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소녀의 미소, 2012년 서울국제연등축제
노점이 사라진 인사동거리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날씨이다. 또 습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은 상쾌한 날씨이다. 이렇게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날씨를 보기가 힘들다. 이런 날씨는 연중 봄과 가을에 볼 수 있는데 특히 봄, 그것도 오월의 날씨는 축복받은 날씨와 같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오월 연등축제일에 종로에 갔다. 연등축제는 저녁에 열리므로 늦은 호후에 인사동을 찾았다.
인사동거리는 차 없는 길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거의 일년만에 다시 찾은 인사동거리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노점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불과 일년전 까지만 하여도 주통로 양옆으로 각종 노점이 즐비하였는데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다.
노점이 사라진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최상의 날씨에 사람들은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외국인과 어우러진 인사동거리의 독특한 정취는 젊은세대들이 자주 찾는 명동과 다르고 스케일이 커 보이는 강남대로와 다르다.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관광지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인사동 거리는 부근의 조계사, 좀 더 멀리 떨어진 경복궁과 창덕궁과 함께 문화벨트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주말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늘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런 인사동거리는 찻집의 거리로도 알려져 있다. 요즘 커피가 대세이긴 하지만 이곳 인사동거리는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므로 다른 지역과 달리 차문화가 발달된 곳이라 볼 수 있다.
인사동 찾집에서
인사동 찾집에 들어 갔다. 인사동길 양옆으로 수 많은 골목길이 있는데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찻집이 있다. 한옥을 개조 하여 만든 찻집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 찻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다.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였던 각종 생활용품과 소품등으로 장식해 놓아서 현대화 된 커피전문점과 차별화 된다.
연등축제가 시작 되기 전 모임을 인사동 찻집에서 가졌는데 알고 지내는 법우님도 있고 처음 보는 법우님도 있었지만 불교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부담없었다. 더구나 찻집의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이어서일까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불자가 되었을까
모인사람들은 모두 불자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불자가 되었을까. 어떤 이는 교회다니다 불자가 되었다고 한다. 친척의 권유로 절에 다닌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천주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옆집에 사는 분의 권유로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권유’에 의하여 불자가 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이런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불자들이 주변의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일신교도들과 달리 불자들은 잘 포교를 하지 않는다. 불교를 믿어도 조용히 자신 혼자만 믿을 뿐 남들에게 권유하거나 절에 같이 가자든가 불교교대학의 입학권을 끊어 주는 등의 행위는 매우 드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불교를 알리고 권유하고 입학금을 대주는 등의 행위를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불자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대로변에 나갔더니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이 법우님들과의 대화 일 것이다. 불교라는 매개로 만난 법우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늦은 오후에 찻집에 들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덧 연등축제 행렬이 지나 갈 시간이 되었다.
인사동 찻집을 나와 종로에 당도하니 오후 7시 40분 가량 되었다. 이미 행진은 시작 되고 있었다. 종로 3가와 4가 사이에 자리를 잡고 행렬을 지켜 보았다.
대로 양옆으로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연등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일부로 나온 사람들로 보여진다. 대부분 불자들로 보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불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일반시민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대로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어떤 불교매체에서는 연등축제가 열릴 때 종로거리에는 물반 고기반 하듯이 외국이 절반정도 차지 하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해마다 이맘 때 쯤 연등축제를 보기 위하여 일부로 찾는 외국이 있을 정도로 이제 널리 알려진 것이 서울국제연등축제이다. 매년 성대하게 치루어지는 불자들의 최대잔치인 연등축제를 위하여 도로 양옆으로 특설 좌석이 마련 된 것을 볼 수 있다.
종로3가 탑골공원 앞에는 외국 대사와 귀빈을 위하여 나무로 만든 계단식 특설 좌석이 임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종로 3가에서 종로 2가 대로 양옆에는 간이 의자가 마련 되어 있어서 앉아서 편안하게 연등축제를 즐길 수 있더록 배려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전통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축제
해마다 연등축제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여러 해 하다 보니 연등축제 행렬이 어떻게 진행되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다. 올해는 좀 더 색다른 것이 없을까 기대를 해 보지만 그다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불자들의 최대잔치이자 우리나라 최대축제이고 더구나 올해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연등축제는 항상 감동적이다. 그것은 다른 축제와 달리 불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수 많은 축제가 있다. 축제리스트를 보면 계절에 따라 매달 열리는 축제는 수 백개에 달한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실시 되면서 각 지방 마다 한 개 이상의 지역 축제를 가지고 있고, 듣도 보도 못한 국적불명의 축제 또한 부지기 수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수백개의 행사 이름은 한결같이 축제라는 말이 붙는다. 그런 축제의 형식은 대부분 인기가수를 불러 놓고 이를 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TV에 늘 보는 쇼프로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전통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연등축제는 다르다. 모두가 참여하는 한마당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등을 들로 참여하는 불자들이 10만명에 달한다고 불교관련 언론 매체에서 말한다. 그리고 이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3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렇게 수십만이 어우러져 종로거리를 오색연등으로 수 놓은 연등축제를 또 보게 되었다.
“스님, 힘내세요”
이번 연등축제를 앞두고 불교계는 ‘개망신’을 당하고 있다. 소위 ‘스님도박사건’이라 하여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 메인뉴스에 보도 됨에 따라 전국민이 모두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불자들은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불자들이 잘 못하지 않고 일부 스님들의 허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 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특히 늘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이웃종교인들 보기가 민망하다는 것이다.
일부 무개념 스님들에 의하여 자행된 도박과 몰카, 그리고 고발 더구나 이어 터진 종단 최고위층과 관련된 성매매 사건등 각종 의문과 의혹을 바라보는 불자들의 심정은 참담한 것이다. 특히 성매매,성매수와 같은 말이 방송에 나올 정도라면 이는 승가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법우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매우 단호하다. 문제를 일으킨 허물 많은 스님들은 물러 가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이번 연등축제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기도 하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거리에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행진할 때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말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어떤 이는 등을 들고 걸어 가는 스님을 향하여 “스님, 힘내세요”하며 격려 하기도 하였다.
풍채가 좋은 스님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번 연등축제에 참가한 불자들과 이를 지켜 보는 시민들은 연등축제 그 자체를 즐길 뿐이었다. 하지만 연등축제 행렬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로에 사람들이 몰려 나올 때 종로3가 탑골공원 앞 특설 계단식 좌석에서 내려운 스님들의 모습은 달랐다.
외국 대사와 귀빈들과 함께 특설 계단식 좌석에서 관람을 마친 종단 고위층으로 보여지는 일단의 스님들의 모습은 행렬에 참가한 스님들과 달리 풍채가 좋아 보였다. 경찰의 특별 경호를 받으며 차에 올라 타거나 황급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뒤뚱’거리듯이 보였다.
구태의연한 신장장엄등
어느 스님은 연등축제에 대하여 이제 변화를 시도 해야 될 때가 되었다고 불교관련 매체에서 말하였다. 매년 치루어지는 행사가 똑 같은 패턴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에 공감한다.
수 년간 지켜 본 연등축제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연등을 든 일반참가자와 각 사찰소속의 연희단과 풍물놀이패 그리고 장엄등이다. 이중 장엄등의 경우 해마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용의 입에서 불을 뿜는다든가 공작이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보면 보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방법도 있다. 그것은 ‘신장장엄등’이다.
신장장엄등의 특징은 무섭게 생긴 형상이다. 이는 사대왕천의 지국천왕 등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서 칼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무섭게 생기고 마치 우상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장장엄등은 그다지 인기가 없다. 사진도 그다지 많이 찍지 않고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새로운 개념의 장엄등
신장장엄등이 출현 하였을 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나 매번 행사 때 마다 등장하기 때문에 연등축제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은 안다. 작년 것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고. 그러나 새로운 개념의 장엄등에는 매우 관심을 가진다.
‘가루라’불리우는 ‘금시조(金翅鳥)를 형상화한 장엄등이 이번에 처음 선보였다.
금시조는 불경에 나오는 신화적인 상상의 새이다. 금빛 날개를 달고 있으며 입에서 불을 내뿜고 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 초기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용은 부정적 이미지이다. 따라서 금시조는 용을 잡아먹는다는 새의 왕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의 하나라 한다. 그렇다면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검색한 결과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팔부중은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라 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팔부중에 가루라(금시조)와 용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시조는 용을 잡아 먹으며 불법을 수호한다고 하였는데, 그런 용이 또 팔부중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연등축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용장엄등이다.
팔부중(八部衆)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 가루와 용이 함께 장엄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팔부중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팔부중(八部衆)과 역할
No |
팔부중 |
역 할 |
1 |
천 (天, deva) |
하늘의 신, 비의 신, 구름의 신 과 같이 천계에 사는 무수한 신들의 통칭. 손에 금강저나 칼을 들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 |
2 |
용 (龍, naga) |
-고대 인도의 뱀 숭배사상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 고대 인도신화에서의 뱀은 물 속에 살면서 바람과 비를 부르는 능력을 갖춘 존재 -팔부중의 용은 뱀이나 용 모양의 관을 쓴 인간형상으로 조성되며, 칼이나 여의주, 용 등을 손에 쥐고 있다. 용은 생명과 재물을 보살피는 신 |
3 |
야차 (夜叉, yaksa) |
-인도 고전인 <베다>에 자주 나오는 귀신 -용맹스럽고 난폭하며 공중비행을 함 -본래 사람을 잡아먹는 나쁜 귀신이었다가 불교에 유입되어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음 |
4 |
아수라 (阿修羅, asura) |
-인도의 고대문헌에 등장 -아수라의 성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데, 한때 악신이었으나 불교에 와서 불법을 수호하는 선신으로 받아들여졌음 -아수라는 보통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三面六臂로 표현된다. 각 손에 해, 달, 칼, 금강저, 노끈 등을 지님 |
5 |
가루라 (迦樓羅, garuda) |
-날개 빛만으로도 신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는 신화속의 새로, 용을 잡아먹기도 함. -아름다운 날개가 펼쳐지면 그 빛이 336만리나 미치는 가루라는, 강한 힘으로 불법을 옹호한다고 함. |
6 |
긴나라 (緊那羅, kimnara) |
-미묘한 음성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음악의 신으로, 설산에 살고 있다고 인도신화에서 전함 -손에는 창을 들고, 말의 머리에 뿔이 있거나 눈이 세 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머리 좌우에 새와 소가 자리하기도 함 -인비인(人非人) 또는 뿔이 있는 가신(歌神), 반인반수(半人半獸) 등으로 불림 |
7 |
마후라가 (摩喉羅迦 ,mahoraga) |
-고대 인도에서 뱀이 신격화되어 탄생 -큰 배와 가슴으로 기어다닌다 하여 대복흉행(大腹胸行)으로 한역 됨 -땅속에서 모든 요귀들을 쫒아내는 사명을 띄고 있음 -사람 몸에 뱀 머리를 하거나 뱀 형상의 관을 쓰고, 지물로도 뱀을 듬 |
출처 : 팔부중(八部衆)
팔부중을 보면 대부분 인도 신화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팔부중은 초기경전에 등장하긴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초기경전에서 용은 부정적 이미지
용의 경우 ‘나가(naga)’라 하여 부처님제자의 신통력으로 제압하는 대상으로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독룡 난도빠난다를 조복시킨 신통제일 목갈라나 존자의 이야기가 초기경전과 주석서에 실려 있다. 그것이 ‘난도빠난다(Nandopananda) 용왕 길들인 이야기’ 인데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어느 때 아나타삔디까(Anathapindika, 급고독)장자가 세존의 설법을 들은 후 ‘세존이시여, 내일 아침 5백명의 비구들과 함께 저희 집에서 공양을 드십시요’라고 초대를 하고 돌아갔다. 세존께서는 승낙하셨다. 낮의 남은 기간과 반의 일부분이 지난 뒤 이른 새벽에 일만 세계를 둘러보셨다. 그 때 난도빠난다(Nandopananda)라는 용왕이 세존의 지혜의 영역에 와 있었다.
세존께서 ‘이 용왕이 나의 지혜의 영역에 와 있구나. 그에게 삼보를 신뢰함에 강하게 의지 하는 조건이 있는가’라고 전향하시고는 ‘ 이 용왕은 사견을 가졌고, 삼보에 청정한 믿음이 없다’고 보셨다. ‘누가 이 용왕을 사견으로 부터 벗어나게 할 것인가’라고 전향하시면서 목갈라나 장로를 보셨다. ‘아난다여, 여래가 천상으로 간다고 5백명의 비구에게 알려라.’
그날 용들은 난도빠난다 용왕을 위해 연회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천상의 보석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천상의 하얀 일산을 쓰고 세 무리의 무희들과 용왕의 권속들에 둘러싸여 천상의 그릇에 담겨진 음식과 마실 것을 쳐다보면서 앉아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궁전을 지나 삼십삼천을 향해 가는 것을 용왕이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지나갔다.
그때 난도빠난다 용왕에게 이와 같은 사악한 견해가 일어났다. ‘이들 까까머리 사문들이 우리 궁전 위를 바로 지나 삼십삼천의 세계를 들락날락하는구나. 지금 이후 부터 내 머리 위에 발먼지를 뿌리면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는 일어나 수미산 기슭에 가서 그의 본래의 몸을 버리고 그의 사리로 수미산을 일곱번 감고 그의 목을 위로 펴서 삼십삼천을 그의 목으로 덮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때 랏타빨라(Ratthapala)존자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전에는 이 장소에 서서 수미산을 볼 수 있었고, 수미산의 성벽을 볼 수 있었고, 삼십삼천을 볼 수 있었고, 웨자얀따(Vejayanta)궁전을 볼 수 있었고, 웨자얀따 궁전 위의 깃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무엇 때문에 지금은 수미산도 보이지 않고... 웨자얀띠 궁전의 깃발도 보이지 않습니까?’랏타빨라여, 난도빠난다라는 용왕이 우리에게 화가 나서 수미산을 그의 사리로 일곱 번 감고 목을 위로 펴서 그것을 막아 어둡게 만들고 서 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자를 길들이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승낙치 않으셨다. 그때 밧디야(Bhaddiya)존자와 라훌라(Rahula)존자와 모든 비구들이 차례대로 일어나서 청을 드렸다. 그러나 세존께서 승낙하지 않으셨다.
마지막으로 목갈라나 장로가 ‘세존이시여, 제가 길들이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목갈라나여, 그대가 길들이게’라고 세존께서 승낙하셨다. 장로는 본래의 몸을 버리고 큰 용왕의 모습을 창조하여 난도빠난다를 자기의 사리로 14번 감고 난도빠난다의 목위에 자기의 목을 편 뒤 수미산에 대고 압착했다.
용왕은 연기를 뿜었다. 장로도 ‘네 몸에만 연기가 있는 것이 어니라 내 몸에도 있다’고 말하면서 연기를 내뿜었다. 용왕의 연기는 장로를 괴롭히지 못했지만 장로의 연기는 용왕을 괴롭혔다.
그 다음에 용왕은 불꽃을 내 뿜었다. 장로도 ‘너의 몸에만 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몸에도 역시 불이 있다’고 말하면서 불꽃을 내 뿜었다. 용왕의 불은 장로를 괴롭히지 못했지만 장로의 불은 용왕을 괴롭혔다.
난도빠난다용왕을 신통으로 제압하는 목갈라나 존자
Yangon, Myanmar (General Photos)
사진 : http://www.pbase.com/taboo5/image/73748627
용왕은 ‘이 자가 나를 수미산에 대고 압착한 뒤 연기와 불꽃을 내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 ‘난다여, 나는 목갈라나다.’ ‘존자시여, 당신의 비구의 모습을 되찾으십시오.’ 장로는 그 용의 모습을 버리고 용왕의 오른쪽 귓구멍으로 들어가서 왼쪽 귓구멍으로 나오고, 왼쪽 귓구멍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귓구멍으로 나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왼쪽 콧구멍으로 나오고, 왼쪽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콧구멍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 용왕이 입을 열었다. 장로는 입으로 들어가서 뱃속에서 동쪽 서쪽으로 경행했다.
세존께서는 ‘목갈라니여, 목갈라나여, 조심하라. 이 용왕은 큰 신통을 가졌다’라고 말씀 하였다. 장로는 ‘세존이시여, 저는 네 가지 성취수단(如意足)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습니다. 세존이시여, 난도빠난다 뿐만 아니라 난도빠난다 같은 용왕 백, 천, 백 천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용왕은 생각했다. ‘들어갈 때는 내가 보지를 못했다. 이제 나올 때에는 그를 이빨 사이에 넣고 씹어 물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스님이시여, 밖으로 나오세요. 배 안에서 위 아래로 경행하면서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했다. 장로는 나와서 밖에 서 있었다. 용왕은 ‘이사람이구나’라고 보자마자 코로 질풍을 날렸다. 장로는 제4선에 들었다. 그 바람은 장로의 몸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나머지 비구들도 그 때 장로가 나투었던 신통을 처음부터 모두 나툴 수 있었지만 이 코로 질풍을 날리는 곳에 이르러서는 이처럼 빨리 알아차린 뒤 입정할 수 없다고 아시고 세존께서 그들에게 용왕을 길들이는 것을 승낙치 않으셨다고 한다.
용왕은 ‘내가 콧속의 질풍으로 이 사문의 몸털 하나도 움직일 수 없구나. 이 사문은 큰 신통을 가진 자로구나.’라고 생각했다. 장로는 그 몸을 버리고 금시조로 변하여 금시조의 질풍을 보이면서 용왕을 쫗아갔다. 용왕은 그 몸을 버리고 동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존자시여, 당신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장로의 발에 절을 올렸다. 장로는 ‘난다여, 스승님이 오셨다. 이리 오너라. 가서 뵙자’하면서 용왕을 항복시키고 독이 없게 만든 뒤 세존의 곁으로 데리고 갔다.
용왕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세존이시여, 당신께 귀의합니다.’라고 했다. 세존께서는 ‘용왕이여, 행복해라’고 말씀하시고는 비구 대중에 싸여 아나타삔디까의 집으로 가셨다. 아나타삔디까는 ‘세존이시여, 무슨 일로 늦게 오셨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목갈라나와 난도빠난다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네.’ ‘세존이시여, 누가 이기고, 누가 졌습니까?’ ‘목갈라나가 이기고 난도빠난다가 졌다네.’ 아나타삔디까는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7일 동안 빠짐없이 제가 공양을 올리는 것과, 7일 동안 장로를 공경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요’라고 말씀드린 뒤 7일 동안 부처님을 위시한 500명의 비구들에게 큰 경의를 표했다.
(청정도론, 제12장 신통변화)
이와 같이 난도빠난다 용왕길들인 이야기를 보면 초기불교에서 용은 부정적 이미지임을 알 수 있디.
자야망갈라가타(Jayamaṅgala Gāthā) 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서의 용에 대한 게송이 있다. 테라와다 불교전통에서 부처님의 여덟가지 위대한 승리에 대한 게송인 자야망갈라 가타에서도 표현 되어 있다.
Nandopananda-bhujagaṃ vibudhaṃ mahiddhiṃ
난도빠난다 부자강 위부당 마힛딩
Puttena thera-bhujagena damāpayanto
뿟떼나 테라 부자게나 다마~빠얀또
Iddhūpadesa-vidhinā jitavā munindo
이두~빠데사 위디나~ 지따와~/무닌도
Taṃ-tejasā bhavatu te jaya-maṅgalāni
땅 떼자사~ 바와뚜 떼 자야 망갈라~니
간교하고 영험한 난도빠난다 용
뱀으로 변화시켜 제자인 장로 길들이듯,
성자들의 제왕 신통력 보이시어 섭수하셨네.
이 위대한 힘으로 승리의 행운이 제게 임하길 바라옵니다.
(자야망갈라가타 -Jayamaṅgala Gāthā-吉祥勝利偈-행운과 승리의 노래, 전재성님역)
게송에서 장자는 목갈라나 존자를 말한다. 부처님의 제자 목갈라나 존자가 독룡 난도빠난다를 신통으로 제압하여 길들이듯이 부처님의 위대한 힘과 행운이 나에게 임하길 바라는 일종의 ‘수호경’이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는 자야망갈라가타를 테라와다불교 국가에서는 독립기념일과 같은 공적인 행사나 결혼식과 같은 사적인 행사에서 축가로 부른다고 한다.
신장장엄등은 이제 ‘퇴출’할 때
하지만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용은 불법을 보호하는 신으로 되어 있다. 용을 잡아 먹는 가루라(금시조)역시 불법을 보호 하는 신으로 되어 있다. 한편 초기불교에서 악처로 되어 있는 아수라 또한 불법을 보호 하는 신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 악귀로 알려져 있는 야차도 불법을 보호 하는 신으로 되어 있다.
왜 이렇게 초기불교와 다른 것일까. 그것은 자료의 설명에 따르면 법화경, 무량수경, 대반야경 등 중요한 대승경전에 예외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라 한다.
연등축제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용과 가루라(금시조)가 등장하였다면 머지 않아 아수라, 야차 등이 등장 할지 모른다. 그 형상은 기존 신장장엄등을 보는 것차럼 무시무시한 형상에 칼이나 무기등을 들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번 보아 온 연등축제에서 사대왕천과 같은 신장 장엄등은 점차 인기가 없는 것 같다. 도로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없고 또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연등축제가 천편일률적이고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위압감을 주는 무시무시한 형상의 신장장엄등은 이제 ‘퇴출’할 때가 되었다.
미녀와 장엄등
무시무시한 형상의 신장장엄등 대신 인기를 끄는 장엄등은 연꽃과 물고기등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개념의 장엄등이다. 더구나 그 장엄등에는 미녀도 타고 있어서 더욱 더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한복을 곱게 입은 미녀들이 타고 있는 연꽃과 물고기 문양의 장엄등은 인기가 매우 좋아 행진이 끝나고 도로변에 특별 전시 되었는데, 이를 사진찍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마치 연등축제 참가 ‘인증샷’이라도 하는 듯이 장엄등을 배경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등소녀의 미소
이번 연등축제를 보면서 사진을 수 없이 많이 찍었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가장 좋은 사진은 연등축제 참가자들의 환희에 찬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보는 사람도 즐겁게 만든다. 그런 참가자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소녀들에 대하여 어떤 명칭을 불러 주어야 할까. ‘촛불소녀’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 소녀들에 대하여 ‘연등소녀’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한복을 곱게 입은 소녀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을 항하여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지으며 사진 찍을 시간을 주자 여기 저기서 플레시가 터진다. 이들이야말로 연등축제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즐겁고 행복한 날
불자들의 최대잔치인 연등축제는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연등을 들고 축제에 참가한 사람이나 구경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입에서 미소가 그칠 줄 모른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오월의 축복받은 날씨에 불자들의 입가에 번진 미소와 기쁨을 담아 보았다.
연등축제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 연희단
연등축제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연희단이다. 규모가 있는 사찰에서 연등축제를 위하여 특별하게 신자들로 이루어진 연희단을 만드는데 참가자 중에서 가장 전문화 되어 있다. 일반참가자들이 자유로운 복장으로 연등을 들고 행진하는 것에 비하여 사찰연희단은 비교적 젊은 여성들이 한복을 개량한 의상을 입고 율동을 보여 주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외국인 불자공동체
연등축제에서 또 하나 볼거리는 외국인들이다. 그런 외국인들은 두가지로 분류 된다. 하나는 네팔, 몽고 등 불교권 국가의 공동체와 연등축제를 즐기기 위하여 온 외국인들이다.
먼저 아시아 불교권 국가 불자공동체를 보면 해마다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네팔, 몽고 등에서 참여 하였으나 올해의 경우 네팔과 몽고 불자공동체가 눈에 띈다.
네팔불자공동체를 보면 네팔에서 볼 수 있는 스투파 모양의 장엄등을 앞세우고 수 많은 사람들이 국제불교도기를 들고 뒤 따르는데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보인다. 그러나 이 날 만큼은 이들 네팔불자공체에 있어서 최고의 날 처럼 보인다.
몽고불자공동체의 경우 붉은 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독특한 문양의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따르는 불자들의 모습이 우리와 똑같다. 겉으로 보아 몽고인지 우리나라 사람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 같은 외모를 가진 그들 역시 오늘이 최고의 날 처럼 보인다.
외국인 스님과 외국인 참가자들
연등축제에 수 많은 외국인이 참여 한다. 종로 2가 방향쪽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높아지는데 물반 고기반 하듯이 외국인 반을 차지 할 정도로 외국인 천국이 된다.
그런데 외국인 중에는 연등을 들고 거리 행진에 직접참여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스님들이 많이 사는 ‘화계사’가 지나갈 때 외국인 스님과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지막 연등이 지나가자
이렇게 수 많은 연등이 지나간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연등행렬은 무려 2시간 반 가까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연등이 지나가자 대로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종각방향을 향하여 꾸역꾸역 가는 것이다.
장엄등을 배경으로
종각 주변과 조계사 길에는 각종 장엄등이 세워져 있다. 연등행렬을 마친 장엄등이다. 이 장엄등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종각 앞에는 특설무대가 설치 되어 있고 대로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흥겨운 공연이 시작 된것이다. 예전과 달리 인기가수를 초청하여 유행가를 듣는 식이 아니라 불교와 관련된 찬불가를 신명나게 부르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연희단이 율동을 하고 있다. 하늘에는 종이로 된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2012년 연등축제 음악동영상 자애송(Metta)
2012년 연등축제에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여 음악동영상을 만들었다. 모두 88장의 사진이 사용되었고 배경음악은 멧따(Metta,자애송)이다. 싱어 미상의 빠알리 자애송이다.
전세계 네티즌과 공유하기 위하여
위 음악동영상을 전세계의 모든 네티즌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제목은 ‘The majestic parade in Seoul, Lotus Lantern Festival and The Chant of Metta’ 하였는데, 이는 연등축제와 자애송(Metta)음악을 동시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Lotus Lantern Festival(연등축제)’이라는 키워드와 ‘The Chant of Metta(자애송)’ 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였다.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은 88장의 사진이 사용된 9분 분량이다. 이렇게 긴 음악이다 보니 고화질 동영상을 만든 결과 134메가의 용량이 되어 블로그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 블로그에는 100메가 이하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블로그에 올려진 것은 98메가용 동영상으로서 화질이 134메가와 비교하여 화질이 약간 떨어진다.
하지만 유튜브의 경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선명한 화질의 134메가를 그대로 올렸디. 유튜브에 올린 2012연등축제 음악동영상 주소창은 다음과 같다.
2012연등축제 유튜브 주소창
2012-05-2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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