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글이 쓰고 싶었길래, “답답하다”는 H거사
난 꽃이 또 피었다!
난 꽃이 예쁘게 피었다. 매년 이 맘 때쯤 이면 어김 없이 꽃을 피우는 난이 고마운 느낌이 든다. 분갈이 한 번 안하고 단지 물만 주었을 뿐인데, 해마다 꽃을 피워 내다니 꽃 본듯이 반갑다.
올해로 만 4년 째 꽃을 피워 내고 있는 난은 법우님이 선물하였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법우님으로서 불교교양대학 동창이다. 20여년간이나 천주교를 믿다가 불교로 개종한 법우님인데, 현재 자그마한 절에서 절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법우님은 불교교양대학 당시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카풀’해 드렸다. 그런 인연도 있지만 난을 받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불교음악’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불교음악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그 중 몇 곡을 선곡하여 CD로 만들었는데, 알고 지내는 법우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때 그 법우님에게도 CD를 보내 주었다. 그 법우님은 고맙다는 표시로 난을 사서 직접 전달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매년 난 꽃을 보게 되었다.
매일 문안 인사드리는 블로그
난 꽃을 보니 어느 블로거의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난 꽃이 연상 되었다. 그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꽃 모양이 비슷하다. 아마도 같은 종(種)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블로거는 난이 꽃이 피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 하였다. 난이 꽃이 피려 하는 시기부터 시작하여 꽃이 다 필 때 까지의 과정을 마치 중계 하듯이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을 올려 놓는 것이었다.
또 그 블로거는 자신의 취미생활도 곁들였는데,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수상스키 이야기, 친구들을 불러 야외 파티 이야기등을 사진과 동영상을 곁들였다. 그런 블로거의 블로그를 거의 매일 문안 인사드리다시피 하고 있다.
그 블로그에 매일 가는 이유는 혹시 무언가 있을까 해서 이다. 기대반 호기심 반이다. 무언가 유익하고 건질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역시나’이다. ‘혹시나’ 해서 갔지만 둘러 보고 나면 ‘역시나’가 된 것이다. 그러기를 수 개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방문하게 되는 것은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답답하다는데
몇 개월 전에 그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답답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단 몇 줄에 불과한 매우 짤막한 글이다. 처음에 그 의미를 잘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글을 못 써서 답답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지 못해서 답답하다고 한 것이다.
원래 그 블로거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쓸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같다.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직함은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불교관련 종무관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이 되다 보니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못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답답하다”라는 독백을 하였을 것이라 보여 진다.
불교계의 각종 문제점과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칼럼
한때 그 블로거는 불교계에서 꽤 이름이 잘 알려진 유명한 칼럼니스트이었다. 주로 ‘불교포커스’에서 활동하였는데 ‘정법정론’이라는 코너에서 고정적으로 칼럼을 썼었다. 주로 불교계의 각종 문제점과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칼럼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 조계종 종정스님인 법전스님을 향한 글이 있었다. ‘해인총림 방장 스님께 청하옵니다’라는 글이다. 이 글에서 가장 감명을 준 대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방장스님!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스님을 뵙고 ‘납골당’ 사업을 거론하며 스님을 속이려 드는 이들이 있다면, “이놈들아, 이러면 안 된다! 삶 자체가 본래 무상한데 무슨 납골당이냐? 이번 생에 목숨 다하면 화장해서 그냥 뿌리든가 짐승의 먹이가 되어 그들을 살려주면 되는 것 아니냐? 불법을 공부했다는 놈들이 아직도 이 정도에 머물러 헤매고 있느냐?”고 할(喝)을 해주십시오. 그래도 말을 듣지 않고 이런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키면 성철스님께서 하셨듯이 몽둥이 찜질(棒)이라도 해주십시오. 방장스님께서 주시는 최상승의 무언無言의 가르침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의 그릇에 맡는 방편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중생심에 청하는 말씀입니다.
(H거사, 해인총림 방장 스님께 청하옵니다, 불교포커스 2010년 1월)
해인사의 납골당 비리와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글에서 블로거는 종정스님이 나서서 문제를 풀어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종스님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글이다. 그래서일까 블로거는 종정스님이라는 호칭 대신 ‘방장스님’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종정스님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라 보여졌다.
먹는 이야기, 취미 이야기 등으로
이처럼 호기롭고 호탕한 글을 많이 접하였기 때문에 항상 글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방문하여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의 논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불교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 대신 일상적인 이야기로 채워졌다. 먹는 이야기, 취미 이야기 등 그저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찾게 되는 것은 ‘관성’때문이다. 과거의 행적을 기억 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호기롭고 호탕한 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실려 있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자승스님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사진을 보고
오늘 방문해 보니 자승원장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자승스님이 장애인 체육회를 방문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불교신문 기사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자승스님의 뒤에 그 분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자승스님을 수행하고 있는 듯이 다소 곳이 서 있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자승스님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도 있고, 자승스님 일행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글이 쓰고 싶었으면
오늘도 내일도 그분의 블로그를 방문할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내용이 없을까 무언가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없을까에 대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불교포커스 정법정론에 실렸던 그 분의 컬럼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준 칼럼들을 잊을 수 없어 혹시나 하고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공직에 있을 동안 만큼은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 공직에서 물러난 다면 예전과 같이 호기롭고 호탕한 컬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입장이라 보여진다. 얼마나 글이 쓰고 싶었으면 자신의 블로그에 “답답하다”라는 표현을 하였을까. 이해하고도 남음직 하다.
2012-08-2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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