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상에서 알게 된 디라왐사 빅쿠
이 세상의 동량이 되기 위하여
모바일로 불교TV 법문을 듣다가 기억에 남은 이야기를 들었다. 지리산에 있는 어느 선원에서 어느 선사가 대중스님들을 모아 놓고 선수행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왜 스님들은 심산유곡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은채 도를 닦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선사는 선어록에 실려 있는 말을 인용하여 ‘동량’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불교의 동량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동량이 되기 위하여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하지만 이는 부처님 당시 수행자의 모습과 다르다. 초기불교경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도 착하고 건전한 것을 구하고 위없는 최상의 평화를 구하여 마가다국을 차례로 유행하면서 마침내 우루웰라 근처의 쎄나니가마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고요한 총림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마음에 드는 지역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고요한 총림이 있고, 아름다운 둑에 싸여 맑게 흐르는 강물이 있고, 주변에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는, 이 지역이 마음에 든다. 이곳은 정진을 바라는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정진에 집중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이다.’
나는 ‘이 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앉았다.
(아리야빠리예사나경-Ariyapariyesanasuttaṃ- 고귀한 구함의 경, 맛지마니까야 M26, 전재성님역)
맛지마니까야 아리야빠리예사나경(M26)에 따르면, 부처님이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로부터 더 이상 원하는 가르침을 배울 수 없었다. 웃따까 라마뿟따에 대한 것을 보면, 부처님은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비상비비상처정)에 머무는 한, 그의 가르침은 싫어하여 떠남, 사라짐, 소멸, 적정, 지혜,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 대상이 된 곳이 우루웰라 세나니가마라는 마을이다.
왜 마을 옆으로 갔을까
그런데 경에 따르면 수행처를 정한 조건 중의 하나가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식재료를 싸 가지고 깊은 숲속이나 산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인근 숲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수행자들이 머무는 곳은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탁발하기에 좋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을 가까이에 수행처를 잡은 것은 무엇일까. 이는 수행자들이 철저하게 탁발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무소유와 청정한 삶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소유와 청정을 실현 하기 위해서 깊은 산중으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을 가까이 수행처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상하기 어렵다. 절은 심산유곡에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출가하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의 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경에 따르면 출가수행자는 세상과 단절하지 않았다. 그것은 탁발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탁발을 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소유정신이야말로 청정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계청정, 마음청정을 이루어 해탈과 열반을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탁발의 전통과 함께 또 하나 차이가 나는 것은 ‘복장’이다.
아랫가사(antaravāsaka), 윗가사(uttarāsaṅga), 중복가사(saṅghāṭi)
스리랑카와 태국, 미얀마 등 테라와다 불교국에서는 아직도 부처님 당시의 탁발의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탁발에 의존하고 복장 또한 부처님 당시의 가사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랫가사(antaravāsaka, 안따라와사까), 윗가사(uttarāsaṅga, 웃따라상가), 중복가사(saṅghāṭi, 상가띠)로 이루어진 세 개의 옷인데, 이런 가사를 입는 것 자체가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살겠다는 염원으로 보여진다.
출처 : http://www.payer.de/mahavamsa/chronik32.htm
하지만 동아시아 불교의 승복을 보면 테라와다전통의 복식과 다르다. 수백년전의 전통복식에다 가사를 걸친 형태이기 때문이다. 소매가 길고 두루마기 형식의 긴옷의 승복위에 걸친 가사를 보면 단지 가사를 입었다는 것을 형식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이 가사를 걸칠 때는 예불이나 공식적인 행사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는 승복따로 가사따로가 아니라고 한다. 가사자체가 승복이고, 생활복이고 잠옷이어서 항상 걸치고 다닌다고 한다. 이는 수행따로 삶따로가 아니라 수행과 삶이 분리 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부처님 방식대로 살겠다는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가사는 어떤 것일까.
부처님도 비단 옷 등을 버리고 분소의를 입으셨거늘
청정도론의 두타행에 따르면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마라의 군대를 항복받기 위해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는
전쟁터에서 갑옷으로 무장하나 왕족처럼 빛난다.
세상의 스승께서도 까시의 비단 옷 등을 버리고
분소의를 입으셨거늘 누가 그것을 입지 못할까?
그러므로 비구는 스스로 서원한 말을 기억하여
수행자에게 적합한 분소의 입는 것에 즐거워할지어다.
(청정도론, 제2장 두타행, 대림스님역)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에 대하여 갑옷으로 치장한 왕족처럼 빛난다고 하였다. 더구나 왕족이었던 부처님도 비단옷을 버리고 누구도 입지 않는 분소의를 입었다고 하였다.
분소의가 발전하여 오늘날 가사가 되었다. 그런 가사는 세 벌로 되어 있는데, 수행복이자 생활복이라 한다. 이는 무소유와 청정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음식을 저장하거나 조리하여 먹지 않고 탁발에 의존하며 세 벌의 옷으로만 살아가는 수행자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불교에서 탁발에 의지하거나 세 벌의 가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수행자를 보기 어렵다. 출가수행자들이 심산유곡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식재료를 저장하여 조리 해 먹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는 곧 세상과의 단절을 위미한다. 또 승복의 경우 가사를 입는 다는 것 자체가 예불 등 공식적인 행사를 할 때만 입기 때문에 수행따로 삶따로 임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라 보여진다.
수행따로 삶따로
수행따로 삶따로의 모습은 우리나라 스님들에게서 볼 수 있다. 중국 선종의 백장청규에 따르면‘일일부작 일일부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하루 동안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식사 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인도불교와 달리 동아시아 불교는 기후등으로 인하여 탁발을 할 수 없어서 식재료를 쌓아 두고 조리해 먹는데, 더 나아가 농사까지 지어서 생활을 유지 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이 표현된 것이 백장청규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는 부업을 갖는 것으로 변질 된 것 같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스님들은 부업을 가지고 있다. 달마도나 탱화 같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스님’이 있고, 여러 장의 음반을 내고 산사 음악회 등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스님’이 있다. 또 춤을 잘 추는 ‘무용스님’이 있고, 사찰요리를 잘 하는 ‘조리사스님’도 있다. 더구나 사주와 관상 등을 보아 주는 ‘운명감정스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죽은 자를 천도하는 제사장 역할을 하는 제관스님도 있다.
한편 어떤 스님은 역경작업도 하고 또 어떤 스님은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스님들도 있다. 이렇게 시(詩), 서 (書), 화 (畵), 다(茶)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가지는 스님들도 많다.
이렇게 다양한 부업을 가진 스님들이 많은데 때로 본업과 부업이 뒤바뀐 듯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본업인 수행과 포교를 멀리 한 채 부업에 열중하는 스님을 볼 때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부처님이 계시다면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할까.
승복은 변화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출가자들은 부처님 당시의 삶으로 돌아 갈 수 없는 것일까. 동아시아 불교에서 탁발하는 전통이 없다고 할지라도 탁발정신만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정신의 발로가 세상속에서 함께 하는 불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사는 곳에 불교가 없다. 이는 탁발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다보니 재료를 싸 가지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사는 것이라 본다. 탁발정신이 살아 있다면 사람 사는 곳에 불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세상과 인연을 끊고 세상과 소통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복식 또한 옛날 전통을 그대로 고수 하고 있다. 매우 긴 소매와 치렁치렁한 긴옷을 특징으로 하는 승복을 보면 수백년전의 승복 그대로이다. 세상이 급속하게 바뀌어도 승복만큼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승복도 예불 등 공식적인 행사에서만 가사를 걸치고 그 외 시간에는 가사가 없는 승복을 입고 있다. 그래서일까 수행따로 삶따로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만드는 등 수행따로 삶따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초기불교가 유행하고 있는 이 시대에 승복은 변화 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에 테라와다불교가 도입되었는데
초기불교가 유행하고 있다. 초기불교경전인 빠알리니까야가 번역되어 나왔고 부처님의 수행법이라고 불리우는 위빠사나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알려지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남방테라와다 불교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원래 ‘전래’와 ‘도입’은 다른 말이다. 전래는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도 마찬가지이었다. 중국에서 초기에 불교는 전래 된 것이었다. 수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문명국가이었던 중국이었지만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전래’로 인한 것이었다.
중국으로 불교의 전래는 주로 서역이나 인도승려들이 직접알려 주었다. 또한 그들은 원전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불교가 중국의 주도적인 문화로 자리잡는데 있어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중국인들은 불교를 직접 배우기 위하여 인도로 떠났다. 현장스님 같은 분들이다. 그 때 배워 온 불교는 전래라 하지 않고 ‘도입’이라 부른다. 이는 불교문화가 중국에 정착되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의 발로라 보여진다.
마찬가지로 한국불교 역시 남방불교국가에서 테라와다불교를 배워 오고 있는데, 이는 전래가 아니라 ‘도입’이라 볼 수 있다. 공식적인 도입은 지난 2008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은 한국테라와다불교가 최초라 볼 수 있다.
기존 대승불교전통과 다른 테라와다불교가 한국에 뿌리내렸다는 것은 한국불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커다란 사건이라 본다. 비록 탁발에 의존하는 등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부처님 당시의 전통을 따르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복장이다. 테라와다 불교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의 테라와다불교 비구들 역시 부처님 당시의 가사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넷상에서 알게 된 디라왐사 빅쿠
넷상에서 알게 된 테라와다 비구가 있다. 디라왐사 빅쿠이다. 언젠가 글을 남겨 주셔서 알게 되었는데, 스님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보였다.
밖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힘을 키워야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음에도
왜 블로그를 시작하느냐 하면,
왜 네이버가 아닌 다음에서 블로그를 만들었느냐 하면,
진흙속의연꽃, http://blog.daum.net/bolee591/(이 고뇌의 강을 건너) 이란 분의 다음 블로그의 글을 읽고 자극 받아,
또한 그 글들을 구독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디라왐사 빅쿠, 다음 블로그를 시작하며... )
스님이 블로그를 만들게 된 동기를 적어 놓고 있다. 그러나 스님은 지금 한국에 있지 않다.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에 글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글을 남기게 될 것이다.
미얀마로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접속해 본다.
3년 동안 내가 미얀마에 홀로 수행을 하는 동안,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는 이 블로그도 역시 홀로 있겠지...
생명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여지이다!
(디라왐사 빅쿠 , 2011년 7월 3일 오전 12:17)
한국테라와다불교 소속의 비구인 디라왐사 빅쿠는 미얀마로 수행하러 떠난다고 하였다. 3년후에나 돌아 올 것이라 한다.
“붓다의 성스런 삶을 따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스님이 남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소유와 성취의 시대에 무소유와 포기의 기쁨을 가르친다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저건 뭐야? 저 사람 왜 저래? 빡빡머리다. 번쩍번쩍! 섹-쉬한데~"
탁발하는 중에 짓궂은 아이들이 맨발로 걸어가는 나를 보며 한 말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엄마 아빠에게 물어본다.
아이 : 우와! 맨발이야.
엄마 : (못들은 척하며)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학원은 공부는...
아이 : 저 사람 맨발로 다녀...
엄마 : 응. 그래,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학원은 공부는...
아이 : 엄마, 저 사람 왜 맨발로 다녀?
엄마 : 그러니까,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학원은 공부는...
아이 : 맨발...
엄마 : 공부는...
아이 : 맨발...
엄마 : 그래, 공부는...
대부분의 부모와 목소리 큰 아이 간의 대화가 내 귀에 들려지면 이와 같은 방식의 대화가 이루어 진다.
아이들은 빡빡머리에 진갈색천을 온통 두르고 맨발로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낯선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계속 부모에게 물어보는데, 엄마는 아이의 호기심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하던 말, 하고 싶은 말에 아이가 집중하기를 요구한다.
그나마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에게 관심을 갖어주는 부모는 내 모습을 '고행'이라는 낱말로 설명한다.
그러면 아이는 고행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설명을 듣게 된다.
(놀이터에서 나에게 직접 물어보는 꼬마에게 나 역시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낱말만 말했던 경험이 있다.)
아이들에게 왜 맨발로 다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것, 고행이 아닌 무소유의 행복을 어른과 아이의 수준에 맞게 바르게 알려 준다는 것...
붓다께서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이시고 정말로 경배받고 공양받아 마땅한 위대한 스승이신지,
그러한 분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러한 분의 가족이 되어 출가 빅쿠로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없는 붓다의 성스런 삶을 따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아이와 부모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디라왐사 빅쿠, 소유와 성취의 시대에 무소유와 포기의 기쁨을 가르친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님들의 이미지는 회색이다. 소매가 길고 치렁치렁한 전통복장형식으로 된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도시에서 갑자기 진갈색천을 온몸에 두루고 그것도 맨발로 걸어가는 전에 보지 못하던 스님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아이의 질문에 엄마가 답하기를 ‘고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과 부처님 당시와 비슷한 가사를 입은 것 그 자체가 부처님과 가까워지려 하는 것이고 부처님 방식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디라왐사 빅쿠는 부처님방식대로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축복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떠 올리게 한다.
여분의 옷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저장을 피하는
삼의만 수용하는 지혜있는 수행자는
지족과 행복의 맛을 안다.
그러므로 날개와 함깨 날아가는 새처럼
진정한 수행자는 삼의만으로 [산다],
행복을 원하는 이는 옷의 절제에 기뻐할지어다.
(청정도론, 제2장 두타행, 대림스님역)
비록 넷상으로 만난 스님이지만 몇 편 되지 않은 글 속에 진한 부처님의 향기가 베어 있다. 3년 후 돌아 온다고 글을 남겼는데 1년 3개월이 지났으니 앞으로 1년 9개월 후가 되면 스님의 글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를 기대해 본다.
2012-11-26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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