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오!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우리 밖에 나온 사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2. 7. 14. 16:36

!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우리 밖에 나온 사자

 

 

 

왜 일이 없을까? 왜 일이 없을까?

 

“ 나, 일좀 달라고, 왜 이렇게 일을 안 주시냐고, 노상 기도하면서 울면서…” 텔런트 서우림씨가 한 말이다. 불교TV ‘이상벽의 이야기쇼 붓다야 붓다야’에 출연한 서우림씨는 한때 두 편 세 편 겹치기로 출연하며 바쁘게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일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너무 오래 되다 보니 답답하여 도선사 석불전에 앉아 일 좀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왜 일이 없을까? 왜 일이 없을까? 일이 없으면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일이 있어야 먹고 사는데 일이 없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거리를 찾아 본다. 이곳 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일을 준다는 보장이 없다. 어느 업체의 경우 1년을 쫒아 다녀 보았지만 한 건도 하지 못하였다. 어느 업체의 경우 여직원 단계에서 차단 당한다. 그렇다 보니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대부분 세 번 거절 당하면 포기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여 일거리가 대기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막연한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키워드 광고를 하였다.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는 경우 확률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필요에 의하여 전화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키워드 광고로 전환한 후에 기업을 찾아 다니며 일을 구걸하는 행위는 그만 두었다.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들쭉날쭉 하다. 있을 때는 있고 없을 때는 없다. 일이 없을 때는 전화 한건도 걸려 오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점점 속이 타들어 간다. 그런 때 속으로 하는 말은 “왜 일이 없을까? 왜 일이 없을까?”이다. 탤런트 서우림이 걱정하는 것과 똑 같은 고민이다.

 

탤런트 서우림은 일이 없을 때 도선사 석불전에 가서 매달리다 시피 일을 달라고 기도 하였다고 하지만, 일이 없을 때 아무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노느니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많이 배우게 된다. 일과 글쓰기는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이 많으면 글쓰기 시간이 줄어 들고, 반대로 일이 없으면 글쓰기 시간은 늘어 날 수 밖에 없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이렇게 일이 없는 상태로 한참 지속되다가 마침내 일이 들어 오게 되면 매우 반갑다.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손님은 일을 주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고객이야말로 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일거리가 들어 오면 겹쳐서 들어 올 때가 많다. 비도 적당하게 오면 좋듯이, 일도 적당하게 분배 되어 들어 오면 좋으련만 겹치기로 들어 오는 것은 보면 세상사가 꼭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여러 개 들어 왔다는 것은 신바람 나는 일이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출해야 할 고정비 와 삶을 유지해야 할 돈이 들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오랜만에 손놀림을 하면 안심이 된다. 그런 작업은 매우 익숙하다. 늘 하던 일이기 때문이다.

 

일을 안하고 살 수 없을까?

 

일을 안하고 살 수 없을까? 늘 이런 생각을 해 보지만 바램에 그칠 뿐이다. 아직까지 일을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안전을 책임 질 수 있지만, 남이 나의 안전을 결코 책임져 주는 것은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

 

일을 안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을 안하고 살 만큼 돈이 있으면 된다. 평생 먹고 살만큼 많은 돈을 벌어 놓았다면 일 걱정 없이 인생을 유유자적하며, 나쁜 말로 빈둥거리며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케이스는 극소수 일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중 5%이내가 이에 해당 될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죽는 그 날까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일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부류는 공무원들이라 볼 수 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 되어 있어서 퇴출 될 걱정이 없고, 또 퇴직한 후에는 완벽한 연금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늙어 죽을 때까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마치 천상을 보는 것 같은 완전한 노후 복지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은 엄밀히 따진다면 공무원 자신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신들의 노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 신분이 보장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도 공무원들이고, 정년 후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이 없도록 연금제도를 만든 것도 공무원들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물론 정년후에도 노후가 보장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공무원 자신들에게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늙어 죽는 그 순간 까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만든 공무원 연금시스템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사실상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 575만명이라 한다. 이들 비정규직은 언제 그만 둘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보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계약 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을 수 없다. 노후 대책은 커녕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4대 보험도 되어 있지 않아 삶 자체가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비정규직 보다 더 불안정한 것이 자영업자들이다. 흔히 말하는 1인 사업자들이다. 수 백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은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놀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규직 보다 더 못한 케이스이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의 월 평균 급여가 123만이라 하는데,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의 경우 이보다 더 못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런 비용으로 자녀를 교육시키면서 살아 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다.

 

누구나 꿈 꾸는 것은 완벽한 복지사회이다. 법을 만들고 법을 시행할 권리가 있는 공무원들만 늙어 죽을 때 까지 완벽한 복지 혜택을 누릴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은 혜택을 누릴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비정규직과 자영업은 갈수록 늘어 나게 되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될 지 모른다.

 

미래가 완벽하게 보장 되어 있다면

 

만일 미래가 완벽하게 보장 되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로 돈이 많다거나 완벽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빈둥거리거나 유유자적하게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일거리를 찾아 도시의 들개 처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고 미래에 대한 대책이나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어 삶은 한층 풍요롭고 여유로워 질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천상의 삶을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고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는 천상에서의 삶은 도를 닦기에 부적합 하다고 한다. 너무 편하고 즐거워서 도를 닦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라 한다. 반면 너무 고통스럽기만 악처의 경우 고통 그자체만 계속 되기 때문에 역시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즐거움과 고통이 적절히 교차하는 세계 즉, 희로애락이 있는 세상이 도를 닦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천상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세 계절에 적합한 궁전이 있어서 왕처럼 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한 것은 안락한 생활이 도를 이루는 데 있어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도와 과를 이루기 위해서 완벽한 복지시스템은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도를 이루는데 있어서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천상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수행을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일어 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가 완벽하게 보장 되어 있다면 그 즐거움을 누리려고만 할 뿐 일부러 수행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것이 아니기에

 

월급생활자들이 있다. 이들은 비록 완벽한 복지시스템의 혜택이라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영업자들과 다르다. 최소한 몇 달 벌어 몇 달 벌어 먹고 살기 때문이다. 좀 더 규모가 큰 기업이라면 몇 년 벌어 몇 년 먹고 살 정도가 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면 수십년 벌어 수십년 벌어 먹고 살 정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월급생활자들은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 오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월급생활자 이다 보니 주인의식이 없다. 시간 되면 퇴근 해야 하고, 휴일날 나와서 일하는 것을 손해로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일과 자신의 삶과의 구별이 확실하다.

월급생활자들은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기 때문에 자신의 여가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누군가 여가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어느 면으로 보아 철저하게 이기적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조금도 손해 나는 일을 하려 않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대게 월급생활자들은 정년에 이르기 전에  퇴출로 끝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꿈이 깨진다. 좀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좀 더 큰 차, 더구나 정년이후의 편한한 삶을 위한 설계도 여지 없이 깨진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급생활자들이 일부로 시간을 내서 수행을 하기란 쉽지 않다.

 

!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하면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 든지 할 수 있다. 특히 시간을 내는 것에 있어서 자유롭다. 그런 자유는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테리가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Sumuttā sādhu muttāmhi tīhi khujjehi muttiyā,
Usukkhalena musalena patin
ā khujjakena ca,
Mutt
āmhi jātimaraā bhavanetti samūhatāti.
Ittha
suda muttā therī gātha abhāsitthā'ti.
 
(Muttātherīgāthā, 1. 11)

 

 

! 자유! 정말로 나는 벗어났다.

세 가지 굽은 것들에서 벗어났다.

절구, 절구공이, 그리고

마음이 비뚤어진 남편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생사에서 벗어났다.

윤회로 이끄는 것은 뿌리째 뽑혔다.

 

(테리가타 11, 뭇따비구니, 일아스님역)

 

 

So freed! So thoroughly freed am I! —

from three crooked things set free:

       from mortar, pestle,

       & crooked old husband.

Having uprooted the craving

that leads to becoming,

I'm set free from aging & death.

 

(I.11 — Mutta {v. 11}, Thanissaro Bhikkhu )

 

 

 

 

Bo Tree

 

 

수행녀 뭇따비구니는 세 가지 굽은 것으로부터 벗어 났다고 하였다. 절구, 절구공이, 남편이다. 굽은 것을 게송에서는 비뚤어진 것으로 묘사 하였다.

 

이와 같은 게송은 페미니즘에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송을 좀 더 확대 적용하면 반드시 성적 차별 이상 의미가 있다. 굽은 것으로 대표되는 절구, 절구공이, 남편이라는 용어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억압하는 조직을 떠났다는 것 자체는 해방이다. 그것은 또 다른 말로 자유이다.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는 삶을

 

굽은 것으로부터 해방이 되긴 하였지만 보호막은 없어졌다. 마치 동물원에 있는 사자가 우리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우리 안에 있으면 사육사가 매일 일정 시간에 맛있는 고기를 던져 주지만, 일단 우리 밖으로 나오면 어느 누구도 먹을 것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밖으로 나오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먹이를 찾아 나서야 한다. 여기에서 야성(野性)’이 발휘된다. 진정한 사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를 벗어난 사자는 자신의 힘으로 먹잇감을 구해야 한다. 구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먹잇감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놓치면 굶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된다. 한번 물으면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야성으로 물들어 감에 따라 생존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갖가지 이유로 정년 이전에 퇴출된 자들 역시 살기 위하여 이곳 저곳 배회하며 생존경쟁을 한다. 일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일이 없으면 왜 일이 없을까?”하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이 나오기 힘들다.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소욕지족의 삶을 말한다.

 

오로지 마음을 현재에 집중해야

 

야외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야성이 있어야 한다. 한번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아야 하고 반드시 결과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런 야성이 발휘 되면 매사를 진검승부하듯이 살아 갈 수 있다. 일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매 순간이 중요하다. 오로지 마음을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강조된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에도 나온다. 부처님은 숲에서 걸식하며 살아 가는 수행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tīta nānvāgameyya,               아띠땅 난와가메이야

nappaikakhe anāgata;             납빠띠깐케 아나가땅

yadatīta pahīna ta           야다띠땅 빠히낭 땅

appattañca anāgata.                압빳딴짜 아나가땅

 

Paccuppannañca yo dhamma,          빳쭙빤냔짜 요 담망

tattha tattha vipassati;            땃타 땃타 위빳사띠

asahīra asakuppa,            아상히랑 아상꾹빵

ta vidvā manubrūhaye.              땅 위드와 마누브루하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때 그때 잘 관찰하라.

정복되지 않고 흔들림없이

그것을 알고 수행하라.

 

 

Do not recollect the past,

nor desire the future,

The past is over,

the future has not come.

 

These things of the present,

see them with insight as they arise

Not faltering and not moved,

think about them.

 

(밧데까랏따경-Bhaddekaratta Sutta-한 밤의 슬기로운 님의, MN131, 전재성님역)

 

 

밧데까랏따경(MN131-빠알리게송).docx

 

 

 

 

부처님은 과거도 미래도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과거는 지나 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 집중할 것을 말씀 하셨다.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먹이를 잡을 수 있고, 일감을 잡을 수 있어서 생존해 나 갈 수 있다.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그런데 부처님은 이어서 또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Ajjeva kiccamātappa,              앗제와 낏짜마땁빵

ko jaññā maraa suve;             꼬 잔냐 마라낭 수웨

na hi no sagara tena,            나 히 노 상가랑 떼나

mahāsenena maccunā.                 마하세네나 맛쭈나

 

Eva vihāri ātāpi             에왕 위하링 아따삥
ahorattamatandita
;                아호랏따마딴디땅

ta ve bhaddekarattoti,            땅 웨 밧데까랏또띠

santo ācikkhate muni                산또 아찟카떼 무니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해야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대군을 거느린 죽음의 신

그에게 결코 굴복하지 말라.

 

이와 같이 열심히 밤낮으로

피곤을 모르고 수행하는 자를

한 밤의 슬기로운 님

고요한 해탈의 님이라 부르네.

 

 

Today itself the dispelling should be done,

Tomorrow death might come?

We will not have any associations

with Death and his great army.

 

You should abide dispelling thus,

day and night zealously,

This is the single auspicious attachment,

the appeased sage tells.

 

(밧데까랏따경-Bhaddekaratta Sutta-한 밤의 슬기로운 님의, MN131, 전재성님역)

  

 

이 게송에서 부처님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하셨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업대로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상에 사는 존재는 수명이 보장 되어 있다. 이는 선업공덕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 과보로 수명대로 사는 것이다. 가장 오래 사는 비상비비상처에 사는 존재는 84천대겁을 산다고 한다.

 

이렇게 수명이 보장되어 있는 천인들과 달리 인간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더구나 지은 업이 다 다르다 보니 어떤 이는 좀 오래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일찍 죽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그 죽음이라는 것이 내일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밤 잠 들면 내일이 올것인지 내생이 시작 될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은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르는데,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은 나랑 상관 없다고 여기면서 막행막식 한다든가 호의호식 하는 세월만 보내다 죽음과 맞 닥뜨렸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선업과 악업에 대한 것이다.

 

악업 보다 선업공덕을 더 많이 지었다면 큰 문제가 없으나 악업이 선업 보다 더 많은 경우 문제가 된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일수록 악업이 더 많기 쉬운데, 그런 악업을 가진 채 죽음을 맞이 한다면 악처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밤낮으로 열심히 수행하라고 하였다.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

 

그렇다면 어느 정도 수행을 해야 할까. 초기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Eva khandhe avekkheyya bhikkhu āraddhavīriyo,
Div
ā vā yadi vā ratti sampajāno patissato.

Pajahe- sabbasayoga kareyya saraattano,
Careyy
ādittasīsova patthaya accuta padanti.

 

 

수행승이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처럼

존재의 다발을 관찰하라.

 

낮은 물론이고 밤낮으로

올바로 알고 바로 새겨라.

 

모든 결박을 끊어버려라.

 

자기 자신을 피난처로 하라.

 

불멸의 길을 구하여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

 

 

Monks discard all bonds
And procure your own refuge
Until you realize extinction,
Behave as though your head has caught fire.

 

(페나삔두빠마경-Pheapiṇḍūpama sutta- Foam-포말경, 상윳따니까야 S21.2.5.3, 전재성님역)

 

페나삔두빠마라경(포말경-S22.95).docx

 

 

 

부처님은 말씀 하시기를 머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수행하라 하였다. 그것도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 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정진하라는 것일까. 게송에서는 존재의 다발을 관찰하라고 하였다. 이는 오온의 현상을 살피라는 것이다. 모든 현상이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잡생각이 일어 날 수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 없다. 또 낭만적 감상에 잠겨 있을 여유가 없다.

 

한끼 밖에 먹지 않아도

 

사람들이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특히 노후에 대한 불안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후를 대비 하여 열심히 돈을 모은다. 권력이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완벽한 연금시스템까지 만든다. 이렇게 돈이 있고 연금이 있으면 매우 늙어 죽을 때 까지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더구나 여유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품위 있게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삶의 질이 향상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 노후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노후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삶의 질은 형편 없다. 흔히 천상과 지옥이 따라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있어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선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게는 악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반드시 완벽한 복지 시스템에 의한 것은 아니다. 모두 정신적 요인에 따른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의 경우 하루 한끼만 먹고 살았다. 그래도 얼굴빛은 맑았다. 왜 그랬을까. 다음과 같은 게송이 이를 잘 말해 준다.

 

 

Atīta nānusocanti nappajappanti'nāgata1,
Paccuppannena y
āpenti tena vaṇṇo pasīdati.

Anāgatappajappāya atītassānusocanā,
Etena b
ālā sussanti naova harito lutoti.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며

지나간 일을 슬퍼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

 

 

Does not grieve the past, does not think of the future,
Satisfied in the present, by that the countenance is pleasant.

Planning the future too much, and grieving the past,
The foolish whither, like reeds cut when young.


(아란냐경-Araññasutta - In the Forest- 숲속에서 경, S1.1.10)

 

날라왁고(갈대의 품-S1.1).docx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괴롭다는 것이다. 돈이 많아서 노후대책이 되어 있고, 완벽한 연금시스템의 혜택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몰라 마음이 항상 과거나 미래에 머물러 있다면 불행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수행자들은 숲속에 살며 오로지 한끼 밖에 먹지 않아도 얼굴빛이 맑은 것은 마음을 항상 현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12-07-1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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