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 이루네”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

담마다사 이병욱 2012. 4. 12. 11:47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 이루네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

 

 

 

 

참담한 패배

 

선거결과는 참담하였다. 이는 진보적 시각에서 본 소감이다. 총과 칼만 들지 않았지 사활을 건 싸움에서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참담하게 패배한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선거판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한번 이겼다고 해서 다음 번에도 또 이기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 졌다고 해서 다음 번에도 계속 지게 될 것이라는 법은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민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비록 54%밖에 되지 않는 투표율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민심은 언제나 정확하였다. 무지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민중일지라도 표의 향방을 보면 고개가 끄덕일정도로 매서워서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위하여

 

지난번 지자체선거에서 압승하였다고 하여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면 연전연승하는 결과가 된다. 더구나 8개월 후에 치루어지는 대선에서 마저 승리하면 3연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선거는 보기 힘들다.

 

한번 이기면 그 다음 선거에서 지고 또 그다음선거에서 이기는 패턴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진보진영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이겼다면 국민들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를 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대선을 생각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진 것이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1 1패가 되어 다음 번 대선에서 승리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어느 한 곳에 승리를 몰아 주지 않는다. 일진일퇴하게 하여 더욱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게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얻었기 때문에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여소야대가 되어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를 갖추게 된다. 이제까지 문제는 항상 여대이었을 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MB를 들 수 있다.

 

MB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여대야소가 되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 붙인 결과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었다. 그리고 안되면 힘으로 붙여 각종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런 산물이 다름아닌 22조를 강바닥에 쳐박았다는 사대강사업이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구조는 여소야대라 본다. 비록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패하였지만 다음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나라는 여소야대가 되어 대화와 타헙의 의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치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이번 총선은 국민의 절묘한 선택이고 진보진영에게 또 한번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으로 본다.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 이루네

 

선거는 총성없는 전쟁과도 같다.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하여 죽기살기로 사활을 건 회전에서 어느 한편은 패하게 되어 있다. 그때 패한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초기경에 패자의 심경을 잘 노래한 것이 있다.

 

 

Jaya vera pasavati dukkha seti parājito,
Upasanto sukha
seti hitvā jayaparājayanti.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이루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루네.

 

(Pahamasagāmasutta, 전쟁에 관한 두 이야기1, 상윳따니까야 S3.2.4, 전재성님역)

 

빠타마상가마경1(S3.2.4).docx

빠타마상가마경1(S3.2.4).pdf

 

 

전쟁에서 패한자는 승리자에 대한 원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복수의 칼날을 마음속으로 가는데, 부처님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부처님이 게송으로 말씀 하신 것은 부처님당시 마가다(Magadha)국과 꼬살라(Kosala)국이라는 두 강대국사이의 전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대인도에 16대국이 있었는데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 16개의 큰 나라들이 있었다. 이를 ‘16대국 (The 16 Mahajanapada)이라 한다. 주로 갠지스강을 따라 형성된 나라들이지만 멀리 간다라지방, 그리고 남인도에 이르기까지 전인도대륙에 걸쳐 있었다. 이에 대한 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인도 16대국(600 B.C.)

위키피디아 : Mahajanapada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들 16대국의 나라이름은 다음과 같다.

 

 

Anga(앙가)

Kosala(꼬살라)

Kashi(까시)

Magadha(마가다)

Videha(위데하)

Malla(말라)

Chedi(체디)

Vatsa (or Vamsa)(왓사)

Kuru(꾸루)

Panchala(빤찰라)

Machcha (or Matsya)(맛차)

Surasena(수라세나)

Assaka(or Asmaka)(앗사까)

Avanti(아완띠)

Gandhara(간다라)

Kamboja(깜보자)

 

 

이들 16대국의 수도는 마가다와 꼬살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알려진 것이 없다. 종교는 베딕 힌두이즘(Vedic Hinduism)과 부디즘(Buddhism) 그리고 자이니즘(Janism)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국가의 정치체제는 공화제 또는 전제군주제이었다. 시기적으로 철기시대이었고 이들 국가의 존속기간은 B.C.700년 경에서 B.C. 300년경 이었다.

 

마가다국과 꼬살라국

 

이들 16국대국 중에 가장 강한 나라는 초기경에 늘 등장하는 마가다국꼬살라국두 나라이다.

 

마가다왕국은 인도동부의 벵갈의 일부분과 현재 빠뜨나와 가야가 있는 남부비하르주에 위치해 있었는데 갠지스강 북부까지 영역이 확대 되어 16국중의 최강이었다. 초기의 수도이름은 라자그리하(Rajagriha , 현재 라지기르- Rajgir, 왕사성) 이었고, 나중에 빠딸리뿌뜨라( Pataliputra) 가 마가다의 수도로 되었다. 초기에는 불교도들이 죽림정사에 머물며 회합을 가졌으나 후기에 자이나교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무대로 변했다고 한다.

 

꼬살라국은 마가다국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고 수도는 사왓띠( Savatthi , Sravasti) 이었다. 사왓띠는 고락뿌르의 북서쪽 70마일에 위치해 있고 웃따르 쁘라데시 내에 있는 현대도시 아와드(Awadh ,or Oudh)부근이다. 이곳 사와띠에 부처님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원정사가 있었다. 그런 꼬살라국은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왕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초기경전에 실린 역사적 사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초기경전에 그대로 실려 있다. 상윳따니까야에 실려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4군을 무장시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공격하기 위해서 까씨로 쳐들어왔다.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4군을 무장시켜 까씨로 쳐들어온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4군을 무장시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를 까시에서 맞이했다.

 

그리하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싸웠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이겼다. 싸움에 패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자신의 수도인 싸밧티로 돌아왔다.

 

(Pahamasagāmasutta, 전쟁에 관한 두 이야기1, 상윳따니까야 S3.2.4, 전재성님역)

 

 

부처님당시 인도대륙에서 최강 마가다와 꼬살라의 전투장면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이 꼬살라의 기원정사에 머물러 있을 때 마가다국왕 아자따삿뚜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것이다. 그런데 마가다국왕 아자따삿뚜와 꼬살라국왕 빠세나디는 혈족간이었다.

 

빠세나디왕과 아자따삿뚜왕

 

마가다의 아자따삿뚜왕은 꼬살라 빠세나디왕의 여동생인 베데히가 마가다로 시집가서 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카 아자따삿뚜가 대군을 이끌고 외삼촌인 빠세나디왕이 통치하는 꼬살라로 쳐들어 온 것이다. 그런 아자따삿뚜왕은 이미 패륜을 저질렀다.

 

아자따삿뚜의 부왕인 마가다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처음 만나고 나서 불교에 귀의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런 빔비사라는 꼬살라의 베데히를 아내로 맞아 들여 결혼동맹을 맺었다. 그 베데히가 꼬살라의 국왕 빠세나디의 친누나인 것이다. 빔비사라왕와 베데히 사이에서 난 아들이 아지따삿뚜이다. 그런데 빔비사라왕은 아들 아지따삿뚜에의 의하여 감금되어 굶어 죽었다.

 

이와 같은 패륜을 저지른 바 있는 아자따삿뚜가 대군을 거느리고 외삼촌의 나라 꼬살라로 쳐들어 온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는 조카 아자따삿뚜를 맞아 싸웠으나 패했다. 싸움에서 패한 빠세나디가 수도인 사왓띠로 되돌아 왔을 때 이를 본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잣타쌋뚜는 나쁜 벗, 나쁜 친구, 나쁜 동료를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 비해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착한 벗, 착한 친구, 착한 동료를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오늘 패자로서 괴롭게 잠을 이룰 것이다.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이루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루네."

 

(Pahamasagāmasutta, 전쟁에 관한 두 이야기1, 상윳따니까야 S3.2.4,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았고, 침입한 마다다의 아잣따삿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묘사하였다.  패한 빠세나디가 원망을 가진채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조카에 패하였으니 그 심경은 더욱 더 괴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기고 지는 마음을 버리면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가족간의 피튀기는 싸움

 

누구든지 싸움에 지면 분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좀처럼 분이 삭혀 지지 않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싸움은 전쟁과 같은 큰 싸움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매일 벌어진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마치 전쟁과도 같다. 무기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부부간, 고부, 부모자식, 직장동료, 직장상사 간에 벌어지는 피튀기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싸움에서 이긴자나 진자나 모두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이긴자는 진자로 하여금 원망을 갖게 하므로 괴롭고, 진자는 싸움에 져서 모욕을 당한 것 같아 분해서 괴롭다. 그래서 다음 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이렇게 매일 가족간에 또는 직정에서 피튀기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서로 상처를 받으며 증오를 키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즉문즉설강연에서 우리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70-80%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간 또는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관계’ 때문이라 하였다.

 

어떻게 해야 싸움을 종식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싸움은 어떻게 해야 종식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으면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네.

 

다른 자가 빼앗으면 빼앗긴 자는 또 남의 것을 빼앗네.

 

죄악의 열매가 익지 않는 한 어리석은 자는 기회라고 생각하나

죄악의 열매를 거둘 때 어리석은 자는 괴로워하네.

 

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하고 이기는 자는 패하며

욕하는 자는 욕지거림을 당하고 화내는 자는 미움을 받네.

 

행위는 돌고 또 돌아 빼앗긴 사람이 다시 빼앗네.”

 

(Pahamasagāmasutta, 전쟁에 관한 두 이야기2, 상윳따니까야 S3.2.4, 전재성님역)

 

빠타마상가마경2(S3.2.5).docx

빠타마상가마경2(S3.2.5).pdf

 

 

부처님은 서로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라 하였다. 특히 전쟁에서 그렇다. 그래서 전쟁을 하여 빼앗아 보지만 이는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을 하여 이득을 취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 빚어진 과보를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리는 원한을 부르기 때문에 반드시 질 때가 있는 법이라 한다. 이는 욕하는 자에게 욕하고, 화내는 자에게 화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둘 다 똑 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한편이 멈추지 않으면 싸움이 그칠날이 없을 것이라 한다.

 

아수라와 제석천간의 싸움

 

초기경전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더 찾아 보았다. 상윳따니까야에 아수라와 제석천간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초기불교에서 아수라는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선신이 아니라 악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아수라에 대하여 지옥, 축생, 아귀와 더불어 사악처라 불리운다.

 

이렇게 틈만 나면 싸움하기를 좋아하는 아수라의 싸움상대는 제석천의 삭까와 추종자들인 33명의 신(삼십삼천)이다.

 

이렇게 싸움걸기를 좋아 하는 아수라는 악신이지만, 반대로 늘 싸움의 대상이 되는 제석천은 선신이다. 제석천이 선신인 이유에 대하여 경에서는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신들의 제왕 제석천은 스스로의 공덕의 과보로 태어나 도리천 하늘을 지배하고 통치를 하면서 노력과 정진을 칭찬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 속에 출가해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에 도달하기 위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해 격려하고 노력하고 수행을 닦으면 이 세상에서 빛날 것이다."

 

(수위라경-Suvīrasutta, 상윳따니까야 S11.1.1, 전재성님역)

 

수위라경(S11.1.1).docx

 

수위라경(S11.1.1).pdf

 

 

 

제석천이 선신이 된 이유에 대하여 공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 과보로 천상에 태어나 천상락을 누리고 있는데, 누구든지 열심히 수행하면 빛나는 천신과 같이 될 것이라 한다.

 

승리의 게송

 

그런 제석천과 아수라가 전투가 아닌 말싸움이 붙었다. 말싸움의 결과 제석천이 승리를 거두었는데, 승리를 가져온 게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석천]

나를 두려워하여 그것을 참는다고 임의로 생각하건 말건

참 사람에게 최상의 유익을 가져오는 데 인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네.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그것을 최상의 인내라 부르네.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

 

힘 없는 것을 힘이라 부르면 그 힘은 어리석은 자의 힘이네.

 

힘 있어 진리를 수호하는 자에게 반론하는 사람은 없다네.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면 그 때문에 그는 더욱 악해지리.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네.

 

다른 사람이 화내는 것을 보고 마음새김으로 고요함에 이르면

자신을 위하고 또 남을 위하는 둘 다의 유익을 위한 것이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베빠찟띠경-Vepacittisuttaṃ, 상윳따니까야 S11.1.4, 전재성님역)

 

베빠찟띠경(S11.1.4).docx

베빠찟띠경(S11.1.4).pdf

 

 

 

 

 

이 게송이 나오기 전에 아수라무리들중 왕에 해당되는 베빠찟띠가 제석천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자가 아무도 없으면 어리석은 자들은 더욱 화를 내리. 그러므로 강력한 처벌로 현자는 어리석은 자를 방어해야 하리라고 말하였다. 이는 대단히 호전적인 방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앙갚음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아수라는 자신에게 화내는 이에게 더 큰 화를 내어 제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제석천은 이런 호전적인 아수라의 방식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화내는 것을 보고 마음새김으로 고요함에 이르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건대 어리석은 자를 방어하는 것이네”라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을 말한다.

 

위 게송에서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면 그 때문에 그는 더욱 악해지리”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래서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

 

패배는 쓰라리다. 승자는 환호하고 패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승리는 원한을 부른다. 특히 전쟁터에 더 그렇다. 그래서 반드시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재기를 노린다.

 

지금 이겼다고 해서 환호할 일이 아니다. 언제 또다시 지금의 승리가 패배로 귀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돌고 또 돌아 빼앗긴 사람이 다시 빼앗는 것이 부처님은 전쟁이라 하였다.

 

그런 전쟁은 반드시 전쟁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매일 전쟁을 치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쟁의 대부분은 가장 잘 아는 사이 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전쟁이다. 부부, 고부, 부모자식, 직장상사 등과 같이 매일 매일 보는 사람들과의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총과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피가 튀기는 혈투에 가깝다. 그런 전쟁에서 늘 마주 하는 것은 성냄이다. 싸움을 하다 보면 성내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이와 같은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화를 낸 자에게 화로써 앙갚음을 하는 자는

처음 화를 낸 자 보다 더욱 비열하다.

화로써 앙갚음하지 않을 때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한다.

상대방이 화난 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면서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자기와 남 둘 모두를 이롭게 한다.

 

(청정도론 제9장 거룩한 마음가짐 15)

 

 

이 게송은 청정도론에서 자애수행편에 실려 있다.

 

게송에서 화 내는 이에게 같이 화를 내면 똑 같은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화로 앙갚음하면 전쟁에서 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어떤 전쟁에서든지 이기려면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챙김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알아차리라는 말과 같다. 화가 난 그 순간 내가 화가 났구나라고 아는 마음이 생기면 이전 화난 마음은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이렇게 다음 마음이 이전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화는 사라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뿐만아니라 남들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2012-04-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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