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 무유정법(無有定法)
300회를 끝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卽問卽設)’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일반 공중파방송에도 소개 되었고 인터넷에서도 잘 알려짐에 따라 불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특히 ‘희망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무대로 순회강연을 함에 따라 널리 알려 졌는데, 11월 29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300회 서울대강연으로 대단원 막을 내린다고 한다.
카페에서 제공된 일정표(법륜스님 가을100회 강연일정-11월15일수정)를 보니 거의 매일 열리다 시피 하고 있다. 하루에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두 차례 열린 날도 많다. 특히 금년의 강연 일정을 보면 대도시나 거점도시 보다 중소도시와 군단위의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국을 샅샅이 누비고 다닌 스님의 강연장에는 언제나 만원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안양강연(“그 인간한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 법륜스님의 안양투어)에서도 확인 한 바 있다.
법륜스님의 안양 강연회(2010-05-01)
“그 인간한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
불교TV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이 방송되고 있다. 질문자가 묻고 스님이 답변하는 형식이다. 온 갖 이야기가 오가지만 주로 가족간의 갈등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등이다. 이런 가족간의 갈등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 한다고 한다.
이럴 때 스님은 어떤 처방을 내어 놓는 것일까. 안양투어 당시 스님의 이야기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질문 중에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 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식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사는데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툭하면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스트레스만 쌓여 간다는 하소연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스님이 하는 말은 이혼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괜찮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혼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혼을 선택 하였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혼을 함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결과에 대하여 생각 하지 않는 다면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쥐가 쥐약인줄 모르고’ 덥석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반면에 살기는 사는데 남편이 ‘이것만 고쳐 주면’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남편을 고쳐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는 사람을 고치겠다고 하면 ‘나만 피곤한’ 일이라 한다.
그럴 경우 ‘현재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좋다. 이혼을 하지 않고 이왕 살겠다고 결정 하였다면 상대방을 고치려 하지 말고 먼저 ‘내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어차피 같이 살 바에는 그 방법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상대방의 좋은 면을 생각 하라고 한다. 만일 기도를 한다면 108배 하면서 남편을 생각 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내서 기도 하면 좋아 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님이 하는 말은 “그 인간한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 하고 되묻는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첫째로 내가 마음이 편해 지고, 남편이 그 기(氣)를 받아서 살아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편의 기를 살려 주면 ‘죽을둥 모를둥’노력하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다.
(“그 인간한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 법륜스님의 안양투어, 2010-05-01)
스님은 내 생각을 먼저 바꾸라고 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기 보다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해 108배를 하라고 말하면서 “그 인간한테 그렇게 하라는 것이 이해가 안되죠?”라고 반문한다. 이것이 법륜스님이 제시하는 해법중의 하나이다.
질문에 대한 불교적 해법은
스님은 갖가지 질문에 대하여 불교적 해법을 제시한다. 그런 불교적 해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300회 대회향을 앞두고 스님은 불교TV의 대담 프로에 출연하여 불교적 해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대담자가 “즉문즉설의 해답이 금강경이었나요?”라고 묻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꼭 금강경이라기 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핵심은 중도사상이라고 말 할 수 있고, 대승불교에 오면 공사상이라고 말 할 수 있는데, 금강경의 공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금강경에 나오는 소위 ‘무유정법’의 사상이 즉문즉설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철학적 토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 불교TV <특집>BTN특집대담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2012-11-27)
지금까지 궁금하게 생각하였던 의문이 풀렸다. 스님의 불교적 해법의 기반은 ‘무유정법’이라는 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금강경에 실려 있는 무유정법은 무슨뜻일까.
무유정법(無有定法)이란 무엇인가?
불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금강경 공부를 해 보았을 것이다. 불교교양대학에서 기초교리를 공부하고 난 다음 이어서 경전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 거의 대부분 금강경 공부를 하게 된다. 교재는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커다란 글씨의 한문과 이를 설명한 한글이 작게 표기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금강경 공부는 강사들이 한문으로 읽고 뜻 풀이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한문으로 된 문장만으로 내용을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한글로 풀이 된 해석을 본다고 해도 뜻을 알기 어렵다. 이는 금강경이 한문으로 된 뜻 글자이어서 해석이 난해 할 뿐만 아니라 내용이 고도로 축약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설 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 반야바라밀(佛說般若波羅蜜卽非般若波羅蜜是名若波羅蜜) 라는 문장이 있다. 이런 문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A는 A가 아니라 그 이름이 A이다”라는 식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름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공사상을 바탕으로 한 금강경에서 그 어느 것도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무유정법이라 볼 수 있다.
무유정법이 들어 있는 문장은 금강경 제7분에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나온다. 해석하자면 “일정하게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다.”라는 뜻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산스크리트어를 음사한 것으로 한자어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 한다. ‘위 없이 평등원만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이런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정등각자(正等覺者)’라는 칭호를 붙여 주기도 한다.
이처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최상의 깨달음이라는 뜻인데 무유정법에 대하여 ‘명(名)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 것은 ‘무유정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名) 붙일 수 있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유정법이야말로 최상의 깨달음과 동등한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무유정법의 뜻풀이는 ‘특별히 정해진 법(定法)’이 ‘있는 것이 아니다(無有)’라는 의미이다. ‘무엇이든지 특별하게 정해진 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법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이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사상의 ‘법공(法空)’과 같은 의미이다.
‘내 뜻대로’하려다 보니
이와 같은 무유정법의 사상에 입각하여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을 하였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던 그 것을 미리 정해 놓고 답을 정해 놓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대화 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다른 한쪽 생각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 하도록,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깨닫도록 하는 것이죠.
(법륜스님, 불교TV <특집>BTN특집대담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2012-11-27)
즉문즉설 강연에 무유정법의 논리를 적용한 예를 말하고 있다. 대부분 질문자가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 또는 “틀려 먹었다”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내 뜻대로’ 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면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라고 보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문답과정을 통하여 치우친 생각을 깨닫도록 유도 한다는 갓이다.
더욱 더 구체적인 예를 다음과 같이 들어 설명한다.
이를 테면 산이 하나 있는데, 이 쪽에서 보면 동산이라 하고, 딴사람은 서산이라고 한다, ‘저 사람 미친사람 아니냐’ 이렇게 저한테 하소연 한다면 그 사람의 위치를 저쪽 마을로 옮겨 가지고, 거기서 보면 어떻게 보이겠느냐. 이렇게 해서 아내가 남편의 입장으로 돌아 가고, 남편이 아내의 돌아 보고, 부모가 자식입장으로 돌아가고, 이런 식으로 대화 중에 관점을 바꾸어 줌으로 해서 스스로 ‘아, 그래 이런 문제도 있구나’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그사람이 나를 해칠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사람은 자기나름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했는데 그게 내가 상처를 입었구나 이렇게 됨으로 해서 자기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거든요.
(법륜스님, 불교TV <특집>BTN특집대담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2012-11-27)
역지사지(易地思之) 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서 보지 않았거든 그 사람을 비난하지 말자는 것이다. 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금강경의 공사상이고, 무유정법사상이라고 법륜스님은 말한다.
왜 사람들이 몰릴까
법륜스님이 강연 하는 곳은 어디든지 만원이다. 자리가 없어서 통로에 서서 듣거나 문밖의 보조 의자를 듣고 경청하기도 한다.
통로에서 경청하는 사람들(법륜스님의 안양 강연회, 2010-05-01)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안심법문(安心法門)
그런 스님의 불교적 해법이 바로 공사상에 입각한 무유정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별히 정해진 법이 없다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상을 적용하면 비록 스님이 결혼한 적이 없고 자식을 가져 본 적이 없지만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부모 자식간의 갈등을 훌륭하게 해결하는 근거가 되는 법이 바로 무유정법임을 알 수 있었다.
‘특별하게 정해져 있는 법이 없다’라는 무유정법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뜻대로’를 고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 뜻대로’라는 정해진 법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스님의 법문은 다름 아닌 ‘안심법문(安心法門)’과도 같다. 지금 상대방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상황 그 조건에 따른 마음이기 때문에 조건만 달리 해주면 불안한 마음은 사라져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청중이 몰린다고 볼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마음의 안정을
스님의 전국 순회강연도 이번 30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디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할까. 그것은 초기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 빠알리니까야에 마음을 안정시켜 줄 수 있는 수 많은 가르침이 있다. 예를 들어 법구경 의 아무 게송이나 펼쳐서 보아도 마음은 편안해지고 안정된다. 그런 법구경 게송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누구든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자는
원망의 얽힘에 매이나니,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는
오만하고 방일한 자들,
그들에게 번뇌는 늘어만 간다.
(법구경, Dhp291-292, 전재성님역)
초기불교 경전은 어디를 떠 들어 보아도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준다. 그런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말하면 ‘알아차림’이 된다.
“그러려니”하라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차린다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마음이 편해 진다. 그래서 수행처에서 늘 하는 말은 “그러려니”하라고 말한다. 상대방에 대하여 “그렇네” “그렇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려러니’ 하는 마음 가짐을 갖는 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2012-11-3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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