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수행자와 학벌 그리고 빠띠소따가미(逆流道)

담마다사 이병욱 2012. 6. 28. 10:40

 

수행자와 학벌 그리고 빠띠소따가미(逆流道)

 

 

 

이해관계로 모인 것이 아니라서

 

법회모임에서 법우님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해관계로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만남이 여러 번 계속 되고 해가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또는 소개로 알게 된다.  

 

만일 자신이 무엇하는지 밝힌다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순수한 종교 모임에서 자신을 밝힐 필요도 없고 또 상대방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알 필요가 없다.

 

하지만 모임이 자주 열리다 보면 사회자가 소개할 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 그 법우님에 대하여 하나의 ()’이 생겨 난다. 그 법우님의 이름과 직업이 클로즈업 되면서 그 법우님의 이름을 들으면 그 법우님만의 독특한 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은 직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준 적이 있다면 이름과 짜장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 저 분이 짜장면 사 주었지하며 상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법우들을 대상으로 사기친 전력이 있다면 그 사람의 법명과 사기친 내용이 클로즈업 되면서 사기꾼 이미지가 형성된다. 이렇게 이름만 들어도 좋은 이미지 또는 좋은 상이 떠 오른다든가, 나쁜 이미지 또는 나쁜 상이 떠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대체적으로 불자들 모임은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모임이다. 또한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모임이다 보니 상대방을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신행공동체에 속한 도반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법회모임에서 만큼은 성차별이 있을 수 없는 매우 평등한 관계이다.

 

이처럼 불자들 모임은 평등 그자체라 볼 수 있는데, 재가불자들과 스님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특히 한국불교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스님을 승보로 보기 때문이다.

 

별종 취급하지 말라

 

한국불교에서 스님을 승보로 본다. 그러다보다 재가불자들은 스님들에 대하여 당연히 공경하고 공양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스님과 마주쳐도 반배를 하고 정식으로 인사 드릴 때는 삼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 스님들의 겉 모습은 재가자와 확연히 구분된다.

 

스님들은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재가자와 구별된다. 특히 조계종의 경우 독신승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청정한 이미지로 비추어 지고 있다. 그래서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살고,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 존재의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미지에서일까 최근 도박추문에 따른 여론의 호된 비판은 그만큼 스님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스님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다.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 졸리면 잘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스님은 재가자들에게 별종 취급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재가자들과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의 이 형성된 것이라 본다. 이른바 스님상이다. 그래서 스님은 이러 이러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스님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만일 그런 상에 대한 만족을 못하였을 때  비판과 비난, 비방으로 이어질 것임에 틀림 없다.

 

고착된 이미지

 

누구에게나 상이 있다. 그런 상은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떠 오를 정도로 되는데, 사실 그런 이미지는 현재의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 대한 것이다.

 

만일 10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하였다면 그 친구의 이미지는 10년 전의 것으로 고착된 것이다. 10년 동아 그 친구가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나서 새로운 면을 보았다면 그 이미지는 다시 수정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그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는 한 그 이미지는 마지막으로 보고 듣고 느꼈던 그 이미지 그대로 머물러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남는 말이 있다. 1 영어 교과서에 있는 문장이다.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려도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I am not what I was”

 

 

이 말은 무엇일까. 1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 문장을 접하자 알 수 없었다. 참고서를 보고서 비로서 알았다. 그래서 외웠는데 오늘날 까지 기억하는 문구이다.

 

“I am not what I was”에 대하여 한글로 풀이 하면 나는 옛날의 나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매우 심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을 말하는 것 같다.

 

지금 여기는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1분전은 이미 지나갔고, 1분 후는 아직 오지 않았다. 따라서 엄밀히 말한다면 1분 전의 나와 지금 여기서 나는 다른 것이다. 이를 10년 전으로 본다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것이 10년 전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옛날의 나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나는 옛날의 나가 아님에 틀림 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사람은 10년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꾸 10년 전의 그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만난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면 병장님또는 중위님이라 할 것이다. 만일 10년전 과장으로 이직하였다면 그가 다른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방식대로 과장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니다. 과거의 상이나 이미지가 고착화된 옛날의 그 사람일 뿐이다. 더구나 과거에  잘 나가던 사람이라면 더욱 더 과거의 이미지가 고착 된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가장 잘 나갔을 때 직책을 불러 준다. 예를 들어 그사람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였다면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장관님또는 의원님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보통이다. 대학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학벌이라는 꼬리표

 

우리나라를 학벌사회라 한다. 학벌이 좋아야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 취직도 잘 되고, 취직 되고 나서도 선배가 끌어 주고, 후배가 밀어 주는 관계가 형성되어 한 번 형성된 학벌이 평생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문대학을 나오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쓰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명문대학을 나오고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경력이 있다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좋은 학벌과 최종 직책이 마치 꼬리표 처럼 항상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꼬리표가 사회에서만 보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가자에게도 그런 꼬리표를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모 인터넷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을 보았다. 일종의 홍보용 글이다. 홍보용 글은 불교와 관련된 인터넷카페 이곳 저곳에서 동시에 올려져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자신의 소속된 단체나 절에서 계획하고 있는 법회나 강좌, 수련회 등 행사를 알리는 목적이 가장 크다. 특히 초기불교와 관련된 수행에 대한 소개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홍보성 글의 특징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을 오게 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그래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관심을 끌게 하는데. 이는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법사에 대한 이력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는 법회나 강좌, 수련회를 이끌어 가는 법사에 대하여 신뢰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선원장님은

 

사실 홍보성 글에서 법사의 이력은 결정적이다. 과거 어떤 일을 했는가에 따라 현재 어떠할 것인가에 대하여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친 경우도 있다. 초기불교와 관련된 어느 인터넷카페에 올려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선원장 스님 소개

OO스님은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이던 1996,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했다.

범어사 강원 졸업 봉암사 제방 선원에서 수행 정진하였고, 2005 이후 미얀마 파욱 명상센터를 비롯하여 프랑스 플럼빌리지, 영국 아마라와띠 세계 여러 불교수행단체에서 수행하였다. 2009 제따와나선원을 개원하여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윤회와 행복한 죽음(이솔 출판사)

 

주요 미디어 출연

KBS 4월초파일 특집극선객/ KBS 특집 다큐멘터리아라한 완전한 행복 / KBS 아침마당 화요초대석 / MBC스페셜마음에 근육을 만들다 / 불교TV 특별법문 <팔정도 수행 - 이해하고 내려놓기>(2011 7~11)

 

("젊은이를 위한 마음명상 왕초보 템플스테이" 개최합니다!|)

 

 

이 글은 초기불교와 관련된 템플스테이 소개에 대한 것이다. 글에서 법사에 대한 설명을 보면 매우 상세하게 표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사가 출가자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출가이전의 학력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기입하였고,  더구나 방송에 출연한 내용까지 알려 주고 있다. 이처럼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 S대 나왔어

 

먼저 학력을 보면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이고 수재들만 갈 수 있다는 S대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학사출신도 아니고 석사출신도 아닌 박사과정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박사과정 중에 출가 하였으므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 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박사과정과 박사는 다른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지 않고 박사과정 수학만 하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공부를 하다 만 것 같은인상도 준다. 이는 대학을 다니긴 다녔는데 학위가 없다면 인정해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외국에 나가서 박사과정 공부를 수 년간 공부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 타이틀이 없다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였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공부룰 하다 만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박사과정을 하였다든가 또는 이수 하였다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학력을 거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다름 아닌 , 이런 사람인데또는 , S대 나왔어라고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설령 법사스님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홍보글을 작성한 이의 의중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본다.

 

, TV방송 출연한 사람이야

 

다음으로 방송출연에 대한 것이다. 글을 보면 여러 편의 프로를 소개 하고 있다. 특히 KBS, MBC 등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것에 대하여 프로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명기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홍보를 보면 마치 맛집을 연상케 한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간판이 요란한 음식점을 볼 수 있다. 이른바 맛집 간판이다. KBS, MBC, SBS TV방송에 자신의 가게가 나왔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방송당시의 사진과 인터뷰 기사를 커다란 광고판에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음식점에서 TV방송출연을 강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TV에 나온 집이기 때문에 맛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저함 없이 음식적 문을 여는 것이다.

 

홍보성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 보았을 때 선원장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 나왔다니 더 이상 물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선원장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 TV방송 출연한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이력만 언급하는 것이 더

 

이와 같이 홍보성 글에 출가이전의 학력과 출가이후의 방송출연에 언급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수행이력에 대해서도 소개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백련암에 대한 내용이다.

 

백련암은 성철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그곳으로 출가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다름아닌 성철스님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스님의 이와 같은 이력에 대하여 어느 글에서 성철스님의 손상좌라고 표현한 것도 보았다.  성철스님으로 대표되는 선불교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원장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 성철스님의 제자이었어라고 오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홍보성 글을 보면 학력, 방송출연, 선불교와 초기불교의 수행이력 등 선원장에 대하여 매우 소상하게 기록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선원장의 이력만 본다면  참가 하는데 있어서 주저할 만한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출가자의 경우 출가이전의 학력이나 경력을 기재하는 것은 출가정신에 맞지 않다. 굳이 기재한다면 출가 이후 수행이력에 대한 것만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 S대 나왔어라든가 , TV방송 출연한 사람이야등의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편의 논문을 발표 하였는지

 

우리나라에 수 많은 수행자들이 있다. 출가수행자도 있고 재가수행자도 있는데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런데 출가수행자중에 학벌이 마치 꼬리표 처럼 따라 다니는 일부 스님들을 볼 수 있다. 그것도 S대가 아니라 옥스퍼드하바드대학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명문 대학출신이다. 그래서 스님 소개란을 보면 항상 이들 명문대 이름이 올려져 있고, 신문과 방송, 인터넷 인명사전에서도 반드시 명문대 이름을 언급해 준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말을 인용하는 것은 젊어서 한번 취득한 명문대 학위가 평생을 가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옥스퍼드, 하바드대와 같은 명문대 박사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은 이미 스타가 되었고, 심지어 국민멘토로 까지 부상하고 있다.

 

 

 

University of Oxford

 

 

하지만 박사타이틀에 걸맞는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박사논문을 제출한 이래 지금까지 몇 편의 논문을 발표 하였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의 박사학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늘 그 타이틀을 소개 받고 있는 스님들이 일년에 논문하나 제출하지 못하고 매스콤의 각광만 받는다면,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 옥스포드박사 출신이야또는 , 하바드 박사야라고 떠 벌리고 다니는 듯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출가사회에서 조차 학벌이

 

일부스님들의 학력을 보면 화려 하기 그지 없다. 명문대를 나와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박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옥스퍼드, 하바드 등 세계가 인정하는 대학에서 박사타이틀을 가졌거나 교수로 활동하는 스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 근처에 가 보지 못한 스님들도 매우 많다. 교육이라곤 강원에서 강원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인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동국대학에 다닌 정도의 학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강원이나 동국대 출신의 학력은 명문대 출신 스님들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스님의 소개란에 강원이나 동국대 학력이 크게 기재 되지 않고 또 소개 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출가사회에서 조차 학벌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출가하게 되면 과거 이력에 대하여 묻지 않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는 왜 출가 하였느냐고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미 세속을 떠나 세상과 인연을 끊은 마당에 무슨 학벌이나 과거 경력에 대한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출가자가 자신의 학력이나 이력등에 대하여 말하고 다니고 있다면 그에 대하여 진정한 출가자 또는 수행자라고 말 할 수 없다. 아직까지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행자에게 학벌이 도움이 안되는 이유

 

그렇다면 출가자 또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세속의 학력이나 이력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Kicchena me adhigata1 halandāni pakāsitu,
R
āgadosaparetehi nāya dhammo susambudho.
Pa
isotagāmi nipua gambhīra duddasa au,
R
āgarattā na dakkhinti4 tamokkhandhena āvutāti.

 

[세존]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왜 내가 지금 설해야 하나.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드네.

흐름을 거슬러가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는 보기 어렵네.

어둠의 무리에 뒤덮인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I attained this with difficulty, why should I preach
By those overcome by greed and hate, this is not easy to realize.
It's clever, deep, difficult to see, subtle and goes against the stream.
The passionate do not see it, covered by a mass of darkness.

 

(아야짜나경-Āyācanasutta-청원경, 상윳따니까야 S6.1.1, 전재성박사역)

 

아야짜나경(청원경-S6.1.1).docx

아야짜나경(청원경-S6.1.1).pdf

 

 

 

부처님은 참으로 어렵게 진리를 성취하였다고 하였다. 그런 진리를 누가 알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세상의 흐름과는 거꾸로 (Paisotagāmi-빠띠소따가밍, against the stream)’가는 역류도(逆流道, Paisotagāmi)’이기 때문이다.

 

역류도(逆流道, Paisotagāmi, 빠띠소따가미)

 

왜 그럴까. 그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대표되는 번뇌를 놓아 버렸을 때 해탈과 열반은 성취가능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다르다. 세상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 세상의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다. 이를 세류도(世流道)’라 한다. 대표적으로 오욕락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부처님의 진리는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역류도’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한 것이다. 그러자 사함빠띠는 “생사에 지배받는 슬픔에 빠진 뭇 삶을    보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비록 탐진치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중에 부처님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외 명문대를 나온 것이 수행자에게 자랑일 수 없다. 지식이나 상식 등 알음알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해탈과 열반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행의 방해 요소로 작용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실 역시 역류도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에 해로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S대를 나왔는데” “내가 박사출신인데” “내가 장관을 지냈는데하며 아상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식욕, 성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으로 대표되는 오욕락이라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가는 세류도(世流道)’ 아니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대표되는 번뇌를 소멸시켜 해탈과 열반의 실현이라는 세상의 흐름에 거슬러 가는 역류도(逆流道)’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 따라서 출가이전의 학력이나 이력, 경력 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는 출가수행자 뿐만 아니라 재가수행자도 마찬가지라 본다.

 

 

 

2012-06-2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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