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금강경사구게의 ‘원형’이 초기경전에, 페나삔두빠마경(포말경, S22.95)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24. 11:41

 

금강경사구게의 원형이 초기경전에, 페나삔두빠마경(포말경, S22.95)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금강경에 실려 있는 사구게이다. 금강경에 여러 개의 사구게가 있지만 이 사구게만큼 널리 알려진 것은 드믈다. 그래서 신심있는 불자라면 누구나 외우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명구이다. 그런데 이 사구게의 원형이 초기경전에 있다는 것이다. 페나삔두빠마라경(Pheapiṇḍūpama sutta, S22.95)이다. 우리말로 포말경이라 한다.

 

 

페나삔두빠마라경

(Pheapiṇḍūpama sutta- Foam-포말경, 상윳따니까야S22.95, 전재성님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아욧자의 강가강 둑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이여' 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 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이 갠지즈강이 커다란 포말을 일으킨다고 하자. 눈 있는 자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포말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그것을 수행승이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물질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에 물거품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눈 있는 자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물거품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감수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그것을 수행승이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감수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늦여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눈 있는 자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 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아지랑이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지각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그것을 수행승이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지각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견고한 나무심을 바라고, 견고한 나무심을 구하고, 견고한 나무심을 찾아,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갔다고 하자. 그가 거기서 커다랗고 새로 자란 아주 높이 솟은 파초의 줄기를 발견하면 그는 그 뿌리를 벤다. 그 뿌리를 베고 꼭대기를 자른다. 꼭대기를 자르고 바깥 껍질을 벗긴다. 그가 그 바깥 껍질을 벗기고 속껍질을 벗겨도 어떻게 그 수심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눈 있는 자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파초줄기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형성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그것을 수행승이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형성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커다란 길에서 환술을 보여준다고 하자. 눈 있는 자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환술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의식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그것을 수행승이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이것을 보고 깊이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해보면, 비어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이 실로 의식의 본체인가?

 

 

수행승들이여,

그러므로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 는 지혜가 생겨나서 '다시 태어남은 파괴되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다' 고 그는 분명히 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시고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스승으로서 이와 같이 시로써 말씀하셨다.

 

[세존]

"물질은 포말과 같고 의식은 수포와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그 근본을 보아 자세히 관찰하고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있고 공허한 것이네.

 

이 몸을 비롯해 모두 그렇다고

위대한 지혜자는 가르치네.

세가지 것을 떠나 물질을 버려야할 것으로 관찰하라.

 

목숨과 온기와 의식 그리고 몸을 버리면

버려진 채 놓여지니 의도 없이 타자의 먹이가 되네.

 

이 몸이 상속하는 것 이와 같네.

무지한 자가 지껄이는 환상이라

살해자라고도 불리우네. 여기에 실체는 없다네.

 

수행승이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처럼 존재의 다발을 관찰하라.

낮은 물론이고 밤낮으로 올바로 알고 바로 새겨라.

 

모든 결박을 끊어버려라. 자기 자신을 피난처로 하라.

불멸의 길을 구하여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

 

 

.

 

- 본체 : saro.

원래 나무의 심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본체라고 번역한다.

 

- 태양의 후예 ;

adiccabandhu. 부처님에 대한 찬사.

 

- 상속 :

santāno. 相續. 부파불교나 대승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이나 니까야에서는 오직 이 시에서만 등장한다.

 

 

(페나삔두빠마라-Pheapiṇḍūpama sutta- Foam-포말경, 상윳따니까야S22.95, 전재성님역)

 

  페나삔두빠마라경(포말경-S22.95).docx 페나삔두빠마라경(포말경-S22.95).pdf

 

 

 

 

 

 

 

 

 

나의 자아가 아닌 이유

 

부처님은 존재의 다섯가지 다발 즉, 오온에 대하여 포말(물질, ), 수포(감수, ), 아지랑이(지각, ), 파초(형성, ), 환술(의식, )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그래서 이들을 보면 텅 비어 있다고 하였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니고 자아가 없음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몸과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나의 것, 나의 자아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다섯가지 무더기로 분해 하여 설명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포말등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래도 나가 있다거나 윤회하는 주체가 있다거나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일까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빤짜왁기야경(다섯경, S21.1.2.17)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물질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빤짜왁기야경- Pañcavaggiya sutta -다섯경, S22.1.2.17, 전재성님역)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2.1.2.17).docx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2.1.2.17).pdf

 

우리의 몸이 나의 것이라면  우리 몸은 병들지 말아야 하고 죽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느낌이나 지각, 형성, 의식 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오온에 대한 지배력을 나의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다. 분명히 나의 몸이라고, 나의 자아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통제되지 않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나의 것, 나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아는 현상계에 한정된다?

 

이처럼 부처님은 초기경 도처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섯가지 무더기(오온)으로 분해하여 놓았고 자아가 없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연기적 존재라고 하였다. 따라서 조건에 따라 형성된 존재들은 끊임없이 무상하게 소멸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존재가 영원하다는 영원주의, 상주론, 상견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현상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인하여 유위법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이라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위법을 벗어난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댓글에서 어느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고 해결해주시기 위해 무아를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은 업에서 생기고, 업은 집착에서 나오므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 나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의미에서 무아를 말씀하셨습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는 현상계의 이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다시한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는 현상계에 한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

이를 잘못해석하여 영혼체가 없다고 하여서는 아니되오며, 또한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상일주재하는 아트만과 같다고 해서도 아니 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교의 상일주재하는 아트만은 현상계 어디도 없다고 바라문교의 아트만을 부정하셨습니다

이 영혼체 관련내용은 너무나도 심오하여 불교 대학자의 견해로서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끝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아는 영혼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현상계의 이법을 말씀하셨음을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붓다님과 무량무수 제보살님 앞에 이 내용이 진실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어느 네티즌 댓글)

 

 

부처님이 무아를 말씀하신 것은 현상계에 한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계를 넘어 또 다른 무엇이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래서 영혼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너무나 심오한 경지이어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아론적 진아론

 

불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잣대가 삼법인이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이다. 여기에 열반적정 하나를 더 넣는 다면 사법인이 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이다. 특히 제법무아의 경우 불교가 타 종교와 가장 구별되고 차별화 된 사상으로서 매우 독특하다. 따라서 어느 불교이든지 무아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불교라고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혼론자들도 무아를 주장하긴  하는데 오로지 현상계로 한정시켜 버린다. 그리고 진아가 있다고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무아론적 진아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

 

하지만 이는 궤변이자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최근 법보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실제로 부처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무아설에 위배되는찾기가 마치 선수행의 근본인 듯이 여겨지고 있는 것이 우리 불교의 현실이 아닌지 반성해보야 할 일이다. 진정한 자신의 자아와 우주의 본질이 둘이 아니라는 인도우파니샤드의 가르침에 바탕한 요가 수행과 선수행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도 모르는 채, 무조건 선을 하고 나를 찾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

 

(성태용교수,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 , 법보신문 2012-01-18)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성태용.docx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성태용.pdf

 

 

법보신문에 실린 성태용교수의 글이다. 글의 제목은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라는 매우 도발적 내용이다.

 

대체 누가 선으로 공갈친다는 것인가. 더구나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성교수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관 큰스님은학승이라는 칭호가 따라 붙던 분이셨다. 왜 일반적인 고승대덕들처럼 상당법문 안하시냐는 물음에니나 많이 공갈치며 살아라…”하셨다는 일화는 우리 불교계의 문제점에 대한 그분 나름의 뼈아픈 통찰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종을 표방하는 불교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가? 공갈치는 불교가 되는 것이다.

 

(성태용교수,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 , 법보신문 2012-01-18)

 

 

불과 몇 일 전 입적하신 지관스님이 하신 말이라 한다. 평생 학승으로 사셨던 스님이 공갈치지 말라고 일갈하였던 것은 우리나라 선사들이 교학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이라 한다.

 

참나 찾기식의 법문은

 

선사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기 때문에 선종이 다른 불교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는 논리이다. 그래서일까 선종에서는 교외별전, 불립문자를 세우면서 교학을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알음알이만 늘어난다고 하여 수행에 방해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 보니 출가자들이 평생선방에서 보내게 되고 법문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설령 법문을 하더라도 선가에서는 통용되는 문구를 활용함으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 되어 세파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다지 감명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법문할 때 주장자를 내리친다든가, “으아하고 을 한다든가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식의 법문, 그리고 업타령마음타령식의 법문,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식의 법문이 이 되고 마는데, 이는 교학적 뒷받침이 없고 경전적 근거가 없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과 같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불자를 상대로 공갈치는 것과 같다고 지관스님은 말을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교학의 바탕이 없는 선사들의 참나 찾기식의 법문은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의 주장과 구분이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아론은 현상계에 한한다며 무아론적 진아론을 주장하는 것은 다름아닌 궤변과 꼼수로서 지관스님의 말을 빌리면 선으로 공갈치는 것과 같다.

 

철수불교, 영희불교

 

법정스님은 중들을 믿지 마세요라고 하였다. 부모형제와 인연을 끊고 출가한 스님들이 또 언제 훌쩍 떠나 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믿고 따르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과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성자가 된 분을 믿고 따르는 것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오로지 "나만을 믿고 따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경계하자는 말과 같다.

 

그리고 보면 현실에서나 사이버세상에서나 자신의 주장으로 넘쳐 난다. 어떤 이는 경전의 한 구절을 근거 삼아 단멸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영속론을 주장한다. 이들 모두 무아론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입맛대로 경전을 해석하여 철수불교, 영희불교 등 모두 각자불교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까.

 

스승이 없는 재가불자에게

 

우리나라에서 재가불자는 전체불자의 99.9%에 달한다. 0.1%가 출가수행자이다. 출가수행자들은 은사스님 등 스승이 있어서 지도 받기 쉬우나 재가불자의 경우 스승이 없다. 따라서 각자 알아서 공부를 하는데, 이럴 때 단멸론, 영혼론 등을 주장하는 각자 불교가 난무하였을 때 큰 혼란에 빠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럴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분명하게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 자는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발생하는가' 라고 이치에 맞게 관찰해야 한다.

 

(앗따디빠경-Attadīpa sutta-자신을 섬으로의 경, 상윳따니까야 S21. 1. 5. 1, 전재성박사역)

 

앗따디빠경(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docx

앗따디빠경(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pdf

 

스승이 없는 재가불자에게 있어서 의지할 것이라곤 자신과 부처님의 가르침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특히 경전적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철수불교, 영희불교 등 각자불교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경우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한 견해’, 즉 사견(邪見)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자라면 경전에 근거하여 이야기하여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과 담마를 섬으로 하고 귀의처 하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고 하였다.

 

가슴설레이는 게송

 

이렇듯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어 있는 초기경전을 접하면 늘 마음이 설레인다. 더구나 아름다운 게송까지 있으면 더욱 더 사랑스럽다. 그런 게송 중의 하나가 금강경의 사구게 원형이라 보여지는 포말경이다.

 

포말경에서 빠알리어와 영문을 추가하여 다시 구성하여 보았다.

 

 

 

1.

Pheapiṇḍūpama rūpa vedanā bubbuupamā

Maricikupamā saññā sakhārā kadalūpamā,

Māyūpamañca viññāa dīpitā diccabandhunā.

 

물질은 포말과 같고 의식은 수포와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Form is like a glob of foam;

feeling, a bubble;

perception, a mirage;

fabrications, a banana tree;

consciousness, a magic trick —

   this has been taught

   by the Kinsman of the Sun.

 

 

 

2.

Yathā yathā na nijjhāyati yoniso upaparikkhati,

Rittaka tucchaka hoti yo na passati yoniso

 

그 근본을 보아 자세히 관찰하고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있고 공허한 것이네.

 

However you observe them,

appropriately examine them,

they're empty, void

   to whoever sees them

   appropriately.

 

 

 

3.

Yo ima kāya gārayha bhuripaññena desita,

Pahāna tiṇṇa dhammāna rūpa passetha chaḍḍhita.

 

이 몸을 비롯해 모두 그렇다고

위대한 지혜자는 가르치네.

세가지 것을 떠나 물질을 버려야할 것으로 관찰하라.

 

Beginning with the body

as taught by the one

with profound discernment:

when abandoned by three things

   — life, warmth, & consciousness —

 

 

 

4.

Āyu usmā ca viññāa yadā kāya jahantima

Apaviddho tadā seti parabhatta acetana.

 

목숨과 온기와 의식 그리고 몸을 버리면

버려진 채 놓여지니 의도 없이 타자의 먹이가 되네.

 

form is rejected, cast aside.

When bereft of these

it lies thrown away,

   senseless,

   a meal for others.

 

 

 

5.

Etādisāya santāno māyāya bālalāpinī,

Vadhako eso akkhāto sāro ettha na vijjati.

 

이 몸이 상속하는 것 이와 같네.

무지한 자가 지껄이는 환상이라

살해자라고도 불리우네. 여기에 실체는 없다네.

 

That's the way it goes:

it's a magic trick,

an idiot's babbling.

It's said to be

   a murderer.

No substance here

is found.

 

 

 

6.

Eva khandhe avekkheyya bhikkhu āraddhavīriyo,

Divā vā yadi vā ratti sampajāno patissato.

 

수행승이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처럼 존재의 다발을 관찰하라.

낮은 물론이고 밤낮으로 올바로 알고 바로 새겨라.

 

Thus a monk, persistence aroused,

should view the aggregates

by day & by night,

   mindful,

   alert;

 

 

 

7.

Pajahe6- sabbasayoga kareyya saraattano,

Careyyādittasīsova patthaya accuta padanti.

 

모든 결박을 끊어버려라. 자기 자신을 피난처로 하라.

불멸의 길을 구하여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

 

should discard all fetters;

should make himself

   his own refuge;

should live as if

his head were on fire —

   in hopes of the state

   with no falling away.

 

 

(포말경, 한역: 전재성님, 영역:Thanissaro Bhikkhu)

 

 

 

2012-01-24

진흙속의연꽃

 

 

 

페나삔두빠마라경(포말경-S22.95).docx
0.02MB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2.1.2.17).docx
0.02MB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성태용.pdf
0.08MB
앗따디빠경(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docx
0.02MB
페나삔두빠마라경(포말경-S22.95).pdf
0.15MB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2.1.2.17).pdf
0.09MB
선으로 공갈치지 마라-성태용.docx
0.04MB
앗따디빠경(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pdf
0.1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