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도고마성(道高魔盛)과 도비도(道非道)

담마다사 이병욱 2012. 5. 2. 15:54

 

도고마성(道高魔盛)과 도비도(道非道)

 

 

 

 

귀신이야기

 

한 때 귀신이야기가 유행하던 적이 있었다. 여름이 되면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납량특집극이라 하여 귀신을 소재한 드라마를 제작하여 전국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영 한 것이다. 이처럼 귀신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시도 때도 없이 사시사철 방영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귀신드라마의 폐해도 있었다. 자라나는  어린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 없다.

 

최근 귀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공중파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수십개에 달하는 케이블 채널에서 귀신을 소재로 다루는 전문채널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귀신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도 성행하고 있다.  영화장르 중에 호러, 공포, 스릴러라는 별도의 테마가 생겨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신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항상 관심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초자연적현상이나 초월적현상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신기한 것이나 신비한 현상이 모두 관심의 대상인데, 종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마음)이 맑아지면

 

이른 아침 불교방송 불교강좌시간에 송담스님은 다음과 같이 법문하였다.

 

 

경공부를 한다든지 다른 공부를 하면 무엇이 알아진 것도 있고 하루 하면 하루한 만큼 무엇이 얻어진 것이 있고, 이틀 하면 이틀 한 만큼 무엇이 알아지고 얻어진 것이 있는데, 이 공부는 해 갈수록 알수가 없고 꽉 맥히고 답답하기만 하단 말이여. 그러나 알수가 없고 답답한 것 이것이 정말 견성성불 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대목이다 그 말이여.

 

무엇이 환하게 보이고 알아지고 얻어지고 보여진 것이 있으면 그건 공부가 잘 못 되어 간 것이여. 스승없이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하면 백이면 백다 잘 못 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여.

무엇이든지 일심으로 하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거기에는 온갖 마장이 거기에 붙게 되는 것 입니다.

 

(송담스님, 불교방송 불교강좌 2012-05-02일자)

 

 

 

 

 

 

Meditation

 

 

 

선사는 화두를 들어 참선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참선공부는 경전공부와 달리 하면 할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막히고 답답해지는 것이 특징인데, 그런 상태가 공부가 잘 되는 증거라고 한다.

 

또 참선 공부를 하다가 번뇌망상이 일어 날 때 온갖 마장이 일어 날 수 있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마음)이 맑아지면 온갖 마장이 붙게 된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식이 맑아지면 전에 보지 못하였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다. 마치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 정화 되듯이 마음이 맑아지면 이제까지 생각하지도 보지도 못하였던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불교TV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더울 때 앉아서 이렇게 수행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밤에 잠을 자면 밤에 잠이 안 오겠죠. 몸이 끈적끈적하고 소금기도 있고. 그래서 이런 정글에서 수행하다가 아무래도 연못이나 조그마한 못을 찾게 됩니다. 물을 찾게 되요. 그러면 물을 찾아서 거기서 샤워를 하고, 밤에 그 물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앉아서 또 수행을 하는데. 거기서 수행을 하다보면 대게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거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보면 쥐죽은 듯이 앉아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그때 야생동물이 하나둘 오기 시작한다는 거죠. 물가에 물먹으러.

그 야생동물들은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그죠? 사람이 없는 곳에 살기 때문에. 사람이 있다는 인기척을 느끼면 바로 도망을 간단 말이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내가 꼼짝 안하고 앉아 있은면 있을수록 더 신기한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거에요.

 

처음에 나타난 것은 우리가 좀 익숙한 동물들. 거기서 눈도 깜작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거기서 조금 더 신기한 동물들이 나타나고, 거기서 또 진짜 완전히 마음을 정지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이 세상에 듣도 보도 못 한 뭔가가 그런 동물이 나타난다는 거에요.

 

책에서는 별로 보지 못했던 그런 신기한 동물들이 나타나는 거를 볼 수 있다고 그럽니다.

(일묵스님,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 제14 내려놓음과 삼매, 불교TV 2011-10-31)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14회 내려놓.docx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14회 내려놓.pdf

 

 

 

일묵스님은 불교TV 법문에서 좌선중에 일어나는 신기한 현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태국에 있을 때 태국의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태국의 유명한 아잔차스님이 한 말이라 한다.

 

선정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갖가지 신비한 현상들에 대한 글이다. 선정삼매에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익숙하고 아는 동물이 나타나지만 좀 더 지나면 생전 보지 못하였던 듣도 보도 못한 동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선정삼매는 어떤 상태일까

 

이렇게 선정삼매에 들면 식이 맑아져서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을 보게 되는데, 그런 선정삼매는 어떤 상태일까. 선정삼매에 대한 마하시사야도 법문집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선정

 

 선정(禪定)’이라 번역한 쟈나(jhāna/Sk.dhyāna) jhāyati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중성명사이다. 그리고 이 jhāyati라는 동사는 명상하다. 숙고하다, 태우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래서「청정도론」(Vis.IV.119)에서는 "대상을 명상하기 때문에, 혹은 반대되는 것을 태워 버리기 때문에 쟈나라 한다, aramma ūpanijjhānato paccanīka jhāpanato vā jhāna.”고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반대되는 것이란 감각적 욕망(kāmāchanda), 악의(vyāpāda),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 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⑤ 회의적 의심(vicikichā)의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nīvaraa)를 뜻한다.

 

이러한 선정은 사마타 수행(samatha-bhāvana)으로 얻어진다. 이런 수행은 삼매의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마음을 한 가지 선택된 대상에 고착시킴으로써 모든 정신적인 혼란이 제거되는 것이다.

 

장애는 억압되고 마음은 그 대상에 완전히 몰입된다. 경장에 따르면 선은 초선에서 사선까지 4가지로 정의되는 마음의 상태이고 이것을 바른 삼매[正定]라고 한다.

 

논장에서는 이것을 색계선(色界禪)으로 정의하고 경장에 나타나는 공무변처 등의 4처를 무색계선(無色界禪)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정과 삼매는 동의어로 취급된다.

 

경에서 말하는 네 가지 색계선은

초선(初禪),

이선(二禪),

삼선(三禪),

사선(四禪)이고

 

네 가지 무색계선은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경에서의 네 가지 색계선을 다시 살펴보면,

 

초선(初禪)

일으킨 생각(, vitaka), 지속적 고찰(, vicāra), 희열(, pīty), 행복(, sukha)의 네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선(二禪)

일으킨 생각(, vitaka)과 지속적 고찰(, vicāra)이 가라앉고 희열(, pīty)과 행복(, sukha)만 있고,

 

삼선(三禪)

행복(, sukha)만 있고

 

사선(四禪)

행복(, sukha)도 사라지고 평온(, upekkhā)이 완성된다.

 

물론 이 넷에 하나로 집중된 마음(心一境性, cittassa-ekaggatā), 즉 집중(, samādhi)은 두루 하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는 초선(初禪)의 일으킨 생각(, vitaka)이 가라앉고 평온(, upekkhā), 희열(, pīty), 행복(, sukha)이 있는 경우를 이선(二禪)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정은 결코 출세간의 경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정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중요하고 강력한 토대지만 사마타의 경지이기 때문에 번뇌가 소멸하지는 못한다.

 

번뇌(kilesa)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유위법(有爲法, sakhata-dhammā)의 무상·고·무아를 꿰뚫어 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선정 없이 위빠사나만 닦는 것을 순수 위빠사나(suddha-vipassanā)라고 하고 사마타 수행에서의 선정상태에 해당하는 순간적인 마음집중의 상태를 찰나집중(khaika-samādhi)이라 하고 있다.

 

 

경장에서 말하는 네 가지 색계선[四種禪]

초선(初禪)

일으킨 생각(, vitakka), 지속적 고찰(, vicāra), 희열(, pīti),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이선(二禪)

희열(, pīti),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삼선(三禪)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사선(四禪)

평온(, upekkhā), 집중(, samādhi)

논장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색계선[五種禪]

초선(初禪)

일으킨 생각(, vitakka), 지속적 고찰(, vicāra), 희열(, pīti),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이선(二禪)

지속적 고찰(, vicāra), 희열(, pīti),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삼선(三禪)

희열(, pīti),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사선(四禪)

행복(, sukha), 집중(, samādhi)

오선(五禪)

평온(, upekkhā), 집중(, samādhi)

 

 

(주해 모음, 김한상 번역 및 역주, 1.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2. 마하시 사야도의 십이연기3.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

 

  주해모음(김한상_역주).hwp

 

 

 

얻게 되는 것과 버려지게 되는 것

 

선정수행을 하게 되면 얻는 이점과 버리는 이점 두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을 집중하여 얻게 되는 것은 희열(, pīty), 행복(, sukha), 평온(, upekkhā) 등 좋은 것들이다.

 

반면 버리게 되는 것은 감각적 욕망(kāmāchanda), 악의(vyāpāda),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회의적 의심(vicikichā)  이렇게 다섯가지인데, 이를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nīvaraa)라 하여 오장애로 부른다.

 

이렇게 선정에 들면 기쁘고 행복하고 편안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한다. 만약 선정삼매에 들었는데 무시무시한 형상이 보인다든가 하여 마음이 편한하지 않으면 삼매에 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선정삼매의 즐거움은 세속에서의 오욕락에 비할 바가 아니라 한다.

 

마음의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그런데 이와 같은 선정수행과정에서 식이 맑아지다 보면 갖가지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경계에 떨어진다라고 표현한다. 태국 아잔차 스님이 말한 이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동물이야기가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경계에 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이 이야기에서 좋은 힌트를 얻을 수가 있는데요. 이 스님이 가만히 물가에 앉아 있는 이거는 우리 마음을 비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라고 비유를 할 수 있어요.

 

거기서 마음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앉아 있으면 처음에 마음이 많이 움직일 때는 익숙한 동물밖에 안 나타나요. 그러니까 몸을 많이 움직일 때는. 그러니까 결국은 마음을 많이 움직일 때는 평소에 익숙한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마음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최소화하면 할수록 보지 못한, 신기한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거죠. 최초에 신기한 게 나타나는 그게 일종의 니미따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묵스님,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 제14 내려놓음과 삼매, 불교TV 2011-10-31)

 

 

선정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신기한 동물에 대한 것을 니미따라고 표현하고 있다.

 

니미따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니미따란 무엇일까. 마하시사야도 법문집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에는 사마타를 위한 다양한 수행대상이 언급되고 있는데 주석서에서는 38가지로 정리되어 나타나고 「청정도론」에서는 최종적으로 40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사마타 수행의 핵심은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인데 대상에 집중을 해서 그 대상에서 익힌 표상을 일으키고,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닮은 표상(paibhāga-nimitta)이 될 때 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여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nīvaraa)가 극복되고 마음이 집중되는 것을 근본집중(appanā-samādhi)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마타 수행의 핵심이다.

 

(주해 모음, 김한상 번역 및 역주, 1.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2. 마하시 사야도의 십이연기3.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

 

 

니미따(nimitta)는 하나의 개념이다. 그 개념을 대상으로 하여 마음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런 니미따는 익힌 표상(uggaha-nimitta)’닮은 표상(paibhāga-nimitta)두 가지가 있는데,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면 감각적 욕망 등  오장애가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경계가 나타났을 때

 

이와 같은 니미따에 대하여 일묵스님은 이어지는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더 고요하게 더 마음의 움직임 없이 앉아 있으면, 나중에 한 번도 보도 듣도 못한 그런 게 나타나는데, 그런 동물이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뭐냐 하면 뭐겠어요? 이게 소위 말한 삼매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물가에 이렇게 고요히 앉아있다 갑자기 보지도 못한 동물이 딱 나타나요. ~ 저게 뭐냐 하고 놀래는 순간 도망가 버립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여기서 수행하는 것도 똑같다는 거에요. 내가 수행하다가 갑자기 희열과 행복이 드러나요. 이제 갑자기는 아니지만 그것이 아주 강하게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별로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상태니까 흥분할 수가 있잖아요. 그죠? 또는 두려워하거나 이래서 내가 그렇게 하는 순간 내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단 말이에요. 마치 신기한 동물이 나타나는데 눈을 떠서 보려고 하는 순간 그 동물은 도망가 버린다. 이거죠.

 

그런 것처럼 우리 마음도 고요해져 가서 희열과 행복이 나타나는데. 그때 이거는 내가 아차 하고 또는 보려고 눈을 깜빡이거나 몸을 약간 움직이거나 이렇게 하는 순간에 그건 도망가 버린다는 거에요. 그러면 그럴 때 내가 생전 보지도 못한 그 동물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겠습니까? 가만히 있는 겁니다.

(일묵스님,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 제14 내려놓음과 삼매, 불교TV 2011-10-31)

 

 

선정삼매중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동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사이에 그 동물은 도망가버린다는 것이다.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정삼매 중에 일어나는 희열과 삼매도 마찬가지라 한다.

 

이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희열과 행복이 나타났을 때도 그것을 느끼더라도 거기서 흥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상태에서도 여전히 이 미세한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하라 이 말이죠. 그냥 마음은 편안히 하면서. 그죠?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이래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이 와요. 이렇게 앉아있는데. 뭐 동물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게 있는데, 거기서 와~ 저게 뭐냐? 하고 놀래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혹시 날 잡아먹을까 봐 두려워하지도 말고, 움직임이 없이 가만히 있으면 이건 서서히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권에 들어온단 말이죠.

 

(일묵스님, 일묵스님 특별법문 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 제14 내려놓음과 삼매, 불교TV 2011-10-31)

 

 

희열과 행복이 나타났을 때 흥분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좋은 희열과 행복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런 마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하던 희열과 흥분이 나타나면 내가 과연 이런 행복을 겪어도 되나?”와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경계가 나타났을 때 흥분하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선정삼매의 목적은 니미따를 대상으로 하여 희열, 행복, 평온을 추구하기 보다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회의적 의심와 같은 오장애의 극복이 더 큰 목적임을 알 수 있다.

 

능엄경에서의 마장장애

 

이와 같이 선정수행이 마음의 희열, 행복, 평온과 오장애의 극복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송담스님은 불교방송 불교강좌 법문에서 참선을 함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마장장애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선사는 능엄경에 실려 있는 내용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엄경에 보면 색수상행식, 색음이 스러져서 없어지면, 색이라 하면 육체를 말하는 것인데, 안이비설신의 그 육체의 모든 기관이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하면 맑아지는 것인데, 그 색음이 맑아지면 여러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수상행식, 수상행식은 정신작용인데 그 정신작용이 맑아지고 안정이 되면, 맑아지면 거기에 여러가지 종류의 신기하고도 묘한 경계나 나타난 것입니다.

 

(송담스님, 불교방송 불교강좌 2012-05-02일자)

 

 

능엄경에 따르면 식이 맑아 졌을 때 갖가지 신기한 경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도가 높아지면

 

그런 경계는 어떤 것일까. 이어지는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면 왜 맑아지면 그러한 마장이 일어나냐 하면, 이 우주 법계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신기한 능력을 갖춘 마귀가 있습니다. 그런 마귀는 전생에 도를 닦다가 공부가 잘 못 되어 가지고, 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해서 거의 깨달음에 가까울 지경에 이르도록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 그런 것이 귀신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신통이 다 나가지고 참 그러한 귀신이 많이 있는데, 누구라도 도를 닦은 사람이 있으면 그 귀신이 시기가 나가지고 그것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가지고 방해를 치는 것 입니다. 자기도 자기자신이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도만 열심히 닦을려고 하면 그것을 시기 질투가 나가지고 그 방해를 치게 되는 것 입니다.

 

방해를 치기 위해서 항시 주변을 맴돌고 있어. 육근문두에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범해 들어 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도고마성이다, 도가 높아질수록 마구니는 무장 더 성해진다 하는 말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인 것입니다.

 

(송담스님, 불교방송 불교강좌 2012-05-02일자)

 

 

선사는 도고마성(道高魔盛)’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도가 높아지면 마음의 장애 또한 깊어진다는 말로서 이는 높은 도를 닦으려면 왕성한 마장을 극복해야 된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사는 이와 같은 마장에 대하여 마귀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런 마귀는 어떤 것일까.

 

마귀는 기독교 용어인데

 

마귀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용어로 알려져 있다. 사탄과 마귀라 할 때 그 마귀를 말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마귀 [魔鬼]

  

(1)

요사스러운 잡귀를 통틀어 이르는 말.

무당은 마귀 쫓는 주문을 외면서 신들린 춤을 추었다.

지붕의 한쪽이 허물어지고 토담이 무너진 폐가에는 마귀가 나올 것같이 으스스했다.

 

 (2)

[기독] 천사장이 타락하여 된 초자연적 존재. 여러 악귀를 거느리는 악의 왕국의 지배자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악행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실 때뿐이다.

유의어 사탄 3 (Satan) , 악마 (惡魔) (1)

 

(3)

[천주] 착한 일을 못하게 막는 세 가지 원수인 삼구(三仇)의 하나. 인간을 죄로 유인하는 자이다.

 

 

인터넷 국어사전에 따르면 개신교와 천주교 용어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마귀는  천사장이 타락하여 된 초자연적인 존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선사는 법문에서 기독교 용어인 마귀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더구나 도를 닦다가 한 생각 잘못한 탓으로 삿된 경계에 떨어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그러한 중생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이는 국어사전에서 표현된 천사장이 타락하여 된 초자연적인 존재와 너무 유사한 것이다.

 

그런 마귀에 대하여 선사는 귀신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귀신은 도를 닦는 사람들에 대하여 시기와 질투를 내어 도닦음에 대하여 방해 한다고 말 하였다.

 

초기불교에서 마라

 

이와 같은 선사의 마귀관은 초기불교와 매우 다른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마귀라는 말 대신 마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라에 대한 마하시사야도 법문집에 실려 있는 주석은 다음과 같다.

 

 

 

마라

 

‘마라(Māra)’는 √m(죽이다, 죽다)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문자적으로는 ‘죽이는 자’란 뜻이다. PED에서 ‘death; usually personified as Name of person, Death, the Evil one, the Tempter (the Buddhist Devil or Principle of Destruction). Sometimes the term māra is applied to the whole of the worldly existence, or the realm of rebirth, as opposed to Nibbāna.’라고 설명되듯이, 죽음을 의인화한 명칭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악마(惡魔)나 파괴의 화신이다.

 

경에 나오는 마라는 대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사악함의 화신으로서의 마라:

 

사악한 자, 악마라는 뜻의 빠삐만(波旬, Pāpiman), 해탈을 방해하는 자라는 뜻의 나무찌(Namuci), 검은 자라는 뜻의 깐하(Kaha), 끝을 내는 자라는 뜻의 안따까(Antaka), 방일함의 친척이란 뜻의 파라마타반두(pamatta-bhandu) 등으로 불린다.

 

(2) 천인으로서의 마라:

 

욕계의 최고 높은 천상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Paranimmitavasavatti)에 주재하는 천인이다. 그래서 마라는 중생들이 욕계를 못 벗어나도록 방해한다고 한다.(SnA.i.44; MA.i.28)

이런 마라는 범천(梵天, Brahmā)이나 제석(帝釋, Sakka)처럼 대단한 위력을 가졌고 마군(魔軍, Marāsena)이라는 군대도 가지고 있다.

 

(3) 세간적인 모든 존재로서의 마라:

 

이 마라는 열반(nibbāna)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윤회계, 즉 오온(五蘊)을 상징한다.

 

그래서 후대 주석서는 다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마라(pañca-māra)를 들고 있다.

 

(1) 신으로서의 마라(devaputta-māra)

(2) 번뇌로서의 마라(kilesa-māra)

(3) 오온으로서의 마라(khandha-māra)

(4) 업으로서의 마라(kamma-māra)

(5) 죽음으로서의 마라(maccu-māra)이다.

 

 

<초전법륜경> 1 97

(주해 모음, 김한상 번역 및 역주, 1.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2. 마하시 사야도의 십이연기3.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

 

 

깨달음의 도구로 활용되는 마라

 

초기경전에 따르면 매우 다양한 마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드시 귀신만이 마라가 아닌 것이다. 그런 마라는 초기경에 어떻게 표현 되어 있을까.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네란자라 강 언덕의 우루벨라 마을에 있는 아자빨라라는 니그로다 나무 밑에 계셨다.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은 바로 그 때였다.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히 앉아서 명상하는데 마음에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참으로 나는 고행에서 벗어났다. 참으로 내가 그 이로움이 없는 고행에서 벗어난 것은 훌륭한 일이다. 내가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어 깨달음을 이룬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때 악마 빠삐만이 세존의 마음속의 생각을 알아채고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시로 말했다.

 

[빠삐만]

 "젊은 수행자들을 생각하니 청정한 고행의 실천을 버리고

청정한 삶의 길에서 빗나가 부정한 것을 청정하다 여기네."

그때 세존께서는 '이것은 악마 빠삐만이다'라고 알아채고 악마 빠삐만에게 이와 같이 시로 대답하셨다.

 

[세존]

"불사(不死)를 위한 어떠한 고행도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네.

마른 땅위에 올려놓은 배의 노나 키처럼 아무런 쓸모가 없네.

계율과 삼매와 지혜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닦아서

나는 위없는 청정한 삶에 이르렀으니 죽음의 신이여, 그대가 패했다."

 

그러자 악마 빠삐만은 '세존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그곳에서 곧 사라졌다.

 

(따뽀깜마경- Tapokammasutta- Tapo Kammañca-고행과 제사경, 상윳따니까야 S4.1.1, 전재성님역)

 

  따뽀깜마경(고행과 제사-S4.1.1).docx  따뽀깜마경(고행과 제사-S4.1.1).pdf

 

 

 

위 초기경에 표현된 마라는 사악함의 화신으로서의 마라 즉, ‘빠삐만(Pāpiman)’에 대한 것이다. 이런 빠삐만에 대하여 한자어로 마왕 파순(波旬)이라 한다. 주로 해탈을 방해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마라는 언제 물러가는가

 

이와 같은 빠삐만이 등장할 때 경전에서는 머리털이 치솟을 정도의 두려움을 일으킬 정도로 무서운 모습 또는 아름답거나 추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경전에 등장하는 빠삐만은 다른 종교의 악마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 빠삐만은 항상 부처님을 유혹하는 반대편에 서서 부처님과 대조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길을 분명히 하는 일종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라는 자신의 정체가 들통 났을 때 물러가게 되어 있는데, 그 때 하는 말은 세존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나에 대해 알고 계신다라는 말과 함께 괴로워 하고 슬퍼하며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다.

 

한생각 삐끗하면

 

이처럼 마라는 무상, 고, 무아의 진리를 알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담스님은 불교방송 불교강좌에서 마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래서 도닦은 사람은 한 생각 단속하기를 무섭게 단속을 해야 하는 것 입니다. 진정계자일념이 진정계가운데 한생각이 염부조의팔천세다 염부에 있어서는 벌써 팔천세가 된다 이말이여.

 

정진을 해서 오음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눈한번 깜박이는 찰나간의 한생각이 이런 무서운 마귀를 자기 마음속에 불러 들이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생각을 그래서 그 삐끗한 한생각을 단속을 마치 화약고를 지키는 파수병이 불조심 하듯이 잠깐 실수로 담뱃불 하나 실수하면 그 어마어마한 화약이 터져서 그 많은 화약을 손실하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동시에 자기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한생각을 무섭게 단속해야 되.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걱정이 있을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 모든 역경계, 일체 팔경계를 향해서 그 한생각 미끄러지는 것을 무섭게 단속해야만 그러한 마구니의 권속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송담스님, 불교방송 불교강좌 2012-05-02일자)

 

 

선사는 한자성어를 사용하여 한생각단속을 잘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생각 삐끗하면 마구니의 권속에 떨어질 것이라 한다. 그래서 한생각 단속하는 것에 대하여 화약고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것을 단속할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무아(無我)인 이유

 

불교TV사이트에서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강좌를 본 적 있다. 그 프로에서 전박사가 말하기를 생각이라는 것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다라 고하였다. 이는 자신의 통제 밖에 있음을 말한다.

 

일어나는 생각은 막을 수 없다. 또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왜 그럴까. 초기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의식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빤짜왁기야경-Pañcavaggiya sutta- The Five-다섯경, 상윳따니까야 S21.2.1.7, 전잭성님역)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1.2.1.7).docx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1.2.1.7).pdf

 

 

 

부처님은 마음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마음이 내것이라면 내가 원하는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

 

이는 마음 뿐만이 아니다. 몸도 그렇다. 몸이 진정 내몸이라면 나의 몸은 병들지도 않고 늙지도 않아야 되고 죽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몸은 늙어가고 병들어 가고 죽어 간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몸은 내것이 아닌 것임에 틀림 없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섯가지 무더기로 나누어 보았을 때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오온은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마음 역시 통제 밖에 있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콘트롤 되지 않기 때문에 무아(無我)’라고 한다

 

마음의 특징은

 

따라서 생각 역시 나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은 그저 인연화합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그런 생각(마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마음은 길들이기 어렵다

- 마음은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진다

- 마음은 제멋대로 간다

- 마음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마음은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제멋대로이며, 재빠르게 일어나서 사라지고, 더구나 선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마음, 이런 생각이 매 순간 그것도 눈깜박 할 사이에 수도 없이 생멸하는 마음에 대하여 자신의 의지대로 단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사는 성이 날 때, 슬플 때, 억울할 때, 근심걱정이 있을때,  기쁠 때, 좋을 때, 모든 순경계, 모든 역경계에서 무섭게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비도(道非道)

 

하지만 초기불교에서 마음을 단속하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에서는 마음의 장애가 일어 났을 때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한 자에게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혜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도와 도아님에 대한 것은 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도가 아닌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자어로  도비도(道非道)’라고 한다.

 

열가지 경계

 

도비도는 이른바 도고마성에 대한 것이다. 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따라 마음의 장애 또한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에 대하여 선사는 마귀의 예를 들었지만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초보적인 위빳사나로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에게 열 가지 경계(결함)들이 일어난다. 위빳사나의 경계는 진리를 통찰함에 이른 성스러운 제자와 그릇되게 수행하는 자와 명상주제를 놓아버린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바르게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명상주제와 함께하는 위빳사나를 시작한 선남자에게 일어난다.

 

무엇이 그 열 가지 경계들인가?

 

①광명 ②희열 ③경안 ④결심 ⑤분발 ⑥행복 ⑦지혜 ⑧확립 ⑨평온 ⑩욕구이다.

 

(청정도론, 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04)

 

 

청정도론에 따르면 열가지 마음의 장애는 올바로 수행하는 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 한다. 그런 현상은 빛을 본다든가 희열, 행복 등 10가지라 한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은그릇되게 수행하는 자들에게 빛 등과 같은 열가지 현상은 나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수행중의 마귀가 출현하는 것은 바른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열가지 경계는 왜 마음의 장애일까

 

이처럼 바른 수행을 하면 나타나는 광명 등 10가지 현상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마음의 경계 또는 결함(장애)라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중에 볼 수 있는 빛, 환희, 행복 등이 왜 마음의 장애일까. 그것은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도처럼 보이지만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중에 빛을 보았을 때 이전에 나에게 이와 같은 지혜가 일어난 적이 없다. 확실히 나는 도에 이르렀고, 과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정도론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도가 아니라고 한다.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르 수행자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어떻게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가? 그가 상카라들을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광명이 일어난다.

 

광명이 법이라고 생각각하고 광명으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 일어남을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청정도론, 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05)

 

 

수행중에 빛을 보았을 때 그 상태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경계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경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빛에 대하여 무상하고 무아인 것을 관조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조해야 할까.

 

왜 무상하고 무아인가

 

청정도론에 따르면 수행중에 빛을 보았을 때 그 빛을 자아라고 착각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작은 나(소아)가 큰 나(대아)와 합일 과정에서 빛 등을 보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빛을 본 것에 대하여 깨달은 것으로 보고 자아또는 진아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정도론에 따르면 빛 등을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고 한다.

 

 

“만약 광명이 자아라면 자아라고 여김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가 아닌데도 자아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에서 무아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뜻에서 무상하다. 일어나고 사라짐에 의해 압박 받는다는 뜻에서 괴로움이다.”

(청정도론, 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26)

 

 

청정도론에 따르면 빛 등 10가지 경계가 일어 났을 때 이를 자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빛에 대하여 지배력을 행사 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오온이 나의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일 그 빛이 내 것이라면 그 빛은 내 뜻대로 계속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현상은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수행중에 본 빛 역시 무상한 것으로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 는 것이다.

 

어떻게 관조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빛 등 10가지 경계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관조하라고 한다.

 

 

“aya kho me obhāso uppanno,   아양 코 메 오바소 우빤노

so kho panāya anicco           소 코 빠나이양 아닛쪼

sakhato                         상카또

paiccasamuppanno                 빠띳짜사뭅빤노

khayadhammo                      카이야담모

vayadhammo                       와이야담모

virāgadhammo                     위라가담모

nirodhadhammo                  니로다담모

 

나에게 이런 광명이 일났구나.

그러나 이것은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고,

조건 따라 일어났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고,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Thisillumination has arisen.

But it is impermanent,

formed,

conditionally arisen,

subject to destruction,

subject to fall,

subject to fading away,

subject to cessation.”

 

(청정도론, 20장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

 ,126)

 

 

형성된 모든 것은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어서 무상한 것이라고 관조하는 것이 올바른 수행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조하면 모든 현상을 아닛짜(anicca, 무상), 둑카(dukkha, ), 아낫따(anatta, 무아)로 아는 것을 말한다.

 

도고마성무개념법문

 

선사들이 흔히 말하기를 문자를 세우지 말라고 한다. 이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한다. 선종에서 말하는 교외별전과 같은 개념이다.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은 문자와 언어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오로지 뜻과 마음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립문자와 교외별전을 주장하다 보니 경전과 교학에 등한시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불교tv에서 어느 스님은 법문 중에 회개하자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때 회계는 명백히 기독교 용어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참회가 맞다. 참회가 순수한 불교용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사의 법문에서 마귀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 또한 기독교용어이다.

 

이처럼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무개념의 법문은 어디서 나올까. 아마도 문자를 세우지 말라불립문자교학외 별도의 가르침이 있다교외별전이라는 조사스님들의 영향 때문이라 보여진다.

 

 

이렇게 경전과 교학에 대하여 무지하다 보니 어떤 경계에 떨어졌을 때 마귀를 본 것에 대하여 한생각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아가 있다는 관점에 말한 것이다. 이 몸과 마음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오온을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아인 것이다. 따라서 수행중에 나타나는 빛, 환희, 행복 등 열가지 경계에 대하여 내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모든 현상이 무상하듯이 열가지 경계 역시 무상하고 이고 무아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선사가 말한 마귀라는 것도 무상하고 무아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들어 오지 못하도록 한생각 다스리기를 화약고를 지키듯이 무섭게 다스리라고 한다면 이는 무상과 무아의 법칙에 맞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무상과 무아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귀나 한생각 역시 무상하고 무아인 것으로 보면 그 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초기경에서 보는 것 같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 무아이기 때문에 한생각 다스리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 그 대신 마귀나 한생각이 무상하고 무아인 것으로 관조한다면 마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초기경에서와 같이 마귀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고 말하면서 알아채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사라질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런 열가지 경계가 바른 수행을 하였을 때만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바르지 못한 수행을 하였을 경우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사가 말한 수행중에 나타난 마귀는 바른 수행을 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수행을 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나의 자아 또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수행한다면 그 수행은 큰 나와 합일 하는 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수행과정에서 보는 빛 등에 대하여 자아라고 인식하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경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방송 '마음으로 듣는 음악'프로에서 클로징 멘트로 하는 말이 “당신과 내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 앞에 경배 올립니다”이다. 당신과 나 안에 있는 근본 마음 자리 즉 불성에 대하여 빛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초기불교식으로 해석한다면 마치 도처럼 보이는 데 사실 알고 보면 도가 아닌 것이다.

 

무상하고 무아의 현상인 빛에 대하여 신성한 불성으로 본다면, 이는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하는 도비도(道非道, Maggāmagga, 막가막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012-05-02

진흙속의연꽃

 

 

빤짜왁기야경(다섯경-S21.2.1.7).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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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뽀깜마경(고행과 제사-S4.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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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짜왁기야경(다섯경-S21.2.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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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모음(김한상_역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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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14회 내려놓.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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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수행 바로알고 내려놓기-14회 내려놓.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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