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생긴 모습과 성향은 왜 천차만별일까, 쭐라깜마위방가경(M135)과 세속적정견

담마다사 이병욱 2012. 4. 5. 12:40

 

 

생긴 모습과 성향은 왜 천차만별일까쭐라깜마위방가경(M135)과 세속적정견

 

 

 

 

8년전 했던 말이 인터넷에

 

시사돼지, 목사아들 등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나꼼수 멤버 김용민 후보에 대한 기사가 떴다. 메인에 뜬 기사 제목을 보니 눈물의 사과과거 반성하며 갚으며 살겠다이다. 갑작스런 기사 제목에 내용이 궁금하였다. 대체 그는 어떤 큰 잘못을 하였길레 사과한다고 하였을까.

 

기사내용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8년 전 기억도 못한 사건이지만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내가 한 말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고 소감을 전한 김 후보는 이어 이유나 변명을 대지 않겠습니다. 그 음성은 분명 제 음성이고 제가 한 말입니다

 

(김용민, 눈물의사과…"과거 성하 갚으며 살겠다", 머니투데이 2012-04-04)

 

 

8년전 했던 말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파일을 보자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뱉은 말이 인터넷 공간을 떠 돌아다니다가 죽기아니면 살기식의 선거판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본 결과 불과 10여분 짜리 음성만 나오는 동영상이다. 내용은 동아, 중앙 등 보수신문에 일제히 실려 있는데 골자는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시켜 미국 라이스 전 장관을 성폭행해 죽이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TV에서 포르노를 틀어라”, “피임약을 최음제로 바꿔 팔자라는 등의 발언이다.

 

이와 같은 발언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다면 전혀 문제삼지 않을정도로 늘 상 인터넷 등에서 볼 수 있는 발언들이다. 하지만 공직에 발을 들여 놓자 문제 된 것이다. 그것도 죽기살기로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선거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김후보가 처음부터 국회의원과 같은 공직에 뜻을 두고 있었다면 말을 함부로 뱉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절에 자신이 뱉은 말로 인하여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용민 후보는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일까.

 

십악참회

 

불교에서 신구의 삼업이라는 말이 있다. 몸으로 짓는 업, 말로 짓는 업, 마음으로 업는 죄라는 뜻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늘 신구의 삼업을 짓는 것을 두려워 하는데, 이는 천수경에 잘 나타나 있다.

 

천수경에서는 십악참회라 하여 몸과 말과 마음의 짓는 업을 악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독송한다.

 

 

 

십 악 참 회
     
 
1. 살 생 중 죄     금 일 참 회
   
   
   살생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2. 투 도 중 죄     금 일 참 회
  
   
   도적질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3. 사 음 중 죄     금 일 참 회
  
   
   사음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4. 망 어 중 죄     금 일 참 회
  
   
   거짓말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5. 기 어 중 죄     금 일 참 회
 
   
  발림말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6. 양 설 중 죄     금 일 참 회
   
   
   이간질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7. 악 구 중 죄     금 일 참 회
 
   
  나쁜말한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8. 탐 애 중 죄     금 일 참 회
  
   
  탐애하여 지은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9. 진 에 중 죄     금 일 참 회
   
   
  성내어 지은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10. 치 암 중 죄     금 일 참 회
   
   
    우치하여 지은 죄업을 오늘 참회합니다.

 

 

 

이 중 말로 짓는 악업에 해당되는 것이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이다. 이런 신구의 삼업은 어떤 경전적 근거를 가지는 것일까.

 

신구의 삼업의 경전적 근거는

 

초기경에서 십악참회에 대한 내용은 무수히 많다. 대표적으로 팔정도를 들 수 있다. 팔정도에 대한 설명으로서 바른 언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초기경에 표현되어 있다.

 

 

Katamā ca bhikkhave,

sammāvācā:

yā kho bhikkhave,

 musāvādā veramaī

pisunāya vācāya veramaī

pharusāya vācāya veramaī

samphappalāpā veramaī

aya vuccati bhikkhave,

sammāvācā.

 

 

수행승들이여,

올바른 언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언어라고 한다.

 

. “Monks, what are right words?

Monks,

words spoken abstaining from telling lies,

slandering,

rough unkind

and frivolous words

are called right words.

 

 

(위방가경-Vibhagasutta- Explanation-분별경, 상윳따니까야 S44.1.1.8, 전재성님역)

 

  위방가경(분별경-S44.1.1.8).docx  위방가경(분별경-S44.1.1.8).pdf

 

 

 

천수경과 순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천수경에서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인데, 초기경에서는 거짓말, 이간질, 욕지거리, 아첨하는 말로 되어 있어서, 거짓말(양구)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같으나 이후 순서가 다르다.

 

초기경의 용어에 천수경의 용어를 대입하면 거짓말(망어), 이간질(양설),  욕지거리(악구), 아첨하는 말(기어)로 된다. 그렇다면 이런 순서는 중요할까.

 

삼법인이라는 말이 있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이다. 이는 무상, , 무아라는 삼특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순서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교학에 대하여 잘 모르는 범부들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학자가 순서를 무시하고 일체개고, 제법무아, 제행무상 식으로 쓴다면 학자적 자질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어느 경에서든지 무상이 항상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일체개고, 제법무아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십악참회의 원형, 살레이야까경(M41)

 

초기경에서 팔정도의 바른 말에 대한 순서는 항상 거짓말, 이간질, 욕지거리, 아첨하는 말의 순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순서는 어느 경전에서나 동일하다.  이처럼 용어의 사용순서에 있어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초기경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초기경에서 십악참회의 원형으로 보이는 가르침은 매우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잘 설명된 경이 있다. 맛지마니까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경이 있다.

 

 

7. “장자들이여,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으며, 언어적으로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으며,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이 있습니다.

 

8.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살아있는 생명을 죽입니다. 그는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에 전념하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하여 자비심이 없습니다.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습니다. 그는 마을이나 숲에 있는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주지 않은 것임에도 남몰래 훔칩니다.

 

3)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합니다.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있고,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고, 형제의 보호를 받고 있고, 자매의 보호를 받고 있고, 친족의 보호를 받고 있고, 이미 혼인했거나, 주인이 있거나, 법의 보호를 받거나, 심지어 약혼의 표시로 꽃다발을 쓴 여인과 관계합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신체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9.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언어적으로 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거짓말을 말합니다. 법정에 불려가거나 모임에 나아가거나 친지 가운데 있거나 조합에 참여하거나 왕족 가운데 있거나 증인으로서 질문을 받아, ‘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하라.’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도 ‘나는 안다.’고 대답하고, 알면서도 ‘나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보지 못하면서도 ‘나는 본다.’고 말하며, 보면서도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위하여, 혹은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합니다.

 

2) 이간질합니다.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이들을 파괴하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저들을 파괴하며, 화합을 파괴하고,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돕고, 파란을 좋아하고, 파란을 기뻐하고, 파란을 일으키는 말을 합니다.

 

3) 욕지거리합니다. 거칠고 난폭한 말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며, 스스로 분노하여, 삼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와 같은 말을 행합니다.

 

4) 꾸며대는 말을 합니다. 때맞추어 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의미를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계율을 말하지 않고, 때 아닌 때에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고,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합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언어적으로 네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10. 장자들이여, 어떠한 것들이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까?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은,

 

1) 탐욕스럽습니다. 그는 ‘아,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나의 것이면 정말 좋겠다.’라고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탐합니다.

 

2) 분노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 뭇 삶들은 살해되고 피살되고 도살되고 파멸되어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고 해칠 의도를 갖습니다.

 

3)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보시에는 공덕이 없다. 제사의 공덕도 없다. 공양의 공덕도 없다. 선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마음에서 흘연히 생겨나는 존재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며 스스로 깨달아 가르치는 올바로 도달된 수행자 성직자는 세상에 없다.’라고 전도된 견해를 갖습니다.

장자들이여, 이것들이 정신적으로 세 가지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라 잘못된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장자들이여, 이와 같이 가르침이 아닌 것을 따르고 바른 길이 아닌 것을 실천하는 것을 원인으로 어떤 뭇 삶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

 

(살레이야까경-Sāleyyakasutta- The Discourse Given at Sālā- 쌀라 마을 장자들에 대한 경, 맛지마니까야 M41, 전재성님역)

 

  살레이야까경(M41).docx  살레이야까경(M41).pdf

 

 

 

살레이야까경은 부처님이 살라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외도들인 바라문 장자들과의 대화에 관한 것이다.

 

부처님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 사성제와 같은 출세간적 법문을 펼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한 법문을 펼치셨다. 그것이 우리나라 천수경에서 볼 수 있는 십악참회의 원형이라 보여지는 열가지 가르침이다.

 

잘못된 견해(邪見)’라 하였을까

 

그 열가지 가르침에 대하여 표로 만들어 보았다.

 

 

열가지 잘못된 길

No

항 목

  

 

1

살아있는 생명을 죽임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에 전념하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하여 자비심이 없음

신체적으로 짓는 업

 

-팔정도의 올바른 행위(정업, sammākammanta)와 관련됨

2

주지 않는 것을 빼앗음

마을이나 숲에 있는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주지 않은 것임에도 남몰래 훔침

3

사랑을 나눔에 잘못된 행위를 함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있고,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고, 형제의 보호를 받고 있고, 자매의 보호를 받고 있고, 친족의 보호를 받고 있고, 이미 혼인했거나, 주인이 있거나, 법의 보호를 받거나, 심지어 약혼의 표시로 꽃다발을 쓴 여인과 관계함

4

거짓말

자신을 위하여, 혹은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말을 함

언어적으로 짓는 업

 

-팔정도의 올바른 언어(정어, sammāvācā)와 관련됨

5

이간질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이들을 파괴하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저들을 파괴하며, 화합을 파괴하고,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돕고, 파란을 좋아하고, 파란을 기뻐하고, 파란을 일으키는 말

6

욕지거리

거칠고 난폭한 말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며, 스스로 분노하여, 삼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

7

꾸며대는 말

때맞추어 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의미를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계율을 말하지 않고, 때 아닌 때에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고, 유익하지 않은 말

8

탐욕스러움

‘아,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나의 것이면 정말 좋겠다.’라고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탐함

정신적으로 짓는 업

9

분노하는 마음

‘이 뭇 삶들은 살해되고 피살되고 도살되고 파멸되어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고 해칠 의도를 갖음

10

잘못된 견해를 갖음

(邪見)

‘보시에는 공덕이 없다. 제사의 공덕도 없다. 공양의 공덕도 없다. 선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마음에서 흘연히 생겨나는 존재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며 스스로 깨달아 가르치는 올바로 도달된 수행자 성직자는 세상에 없다.’라고 전도된 견해를 갖음

 

 

 

 표를 보면 열번째 항목 잘못된 견해를 갖음이 십악참회에서의 치암중죄금일참회와 대응 된다. 십악참회에서는 단순하게 어리석음을 참회한다고 하였는데, 초기경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잘못된 견해가 바로 어리석음인 것이다. 그 잘못된 견해라는 것은 부처님 당시 정통브라만교의 신의론과 숙명론, 유물론 등으로 불리우는 육사외도의 사상을 말한다. 즉 상견과 단견을 가진 삿된 견해를 모두 일컬어 잘못된 견해라 하였다.  이 말은 올바른 견해, 정견과 비교된다.

 

세속적 정견이란

 

위 열가지 잘못된 행위는 팔정도에서 올바른 행위(정업, sammākammanta)와 관련된 것이 세가지가 있고, 올바른 언어(정어, sammāvācā)와 관련된 것이 네가지가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탐진치와 관련된 것은 어떤 것일까.

 

경에서 잘못된 견해 즉 사견은 팔정도의 정견과 대비된다. 브라만이나 육사외도의 사상은 사견(邪見)’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견(正見)’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설한 정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팔정도에서 정견은 사성제를 아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출세간적 견해를 말한다. 출세간적 정견이 있다면 세간적 또는 세속적 정견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세속적 정견이란 어떤 것일까. 마하시사야도의 초전법륜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위빠사나 명상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미 제3장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요약을 하면, 수행은 근본 도, 예비단계의 도, 성스러운 도의 세 가지 도로 계발합니다. 이 세 가지의 도를 계발해서 열반에 이릅니다.

 

근본 도는 우리가 이전에 상세하게 다루었던 것으로, 업이 자신의 것이라는 바른 견해(業自性正見), 계율sīla, 근접집중 및 근본집중으로 되어있습니다.

 

첫째 요소인, 업이 자신의 것이라는 바른 견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미얀마 불교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미 그 믿음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마하시사야도, 초전법륜경 제6)

 

 

마하시 사야도는 도를 세가지로 나누었다. ‘근본도예비단계의 도그리고 성스런 도이다. 여기서 성스런 도가 출세간적 도를 말하며 사성제의 도성제에 해당된다.

 

그런데 세속에서 닦는 도 또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근본도라 하였다. 이런 근본도에 대한 정견이 바로 업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견해라는 것이다. 이를 업자성정견이라 한다.

 

이렇게 정견은 출세간적 정견과 세간적 정견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월한 삶, 형벌 같은 삶

 

경에서 정견이 사성제와 관련이 있다면 이는 출세간적 정견이라 볼 수 있고, 반면 위 살레이야까경(M41)처럼 재가자들을 위한 열가지 행위에 대한 가르침에서 언급된 잘못된 견해와 대비되는 정견은 세속적인 정견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세속적인 정견은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반드시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업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초보적이고 세속적인 정견에 대하여 언급해 놓은 경이 있다. 맛지마니까야의 쭐라깜마위방가경(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 M135)이 바로 그것이다. 경에서 세속적인 정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Kammasakkā māava,

sattā kammadāyādā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isaraā.

Kamma satte vibhajati yadida hīnappaītatāyāti.

 

 

“바라문 청년이여,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

 

 

“Young man,

beings are the,

owners,

heirs,

origins,

relations and refuges of actions.

Action classifies beings as inferior and superior.

 

 

(쭐라깜마위방가경-Cūakammavibhaga sutta- A Shorter Classification of Actions-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 소업분별경, 맛지마니까야 M135,전재성님역)

 

  쭐라깜마위방가(M135).pdf  쭐라깜마위방가경.docx

 

 

 

 부처님이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실 때 바라문 청년이 찾아와 문의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바라문 청년이 문의한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존자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과 어떠한 조건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들 사이에 천하고 귀한 차별이 있습니까?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인간들은 목숨이 짧기도 하고 목숨이 길기도 하고, 질병이 많기도 하고 질병이 없기도 하고, 용모가 추하기도 하고, 용모가 아름답기도 하고, 권세가 없기도 하고, 권세가 있기도 하고, 빈궁하기도 하고, 부유하기도 하고, 비천하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하고, 우둔하기도 하고 현명하기도 합니다. 존자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과 어떠한 조건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들 사이에 천하고 귀한 차별이 있습니까?

 

(쭐라깜마위방가경-Cūakammavibhaga sutta- A Shorter Classification of Actions- 업에 대한 작은 분석의 경- 소업분별경, 맛지마니까야 M135,전재성님역)

 

 

 

 

 

 

 

 

 

바라문 청년이 궁금해 한 것은 왜 사람들이 천차만별이냐는 것이다. 생긴것도 모두 다르고 성향도 모두 다른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없다. 일란성 쌍둥이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생김새와 성격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어떤 이는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머리와 아름다운 용모로 인하여 세상을 수월하게 살기도 한다. 반면 어떤 이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한 평생 형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사람들은 얼굴이 모두 다 다르고, 얼굴이 모두 다 다르듯이 성격 또한 천차만별일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부처님은 (Kamma)’으로 설명한다. 업으로 인하여 차별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업은 자신이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라고 바라문 청년에게 설명하였다.

 

이것이 세속적인 정견이다. 이를 업자성정견(kammassakata-sammādiṭṭhi, 깜마사까따-삼마디띠)’이라 한다. 업이 자신의 것이라는 바른 견해를 말한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세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모두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것이다. 따로 업을 경험하는 자가 있을 수 없고, 따로 조건을 만드는 자도 없다. 그런 업은 다른 이의 것도 아니고 다른 원인에서 온 것도 아니다. 그 때 그 상황에서 자신이 지었기 때문에 자신이 받는 것이다.

 

그런 업은 마치 빚쟁이와 같다. 물건을 받았는데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청구서가 날라 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민후보 역시 청구서가 날라온 케이스라 보여진다. 그가 아무 생각없이 지껄인 말들이 죽기살기로 벌어지고 있는 선거판에서 과보로 익은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이 세상에 공짜란 없는 것이다. 언젠가 받게 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세속적 정견인 업자성정견이라 볼 수 있다.

 

 

2012-04-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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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방가경(분별경-S44.1.1.8).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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