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인생의 2막을 살아가는 사람

담마다사 이병욱 2012. 7. 9. 15:07

 

인생의 2막을 살아가는 사람 

 

고향 앞으로

 

일요일 고향을 찾았다. 유년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을 자주 가 보지 못하고 있는데, 합동제사를 고향 큰집에서 하기로 함에 따라 이번에 내려 가게 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승용차를 몰고 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에 따라 운전하는데 있어서 체력소모가 심하다. 더구나 귀경길에 막히는 것 까지 감안하면 끔찍하다.

 

고속버스도 고려해 보았으나 역시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몇 년 전 개통된 KTX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인터넷예약을 하니 발권까지 모두 되는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다. 더구나 역에서 타고 내리는 절차도 간단해서 싱겁기까지 하다. 더구나 금새 도착하지 그 먼 거리가 마치 마실을 다녀 오는 듯한 느낌이다.

 

KTX에서 망갈라경을 모두 외우고

 

새벽의 KTX는 한산했다. 사람이 몇 명 보이지 않아 텅텅 빈 채로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X에 오르니 폐쇄된 공간에 특유의 묵직한 느낌이 다가 온다. 거기에다 속도가 붙으니 잡생각이 나지 않고 정신 집중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못다 외운 망갈라경(행복경, Sn2.4)를 외웠다. 11번과 12번 게송이다.

 

이 두 게송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다 외운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였다. 마침내 모두 외우게 되었음을 확인하고 또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지난 6 5일 일본성지순례 때부터 외우기 시작한 망갈라경을 약 한 달 걸려서 모두 외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외웠으니 이제부터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틈이 나면 외워야 한다.

 

외우긴 외우되 천천히 음미하면서 암송해야 한다. “나모라 다나다라…”와 같이 아무 뜻도 모르고 매우 빠르게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알면서 암송하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였을 때 기쁨이 넘쳐 난다. 해 내었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해 낸 것이다. 이는 불로소득이 아니다. 땀과 노력의 결과이다. 그리고 평생 함께 할 동반자이다. 책을 보지 않고도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망갈라경을 외우면서 열한번째 게송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게송은 다음과 같다.

 

 

11.

Phuṭṭhassa lokadhammehi           풋탓사 로까담메히

citta yassa na kampati,        찟땅 얏사 나 깜빠띠
Asoka
viraja khema          아소깡 위라장 케망

eta magalamuttama         에땅 망갈라뭇따망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망갈라경-Magalasutta-행복경- 위대한 축복의 경, 숫타니파타Sn 2.4, 전재성님역)

 

 

게송에서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이말은 법구경 81번 게송에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

 

 

Selo yathā ekaghano               셀로 야타 에까가노

vātena na samīrati                와떼나 나 사미라띠

eva nindāpasasāsu             에왕 닌다빠상사수

na samiñjanti paṇḍitā            나 사민잔띠 빤디따.

 

큰 바위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과 비방에

흔들리지 않는다.

 

(법구경, Dhp81, 거해스님역)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칭찬과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마치 큰 바위와 같다고 묘사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런 지혜는 어떤 것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지혜는 끝이 좋은 것이라 하였다. 처음이 좋은 것이 이고, 중간이 좋은 것이 이고, 끝이 좋은 것이 이기 때문에 계정혜 삼학을 닦으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개발이 안 된 것이 오히려 다행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보는 산하는 옛날 그대로이다. 산하대지가 바뀐 것이 없다. 이런 점은 매우 행운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산이 사라 지고 멀쩡한 건물이 해체 되어 스카이라인이 바뀌기 일쑤인 도시와 다르다. 개발이 안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런 고향산천은 넓은 개활지에 자리잡고 있다.

 

 

 

 

 

 

 

 

 

 

 

 

앞이 툭 터져 구릉이 연달아 있는 대지 너머에 아스라히 산이 보인다. 아직까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고 앞으로도 개발이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이다.

 

모든 것이 옛모습 그대로

 

몇 호 되지 않은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낯익은 풍경이 펼쳐 진다. 모든 것이 옛모습 그대로이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길이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전에는 신작로라 하여 비만 오면 진창이 되는 황토길이었으나 이제 모두 포장 되어 있다. 심지어 마을의 집 앞까지 모두 포장 되어 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

 

가고 있는 집은 큰집이다. 아직까지 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 내외가 오랫동안 사시다가 10년전 모두 돌아가시고 난 다음 빈집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잡초가 무성하고 나무들이 마음껏 자라고 있다. 제사나 벌초 등 일년에 몇 차례 활용하는 것 외에 늘 비어 있기 때문에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사람이 사는 집과 살고 있지 않는 집은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큰아버지 댁은 전형적인 초가삼간이다. 지붕만 기와로 올렸을 뿐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칸에  부엌과 광이 있는 구조로서 6.25 전에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고 큰 아버지 댁 7남매가 나고 자란 곳이다.

 

 

 

 

 

 

 

 

 

 

 

 

 

 

 

 

 

유년기 시절 눈길이 머물던 곳을 다시 한번 쳐다 보니 수십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모인 사촌형님들도 주로 세월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초목은 알아서 피고지고

 

사람이 없는 집에 화초에 초목은 알아서 피고지고 있다. 누가 보살펴 주지 않아도 비옥한 토양위에 마음껏 가지를 뻗고 있는 것이다.

 

 

 

 

 

 

 

 

 

 

 

 

 

 

 

 

 

 

 

 

 

 

 

 

집 뒤켠으로 가 보았다. 대나무와 시누대로 가득하다.

 

 

 

 

 

 

 

 

 

 

 

희귀한 호랑가시나무

 

뒤켠에서 매우 희귀한 나무를 발견 하였다. 호랑가시나무이다.

 

 

 

 

 

 

호랑가시나무가 왜 이곳에 있을까. 형님들에게 물으니 보호용으로 키우는 것이라 한다. 일종의 보호수인 셈이다. 예전에 마을어귀에 많이 있었으나 누군가 자꾸 채취해 감에 따라 이제 호랑가시나무가 보기 힘들어 졌고 희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에 심어 놓은 것이라 한다. 그런 호랑가시나무는 어떤 것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호랑가시나무의 잎이 호랑이 발톱같이 생겼다고 하여 묘아자(描兒刺) 나무라 하고, 학명은 Chinese holly이고, 감탕나무(Aquifoliaceae)과 속하는 상록관목이라 한다.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 인터넷 백과사전)

 

 

 

키는 2-3미터에  가지가 많고 잎은 타원모양으로 6각형으로 광택이 나며 가장 자리에 1-20개의 가시가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호랑가시나무는 외국의 다른 호랑가시나무에 비해 잎 모양이 예쁘고, 나무의 모양과 열매도 아름다워 조경수 및 절화재로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귀한 호랑나무의 열매는 한약재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호랑가시나무가 마구 채취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집 뒷켠에서 비밀스럽게 기르고 있는데 세월이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는 크지 않다. 해마다 조금씩 자라는 것이다.

 

 

 

 

 

 

 

 

 

 

작렬하는 칠월의 태양

 

7월의 태양이 작렬한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통 푸르름만 보이는 대지 한 가운데 서 있으니 햇볕이 따갑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이다. 그런 대지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농촌에 원래 사람들이 적기도 하지만 더워서 일까  들에 어쩌다 한 두 사람 보일 정도이다. 이는 도시처럼 자동차와 인파의 동적인 흐름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정적이고 마치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산소 가는 길에 보는 숲은 우거질 대로 우거져 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다 보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일까 길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정글을 뚫고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껏 우거진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시누대이다.  조릿대라고 하는 시누대는 원래 화살을 만드는 용도라 한다. 산죽 보다 훨씬 큰데 그렇다고 대나무는 아닌 것이다. 그런 시누대가  우후죽순식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여성목사가 된 사촌

 

제사를 지내고 나서 오후가 되자 반가운 얼굴이 찾아 왔다. 동갑내기 사촌이다. 백부의 7남매 중에 가장 막내이다. 동갑이라고 하지만 생월이 끝에서 끝이기 때문에 사실상 누나나 다름 없다. 그래서 등치도 크고 마음도 너그러워서 누나처럼 잘 돌봐 주었다. 그런 기억은 유년기에 해당된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 위 아래 집에 살며 유년기를 함께 한 것이다. 그런 사촌을 칠팔년만에 본 것이다.

 

그런데 사촌은 그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성목사를 말한다. 사촌이 오래 전부터 교회에 다닌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렇게 목사가 되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말을 들어 보니 목사가 되기 위하여 10년 전부터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 사이에 목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 것이다. 

 

왜 목사가 될려고 했는지 궁금하였다. 가장 큰 원인은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라고 한다. 무언가 특별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체험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위의 친언니가 암으로 사망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뜨믄 뜨믄 만났기 때문에 중간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그 때 당시 같이 기도원을 다니면서 기도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런 영향이어서인지 1년간 더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성령체험과 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어서라고 보여 진다.

 

이렇게 목사가 되려 하자 남편의 반대도 무척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해 내었는데, 이에 대하여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세자녀의 어머니로서 한남자의 아내로서 또 집안일을 꾸려 나가야 하는 많은 일을 하면서 인생의 제2막을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여 진다.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그런 사촌은 외관부터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마치 여학교의 여교장선생님을 보는 듯 하다. 목소리도 걸걸해 보인다. 아마도 설교와 찬송등 목회일을 매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칠팔년만에 완전히 바뀐 모습으로 나타난 사촌은 사실 그만한 그릇이라 보여진다. 유년기 때도 지금과 같은 대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촌은 시골에서 살면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그때 당시 고작 의무교육을 받은 것이 정식교육의 전부이었다. 공부할 그릇은 되어 있었지만 가난한 농촌에서 교육을 시킬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촌은 효녀 이었다. 칠남매 중에 가장 막내인 사촌은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에 홀로 나이 60이 가까운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지으며 살았다. 마치 처녀 뱃사공 노래 가사처럼 처녀농군으로 산 것이다. 이는 체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치 여장부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를 모시고 힘든 농사를 지으며 살다 결혼을 하였는데, 매우 어렵게 살았다고 하였다. 가난한 집에 시집 가서 고생을 많이 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이 되자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 보고 싶어서 목사가 된 것으로 보여 진다. 더구나 성령체험 또는 감화를 받았다 하니 남 보다는 좀 더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고 보여 진다.  

 

아픈사람들을 치유해 준다고

 

목사가 된 사촌은 지금은 개척교회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조금 더 물어 보니 기도원이라 한다. 요즘 기도원은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도시에도 있다고 한다. 더 자세하게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개척교회 겸 기도원 성격이라 보여진다.

 

개척교회는 이제 시작이라 한다. 이제 막 시작 하였지만 잘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겠지 뭐라고 낙관하는 분위기이다. 그런 기도원에서 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하여 물어 보었다. 아픈사람들을 치유해 준다고 한다. 정신적 치유라 한다. 기도와 설교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해 주면 모두 고맙다고 인사한다고 한다.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런 사촌은 누구나 좋아 하는 호감형이다. 외모도 준수하지만 늘 미소을 띠고 있어서 온화해 보이고 또 마음 도량이 넓어 포용하고 남을 정도이다. 이는 유년기나 청소년 때 부터 알아 본 사실이다. 그런데 때가 되자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생의 승리자

 

사촌은 비록 초년운은 좋지 않았으나 스스로 자기 앞날을 개척하여 이제까지 삶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자 모두 목사님 오셨네하며 맞이 한다. 가장 막내가 졸지에 가장 높은 자리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목사가 된 사촌과 유전적으로 피는 몇 분의 일 공유하고 있으나 정신세계는 다르다. 불교적 정신세계와 기독교적 정신세계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교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의 교리는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 영원론에 해당되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불교를 보는 눈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만나서 교리논쟁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라 보여 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인생의 2막을 열어 살아가는 사촌의 당찬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더구나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 불행에 처한 사람, 중병에 걸린 사람 등 소외 받는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 간다고 하니 비록 종교는 달라도 불교식으로 본다면 보살행이나 다름 없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 하고 또 다른 인생, 2의 인생을 살아가는 밝고 환한 사촌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사촌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2-07-0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