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2. 19. 18:13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느 과학 다큐 TV프로그램에서 본 문구이다.  입자가속기를 이용하여 우주의 탄생비밀을 밝히고자 연구하고 있는 어느 외국 노교수의 화두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라는 말은 폴 고갱의 작품이름이다. 1897년 폴 고갱이 타이티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폴고갱이 자살시도 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라 한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어디에서 왔는가.” 유튜브에서 본 글이다. 역시 과학 다큐 프로인데 제목은 스티브 호킹, 우주를 말하다라는 동영상이다. 호킹이 우주의 기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바로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동영상에 따르면 스티브 호킹 (Stephen William Hawking, CH, CBE, FRS, 1942 1 8~) 은 펜 로즈의 불랙홀 이론을 듣고 영감을 얻어 빅뱅이론을 발표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여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호킹은 중력이 음성입자를 빨아들이는 한편 양자역학에 의해 양성입자가 탈출한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서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양립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이론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만물이론 끈이론(string theory)’

 

만물이론의 후보로서 끈이론(string theory)이 있다. 이 이론은 원자에서 항성, 행성에서 사람까지 모두 통합할 것이라 한다. 모두가 끈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끈은 우리 주변에 있는 만물의 기본요소이며 우주는 이 진동하는 끈들로 짜인 거대한 그물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끈이론을 주창하고 있는 마이클 그린 (Michael Green)교수는 만물이 끈으로 이루어져 있고 끈으로 이어진 시공간을 움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끈이론이란 무엇일까. 동영상 프로의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주변의 세상은 3차원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죠. 하지만 끈 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최소 9차원 공간 속에 있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겠지만 그린은 추가적인 차원이 우리의 시야 뒤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죠.

 

(끈이론, 스티브 호킹, 우주를 말하다)

 

 

끈이론에서는 9차원 이상의 부가적인 공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부가차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우 작고 직접관찰 할 수 없다고 한다. 부가차원이 너무 작은 매듭으로 엉켜 있어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우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라 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중력이 약한 이유가 부가차원때문이라 한다.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중력은 강하지만 곧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중력은 부가차원으로 분산되며 세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물이론으로 가는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 해주는 것이라 한다.

 

부가차원에 대해서 음악소리의 비유를 들고 있다. 음악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면 크지만 여러방향으로 퍼지면서 점차 세기가 약해진다. 약해질뿐 그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음악소리를 중력이라 보면, 중력은 부가차원에서 더 많이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간속에서 차원이 많을수록 퍼져 나가는 방향도 많아 지기 때문에 중력은 더욱 약해진다고 한다. 이 끈 이론은 오늘날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설명해 주는 새로운 이론이라 한다.

 

그렇다면 중력의 약화가 왜 중요할까. 그것은 우주가 붕괴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라 한다. 빅뱅이후에 중력이 강하다면 중력의 힘에 의하여 다시 블랙홀이 될 수 있으나 중력이 분산됨으로 인하여 우주의 수축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숨겨진 차원에 대한 이론은 증명되지 않았다. 끈이론과 부가차원은 단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중우주론

 

동영상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중우주론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호킹박사은 공기방울안에 우리 우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공기방울 주위에 다른 공기방울들이 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우주가 담겨 있다고 한다. 마치 비누칠한 물에서 물방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광막한 시공간에서 공기방울이 생겨나는 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기방울 같은 우주가 생겨 날 때 태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질과 에너지도 없고 심지어 빈 공간조차 없었다. 공간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공간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란 것도 없었다. 따라서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원자보다 작은 불덩어리가 나타난다. 이것이 우주의 시작이다. 원자 보다 작은 하나의 특이점에서 대폭발이 일어남에 따라 오늘날 보는 우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 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시간 또한 확장 되었다. 공간과 시간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공간이 확장되면 될수록 시간 또한 점점 확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기방울 같은 물방울 안에 또 물방울이 생겨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물방울 역시 하나의 특이점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폭발이 커짐에 따라 시공간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기방울 안에서 또 하나의 우주가 생겨나는 것은 시공간이 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호킹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 많은 소형 공기 방울들이 탄생하고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소형 공기 방울 중 일부는 다시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안전한 크기로 성장할 겁니다. 따라서 우리 우주는 살아남은 많은 공기 방울 중의 하나입니다.

 

(스티븐 호킹,  스티브 호킹, 우주를 말하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우주가 탄생하고 있지만, 그 중에 살아 남은 것은 앞서 중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 한다. 대폭발로 우주가 생겨났더라도 중력이 강하다면 그 중력의 힘으로 다시 블랙홀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중력이 약화 되는 것은 블랙홀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이를 호킹 박사가 이론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블랙홀에 빠져도 포기하지 않고

 

이런 업적에 대하여 호킹박사의 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의 가장 큰 가르침은 블랙홀에 빠져도 포기하지 않고 탈출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몸소 보여 주신 가르침이죠.

 

(호킹박사 딸,   스티브 호킹, 우주를 말하다)

 

 

호킹박사는 루게릭병으로 인하여 사망선고를 받았지만 40년 이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블랙홀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호킹박사의 업적과 같이 블랙홀에 빠지지 않고 블랙홀로부터 탈출한 삶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과학자들이 존재의 근원을 밝히려고 노력하였지만 이론으로만 그칠 뿐 이라 한다. 그래서 나레이이터는  “만물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정식을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세상이란?

 

누구나 한 번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든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어디에서 왔는가.”등의 인생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빠알리니까야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나온다.

  

 

 

    

빠알리어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a saddā ca ghānañca gandhā ca jivhā ca rasā ca kāyo ca phoṭṭhabbā ca mano ca dhammā ca ida vuccati bhikkhave sabba.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수행승들이여, 일체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바로 일체라고 한다.

초불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 (마음의 대상인)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영역

Monks, what is everything? Eye and forms are everything. Ear and sounds, nose and scents, tongue and tastes, body and touches and mind and ideas are everything. These are called everything.

(삽바경-Sabbasutta-일체의 경, 상윳따니까야 S35:23)

 

 

 

일체란 무엇일까. 주석에 따르면, 광의의 일체에서 협의의 일체에 이르기 까지 네 가지로 보고 있다. 즉 일체는

 

1)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일체: 부처님의 전지성으로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

2) 감역의 일체: 네 가지영역(삼계와 열반)의 일체현상

3) 개체의 일체: 욕계, 색계, 무색계의 현상

4) 부분적인 일체 : 다섯가지 물질적 감각대상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공간은?

 

경에서 부처님은 여섯가지 감역(salāyatana)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그런 세상이 전부(일체)라 하였다. 세상은 광대한 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은 협의의 의미이든 광의의 의미이든 일체는 모두 여섯 가지 감역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체는 시공간의 세계를 포함하는 일체의 세계를 말한다. 이 의미는 시각과 형상의 감역이나 청각과 소리의 감역이나, 후각과 냄새의 감역이나 미각과 맛의 감역이나 촉각과 감촉의 감역이나 정신과 사실의 감역에서 시공간이 파생되어 나온 것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쌍윳따니까야 제4권 해제, 전재성박사)

 

 

부처님이 말씀 하신 세상과 일체는 여섯 가지 감역을 결코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공간이 따로 있어서 우리가 그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섯감역으로 인하여 시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섯 감역의 인식을 벗어나면

 

만일 여섯 감역을 벗어나서 세상과 일체를 설명하려 든다면 부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을까. 경에서 이어지는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빠알리어

Yo bhikkhave eva vadeyya: ahameta sabba paccakkhāya añña sabba paññāpessāmīti, tassā vācāvatthurevassa. Puṭṭho ca na sampāyeyya, uttariñca vighāta āpajjeyya, ta kissa hetu yathā ta bhikkhave avisayasminti.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수행승들이여, 누군가 나는 이러한 일체를 부인하고 다른 일체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공허한 말일 뿐이다. 만약 질문을 받으면 그는 대답할 수 없고, 더 나아가 곤혹스러움에 쩔쩔맬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그의 감역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초불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일체를 버리고 다른 일체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영역

Monks, if someone says I reject this everything and appoint some other everything, they are only words uttered, questioned would not be able to reply and would fall into trouble. What is the reason? It is not his sphere to reply.

(삽바경-Sabbasutta-일체의 경, 상윳따니까야 S35:23)

 

 

부처님은 매우 단호하게 말한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여섯 감역 외의 일체를 말한다면 공허할 뿐이라 하였다. 여기서 공허한 말(vācāvatthu)’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주석에 따르면,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와서 보라고 할 수 있으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형이상학적 주제를 이야기 한다면 공허할 뿐이라 한다. 마치 달이나 태양을 끌어 내려는 시도와 같은 것으로 본다.

 

세상을 바라 보는 두 가지 관점

 

이에 대한 해제글을 보면 시공간이라는 일체가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일체를 부인하고 다른 일체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말뿐이며 질문을 받으면 답변하지 못하고 곤혹에 빠지는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라고 하였다.

 

왜 그럴까? 이는 시공간이 먼저 있어서 그것으로 시각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면 말뿐인 것이지 어떠한 본성도 밝혀 내지 못할 것이라 한다. 이는 세상을 바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바라본 세상이고, 또 하나는 자신은 세상의 일부분으로 객체가 되어 바라 본 세상을 말한다.

 

불교적 세계관은 당연히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바라본 세상이다. 그래서 시공간은  여섯 가지 감역의 바다에서 조건지어져서 파생된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시공간이 먼저 존재하고 감각의 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후자인 우리가 객체가 되어 세상을 바라 보는 결과로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자유란 주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나는 후차적 존재이고, 나를 있게 한 하나의 원인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론적으로 접근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존재의 근원 내지 창조주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를 창조한 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고 신으로부터 구제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 송장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놈은 무엇인고?”

 

이렇게 자신을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공간에 객체적인 존재로 형성되어 있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형이상학적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치 현대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밝혀 보고자 하는 시도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불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밝히고자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은 누구인고?”라든가 이 송장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놈은 무엇인고?”라는 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존재의 근원을 밝히고자 알 수 없는의문을 가지고 일년, 이년, 십년, 삼십년, 심지어 평생을 수행정진 하지만 해답을 얻지 못한다. 이는 경에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대로 존재의 근원을 밝히려 한다는 것은 공허한 것이고 답이 없는 것이라 한다.

 

왜 그럴까? 경에서와 같이 그런 세상은 여섯감역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말로 인식의 범위를 넘어 섰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 것을 대상으로 하여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든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알 수 없는 의문을 가진다면 이는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찾는 것과도 같다.

 

세상의 생겨남이란?

 

이렇게 부처님은 우리들이 인식할 수 있는 여섯 감역이 우주이자 일체라 하였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세상이 생겨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 세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 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것이 세상의 생겨남이다.

 

(로까사무다야경-Lokasamudayasutta-세상의 생겨남의 경, 상윳따니까야 S35:107(1-4),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이 세상이 생겨나는 요인에 대하여 세가지가 화합하여 생겨난다고 하였다. 시각을 예로 든다면 시각과 형상과 시각의식 이렇게 세가지가 합쳐져서 접촉이 생겨남에 따라 세상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는 항상 생노병사 등으로 끝이 난다.

 

이는 세상의 생겨남이 빅뱅으로 인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이 존재 하기 이전에 시공간이 있었고, 존재하지 않아도 시공간이 여전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 등 여섯 감역에 따라 시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세상의 생겨남이라 본 것이다.

 

세상의 소멸이란?

 

그렇다면 세상의 소멸은 어떤 것일까. 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세상이 소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 세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다. 그 갈애가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것이 세상의 소멸이다.

 

 (로까사무다야경-Lokasamudayasutta-세상의 생겨남의 경, 상윳따니까야 S35:107(1-4),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세상의 소멸에 대하여 여섯감역에 따라 발생된 세상이 소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연기의 역관에 대한 것이다. 갈애가 일어나지 않아 더 이상 집착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때 세상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갈애가 남아 있다면 여전히 세상은 존재할 것이다. 그 세상은 자신의 여섯 감역이 시공간을 만들어 낸 세상을 말한다. 그래서 세상의 소멸이라는 것이 우주의 시공간이 블랙홀로 사라지는 소멸이 아니라, 더 이상 갈애를 일으키지 않아 다시 태어남이 없을 때 이를 세상의 소멸로 본 것이다.

 

육척단신의 몸안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우주는 광대하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몸으로 결코 도달 할 수 없다. 그러나 부처님은 도달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그러나 벗이여, 세계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벗이여, 지각하고 사유하는 육척단신의 몸안에 세계와 세계의 발생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 있음을 나는 가르칩니다.

 

(로히땃사경-Rohitassasutta,상윳따니까야 S2:26(3-6),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세계의 발생과 소멸이 이 육척단신의 몸안에 있다고 한다. 따로 시공간이 있어서 그 공간의 끝까지 날아 가지 않아도, 이 몸안에서 세계의 끝까지 갈 수 있다고 말씀 하신다. 이와 같은 가르침에 따른다면 부처님은 산천초목과 같은 무정물에 진리를 설한 것이 아니라 지수화풍 사대 요소로 형성된 바로 여기 이 몸안에서 가능하다는 진리를 설하신 것이다. 그 진리는 사성제이다. 사성제야말로 세상의 끝에 이를 수 있는 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2012-12-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