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뭐? 우리들이 프로그램된 존재라고?” 외도사상이 판을 치는 법문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8. 11:11

 

? 우리들이 프로그램된 존재라고?” 외도사상이 판을 치는 법문

 

 

 

W스님의 법화경 강의에서

 

모바일로 불교TV를 종종 본다. 실시간 방송 (W스님의 경전교실-법화경)에서 W스님은 부처님에 대하여 아버지라 하였다. 그런 내용이 초기경에 실려 있다고 한다.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하여 불교TV사이트에 들어 갔으나 아직 올려져 있지 않아 어느 초기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에서 아버지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어느 경에서도 부처님이 아버지라는 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검색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주석을 발견하였다.

 

 

Pajāpati(sk . prajāpati):

생류의 아버지란 뜻이다. 창조주를 말하며 베다시대의 신이다. Srp.I.341에 따르면, 빠자빠띠는 제석천과 동일한 수명을 가졌고 두번째 자리에 앉았고, 바루나와 이싸나는 세번째와 네번째에 앉았다.

 

(주석, 다작가경 -Dhajaggasutta -깃발의 경, S11.1.3 , 전재성님)

 

 

다작가경 주석에 따르면 빠자빠띠는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신이라 한다. 그 이름 자체가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종교에서 아버지라는 명칭은 주로 창조주에게 붙여 주는 명칭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 날 유일신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W스님은 법화경 강의에서 부처님을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예불문으로 보면 삼계도사 사생자부(界導師 四生慈父)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애욕과 집착을 끊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욕계를 비롯한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 있어서 큰 스승과 같고, ‘---로 일컬어지는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의 부처님을 말씀 하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중생의 아버지와 같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들의 아버지, 창조주로서 부처님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면 이는 외도 사상일 것이다.

 

J스님의 프로그램론

 

부처님 아버지라 불리우는 법문을 또 들었다. 불교방송에서 J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J 스님은 먼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정말로 분명한 사실이 우리의 육신이라는 것이 그냥 건성 건성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거룩한 프로그램이 우리 몸과 마음 가운데 있구요, 그 위에 의 프로그램이 있어요.

 

(J스님, J스님의 지혜의 길, 불교방송  2012-10-08일자)

 

 

J스님은 불교방송 아침 법문에서 프로그램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들 모두는 프로그램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프로그램화 되어 있어서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법성(불성)이 깔려 있다고 한다. 가장 밑바탕에 법성프로그램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아뢰야식 프로그램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업의 프로그램 등이 깔려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 프로그램을 깐 사람은 누구일까?

 

? 우리들이 프로그램된 존재라고?

 

이렇게 스님은 우리들을 부처님에 의하여 프로그램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컴퓨터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정말로 여러분이 부처님의 아들 딸임을 믿으세요? ,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릴께요. 컴퓨터 아시죠 그죠? 컴퓨터 기계 본체만 가지고 컴퓨터 역할을 합니까? 그 밑에 뭐가 깔려야 되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깔리잖아요.

우리의 몸뚱아리도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램이 되어 있습니다.

 

(J스님, J스님의 지혜의 길, 불교방송  2012-10-08일자)

 

 

 

 

programmed human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모두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법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스님의 법문대로 우리들이 프로그램화된 존재라면 우리들은 모두 프로그램 대로 동작되는 로보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든 이는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스님은 법문에서 부처님이 프로그램을 깔았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스님의 법문을 들어 보면 부처님은 창조주와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유일신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라 하듯이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님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 아버지와 부처님 아버지

 

스님은 마무리 법문에서 창조주로서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하루 매일 매일의 삶을 부처님과 더불어 살면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요. 정진하는 사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어떤.. 부처님이 다 지켜 보고, 선물을 주시고..

 

우리는 무언고 하니 부처님의 손바닥안에 있다. 프로그램화된 그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아시고 함부로 아무렇게나 사시는 걸 안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J스님, J스님의 지혜의 길, 불교방송  2012-10-08일자)

 

 

스님은 우리가 부처님에 의하여 프로그램화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런 부처님이 우리들 모두를 지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 보았자 부처님의 손바닥안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법문이다. 초기불교를 접한 불자라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과 전불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파를 타고 있다. 만일 이런 법문을 유일신교에서 듣는다면 유일신교의 아류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명백히 창조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역술가들이 이 법문을 들었다면 자신이 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론, 숙명론, 그리고 창조론과 숙명론이 결합된 법문을 공영방송에서 듣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방송에서 외도사상이 판을 치고 있다!

 

불교TV와 불교방송에서 스님들의 법문을 듣다 보면 중구난방같은 인상을 받는다. 모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전적 근거 없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하다 보니 듣고 있는 불자들은 어느 스님의 법문에 장단을 맞추어야 될지 모른다. 그런 스님들의 법문에 그 어디에도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 하였던 외도사상이 판을 치고 있다.

 

부처님은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를 비판 하였다. 브라만교의 영원론, 창조론, 개아론 등 개체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브라만교를 비판하여 성립한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부처님은 부처님 당시의 육사외도를 비판 하였다. 이는 초기경에 그대로 실려 있다. 유물론, 숙명론, 우연론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외도사상을 부처님은 연기법으로 모두 논파 하였다. 깟짜나곳따경( S12.2.5)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브라만교를 비롯한 육사외도가 모두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고 거짓임을 밝혀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 보면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하였던 외도의 사상을 버젓이 법문하고 있다.

 

불교가 쇠퇴하는 이유

 

그렇다면 스님들이 왜 똥인지 된장인지구별 못하듯이 외도의 사상인지 아닌지 모르고 법문하는 것일까. 이는 법문을 하는 스님들이 초기불교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대하여 이해가 없어서 유일신교의 교리와 하등의 다를 바 없는 부처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역술가들의 운명론적 업설과 다름 없는 프로그램화 된 인간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라 본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닌 불교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교리와 별 차이가 없어졌을 때 불교는 서서히 소멸 되어 갈 것이다. 대상이 하나님인지 부처님인지 모호 해 졌을 때 불자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로 향하게 될 것이고, 반기독교적 정서를 가진 불자라면 프로그램화된 인간이야기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 보다 역술가의 말에 더 솔깃할 것이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과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스님들의 개인적인 견해는 결국 이땅에서 불교의 쇠퇴를 가속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과 불자들에 대한 배신행위

 

방송에서 법문하는 스님들은 더 이상 비불교적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신교의 교리나 다름 없는 부처님 아버지 이야기, 역술가에게나 도움을 줄 법한 프로그램화된 인간 이야기를 법문 주제로 삼는다면 이는 부처님과 불자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따라서 방송에서 법문하는 스님들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반드시 경전적 근거를 들어 법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불자들은 이와 같은 비불교적 법문에 대하여 고발하여야 한다. 블로그, 카페, 게시판, 각종 토론사이트에서 이슈화 해야 한다. 그래서 비불교적 법문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불교의 쇠퇴를 막고 불교의 중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본다.

 

부처님이 신신당부한 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ttadīpā bhikkhave,                     앗따디빠 빅카웨

viharatha attasaraā anaññasaraā.      위하라타 앗따사라나 안냐사라나

Dhammadīpā dhammasaraā anaññasaraā.   담마디빠 담마사라나 안냐사라나

 

[세존]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앗따디빠경-Attadīpa sutta , 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 (anaññasaraā, 안냐사라나)고 하였다. ‘자신에 의지 (attasaraā 앗따사라나)’ 하고 법에 의지 (dhammasaraā 담마사라나)’ 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왜 이와 같이 신신당부 하셨을까. 아마도 오늘날 과도 같은 상황을 예견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불교로 보일지 몰라도 내용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외도의 사상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이름을 팔아 비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더구나 담마 아닌 것이 점점 힘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믿을 것이라곤 부처님의 가르침 밖에 없다. 그것은 빠알리 니까야에 실려 있는 부처님의 원음이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anaññasaraā, 안냐사라나)는 부처님의 말씀이 사무치게 다가올까.

 

 

 

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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