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탁발정신이 필요한 때,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삔돌야경(걸식경 S21.2.3.8)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22. 11:41

 

 

 

 탁발정신이 필요한 때,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삔돌야경(걸식경 S21.2.3.8)

 

 

상윳따니까야 해제글을 보다가 눈물없이는 읽어내려갈수 가 없다는 경이 있다는 구절을 보았다. 상윳따니까야 21편인 칸다상윳따에 나오는 걸식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처님이 경에서 제자들을 꾸짖고 생각에 잠긴 부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삔돌야경

(Piṇḍolya sutta- one Going For Alms Food-걸식경, 상윳따니까야 S21.2.3.8, 전재성님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까삘라밧투의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어떤 일인지 그 일에 수행승들의 무리를 꾸짖고는 아침 일찍 옷을 입고 바루와 가사를 들고 까삘라밧투로 탁발하러 가셨다.

 

까삘라밧투에서 탁발한 후에 식후에 바루를 물리고 한낮을 보내기 위해 마하바나를 찾았다. 마하바나에 들어가 벨루발랏티까 나무 아래 종일 앉아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홀로 명상에 드셨을 때에 그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다. 마치 어린 송아지가 어미소를 보지 못하면 당황하게 되고 길을 잃는 것처럼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면 당황하게 되고 길을 잃을 것이다.

 

내가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다.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움츠러들고 싹이 트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면 움츠러들고 싹이 트지 못할 것이다.

 

내가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면 달라져서 변해버릴 것이다. 내가 전에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한 것처럼 이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하는 것이 어떨까?'

 

마침 범천 싸함빠띠가 세존께서 마음으로 생각하시는 바를 알아채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는 듯한 사이에 범천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세존의 앞에 나타났다. 이때에 범천 싸함빠띠는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세존께서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싸함빠띠]

"세상에 존경받는 님이시여, 그렇습니다.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이시여,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습니다.

 

세존께서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 송아지가 어미소를 보지 못하면 당황하게 되고 길을 잃는 것처럼 그들은 세존을 뵙지 못하면 당황하게 되고 길을 잃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움츠러들고 싹이 트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세존을 뵙지 못하면 움츠러들고 싹이 트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수행승의 무리를 꾸짖었지만 이 세상에는 이 가르침과 계율에 막 입문한 출가한지 오래지 않은 새내기 수행승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존을 뵙지 못하면 달라져서 변해버릴 것입니다. 세존께서 전에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한 것처럼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행승의 무리를 반갑게 맞아들이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행승의 무리를 반갑게 맞아 들이십시오. 세존께서 전에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한 것처럼 지금도 수행승의 무리를 섭수하십시오."

 

세존께서 침묵으로 동의하셨다.

 

그러자 범천 싸함빠띠는 세존께서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그곳에서 떠났다.

 

그후 세존께서는 저녁무렵 홀로 명상하시다가 일어나 니그로다 승원을 찾았다. 다가가서 미리 펼쳐놓은 자리에 앉으셨다. 앉아서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이 한 사람이나 둘씩 뉘우치는 빛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신통력을 발휘하셨다. 그들 수행승들은 한 사람이나 둘씩 뉘우치는 빛으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은 수행승들에게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바루를 들고 유행한다' 는 것은 저주이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타당하고 합목적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영위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출가한 훌륭한 아들이 탐욕을 일으켜 감각적 쾌락에 자극적으로 물들어 마음에 분노를 품으면 정신적 사유를 해치고 마음새김을 마비시켜 올바로 알지 못하게 되고 집중이 되지 않아 마음이 산란해지고 감각능력을 통제하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시체를 태우는 화조의 양끝을 태워 가운데에 쇠똥을 바른 것은 마을에서 목재로 사용할 수 없고 숲에서도 목재로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사람은 재가에서 사용할 수도 없고 수행자의 지위도 누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세가지의 불선한 사유가 있다. 감각적 쾌락의 사유, 분노의 사유, 위해의 사유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들 세가지 불선의 사유는 네가지 새김의 토대에 마음을 잘 확립하여 특징을 뛰어넘는 무상삼매를 닦음으로서 남김없이 소멸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무상삼매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수행승들이여, 무상삼매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많은 성과와 많은 공덕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두가지 견해가 있다. 존재주의와 비존재주의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에 대하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아 같이 '세상에 어떠한 것이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집착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라고 반성한다.

 

그는 이와 같이 '세상에 어떠한 것이라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라고 안다. 내가 물질에 집착하여 집착되고 감수에 집착하여 집착되고 지각에 집착하여 집착되고 형성에 집착하여 집착되고 의식에 집착하여 집착되면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함께 생겨날 것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감수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각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형성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 는 지혜가 생겨나서 '다시 태어남은 파괴되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다' 고 그는 분명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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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짖음 받은 사건 :

승단에서 와좌구(臥坐具, 깔개)의 분배문제를 놓고 시끄러운 일이 발생했다.

 

-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 이다 :

antam. , 한계란 뜻이다. 아울러 붓다고싸는 최후의, 가장 낮은(pacchima), 하찮은, 형편없는, 나쁜(lamaka)의 동의어로 취급하고 있다.

 

- 무상삼매 :

無相三昧. animittam samadhim. -> 삼매

 

- 존재주의, 비존재주의 :

유견(有見)과 비유견(非有見),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영원주의와 허무주의를 말한다. 영역은 the view of coming to be 와 the view of not coming to be.

 

 

(삔돌야경-Piṇḍolya sutta- one Going For Alms Food-걸식경, 상윳따니까야 S21.2.3.8, 전재성님역)

 

  삔돌야경(걸식경-S21.2.3.8).docx 삔돌야경(걸식경-S21.2.3.8).pdf

 

 

bhikkhus

 

 

 

불교계의 돈봉투사건

 

요즘 불교계에 커다란 이슈중의 하나가 범어사 주지선거이다.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사이트에서 이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문제는 돈봉투건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다.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주지 선거전이 과열되자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후보로 나선 원정, 상운, 범산, 수불스님 등 4명에게 금권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범어사 주지 선거는 다음달 27일 열릴 예정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16일 오전 11 40분 집무실에서 이들 후보 4명에게 각서를 받는 자리에서 공명선거를 당부했다. 다음달 있을 법주사 주지 선거와도 맞물려 총무원 차원에서 담화도 발표한다.

 

(부끄러운 '돈봉투' 산사도 없나 , 불교닷컴 2012-01-16)

 

 

 

 

 

 

범어사

사진 : http://www.beomeosa.co.kr/beomeosa/sub1_01.php

 

 

 

범어사 주지선거를 앞두고 총무원장스님이 후보로부터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금권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말한다. 이는 그 동안 금권선거가 난무 해왔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후보마다 대략 15억원 들 것

 

현재 세속에서 여당과 야당이 돈봉투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는데, 출세간이라 불리우는 곳에서도 금권선거가 난무하고 있다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것도 선거인단 스님에게 뿌려지는 돈이 수 백만원이라 한다. 350명의 선거인단에 수 백만원 씩 뿌려졌을 때 후보마다 대략 15억원 정도 들 것이라 한다.

 

그런데 각서의 내용이 문제라 한다. 현재 세속에서 50만원 이상을 건넬 경우 무조건 구속이라 하는데, 통도사의 경우 실질적으로 100만원 이상은 뿌리지 말자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대체 주지를 뽑는데 있어서 돈으로 선거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여비조로 준다고도 하긴 하지만 후보로부터 받는 돈을 모두 모은다면 인당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다.

 

 범어사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그 돈은 모두 어디서 났을까. 불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주지직에 사활을 걸고 돈봉투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만큼 대가가 있어서일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기사에 대한 댓글을 보면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하는 시각이 매우 높다. 그래서 어느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보고 있자니 개독들이 원했던 대로 "범어사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범어사(원조)라는 자의 멘탈 붕괴를 보라,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범어사가 무너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있다!
아니 돈봉투가 정의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범어사가 무너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네티즌의 댓글)

 

 

댓글에서 범어사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이는 곧 한국불교가 무너지고 있는 중인 것과 같을 것이다. 무소유와 청정을 특징으로 하는 종단에서 금권선거가 난무한다는 것은 세속보다 더 타락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로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멸의 길로 가는 부산불교, 한국불교는 이미 유일신교의 타겟이 된지 오래 되었다.

 

불도(佛都) 부산

 

부산을 불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인구대비 불자비율은 39%에 달한다. 이는 부산인구 351만명 중 137만명이 불자라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의 36만명(10%)에 크게 비교된다.

 

래서일까 부산은 유일신교의 타겟이 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등 사람이 많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유일신교의 세가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유독 이곳 부산만큼은 유일신교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기독청년회 주관으로 '사찰아 무너져라' 하고 수 만명이 해운대 백사장을 가득 메운 채 기도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 기도회에서 당시 대통령후보이었던 MB는 영상축사까지 하기도 하였다.

 

기독교계의 올림픽(WCC) 2013년 부산에서

 

이렇게 유일신교의 목표물이 된 부산에서 지난 2008년 대규모 선교대회가 열렸고, 또 불과 1년후인 내년 201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주관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총회가 열릴 것이라 한다.

 

이처럼 국내외 선교대회가 부산에서 대규모로 잇달아 열리는 이유는 부산이 복음화율이 가장 낮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기독교계의 올림픽이라 볼 수 있는 세계교회협의회가 부산에서 열리는 이유도 부산만 복음화하면 대한민국은 전부 복음화시킬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 보여진다.

 

이와 같이 유일신교에서는 불도라 불리우는 부산을 공략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반하여 부산 불교의 리더라 볼 수 있는 범어사에서 세속에서도 지탄받고 있는 돈봉투가 돌고 있다고 하니 불교가 바람앞에 등불처럼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탁발정신의 실종

 

이런면으로 보았을 때 한국불교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마치 공존자체를 거부 하는 듯한 유일신교의 직접적 타격 또는 간접적 공격과 불교계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간 듯이 보이는 주지선거의 타락상을 보면 내우외환에 처해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처럼 보인다.

 

이렇게 위기를 자초한 이면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이는 탁발정신의 실종에서 기인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런 탁발정신에 대한 것을 테리가타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재물을 창고나, 단지나, 바구니에 저장하지 않으며

완전히 조리된 음식만 탁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3)

 

그들은 동전이나 금과 은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탁발한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4)

 

(테리가타, 로히니 비구니, 일아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출가한 비구나 비구니는 반드시 조리된 것만 탁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만일 날 것을 탁발한다면 이를 저장해 두어야 하고 또 이를 조리해야 하므로 탁발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저장하지 말라

 

이런 탁발정신은 한마디로 소유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금과 은을 받으면 자신의 제자가 아니라고 경에서 말씀 하였다.

 

금과 은은 요즘말로 하면 돈이다. 돈을 받게 되면 소유하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노후보장용으로 사설사암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 사설사암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나 천도재와 같이 기복방편뿐일 것이다.

 

하지만 탁발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재가불자들과 늘 소통할 것이고, 그에 따라 불교가 사회에 건전하게 뿌리내릴 것으로 본다.

 

출가자가 소유하게 되었을 때 고립되어 살 수 있고 이는 국민들과 단절을 의미한다. 현재 사람사는 도시에 절을 찾아 보기 힘든 이유도 출가자의 소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탁발정신이 되살아난다면 불자들은 물론 국민들과도 소통함으로서 정법불교, 수행불교가 펼쳐짐에 따라 처님의 가르침이 실현될 것으로 본다.

 

행위에서 두려움을, 존재에서 두려움을

 

출가비구는 걸식으로 살아는 수행자들이다. 그래서 걸사라고도 한다. 그런 비구라는 명칭의 유래는 탁발과 매우 관련이 있는데,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윤회에서(sasāre) 두려움을(bhaya)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

 

(청정도론, 1 7)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가 비구라는 뜻이다. 삼계에 안주 할 곳이 없어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라면 하루 빨리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 비구들의 할일인 것이다. 그래서 행위에서 두려움을 보고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라 하였다.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그렇다면 비구는 비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날 비구들을 모아 놓고 걸식(탁발)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는데, 걸식경은 눈물없이는 읽어 내려 갈 수 없는 경이라고 상윳따니까야 해제에서 전박사는 설명하였다.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이 세상에서 ‘그대는 바루를 들고 유행한다’는 것은 저주이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들은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타당하고 합목적적인 이유가 있어 그러한 삶을 영위한다.”

 

 

(삔돌야경-Piṇḍolya sutta- one Going For Alms Food-걸식경, 상윳따니까야 S21.2.3.8, 전재성님역)

 

 

 

2012-01-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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