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아~알 쑤 없는 의심으로…”족보에도 없는 화두 ‘이뭐꼬(是甚麽)’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12. 10:50

 

~알 쑤 없는 의심으로…”족보에도 없는 화두이뭐꼬(是甚麽)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중국에 일시적으로 체류하였다. 중국의 싼 임금에 매료 되어 중국현지에서 위탁생산을 감행한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서 이었다.

 

심천경제특구 바로 위에 위치한 동관시에 있는 그 공장은 대만의 업체에서 투자한 대만현지공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이원적 구조이었다. 관리자는 모두 대만사람들이고, 노동자는 모두 중국본토사람들이었다. 숙소도 따로 있고 밥도 따로 먹는 식이었다.

 

대만관리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매일 진수성찬이었다. 중국특유의 기름진 음식이 처음에는 매우 맛이 좋았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다 보니 식상하였다.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도 매일 식탁에 오르면 식상하기 마련이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명작이라 하더라도 같은 시간에 매일 보여주면 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좋은 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한 두번은 들을 만하지만 세 번이상 반복되면 잔소리로 들리게 된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불교방송을 듣는다. 그러나 매일 같은 내용만을 반복하는 프로를 접한다. 아침 6시부터 6 40분 사이에 방송되는 불교강좌시간이 그것이다. 인천 Y선원의 S선사가 진행하는 법문인데, 거의 정형화 되어 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는 듯이 똑 같은 말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거의 똑 같은 내용을 매일 반복하는 정형화된 법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뭐꼬, 한문으로는 시삼마, 시삼마지만 우리말로는 이뭐꼬’, ‘이뭐꼬그것만 명심하면 되숨을 들어 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뭐꼬이렇게 하는 것이여. ..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것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 서울에 살거나 경상도에 살거나  이뭐꼬’.

 

(S선사, 불교방송 불교강좌 S스님의 알기쉬운 불교이야기, 2012-10-12일자)

 

 

 

 

 

 

 

S선사는 이뭐꼬화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거의 정형화 되어 있는 문구이다. 지난 수 개월간 매일 반복된 내용이다. 그런데 이뭐꼬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는 말을 세글자로 줄여서 이뭐꼬라 한다.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놈이 무엇인고?’ 라고 알 수 없는 의심을 하는 것이 이뭐꼬 화두라 한다.

 

시심마(是甚麽)

 

스님은 이뭐꼬라는 말이 한자어로 시삼마라 하였다. 시심마가 아니라 항상 시삼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전에 시삼마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신 시심마라는 말이 있다. 시심마는 무슨뜻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시심마(是甚麽)선종에서 참구하는 화두의 하나라고 매우 짤막하게 소개 되어 있다. 하지만 구글검색을 해 보아도 백과사전 등에는 나오지 않고 웹, 카페, 블로그, 지식 등에 단편적으로 소개 되어 있다. 대체 시심마, 이뭐꼬는 무엇일까.

 

성본스님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마성스님의 블로그에 성본스님의 논문이 한편 실려 있다. 성본스님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에 대한 것이다. 그런 성본스님은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로서 불교TV 에서 강의한 ‘임제록’ 등의 프로그램이 있고, 저서로서 ‘중국선종성립사연구’가 있다.

 

성본스님의 대표적 저서인 중국선종성립사연구라는 책은 민족사에서 발간한 3대 서적중의 하나라고 한다. 민족사 윤창화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1992년도에 출간된 책으로서 약 1,000 페이지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서 중국선종의 역사적 발전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라 한다.

 

이와 같은 중국선종의 성립에 대한 책은 일본학계에서도 보기 드물고, 한국학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하는데, 이 책으로 인하여 선학에 대한 연구가 한 단계가 아니라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성스님은 성본스님의 논문을 올린 목적에 대하여 이 글은 제목 그대로 간화선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한 근래에 보기 드문 매우 훌륭한 글입니다. 아직도 간화선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나면 한국의 간화선 수행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간화사선(看話邪禪)

 

성본스님의 논문을 보면서 간화선에 대하여 몇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이뭐꼬 화두에 대한 것이 있다.

 

성본스님은 이뭐꼬화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주의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이나, '이뭣고'라는 화두를 의심하여 참구하라는 것은 간화선과는 전혀 관계없는 한국선승들만이 주장하는 간화사선이다.

   

'이뭣고'를 의심하고 참구하여, 한소식을 얻도록 하는 것이 불법 수행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공안을 타파하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이룬다는 목적의식과 깨달음을 기대하는 환상의 참선수행에 빠져있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docx

 

 

 

성본스님에 따르면 현재 한국불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뭐꼬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하여 간화사선(看話邪禪)’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원래의 간화선 취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수행방법을 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뭐꼬화두

 

이어지는 글에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불교에서이뭣고?’ 화두를 참구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간화선에서 주장하는 이뭣고? 와 조주의 無字화두 참구의 문제점을 정리해 보자.

   

간화선 수행의 역사에서이뭣고?’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곳은 유일하게 한국 뿐이며, 또한 근대(일제침략 이후)에 처음 주장하고 있는 화두라는 점이다. 선불교의 역사상 중국, 일본 등에서이뭣고?’라는 화두를 참구하여 간화선을 수행한 사례가 없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이뭐꼬화두는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화두라 한다. 그것도 해방이후에 나타난 것이라 한다. 선불교가 발생된 이래 이뭐꼬 화두라는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족보에도 없는 화두 이뭐꼬

 

그렇다면 이뭐꼬라는 말은 어떻게 하여 생겨 났을까. 스님은 다음과 같이 유래를 설명한다.

 

   

이뭣고?’是甚 라고도 표기하고 있는데, [오등회원] 3권 백장회해장에 다음과 같은 일단이 보인다. 백장선사가 어느 날 설법을 마치고 대중이 모두 법당에서 내려가자, 백장선사는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모두 고개를 돌리자, 백장선사는이것이 무엇인고(是甚)?’라고 말했다.

   

불법은 말로서만 설법이 끝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자기가 생명활동하며 실재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실 그 자체인 것이다. 멍청하게 설법을 듣고 그것으로 불법을 납득했다고 생각한 대중들을 다시 불러서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는 그대들 각자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진여자성의 지혜작용으로 전개하는 본래면목을 깨달아 체득하라는 친절한 설법이다.

   

 [조주록]에도이것은 무슨 말인가(是什語話)’ 라는 말처럼, 선어록에是甚’ ‘是什라는 말은 지금 여기 자기 자신의 하는 말이나 지혜로운 삶을 전개하는 자각의 주체를 철저히 자각하라는 경고의 법문이지 단순한 의심을 참구하는 말은 아니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이뭐꼬 화두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 오는 공안집에는 없는 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족보에 없는 화두라는 것이다. 단지 조사어록에 등장하고 있는 말인데, 백장선선사가 대중을 모아 놓고 이것이 무엇인고(是甚)?’라고 말했다든가, 조주록에 이것은 무슨 말인가(是什語話)’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스스로 깨달아라는 의미로 말한 법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단순한 의심을 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알 쑤 없는 의심으로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교방송에서 S선사의 법문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알 쑤 없는 의심으로 이뭐꼬’.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뭐꼬. 그렇게도 하고, 지금 이뭐꼬하고 있는 이놈이 뭐꼬 이렇게도 하고.

 

(S선사, 불교방송 불교강좌 S스님의 알기쉬운 불교이야기, 2012-10-12일자)

 

 

S선사는 이뭐꼬 하두를 하는데 있어서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뭐꼬?” 하며 알 수 없는 의심을 하라고 한다. 더구나 이뭐꼬 하는 이놈이 또 이뭐꼬?’ 하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놈은 보통 소소영영 (昭昭靈靈)한 것을 말한다.

 

소소영영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일체에 밝고 또렷함. 소소 (昭昭)는 밝은 모양, 영영 (靈靈)은 정신작용의 불가사의 함. 즉 심식 (心識)이 미묘하여 명백한 양상을 형용하는 말로 설명 되어 있다.

 

아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본마음, 참나를 뜻한다. 즉 견성성불하기 위해서, 한소식하기 위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을 하라는 것이다.

 

의심 그 자체를 중시 한다면

 

하지만 이와 같은 의심에 대하여 성본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뭣고?’ 라는 공안을 참구하여 한 소식 얻으려고 수행하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한소식이란 무슨 소식인가? 어떤 소식인가? 어디서 나는 소식인가?

누가 어디서 얻어야 하는 소식인가? 부처나 여래, 조사에게서 나오는 소식인가?

 

의식의 대상 경계에서 추구하면 主客 自他 대립과 차별에 떨어지며 중생심으로 전락되어 생사윤회하게 된다.

 

한소식이 깨달음인가? 한소식이나 깨달음이 이뭣고? 를 참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일까?

 

그러한 역대조사와 선지식이 있었는가? 한소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얻을 것이 있다면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는 외도가 되며, 대상 경계에 집착하는 중생이 된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성본스님은 한소식이라는 것에 대하여 선병이라고 말한다. 이는 매우 고치기 어려운 마음의 병으로서 임제록에 따르면 난치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의심으로 단지 의심 그 자체를 중시 한다면이는 크게 잘 못된 것이라 한다. 심지어 외도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선원에서 수행자들이 많이 참구하는 화두가 이뭐꼬화두인데, 올바른 공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완고한 노인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불교방송 불교강좌에서는 다음과 같은 S 선사의 매일 반복되는 법문을 들을 수 있다.

 

 

 

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고 아~알 쑤 없이, ~악 막힌 상태로 나가는 거여. ~알 쑤 없는 의심만이 있어야지 아하 그런것이구나!’그렇게 하면 공부를 잘못한것이여.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S선사, 불교방송 불교강좌 S스님의 알기쉬운 불교이야기, 2012-10-12일자)

 

 

이와 같은 법문을 들으면 참으로 완고해 보인다. 나이 든 노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이들의 행위에 대하여 모두 틀렸다또는 틀려 먹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틀리다다르다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과 같다.

 

경험있는 노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요즘 젊은 이들의 이해 하지 못할 행위는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이해 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틀린 것으로 보기 때문에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S선사의 법문에서도 역시 노인의 완고함을 보는 것 같다.

 

S선사는 화두라는 것이 이치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한다. 경전을 보고 교리를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한다. 참선중에 경전을 본다면 조실스님의 어록이나 몽산법어를 보라고 한다. 그래서 바보, 천치, 멍청이가 되어야 공부가 더 잘 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렇게 말하고 게송 하나를 구성지게 읊는다.

 

성본스님의 방편법문론

 

이와 같은 알 수 없는 의심만을 이야기하는 S선사의 법문에 대하여 반박이라도 하는 듯한 글이 있다. 성본스님의 논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이다.

 

 

간화선에서 말하는 의심은 방편으로 제시한 방편법문을 불법의 대의와 제법의 진실을 깨달아 체득하지 못한 수행자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구도적인 문제이다.

   

불법을 대의를 깨달아 체득하여 부처나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시절인연에 따라서 보살도의 삶을 실행하고자 하는 구도적인 문제의식 없는 참선수행에 몰입 할 수가 없다. 경전과 어록의 방편법문을 여법하고 여실하게 참구하는 참선수행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본원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구법정신이 의심인 것이다.

   

경전과 어록에서 제시한 방편법문은 불법의 대의에 의거하여 진여삼매로 참구해야 如法수행이며, 如實수행이 된다. 如法 如實 진여삼매로서 참구하는 實參, 實究이다. 대승불교의 모든 수행은 眞空妙有 지혜작용에서 참구하는 진여삼매가 되어야 한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성본스님은 수행과 교학을 겸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간화선 수행자들이 책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선수행은 방석에 앉아서 좌선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과 어록을 읽고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뭐꼬라고 의심하는 말만 붙잡고 시간 보내는 것이 아니라경전과 어록을 읽고, 또한 선지식의 상당법문과 소참법문, 일상 수시로 지시하는 방편법문의 말씀을 듣고, 불법의 정신으로 自問自答하며 깊이 참구(사유)하여 방편법문의 말씀을 완전히 자신의 지혜로 체득하도록 정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전과 어록에 대하여 성본스님은 방편법문이라 하였다. 언어와 문자가 진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을지라도 선지식들의 깨달음에 대한 방편이 기록 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앉으나 서나 이뭐꼬하라는데

 

그러나 불교방송에서 S 선사는 이를 무시한다.

 

 

아알~쑤 없는 의심으로 확 막혀야 언젠가 깨닫는 것이지 말길이 있어가지고 알아들어가고, 이치길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해들어가는 공부는 활구 참선이 아니고, 그건 참선도 아니지만 사구참선이라고 그래요.

 

(S선사, 불교방송 불교강좌 S스님의 알기쉬운 불교이야기, 2012-10-12일자)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꽉 막힌 상태가 되어야만 공부가 잘 되는 것이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확철대오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행주좌와어묵동정 할 때도 이뭐꼬 하라고 한다. 심지어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해도 이뭐꼬 하라고 한다.

 

치료하기 어려운 선병(禪病) 중환자들

 

하지만 이는 성본스님의 논문에 따르면 이는 무책임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참선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자기 일과 하나가 된(打成一片) 깨달음과 진여삼매(眞如三昧 : 一如)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잠잘 때는 잠을 자는 일과 하나가 되고, 운전 할 때는 운전하는 일에,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읽는 자신()과 책()과 하나가 되는 독서삼매에 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잠잘 때도 화두 참구, 꿈 속에서도 화두참구를 하는 일이 가능 할까? 이러한 화두참구를 한 사람이 있는가? 중국의 선불교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이러한 주장을 한 선승은 한 사람도 없다.

   

한마디로 선불교의 종지(근본정심)와 실천사상을 모르는 잘못된 지도이며, 또한 간화선의 수행구조와 실천 방향, 방법, 깨달음의 구조 등을 정확히 모르는 선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지식의 지도를 받고 간화선을 수행하는 사람은 看話邪禪 떨어진 중생이며, 치료하기 어려운 禪病 중환자이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이뭐꼬화두를 드는데 있어서 행주좌와나 심지어 꿈속에서 이뭐꼬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속이 상했을 때 이뭐꼬 하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잠을 자야 되고, 운전을 할 때는 운전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읽는 일에만 열중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항상 이뭐꼬 화두를 챙긴다는 것은 잘못된 수행방법이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이뭐꼬로 해결하는 것은 이뭐꼬 만능주의로서 이는 고치기 어려운 선병에 걸린 중환자로 본다는 것이다.

 

평생 귀중한 인생의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성본스님은 논문에서  이뭣고나 조주의 무자(無字)화두 하나를 오래 참구하여 깨달으면 불법의 많은 지혜를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주장한다. 또 경전이나 어록을 무시하고 알 수 없는 의심만 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간화사선이라 하였다. 그래서 [벽암록]이나 [무문관], [임제록] 등 당대 선승들의 유명한 어록이나 선문답을 보아서 다양한 방편지혜를 구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교학과 수행을 함께 해야 된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수행자들은 선방에서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정을 키워서 마침내 확철대오 할 수 있다고 믿고 마치 큰 것 한방만 노리는 복싱선수 같은 인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성본스님은 다음과 같이 우려 한다.

 

 

주체적인 자아의 존재근거와 향상일로의 창조적인 사유의 문제를 단순히 앉아서이뭣고?’라고 참구한다고 무슨 해결이 나겠는가? 평생 귀중한 인생의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성본스님,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

 

 

 

2012-10-12

진흙속의연꽃

간화선의 수행체계로 본 조계종 간화선의 문제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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