)

 

 

호흡을 관찰함으로 인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대하여 애인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애인과 함께 있으면 행복에 겨워 시간 가는 줄 모르듯이 마찬가지로 호흡에 집중하고 있으면 무척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행복은 세속에서 행복과 차원과 다른 것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고의 행복이라 한다.

 

평좌(平座)하는 방법

 

그렇다면 호흡법수행을 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와 자세를 취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가장 좋은 것이 좌선이라 한다. 좌선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평좌(平座)’가 좋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평좌 방법은 반가부좌와 비슷하지만 오른쪽 발을 왼발 위에 올려 놓지 않고 바닥에 놓는 것을 말한다. 발이 포개져 있지 않고 두발 모두 바닥에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상태에서 두 발을 바싹 당기면 삼각대가 형성 되어 안정화 된다. 그러나 자기가 앉아보고 가장 편한 자세가 좋은 것이라 한다. 다음으로 좌선이 시선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보면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하시던 수행법을 내가 이 자리에서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면 굉장히 신심을 가지고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긴장을 풀고, 보통 우리나라에선 수행할 때 화두 수행을 하고 이럴 때 눈을 뜨라고 하는데, 그거는 수행하는 방법이 좀 틀리기 때문에요,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아나빠나사띠를 할 때는 눈을 감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눈을 지긋이 감고, 거기서 숨이 여러분들이 지금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한번 해보세요.

 

(일묵스님, 제13회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불교tv사이트, 2011-10-24)

 

 

평좌 또는 평가부좌 방법은 반가부좌와 비슷하지만 오른쪽 발을 왼발 위에 올려 놓지 않고 바닥에 놓는 것을 말한다. 발이 포개져 있지 않고 두발 모두 바닥에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상태에서 두 발을 바싹 당기면 삼각대가 형성 되어 안정화 된다.

 

그러나 좌선 방법은 자신이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리가 문제 있는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것도 무방한 것으로 본다.

 

눈을 감으라고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눈을 반개하라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수행법에서는 눈을 감으라고 한다. 왜 눈을 감으라고 할까. 이는 눈을 떴을 때 감각대상과 마주치게 되면 안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을 감음으로서 안식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는 눈만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좌선장소가 고요한 곳에 위치 하고 있는 이유가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다섯가지 감각대상과 부딪쳤을 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고요한 곳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오로지 마노(mano, )만 남게 된다. ‘안이비설신의에서 의()를 말한다. 이때 마노는  눈이나 귀처럼 감각기관으로 보는 것이 초기불교적 관점이다.

 

이처럼 감각기관으로서의 마노는 감각대상으로서의 생각과 부딪치게 되면 마음이 일어나 번뇌에 싸이게 되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 강한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아나빠나사띠에서는 처음부터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선시 고요한 곳에서 눈을 감고 호흡을 관찰하면 다섯가지 장애라 불리우는 오장애로부터 해방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오장애는 다음과 같다.

 

 

감각적 욕망(kāmāchanda)

악의(vyāpāda)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 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⑤ 회의적 의심(vicikichā)

 

 

 

사진: ANAPANASATI MEDITATION

 

어떻게 호흡하는가

 

다음으로 호흡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것을 한번 관찰을 해 보시면, 그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이 느껴지시죠? 그죠?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그것을 느끼는 그 경험되는 그 부분 있잖아요? 그 경험 되는 그 자체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다른 거는 일체 생각을 하지 말고, 이 현재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그 있는 거 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만 알아차림을 하면 되는 겁니다.

(일묵스님, 제13회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 불교tv사이트, 2011-10-24)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유지되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장애가 극복되는 것으로 본다.

 

 

유명하다고 하여

 

베스트셀러라고 하여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유명하다고 하여 모두 훌륭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비록 유명하지는 않지만 주변을 둘러 보면 훌륭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면에 있어서 불교TV에서 본 일묵스님의 법문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언제 또 다시 들어도 되새기고 싶은 내용들이다. 이런 법문을 MP3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할 수는 없을까. 나꼼수의 팟케스트처럼 누구나 다운다운 받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일묵스님의 법문은 기가 막힌 법문이다.

 

 

2012-01-08

진흙속의연꽃

 

붓다의 호흡법과 경행수행-일묵스님.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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