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해, 스님과 재가불자의 댓글 논쟁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9. 20:51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해, 스님과 재가불자의 댓글 논쟁을 보며

 

 

 

 

스님과 재가불자의 댓글 논쟁

 

댓글논쟁을 보았다. 스님과 재가불자의 댓글 논쟁이다. 그 중에 스님이 작성한 글을 읽어 보니 한국불교가 처한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비록 댓글에 지나지 않지만 논문이나 기고문 등 공식적인 글에서 볼 수 없는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런 댓글은 서광스님의 글이다. 불교닷컴에 등재 되어 있는 서광스님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초기불교에 대한 냉소적 시각

 

 

우문우답....

 

한국제일의,
재벌회장인 이병철과 한국가톨릭 제일의 이론가인 차동엽신부의 질문과 답변은..글자그대로 우문에 우답이다
.
평소에 논어를 즐겨 읽었다고 하여 그에 어울리는 질문을 하였으리라고 먼저 생각한 나의 선입견이 한참을 잘못되었다
.
이리도...맹한지는 미처 몰랐다
.

또한 그에 답하는 차신부의 답변은..역시나 맹탕이다
.
당체...언급하기조차 민망하다
.

그리고
..
이에 나름대로 답하신 허정스님은...이들에 맞추어 일부러 격을 낮추신것 같다
.
그들에 맞추어..초기불교급의 차원에서..마치 초등생에게 답하듯 하신 것 같다
.
그들에게는 초기불교급으로도 충분하다고 본것 같다
.
그들에게..중관이나 유식..나아가.천태와 화엄으로 답한다는 것은 애초 어불성설이라고 보신 것 같다
.
이런터에..언감생심..선불교이겠는가
...

그러나
..
행여..이것이 허정스님..종단의 불학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의 전부라면 곤란하다....

(서광스님)

 

 

이글은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의 새로 취임한 허정스님(필명 후박나무)이 불교닷컴에 기고한 글에 대한 것이다. 이병철회장의 영적질문 24가지에 대한 불교측의 답변형식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이 글에 대한 댓글에서 서광스님은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초기불교적 답변에 대한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니까야만 맹신하는 자들은 외눈쟁이라고

 

 

니까야와 아가마에 대한 이해....

 

아래에서 보면,
경전형성과정의 초보적 지식마저 결여된 글이 보인다
.
그결과 니까야에 대한 맹목적인 맹신이 드러난다
.

십사문제로 인한 근본분열이후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되었다
.
이때에 상좌부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 2차결집이다
.
그후 다시 2차분열이 연이어 일어나고...마침내는 상좌부12부파,대중부 8개부파가 나타났다
.
도합 20개부파에서 다시 무수한 분파가 일어났다
.
이중...상좌부에서는 설일체유부가 갈라지고.그 설일체유부에서 다른 부파가 생겨났다
.

이러한 20여개부파는 각자 자기부파 나름대로의 경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
이중..상좌부가 만든 것이 니까야이고,설일체유부가 만든것이 아가마이다
.
그런즉..상좌부계통이 아닌 대중부에도 그들 나름의 경전이 있엇다
.

이렇게 각 부파의 수많은 경전이 있었음에도
...
유독..상좌부의 니까야와 설일체유부의 아가마만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
스리랑카에 전해진 상좌부중의 분별설파가 니까야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
또한 북인도에서 번성한 설일체유부는 아가마를 사용하였는데..이것이 나가세나왕을 거치면서 지위를 굳혔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
지금 우리가 접하는 초기 잔존경전인....상좌부계통의 상좌부 분별설파의 니까야와 설일체유부의 아가마만이 300년 넘게 구전되어온 부처님 말씀의 전부라고는 볼수가 없다
.
이들은 부처님 말씀의 일면을 전한 것일 뿐이다
.
그것도 대중부에 의하여 배척된 상좌부계통의 것이다
.

그러므로
...
고단한 불교사의 전체를 보고...균형적인 눈을 가지도록 하자
.
외눈에 짝눈을 가지고..부처님을 모두 본것처럼 하지 말자.

 

(서광스님)

 

 

이글은 니까야의 맹신에 대하여 비판한 글이다. 그런 니까야는 20여개 부파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경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니까야에 실려 있는 내용이 부처님 말씀의 전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니까야만 맹신하는 자들은 외눈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친설과 불설

 

친설과 불설, 불설과 비불설에 대한 논쟁은 매우 뜨겁다. 이런 논쟁에 대한 글이나 기사, 논문은 수도 없이 발표 되었다. 또 부파불교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초기경전 즉 니까야가 부처님의 친설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초기경전이 친설이라면, 대승경전은 불설이 될 것이다. 대승에서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부처의 말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 많은 경전이 찬술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친설은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다. 그런 가르침의 전승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 자들도 있을 수 있으나 여러자료에 따르면 제1차결집과 2차결집을 거쳐 3차결집으로 공인된 것이 니까야라 한다. 또 니까야의 경우 원형의 훼손없이 전승가능하다는 것이고 더구나 무상, , 무아, 연기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면 친설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서광스님은 현재의 니까야가 잔존 부파의 경전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는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다.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

 

대승불교에서는 동남아 불교 즉, 테라와다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폄하한다. 이는 대승경전에 그렇게 쓰여 있고, 실제로 선사들의 법문에 소승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기도 한다.

 

또 하나의 사실을 든 다면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에 대하여 원시불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원시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덜 성숙된 불교, 미완성의 불교라는 뉘앙스가 매우 강하다. 이는 모두 대승의 교리가 더 수승하다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에만 바라보는 시각일 뿐 전세계적으로 테라와다불교는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라고 말하고, 원시불교는 초기불교(Early Buddhism)라고 칭한다.

 

그런데 초기불교에 대하여 주류불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Mainstream Buddhism"

a term used by some scholars for the early Buddhist schools.

(Schools of Buddhism, 영문위키피디아)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불교학파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메인스트림부디즘에 대한 것이다. 일부 학자는 초기불교학파(the early Buddhist schools)에 대하여 주류불교(Mainstream Buddhism)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불교학파가 주류불교라면 그 맥을 잇고 있는 테라와다불교 역시 주류불교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국대학술원장인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불교tv강의에서 테라와다 불교에 대하여 주류불교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 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학파는 어떤 것일까.

 

북전에서 본 부파불교 계보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실려 있는 초기불교학파에 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초기학파(Early schools)

·         Sthaviravāda(상좌부)

o    Pudgalavāda ('Personalist') (c. 280 BCE)

o    Sarvāstivāda-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Vibhajjavāda (prior to 240 BCE; during Aśoka)- 독자부(犢子部)

§  Theravāda (c. 240 BCE) 테라와다

§  Theravāda subschools (see below)

§  Mahīśāsaka (after 232 BCE)

§  Dharmaguptaka (after 232 BCE)

§  Kāśyapīya (after 232 BCE)

§  Vatsīputrīya (under Aśoka) later name: Samitīya

§  Dharmottarīya

§  Bhadrayānīya

§  Sannāgarika

§  Mūlasarvāstivāda (third and fourth centuries)

§  Sautrāntika (between 50 BCE and c. 100 CE)

·         Mahāsaghika ('Majority', c. 380 BCE) –(대중부)

o    Ekavyahārikas (under Aśoka)

§  Lokottaravāda

o    Golulika (during Aśoka)

§  Bahuśrutīya (late third century BCE)

§  Prajñaptivāda (late third century BCE)

§  Cetiyavāda

o    Caitika (mid-first century BCE)

§  Apara Śaila

§  Uttara Śaila

 

(Schools of Buddhism, 북전에서 본 계보, 영문위키피디아)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표시된 초기학파(Early schools 근본부파)를 보면 상좌부와 대중부로 크게 두 파로 나누어져 있다. 이후 19개로  지말 부파가 성립되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현재의 테라와다불교라 불리우는 테라와다부파가 설일체유부에 속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중부의 경우 BC380 년에 성립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남전 디빠왕사에서는 

 

이에 대하여 인도불교사(권오민교수역, 경서원)를 보니 두 가지 전승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분별설부전승(남전)이고, 또 하나는 설일체부전승(북전)이다. 위 영문위키피디아에 실려 있는 계보는 설일체부전승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분별설부 전승(남전)에서 어떻게 표기 되어 있을까.

 

인도불교사책에 따르면 위 계보와는 완전히 반대로 되어 있다. 테라와다에서 설일체유부가 갈라져 나온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라와다-타지부-설일체유부로 되어 있다.

 

이렇게 부파불교를 보는 시각이 북전과 남전이 서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특히 테라와다불교를 설일체유부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묘사한 북전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한국어판 위키피디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한편, 근본 분열의 발생 계기와 관련하여서는 북방불교의 자료와 남방불교의 자료 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현대의 학자들은 남방불교의 자료가 사실인 것으로 보고 있다.

(부파 불교,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근본분열과 관련하여 북전과 남전의 차이가 있는데, 남전의 자료를 더 신뢰한다는 말이다. 이는 스리랑카의 디빠왕사(도사(島史 · Dipavamsa)에 기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파불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디빠왕사에 따르면 근본분열이 일어난 원인이 2차 결집때문이라 한다. 2차 결집의 결정에서 불복한 비구들이 독자적인 결집을 열어 계율을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상좌부로부터 이탈하여 대중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2차 결집후에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 나뉘게 되어 근본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는 순전히 계율에 관한 문제로 갈린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3차 결집이 일어난 후 부파 분열은 이와 양상이 다르다. 계율에 대한 해석 뿐만 아니라 교리상의 견해, 지도자간의 대립, 지리적 조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마우리아 왕조 시대 아쇼카대왕의 3차 결집이후에 더욱 더 분열이 심화 되었는데, 이는 3차 결집으로 인하여 쫒겨난 비구들이 새로운 부파를 만든 것도 한 요인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부처님 당시부터 근본가르침을 고수해온 교단은 테라와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3차 결집이 끝난 후 아쇼카대왕은 테라와다(상좌부)불교를 공인하고 전세계에 전도사를 파견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스리랑카이다.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부처님 당시의 가르침이 원본의 훼손없이 현재까지 고스란히 전승될 수 있었는데, 이는 스리랑카라는 지리적 이점과 법을 지키려는 비구들의 노력에 대한 결과라 한다.

 

하지만 인도대륙에서는 3차 결집이후 쫒겨난 비구들이 모여서 다시 만든 것이 자신들의 만의 교리를 갖는 부파를 만들었는데 주로 대중부라 한다.

 

한편 상좌부에서도 여러가지 요인에 의하여 부파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설일체유부라 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1차결집에서부터 3차 결집에 이르기 까지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만을 믿고 따르는 테라와다불교가 주류임을 알 수 있다.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자

 

부파분열후 인도대륙에서는 대승으로 변형되고  밀교로 바뀌어 힌두이즘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고립된 섬나라인 스리랑카에서는 원형을 그대로 보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 대하여 청정도론의 역자 대림스님은 다음과 같이 해제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출가자들의 제일의 관심은 오직 법이었지 결코 중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생이니 인간이니 하는 것은 법이 아닌 개념(pannatti)일뿐이었다. 그들은 법을 배우고 연구하고(pariyatti, 교학) 그것을 내 삶에 적용시켜 도를 닦고(pariyatti, 도닦음) 그래서 무상. . 무아의 법의 실상(보편적 성질)을 꿰뚫고 통찰하여(pativedha)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일생을 다 바쳤다.

 

이처럼 법을 참구하며 평생을 바친 스님들이 부처님의 법을 참구하여 출가사문이 된 성스러운 과실(samannaphala, 沙門果)을 증득하고 불법이 오래 오래 이 세상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전승해온 가르침이 상좌부불교이고 아비담마이다.

 

그들은 소승이라든지 은둔불교라든지 아공법유라든지 부처님 가르침을 편협하게 이해하고 있다든지 하는 그들을 향한 어떠한 비난이나 도전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법을 올바르게 이해(빠리얏띠)하고 그것을자신에게 적용시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고 바른 도를 실천하여(빠때빳띠) 괴로움에서 벗어나(빠띠웨다) 부처님이 보이신 해탈열반을 직접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이런 출가 생활이 이웃이나 불교도 들에게 가장 큰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대림스님, 청정도론해제)

 

 

 

스리랑카비구

 

 

 

3차 결집후 일어난 부파불교와 대승운동이 대륙에서 일어나 불교가 변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에서는 3차 결집후 공인된 불교를 잘 보전함으로서 오늘날 니까야로 전승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륙에서 불교는 어떻게 변질되었을까.

 

3차 결집후 쫒겨난 비구들은

 

아쇼카대왕의 3차 결집후 쫒겨난 비구들은 일종의 이단들이다. 일아스님의 책 아소까에 따르면 이단들에 대하여 흰옷을 입혀 쫒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쫒겨간 비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날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면 수 많은 종단이 존재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생종단들이 주류측으로부터 외면당해 생겨난 것이라 한다. 또 재산상 문제 때문에 새로운 종단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이는 기성 주류종단으로부터 밀려 난다고 하여 속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던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관련 종파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3차 결집후 이단으로 판정받아 흰옷을 입고 쫒겨나간 비구들이 할일이 무엇이었을까. 불교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받아 주지 않는 주류불교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교단을 만든 것이 부파불교로 본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떤 이는 대승불교가 일어난 요인에 대하여 3차 결집후 쫒겨난 비구들이 주도 하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보이고 있다.

 

설일체유부를 제압하기 위하여

 

오늘날 대승불교에서는 남방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소승이라는 개념은 부파불교를 지칭한다. 근본 분열이후 20개에 달하는 지말부파를 말한다.

 

이런 부파 불교를 비판하고 성립된 것이 대승불교라고 볼 수 있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후로 본다.

 

이렇게 대승불교에서는 자신들을 스스로 대승이라고 칭하고, 부파불교를 소승이라고 칭하였는데 김종욱교수의 불교TV강의에 따르면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날 당시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부파가 상좌부계통의 설일체유부이었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대승불교는 세가 매우 미미하였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이 어떤 조직이든지 소수가 다수의 가장 큰 세력을 잡기 위해서는 헛점을 노린다고 한다. 김종욱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대승에서 설일체유부를 따라 잡기 위하여 교리를 발전시킨 것이 공사상이라 한다. 설일체유부의 법유사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논리를 전개한 것이 공사상이라는 것이다.

 

공사상이 출현하게된 배경

 

그런 공사상은 어떤 것일까. 김종욱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소수가 다수를 제압하려면

 

공사상은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상이다. 공사상을 가장 잘 표현 하고 있는 경전이 반야경인데 60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반야경을 축약하여 핵심만 모아 놓은 것이 ‘반야심경’이다. 이 반야심경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공()’이 될 것이다. 공은 빈것이다. 그래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공을 설명하려면 먼저 역사적내지 교리사적 접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불교교리의 가장 큰 특징은 무아와 연기라고 볼 수 있다. 무아가 없는 불교는 있을 수 없고 연기없는 불교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무아와 연기는 항상 같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무아와 연기의 해석방법을 놓고서 대승이 출현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부파불교시대에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부파는 설일체유부이었다. 이제 막 대승불교운동이 일어 날 시점에 대승불교의 세력은 보잘 것 없었다. 소수가 다수의 세력을 제압하려면 논리적 모순점을 찾아 내어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공사상도 설일체유부의 ‘법유’사상을 논박하기 위하여 개발된 논리라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은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 된다.

 

설일체유부의 주장

 

대승불교에 ‘아공법공’이라는 말이 있다. ()는 당연히 공한 것이고, 법 또한 공한 것이라고 해서 공사상의 핵심적인 논리를 말한다. 그런데 대승에서 소승을 공격할 때 자주 사용하는 논리중의 하나가 ‘아공법유’라는 것이다.

아공법공이나 아공법유나 공통점은 아는 공하다는 것이다. 이는 무아를 기본적 베이스로 깔고 가는 것이다. 만일 무아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모두 아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에 있어서 유부는 실유를 주장하고, 대승에서는 공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법을 이루고 있는 요소, 즉 자성(自性)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모든 현상은 생성되고 소멸된다. 상호의존하고 조건지워져 생성소멸하는데 있어서 어떤 ‘요소(element)’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 하는 것이 설일체유부의 사상이다. 그 요소를 75법으로 본 것이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사기에 들어 있는 필름통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75개의 필름이 있어야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스크린에 비친 영화의 내용은 무상하고 영화 또한 이 극장 저 극장 옮겨 다니며 볼 수 있지만 영화를 나오게 하는 필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상이 무상하고 무아라고 하더라도 오온이 존재 하듯이 기본적으로 75법이 실유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75법이 존재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일체유부’라 한다.

 

또한 실유한다는 것은 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바로 75법만이 독립적으로 계속하여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것이 부파불교시대에 최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설일체유부의 주장이다.

 

공사상이 출현한 배경

 

후발주자인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최대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유부의 주장을 깨뜨려야만 살아 남을 것이다. 그래서 유부를 공격하기 위하여 잡은 것이 ‘자성’에 관한 것이다. 특히 문제를 삼은 것은 75법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체가 있다는 것은 연기법과 모순된다는 것이 대승의 견해이다. 연기라는 것이 수 많은 조건들과 상호의존성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인데 자기만 떨어져 독립적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자성과 연기가 양립 할 수 없다는 것이 중관학파의 주장이다.

 

 

자성=실체성=연기-à인정(설일체유부)

자성=실체성=연기-à부정(대승불교)

 

 

자성에 실체가 있다면 연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나온 사상이 ‘공사상’이다. 연기라고 하는 것이 관계성을 말하는데 고립된 실체성이 있다면 자성같은 것은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무자성이라 주장한다. 즉 다음과 같은 논리이다.

 

연기=관계성=무자성=

 

무자성은 비운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공()이라 한다. 비운다는 것은 공의 의미인데그렇다면 무엇을 비운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성이 비워져 있다는 것이고, 자성이 비워져 있다는 이야기는 고립된 실체성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은 ‘연기적 관계성’에 대한 또 하나의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관학파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도식이 성립된다.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다”

 

결국 중관학파가 비판 하고자 하였던 것은 연기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이글은 불교 tv사이트에서 김종욱 교수의 공사상 강의에 대하여 녹취하여 정리 한 것이다. 블로그에 여려차례 올렸는데, 또 올렸으니 자기 표절한 셈이다.

 

대승불교가 소승불교를 공격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

 

이처럼 연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유부와 중관학파는 정 반대로 보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파

학설

 

설일체유부

아공법유

(我空法油)

비록연기하지만 요소들은 실재하고 자성은 있다

중관학파

아공법공

(我空法空)

바로 연기하므로 요소들은 실재하지 않고 자성은 없다

 

 

 

대승불교가 소승불교를 공격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아공법유’라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보았을 때 설일체유부와의 논쟁이었으나 지금도 남방 상좌불교를 폄하 할 때 사용하는 논법이 아공법유이다. 그러나 이는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와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는 설일체유부의 주장과 달리 법을 ‘찰나적’ 존재로 본다. 항상 실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고유의 성질을 갖는 ‘자상’과 일어나고 사라지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는 ‘공상’, 이렇게 두가지 큰 특징으로 본다. 따라서 초기불교와 테라와다 불교전통의 경우 아공법유가 아니라 ‘아공법공’이 된다.

  

재가자들이 삶의 바쁘기 때문에 어려운 공사상을 접하기 힘들지만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하면 어렴풋이나마 공에 대하여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행을 통하여 공의 체험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재가자들이 삶의 바쁘기 때문에 어려운 공사상을 접하기 힘들지만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하면 어렴풋이나마 공에 대하여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행을 통하여 공의 체험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성, 진아, 상락아정의 바탕은

 

이렇게 인도대륙에서 소수의 대승운동주의자들이 다수의 설일체유부의 법유사상을 공격하여 마침내 인도대륙에서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공사상의 논리는 더욱 더 개발되어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볼 수 있는 진아론적법문을 선사로부터 듣게 되었다.

 

이런 대승불교의 사상에 대하여 서광스님은 댓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기본적인 소양부터 쌓아야...

 

아래,
불자님의 글을 보고...한마디합니다
.

오는 3월부터 새로 조계종의 종정이 되실 진제스님이 법문에서 항상하시는 말씀이...불성.진아.상락아정입니다
.
이 말은...진제스님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종정이신 법전스님과 몇일전에 입적하신 지관스님도 항상하시던 말씀입니다
.

이 분들은...앞의 두분은 모두 종정이시고..지관스님은 선..율 삼장에 두루 통하여 당대최고의 학승이자,율사로 모든 종도들의 존경을르 받던 분들입니다
.
그러한 분들이 그와같이 말씀하실 때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

..불성이니,진아니,상락아정이니 하는 말의 바탕에는 중관의 공관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반야사상의 최고봉인 금강경인 까닭입니다
.
그러므로..이말들의 참뜻은..외도나 소승의 논사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견해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

그럼에도 아래의 불자님은
...
이것을 망각하고...무지한 일반론에서 설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
이것은...불교이해의 기본적인 소양이 의심스러운 것으로서..처음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지않습니다
.

그럼에도
..
굳이 이와같이 글을 올리는 것은..보기에 딱하여서입니다
.
바라건데..공부를 처음부터 다시하시라..

 

(서광스님)

 

 

 

불성이나 진여의 밑바탕에는 중관의 공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공관은 어떤 것일까.

 

공관이란 무엇인가

 

다시 김종욱 교수의 강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가시설(假施說)된 것, 쁘라즈냡띠(prajñapti)

 

중관학파의 주장대로 아()나 법이나 모두 공한 것이라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이 된다. 이 때 일체는 아나 법을 말하고, 개공은 유부의 75법 즉, 요소가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중관학파는 75법을 요소(element)로 보지 않고 단지 기능(function)으로 본다. 이처럼 요소가 아닌 기능을 보는 것은 오온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제법을 요소가 아닌 기능으로 보는 것은 수학의 함수(function)로 설명할 수 있다. , 제법이 x축과 y축의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된 점이 아니라 x축과 y축 사이의 관계에서만 한 점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래프가 그려지는 방식에 따라 거기에 맞추어 설명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고정된 요소(element)가 아니라 기능(function)으로 보는 것이다.

 

오온이나 75법 역시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중관학파의 입장이다. 이처럼 서양식의 기능에 걸맞는 개념이 중관학파의 ‘프라즈냡띠(prajñapti)’이다.

이 프라즈냡띠를 한자어로 표시하면 ‘가()’라 번역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가시설(假施說)’이다. 이때 가()는 가짜가 아니다. 잠정적이라는 것이다. 임시로 설치해 놓은 가건물 같은 것이다. 그 가건물은 가짜 건물이 아니라 잠정적으로 임시로 세워 놓은 건물을 말한다. 50층짜리 빌딩을 지을 때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 식당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일체가 다 공하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자신도 공한 것

 

일체가 모두 공하다는 이야기는 아든 법이든 모두 공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함수적 기능으로서 쁘라즈냡띠 즉, 가시설로서 잠정적으로 일시적으로 있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체가 모두 공한 것이라면 문자적으로 보아서도 그 모든 것안에는 공()도 포함되어야 한다. , ‘공자신도 공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我法空 空亦復空(아법공 공역부공)

모든 것이 공이고, 또 공이어서 모든 것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공 역시 공한 것이다.

 

아도 공하고, 법도 공하고, 공도 공한 것이다. 이렇게 계속 공으로 나가면 ‘허전’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비워 나간다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의 작용은 이렇게 진행 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마음의 작용에 촛점을 맞추면 ‘유식사상’으로 가게 된다.

 

공가중(空假中) 삼제(三諦)

 

공도 공한 것이라면 그 공이란 무엇인가. 그 때의 공은 쁘라즈냡띠(가시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은 공이 맞다. 실상은 연기 하므로 고정된 실체성이 비어 있는 공이 맞지만 그 실상에 대하여 잠정적으로 일시적으로 묘사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상은 가시설(쁘라즈냡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상이 공이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 하여 그 공을 ‘붙잡고’ 있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이다. 그런 이들을 ‘무기공’ 내지 ‘공병’에 걸린 것으로 본다.

 

공이라고 하는 것이 철저하게 부정의 방식인데 가시설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있긴 있다라는 긍정이다. 그렇다면 진짜 실상은 무엇일까. 중관학파에서는 진짜 실상은 ‘중도’ 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중도란 부정도 아니고 긍정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공과 가의 ‘중간 정도의 입장’이다.

이렇게 언어의 표현을 넘어선 궁극적 입장을 공(진제)이라 하고, 가시설된 방편의 입장을 가(속제)라 하고, 이 두가지 진리를 포괄하여 유무 양변을 떠나 중(중도)이라 한다. 이것이 중론(中論)이라고 명명한 요인이다. 이 공가중(空假中)을 중관학파에서는 ‘세가지 진리’라 하여 3제라 하는데 다 ‘대등한’ 입장으로 본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

진리

 

진제

언어의 표현을 넘어선 궁극의 입장

(施說)

속제

가시설된 방편의 입장

중도

진제와 속제를 포괄하여 성립

 

 

(김종욱굣수, 제25 하이데거 철학과 불교 - 공(),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불교tv 2008-04-07)

 

 

 

불교TV의 김종욱 교수의 강의에서 중관의 공관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 준다. 그런 공관은 나가르주나(용수)에 의하여 정리 공가중 3제로 정리 되었는데, 이사상의 핵심은 중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여

 

이 중도사상은 유무양변을 떠난 것이라 한다.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진제와 속제를 포괄하여 성립되는 것이 중도라 한다. 이런 중도사상은 부처님이 설한 사성제의 중도 사상과 다른 것이다. 공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 부처님의 중도가 있다면 대승에서는 용수의 중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다른 것인데, 인도불교사(경서원)에서는 이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여 성립한 것이 용수의 중도사상이라 한다. 마치 부처님이 브라만교의 아뜨만을 비판하여 불교가 성립되었듯이, 대승불교는 용수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비판하여 성립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비판에 비판을 거듭하여 성립된 대승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승논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니까야를 내버려 두고 별도의 경전제작에 들어간다. 그것이 공사상과 보살사상 등의 대승이념이 담겨 있는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과 같은 대승경전일 것이다.

 

한놈만 조지면 된다?

 

 

단현은 근본주의자입니다....

 

단현은 불교근본주의자입니다.
초기불교를 맹신하는 근본주의자입니다
.
이 근본주의자는...불교관련의 카페나 블로그등을 돌아다니며 ..심지어 무비스님등의 존경하는 스님들께도 온갖 비방과 폭언을 퍼붓고 있습니다
.

본래..근본주의자는..기독교근본주의자이던,이슬람근본주의자이던...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그 배타적 근성에 의하여 대화의 상대가 되지않는 것입니다
.
이런 근본주의자와 댓글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습니다
.
그러므로...장황하게 글을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

자신은
...
스스로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하나..그는 아래의 글에서 보듯이 틀림없는 근본주의자입니다
.
근본주의자 특유의..맹신적 기질,배타적 성향.공격적 기질등이 그것입니다
.
그 예가..대승을 부정하고,대승의 경전과 논장을 불살라야 한다고 하며,대승의 보살을 마구니 취급하는 것등이 모두 그것입니다
.

때로
..
이 사람은...가끔 겸손을 가장한 글들을 올리기는 하나..이 모든 것은 위장입니다
.
세불리할경우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
이 일천제는...스스로 알아서..무시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서광스님)

 

 

 

스님의 댓글을 읽어보면 일관성이 있다. 오로지 한 사람의 네티즌을 지목하여 근본주의자로 몰아 붙이고 있다. 마치 안티조선운동을 보는 것 같다. 조선, 중앙, 동아라는 여러 보수신문중에 대장격인 조선만을 타겟으로 비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수 많은 네티즌 중에 오로지 한명만 지목하여 집중으로 공략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한놈만 조지면 된다라는 것이다. 그런 한명에게 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주고 일천제라는 최악의 명칭을 붙여 주고 있다. 더구나 불교근본주의자들에 대하여 맹신적 기질,배타적 성향.공격적 기질등이 있다고 하여 상종도 못할 인간들로 취급하는 것이다.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해

 

불교근본주의자들은 그렇게 나쁜 인간들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에 대하여 왜 문제시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홍사성님은 불교평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불교는 도리어 교리해석에서 지나치게 관용주의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목적과 본질을 훼손시켜온 종교다. 불교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비불교적이고 때로는 반불교적이기까지 한 요소들은 모두 여기에서 배태된 것이다. 불교가 이런 자기모순과 타락을 극복하고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리나 경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관용주의가 지양돼야 한다. 그 대신 본뜻에 충실한 해석을 지향하는 근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상실된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

 

(홍사성 위원,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한 까닭, 불교평론 2003)

 

 

불교에는 근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원래의 가르침을 크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요인이 여럿 있을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요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용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여 공사상을 성립시킨 것을 들 수 있다.

 

대승불교의 말로는

 

이렇게 공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된 대승불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의 표가 이를 잘 말해 준다.

 

 

 

 

불교 전통 연표

연표: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후 1300년경까지) v • d • e • h

 

450 BCE

250 BCE

100 CE

500 CE

700 CE

800 CE

1200 CE

 

인도

원시불교

 

 

 

부파 불교

대승 불교

밀교·금강승

 

 

 

 

 

스리랑카 ·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

 

 

 

 

 

 

중앙아시아

 

그레코 불교

 

티베트 불교

 

비단길을 통한 불교 전파

 

동아시아 · 
··

 

천태종 · 선종 · 토종 · 일련종

진언종

 

 

 

450 BCE

250 BCE

100 CE

500 CE

700 CE

800 CE

1200 CE

 

범례:

 

= 상좌부 불교 전통

 

= 대승 불교 전통

 

= 밀교·금강승 전통

출처: (부파 불교,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이 표는 지역을 기준으로 하여 각 불교전통을 보여 준 것이다.

 

인도대륙을 보면 초기불교(Early Buddhism, 원시불교)와 부파불교를 거쳐 대승불교 시대가 시작 된다. 그리고 밀교화 되어 13세기가 되면 힌두이즘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중의 하나로서 불교로서 정체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고 성립된 대승불교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형에 변형을 거듭하여 마침내 밀교로 바뀌었을 때 힌두교와 더 이상 구별이 되지 않았을 때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유일신교가 득세하는 한국에서 변형에 변형을 거듭해온 대승불교가 종교평화선언이라는 명목으로 유일신교의 교리도 인정하자는 열린진리관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대승불교 전통의 산물로 보여진다.

 

만일 불교가 유일신교의 열린진리관을 받아 들였을 때, 인도대륙에서 밀교화된 불교가 힌두이즘속으로 사라졌듯이, 불교가 유일신교 속으로 융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인도대륙의 변화무쌍한 학파난립과 신흥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하여

 

하지만 기원전 3세기에 스리랑카에 전래된 테라와다 불교는 그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테라와다 불교는 아쇼카대왕시절 3차결집으로 공인된 불교이다. 이는 20개의 지말 부파로 갈리기 전의 일이다. 따라서 초기불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원음은 어떻게 하여 훼손됨 없이 전승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의 역자 대림스님은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랑카에서 상좌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 주석서들을 빠알리가 아닌 싱할리어로 전승해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인도대륙의 변화무쌍한 학파난립과 신흥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실제 그것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다른 신흥사상과 섞지 않고 전승할 수 있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파로 자연적으로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스리랑카에만 고립되게 되었을 것이다. 인도의 강한 문화적 정치적인 입김에서도 상좌부 전통을 잘 고수해오는 장점도 있지만 반면 자연 국제 불교의 흐름과는 고립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인도전역, 특히 남인도에 상좌부 가르침은 상당히 퍼져있었을 것이지만 스리랑카 상좌부의 입장에서는 그것마저도 신흥사상과 섞인 것으로 의심하였을 것이며 실제로 인도의 상좌부가 마힌다가 전한 것과 같은 고주석서를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스리랑카 대사(大寺)의 스님들은 더욱더 그들의 싱할리 주석서를 고수하였을 것이고 다른 부파에 노출시키기를 꺼려왔을 것이다.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

 

 

대림스님은 원음이 훼손되지 않은 이유로서 지역적 원인과 이를 지켜 내기 위한 비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징은 대륙에서의 공사상, 유식사상 같은 변화무쌍한 사상적 흐름에 물들지 않았고, 더구나 싱할리어로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담마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하지만 더 큰 요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 내기 위한 비구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은 초기경전에서도 보인다. 빠알리 삼장의 율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담마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마하깟사빠 존자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어느 때 나는 적어도 500명의 많은 무리의 비구들과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가는 큰길을 따라 가고 있었소, 그때 나는 길을 비켜서 어떤 나무 아래 앉았소. 그때 꾸시나라에서 오는 어떤 나체 고행자가 만다라와꽃을 들고 빠와로 가고 있었소. 나는 보고 이렇게 물었소.

 

‘그대는 우리 스승님을 아십니까?

 

‘네 압니다. 고따마 시문은 일주일 전에 열반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만다라와꽃을 그것에서 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존자들이여, 이 소리를 듣고 욕망을 초월하지 못한 어떤 비구들은 땅에 쓰러져 팔을 내저으며 이리 저리 뒹굴고 통곡하면서 ‘너무 빨리 세존께서 열반하셨다. 너무 빨리 선서께서는 열반하셨다. 너무 빨리 세상의 지혜의 눈이 사라졌구나!’라고 비통해 하였소. 그러나 욕망을 초월한 비구들은 시중하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슬픔을 안으로 새기면서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그런데 어떻게 무상한 것을 영원하기를 바라겠는가!’라고 말하였소.

 

나는 비구들에게 말하였소. ‘존자들이여. 이제 그만들 슬퍼하시오 그만들 한탄하시오 부처님께서 이미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거기에는 변화가 있고 이별이 있다고, 모든 태어난 것들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무너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나이 많아서 출가한 수밧다라는 비구가 앉아 있다가 하는 말이 ‘그만하면 됐습니다. 그만들 슬퍼하시오. 우리는 이 위대한 사문으로부터 벗어났소. 스승께서 이것은 그대들에게 적합하고 이것은 그대들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하시며 우리를 억압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해도 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소.

 

존자들이여,

담마가 힘을 잃고 담마가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계율이 힘을 잃고 계율이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담마가 말하는 사람은 약해지고 담마가 아닌 것을 말하는 사람은 강해지기 전에,

계율을 말하는 사람은 약해지고 계율이 아닌 것을 말하는 사람은 강해지기 전에

담마를 함께 외웁시다.

계율을 함께 외웁시다.

 

(율장 쭐라왁가 11,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부처님이 열반하였을 때 나이 많고 늦게 들어온 비구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해도 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자, 이 을 들은 깟사빠 존자는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급히 500명의 아라한을 소집하였는데, 이것이 1차 결집의 원인이라고 한다. 이유는 담마 아닌 것이 득세하기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내자는 것이다.

 

테라와다불교는 주류불교

 

이상 불교닷컴에서의 서광스님의 댓글에 대한 반론형식으로 글을 꾸며 보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테라와다불교가 초기불교를 계승한 주류불교라는 것이다.

 

초기불교는 20개에 달하는 부파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의 불교로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이 담겨 있는 불교를 말한다. 이런 초기불교는 2차 결집후 상좌부와 대중부로 근본 분열이 되긴 하였지만 계율에 관한 문제로서 교리의 훼손은 없었다. 하지만 3차 결집으로 인하여 쫒겨난 비구들이 별도의 교파를 형성하면서 본격적인 분열이 시작되었는데 역사적으로 이를 부파불교시대라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소승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부파불교를 말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했던 설일체유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선사들은 아직도 남방의 테라와다불교를 소승이라 지칭하는데, 이는 불교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불교역사를 보면 남방테랑와다불교는 소승이 아니라 주류불교라는 것이다. 이는 3차 결집으로 공인된 불교가 바로 테라와다불교이고, 이 공인불교를 아소까대왕이 전세계에 전도사를 파견하여 전법하였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한나라가 스리랑카인데, 스리랑카에서 공인불교가 원본의 훼손없이 이제까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적 특성과 담마 아닌 것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피눈물나는 비구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2-01-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