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지중해 세토내해(瀬戸内海)에서
(11)일본성지순례 2일차(2012-06-06): 세토내해
오사카항으로
일본성지순례 둘째날 일정이 모두 끝났다. 모두 여덟군데를 방문한 강행군이었다. 남은 이틀간의 일정은 북큐슈지방이다. 북큐슈로 이동하기 위하여 페리선을 타야 한다. 오사카에서 북큐슈에 위치한 신모지항까지 밤새도록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순례팀을 태운 마이크로버스는 오사카항으로 출발하였다.
배를 타는 곳 까지 가는 도중에 오사카항을 보았다. 우리나라 부산항을 연상시키듯이 매우 큰 항구 도시이다. 곳곳에 콘테이너를 실어나르기 위한 거대한 크레인을 볼 수 있고, 항구에는 수 많은 화물선을 볼 수 있었다.
오사카항은 규모가 얼마나 클까. 먼저 지도로 보았다.
원래 이름은 ‘석산(石山)’
오사카항은 바다를 매립하여 만들어진 항구로서 수 많은 부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오사카는 어떤 도시일까. 오사카에 대하여 위키백과를 찾아 보았다. 오사카 역사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무로마치 시대인 1496년에 정토진종(浄土真宗)의 본거지로서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가 옛 나니와 황궁 부지에 설립되었다. 1570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0년 후에 수도승들은 항복하였고 절은 파괴되었다. 159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 성(大阪城)을 이시야마 혼간지 부지에 축조하였다.
(오사카 시)
오사카시가 있던 곳의 원래 이름은 ‘석산(石山)’이라 한다. 현재 오사카성이 있는 오사카성공원을 말한다. 그런데 그곳에 원래 정토진종의 절이 있었던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일본 왕궁이 있던 곳이라 한다. 아스카로 왕궁이 이전 되기 전인 5-6세기를 말한다. 이때 백제등 한반도에서 도래한 귀화인이 지배층을 이루던 시기를 말한다. 이렇게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고대 일본의 중심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사카에서 발생된 것 세가지
현재 오사카시는 인구 262만명의 대도시이다. 이는 부산인구 360만명 보다는 적다. 그러나 일본에서 도쿄다음에 제2의 도시이다. 그런 오사카에는 우리나라 교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오사카에 재일교포가 71,105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인은 11,848명이라 한다. 이는 99,755명이 거주 하고 있는 외국인 중에 한국인이 대부분을 차지고 하고 있다. 그런 오사카는 예로부터 상업도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오사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파나소닉, 샤프, 산요와 같은 전자회사가 있다. 그런데 오사카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오사카에서 발생된 것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라면의 발상지가 오사카이고, 가라오케와 회전초밥의 발상지가 또한 오사카라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예로부터 오사카는 상인들의 도시, 상술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왔다고 한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페리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주변을 보니 낭만적인 항구의 풍경은 아니다. 온통 산업과 공업에 관련된 것들이다.
페리에 승선하기 위하여 대합실에 들어 갔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불과 삼사십명에 불과 하다.
그러나 페리호의 특성상 차를 태우게 되어 있어서 대부분 차를 이용한 승객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저녁에 식사할 때가 되자 대합실에서 보던 인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다. 커다란 배의 규모에 비하여 승객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밤새 이용할 페리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명문대양페리호
이용할 페리는 오사카와 신모지항구를 연결하는 ‘명문대양페리호’이다. 홈페이지 실린 배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홈페이지 배 그림
선실을 보면 특등실과 일등실, 이등실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순례팀은 일등실에 여장을 풀었다.
참고로 일등실의 경우 한 방에 5명이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층 침대 두 쌍과 자그마한 거실까지 합하여 5인실이라 한다. 매우 비좁은 공간에 TV와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는 도구가 마련 되어 있다.
TV, 세면대, 욕의, 타올, 치솔, 슬리퍼, 포트, 다기 셋트
(●テレビ●洗面台●浴衣●フェイスタオル/歯ブラシ●スリッパ●ポット/茶器セット)
선내의 각종 편의 시설
선내에는 각종 편의 시설이 있다. 부페식 식당이 있는가 하면 공중 목욕탕도 있다. 또 매점도 있고, 자판기 코너 등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해 놓은 것이 마치 지상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대중목욕탕 입구
큰다리를 볼 수 있는 야경
항로는 오사카에서 신모지까지이다. 오사카에서 저녁 7시 50분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신모지항에 8시 30분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의 13시간 걸리는 긴 여정이다. 이렇게 밤새도록 운항하는 페리에서 볼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큰다리를 볼 수 있는 야경이다. 그래서 다리를 지날 때 마다 미리 세 번 안내 방송을 하는데, 밖에 나와서 다리와 야경을 보라는 것이다. 이를 선내에 있는 안내 판으로도 알려 준다. 마치 비행기에서 운항루트를 화면으로 보여 주는 것과 꼭 같다.
첫번째 다리를 지날 때 야경을 보았다. 바람이 몹시 불어 서 있기도 힘들정도 이었지만 다리 밑을 통과할 때 본 야경은 다음과 같다.
아카시해협대교 통과 야경
아카시해협대교(明石海峡大橋)
루트도에 따르면 첫번째 다리는 아카시해협대교(明石海峡大橋, あかしかいきょうおおはし)라 한다. 이를 인터넷 검색한 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다리는 전장 3,911미터로서 중앙지간이 1,991미터로 세계최장이라 한다. 주탑의 높이가 298미터이다. 1998년에 개통 되었고 약 5000억엔이 투입되었는데, 착공부터 완공때 까지 시공과정에서 사고로 죽은 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세토대교와 쿠르시마 해협대교가 있다.
세토대교(瀬戸大橋)
세토대교(瀬戸大橋, せとおおはし)는 세토내해에 걸쳐 혼슈의 오카야먀현과 시코쿠의 가가와현을 잇는 10개 교량의 총칭이다. 1978년에 공사를 착수하여 1988년에 완성되었다.
이 다리는 상하의 교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부는 자동차 도로이고, 하부는 JR 철도가 달릴 수 있도록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총길이가 12,300미터에 달하는데, 해협부는 9,367미터라 한다.
쿠르시마 해협대교(来島海峡大橋)
쿠르시마해협대교는 에히메현애서 오오시마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장대교로서 쿠르시마해협1대교, 쿠르시마해협2대교, 쿠르시마해협3대교의 총칭이라 한다. 3개의 긴다리를 연결하여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최초로 3연 츠리바시교(吊り橋) 라 한다. 전장은 4,105미터이다.
이렇게 페리호가 세개의 긴다리를 통과 하였지만 첫번째 다리를 통과할 때 밖에 보지 못하였다. 나머지 두 개의 다리는 심야에 통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개의 긴다리와 밤새도록 운항하는 세토내해(瀬戸内海) 는 어떤 바다일까.
일본속의 지중해, 세토내해(瀬戸内海)
세토내해는 일본어로 세토나이카이(せとないかい)라 한다. 혼슈와 시코쿠, 큐슈사이의 좁은 바다를 말한다. 동서로 450킬로미터이고, 남북으로 15-55킬로미터라 한다. 평균수심은 37미터, 최대수심은 100미터라 한다. 내해안에는 3,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는데, 이중 아카시해협대교가 있는 아와지섬이 가장 크다.
가이드설명에 따르면 세토내해는 마치 ‘강’과 같다고 하였다. 사방이 육지로 둘러 쌓여 있어서 대양과 같이 거친 파도가 없이 잔잔하다고 한다. 그런 세토내해의 길이가 450Km에 달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부산만큼 먼 거리라 볼 수 있다. 페리호가 오사카에서 북큐슈 신모지항까지 밤새도록 달려가니 거의 450Km거리임을 알 수 있다.
세토내해는 일본속의 지중해라고 볼 수 있다. 험준한 지형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일본에서 해안가를 중심으로 하여 마을이 발달하였는데, 주로 해안선을 이용한 교통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육지의 교통이 불편함을 말한다. 그래서 사는 곳이 고립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수 많은 작은 영주들이 통치하는 일본식 봉건주의가 발달하였다.
특히 에도시대 약 260개에 달하는 다이묘들이 있었는데, 이를 번국이라 한다. 하나의 작은 나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260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이루어진 것이 근대화 이전의 모습이다.
이렇게 많은 번국으로 나뉘어 지고 육지의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상운송에 크게 의존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해운업이 발달 하게 되어 대부분 배로 운송하게 되었다. 그 중심지가 되는 곳이 바로 세토내해이다. 그래서 세토내해를 일본속의 지중해로 부르는 것이다.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밤새 페리호는 서쪽을 향하여 항해 하였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깊은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배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기계음 소리와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출렁거림으로 인하여 자는둥 마는 둥하고 새벽을 맞았다.
새벽에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구름이 낀 흐린 날씨이지만 이제 목적지에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것 같다.
목적지 신모지(新門司)항에
드디어 목적지 신모지(新門司)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신모지 항은 매우 작은 항구 도시이다. 북큐슈로 진입하기 위해서 필히 거쳐야 할 관문이다. 예전에는 모지항으로 연결되었으나 새롭게 만든 항구도시가 신모지항이라 한다.
신모지(新門司)항
신모지항에 도착하니 순례팀과 앞으로 1박2일을 함께 할 마이크로버스가 대기 하고 있었다.
2012-07-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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