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공짜밥은 없다” 스리랑카의 청식(請食)제도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14. 23:10

 

 

공짜밥은 없다스리랑카의 청식(請食)제도

 

 

 

이빨치료를 받으며

 

이빨치료를 받고 있다. 오른쪽으로 씹을 수 없어 오른쪽을 씹기 위하여 이빨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빨치료를 할 때 마다 백금 등으로 씌우는 이빨이 하나 둘 늘어 간다. 그럴 때 마다 몸의 기능이 하나씩 망가져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럴 경우 서글퍼 지는데, 이는 어느 경우이든지 제행무상의 법칙에 지배 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에  실감한다.

 

이빨치료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사랑니를 뽑을 때나 썩은 이를 씌울 때 마취 등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빨치료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하루 종일 남의 입속의 이빨을 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치과의사 출신의 어느 불교학자는 불교TV에서 남의 입속만 보고 살아 간다는 것이 싫어서 불교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수 많은 직업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직업이 있다. 생존하기 위하여 또는 자기실현을 하기 위하여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보낸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에 따라 귀하고 천한 직업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서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직업이 있다. 그런 직업은 살생하여 먹고 사는 직업, 인신매매업, 무기를 만들거나 파는 직업 등을 말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이든지 직업으로 인한 업을 짖는다. 그것도 매일 짖고 매년 짖고 평생 짖는다. 그런 업이 쌓이고 쌓이면 축적되고 누적 되어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직업과 그 사람이 동일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로 인한 업을 짖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은 무엇일까. 그것은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직업으로 인한 업을 지을 필요가 없다.

 

일을 하지 않으려면

 

일을 하지 않으려면 승가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비구나 비구니가 되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직업으로 인한 업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음식을 빌어 먹을 수 밖에 없다. 이를 탁발또는 걸식이라 한다.

 

현재 테라와다 불교 전통에서 볼 수 있다는 탁발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탁발 또는 걸식에 대한 이야기가 수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비구는 탁발에 의존하여 살아 가야 한다. 이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승가를 지원하는 재가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에 끈끈한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승가는 어떤 성격일까.

 

사부대중(catasso parisa)

 

쌍윳따니까야 해제에 따르면 승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교단을 의미하는 승가에 관하여 비구승가, 비구니승가, 사방승가, 현전승가, 승보, 성문승가 등의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재가신자인 청신사(우바새, upasaka), 청신녀(우바이, upasika)의 승가란 말은 나타나지 않는다.

 

(쌍윳따니까야 해제, 전재성박사)

 

 

초기불교 경전에서 승가는 비구나 비구니의 승가를 말하며, 재가불자들의 상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사부대중(catasso parisa)이라는 말이 사용된다고 한다. 비구와 비구니, 청신사와 청신녀, 이렇게 네 부류의 집단을 일컬어 사부대중이라 한다.

 

초기불교에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

 

비록 초기경전에 재가자의 승가라는 말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승가안에 재가신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방승가의 개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방승가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걸쳐 확장되고 공간적으로 우주적으로 확장되는 보편적인 승가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방승가 안에는 당연히 재가신도도 포함 되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경전 그 어디에도 재가신도에 대한 언급이 없이 비구, 비구니 승가의 확장으로 규정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론적인 사방승가의 개념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승가라 함은 현전승가를 말한다. 이는 시간, 공간적으로 제한된 지역승가를 말한다. 지역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비구와 비구니의 승가이다.

 

그런데 현전승가는 비구와 비구니만으로 결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신사와 청신녀로부터 의식주를 공급받아야만 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처, 먹을 것, 입을 것, 의약품 등 사대필수품을 말한다. 이를 기증받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지시켜야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승가 즉, 사방승가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출가자와 재가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재가자 없이 출가자가 홀로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불자들이 의지해야 될 승보(僧寶)?

 

불자들은 불법승 삼보에 의지한다. 이때 승보는 어떤 개념일까. 초기불교경전에는 구체적인 범주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구사론이나 대지도론에는 그 범주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 승보란 비구-비구니 승가가 모두 포함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흐름에 들기 시작한 예류자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의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사쌍팔배의 성자라 한다. 이러한 승보의 개념은 상윳따니까야에서도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cattāri purisayugāni             짯따리 뿌리사유가니

aṭṭha purisapuggalā               앗타 뿌리사뿍갈라

esa bhagavato sāvakasagho,      에사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 āhuneyyo,                      아후네이요

 pāhueyyo,                      빠후네이요

dakkhieyyo,                     닥키네이요

añjalikaraīyo,                  안잘리까라니요

anuttara puññakkhetta lokassā 아눗따랑 뿐냑켓땅 로깟사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 사람으로 이루어졌으니

 

공양받을 만하고

대접받을 만하며

보시받을 만하고

존경받을 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빤짜바야웨라경-Pañcabhayaverasutta-The Five Fears –다섯 가지 두려운 원한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41, S12.5.1, 전재성님역)

 

 

위 상윳따니까야에 실려 있는 사쌍팔배의 성자에 대한 설명과 대지도론 등에 언급된 승보의 개념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자들이 의지해야 될 대상인 승보는 성스런 승가임을 알 수 있다.

 

공양간과 공양주보살

 

일을 하지 않는 출가자는 초기경전에 따르면 걸식에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청신사와 청신녀의 도움 없이는 현전승가가 결코 성립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재가불자의 도움 없이 출가자만의 현전승가가 성립되었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나라 불교의 경우 스님들이 걸식을 하지 않는다. 절에 공양간이 있어서 음식을 지어 먹는다. 따라서 걸식에 의존할 필요도 없고, 청신사와 청신녀의 공양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절에 공양간이 있고 공양주 보살이 있어서 모든 음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는데, 심지어 재가의 신도들이 절에서 집단으로 밥을 얻어 먹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부처님 당시와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아직까지 탁발의 전통이 살아 있는 테라와다 불교전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스리랑카의 사찰에는 공양간이 없다!

 

마성스님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남방불교의 승려들은 지금도 걸식에 의존하거나 신도들의 청식(請食)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찰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승려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남방불교에서 신도들이 사찰에서 음식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원래 출가자는 사의법(四依法; 걸식·분소의·수하좌·진기약)에 의해 생활하도록 되어 있었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1990년대 스리랑카에서 살며 공부한 바 있는 마성스님의 글이다. 스님의 글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사찰에서는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고 한다. 곡식을 쌓아두고 조리해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찰에서 요리하는 것 자체가 금지 되어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청식(請食)제도

 

이는 사찰에 공양간이 없다는 말과 똑 같다. 그렇다면 스리랑카의 승가에서는 어떻게 먹는 문제를 해결할까. 이어지는 스님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출가자의 이러한 삶의 원칙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많이 변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방불교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태국의 아침은 스님들의 탁발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걸식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반면 스리랑카의 경우는 탁발의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신도들에 의한 청식(請食)이 일반화 되었다. 청식이란 신도의 집에 스님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붓다는 출가자가 걸식에 의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청식도 허락하였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스님은 청식(請食)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탁발의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스리랑카에서는 신도들에 의한 청식이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청식이란 신도들이 출가자를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청식은 부처님도 허락한 것이라 한다.

 

세족의식(洗足儀式)

 

최근 어느 블로그에서 스리랑카의 청식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체류하고 있는 부처님 마을이라는 필명의 재가불자가 쓴 글(스리랑카의 사찰에 부엌이 없다)이다. 일종의 스리랑카 불교 탐방기 성격인데, 마성스님이 언급한 청식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에게

 

 

 

초청받은 비구들이 오면 집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발을 씻겨 주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마성스님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신도 집에 초대받아 가면, 현관 입구에서 그 집의 주인 남자가 직접 발을 씻어준다. 맨발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많고, 비록 샌들을 신었지만 먼지투성이기 때문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그들의 오랜 관습이다. 이것은 그들이 수행자를 맞이하는 예의이자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런 세족의식(洗足儀式)을 받을 때, 과연 자신이 이 분들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가를 반성하게 되고, 더욱 더 수행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법랍에 따라 착석하고

 

이렇게 비구들에게 발을 씻어 주고 난 다음 집안으로 비구들을 모신다. 집안에 들어 가면 사진과 같이 법랍순서로 앉는다고 한다.

 

 

 

사진: 법랍에 따라 착석한 비구들

 

 

 

법랍에 따라 착석한 비구들에 대한 공양할 음식이 준비 되어 있다.

 

청식을 하려면 줄을 서야

 

이와 같이 신도들이 비구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려 주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다.

 

 

필자가 스리랑카의 사찰에 머물고 있을 때 알게 된 일이다. 필자가 머물고 있던 사찰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고 신도의 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1년 내내 걸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1 365일 아침과 점심 두 끼의 공양은 730회 뿐이다. 그런데 신도는 약 3만 가구쯤 되기 때문에 스님들에게 한 끼의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공양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말이면 다음 해 공양을 먼저 신청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먼저 공양을 신청하는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스님의 글에 따르면 청식을 하려면 줄을 서야 된다는 것이다. 신도 가구수가 많다 보니 청식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몇 년에 한 번 청식할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이렇게 청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비구들이 자신의 집에 왔다는 것은 매우 큰 영광일 것이다. 동시에 공양할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축원을 해 주고

 

초청받은 비구가 축원하는 장면이다. 가족들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보고 축원을 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스님들이 축원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스님들의 축원문을 보면 주소와 이름을 불러 주기 때문이다.

 

 

 

사진: 비구

 

 

 

 

 

 

사진: 으로

 

 

 

비구가 축원해 줄 때 신도들은 합장하며 예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다리를 펴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비구가 축원할 때 발을 쭉 뻗어도 된다고 한다.

 

출재가자의 상호보시

 

이렇게 축원이 끝나면 공양을 하게 된다. 이런 공양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 스리랑카의 사찰은 신도의 공양과 청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아침공양은 정해진 신도가 집에서 음식물을 마련하여 사찰로 가져온다. 그러면 스님들은 그 음식물을 나누어 먹는다. 점심공양은 청식이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이든 공양을 마치고 나면 그 음식물을 베풀어 준 단월(檀越=施主)을 위해 축원해 주고 법문을 해주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스리랑카의 경우 사찰에 공양간도 없고 공양주 보살도 없기 때문에 신도들에 의지해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하루 두 끼를 먹는데, 아침은 신도들이 해 오는 음식물로 해결하고, 점심의 경우 신도의 청식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렇게 청식의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축원과 법문을 해 주는 것이 관례라 한다.

 

이는 출가와 재가의 보시에 대한 것이다. 재가자가 출가자를 위하여 재보시 등을 하면 출가자는 법보시로 대응하여 서로 공덕을 쌓는 것을 말한다.

 

공양하는 장면

 

다음으로 공양하는 장면이다. 사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진: 초청한 집의 할머니가 밥을  에게 옆에서 며느리가 거들고 있다.

 

 

 

이렇게 음식이 많고 집이 큰 경우 부잣집이라 한다.

 

공양 후 반드시 법문을

 

공양을 마친 후 참석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법문을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법문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자신의 체험담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자가 있던 사찰에는 약 20명의 스님들이 있었는데, 신도 집의 공양에 참석할 때는 언제나 긴장된다. 공양 후 반드시 법문을 해주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배정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양을 베푼 시주가 어떤 특정한 스님을 지목하여 법문을 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최고의 장로가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먼저 승단을 대신해서 자신이 법문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15분간의 짧은 시간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조리 정연한 법문을 설해야 한다. 그래야 대장로들과 동료 스님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공양후에는 반드시 법문을 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법문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법문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초기경에 표현 되어 있는데로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법문이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초기경을 근거로 한 법문이 될 것이다.

 

 

 

 

사진 : 스리랑카 비구가 법문을 하고 있다.

 

 

 

 

사진 : 신도들이 법문을 듣고 있는 장면이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는 자

 

이와 같이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 당시의 전통이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스리랑카의 비구들은 재가자들에게 공양을 받고, 재가자에게 공덕을 짖게 하여 출재가가 서로 보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비구는 어떤 것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비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윤회에서(sasāre) 두려움을(bhaya)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

 

(청정도론,  1 7)

 

 

비구는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 자라 한다.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기 때문에, 헤어지고 기운 옷 등을 입고 숲에서 살며 걸식을 하며 살아 간다.

 

거지와 비구의 차이는

 

이렇게 걸식 또는 탁발로 살아가는 수행자와 거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경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에 계셨다.

그때 바라문인 걸식자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렸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서 바라문 걸식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

존자 고따마여,

저도 걸식자이고 그대도 걸식자입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세존]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영위하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걸식자인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빅카까경-Bhikkhakasutta.-걸식자의 경, 상윳따니까야 S7:20(S7.2.10), 전재성님역)

 

 

걸식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거지이고 또 하나는 수행자이다. 일반적인 거지를 빠알리어로 빅카까(bhikkhaka)’라 하고 수행승의 경우 빅쿠 (bhikku) ‘라 한다.

 

그런데 걸식한다고 해서 다 똑 같은 걸식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공덕마저 버리고 청정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가 진정한 걸식 수행자라고 게송으로 말한다.

 

공짜밥은 없다

 

이와 같이 비구는 철저하게 걸식으로 살아 가는 수행자를 말한다. 그런데 걸식을 하게 되면 반드시 밥값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얻어 먹었으니 공짜밥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밥값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의 선방에서도 간혹 밥값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시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승려가 수행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것은 밥도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출가자의 의무는 재가자에게 법을 설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로부터 재시를 받고 법시를 베풀어 줄 수 없는 사람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런 사람은 재가로부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출가자는 밥값을 다하기 위해 더욱 정진해야 한다.

 

(출가자의 밥값, 마성스님)

 

 

재가자의 시주로 살아가는 출가자가 시은(施恩)에 보답하려면 밥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밥값을 하지 못하고 무위도식으로 일관하였을 때 그것 만큼 비참한 수행자는 없다는 것이다.

 

 

 

2012-10-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