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와 우다나를 구입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하였다. ‘숫따니파타’와 ‘우다나’이다. 인터넷시대에 단편적으로,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료가 있었으나 번역된 책은 모두 구입한다는 방침에 따라 산 것이다.
전재성박사가 번역한 숫타니파타의 경우 다른 번역서와 달리 하드 커버가 되어 있지 않다. 마치 소설책처럼 표지가 디자인 되어 있어서 정형화된 다른 번역서와 확연히 다르다. 560여페이지에 달하고, 2004년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2011년 개정본 인쇄라고 되어 있다.
우다나의 경우 ‘우다나-감명어린 시구’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연한 청색으로 된 하드커버로 되어 있고,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고, 2009년도에 발간 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귀신들과 존재들
숫따니빠따의 경우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책이다. 이미 70년대에 ‘수타니파타’라는 제목으로 법정스님이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번역된 것을 우리말로 다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빠알리니까야를 직역한 것과 차이가 있다. 라따나경(Sn2.1)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
라따나경 1번 게송 |
빠알리어 |
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Bhummāni vā yāni va antalikkhe, Sabbeva bhūtā sumanā bhavantu Athopi sakkacca suṇantu bhāsitaṃ. |
법정스님역 |
여기 모인 모든 귀신들은 지상의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다들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으라. |
전재성박사역 |
여기 모여든 모든 존재들은 지상에 있는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여지이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으십시오. |
(Piyadassi Thera) |
Whatever beings (non-humans) are assembled here, terrestrial or celestial, may they all have peace of mind, and may they listen attentively to these words |
첫번째 게송에서 법정스님은 ‘귀신’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반면 전재성박사는 ‘존재들’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빠알리어는 ‘부따니 (bhūtāni)’ 이다.
부따니(bhūtāni)는 어떤 뜻인가
새로 산 책에서 부따니에 대한 각주를 보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Bhūtāni: 일반적으로 비인간(非人間)을 말한다. 비인간에는 신들, 야차, 나찰, 다나바, 건달바, 긴나라, 마호라가가 있다. 나가(nāga)는 비인간에 속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숫타니파타’에 자주 등장하는 야차는 비인간에 속하는 무리로 아귀보다는 약간 높은 단계의 귀신으로 인간과 건달바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영혼이나 유령, 도깨비, 요정, 괴물이 이에 속한다.
(Bhūtāni 각주, 전재성박사)
각주에 따르면 부따니는 귀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과 건달바에 사이에 존재하는 무리라 한다. 그래서 전재성박사는 귀신이 아니라 ‘존재’로 번역하였을 것이다.
멧따경(자애경,Sn1.8)의 번역어 비교
숫따니빠따는 ‘고층’에 속하는 경전이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고 난 후 승단을 이루기 전에 세상을 유행하며 고독한 은둔자, 치열한 구도자로서의 경험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내용이 순수하고 소박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숫따니빠따는 쿳다까니까야에 속해 있다. 그런데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아직 쿳다까에 실려 있는 경전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경에 대해서는 독송용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멧따경(자애경,Sn1.8) 이 대표적이다. 초불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자애경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
자애경 1번 게송 |
Karaṇīyamatthakusalena yaṃ taṃ santaṃ padaṃ abhisamecca,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널리 이로운 일에 능숙하여서 평정의 경지를 성취하고자 하는 님은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상냥하고 온유하고 교만하지 말지이다. |
(각묵스님) |
도닦음에 능숙한 자, 고요한 경지를 체험하면서 이처럼 행할지라. 유능하고 정직하고 진솔하며 고운 말에 온화하고 겸손하네. |
(Acharya Buddharakkhita) |
Who seeks to promote his welfare, Having glimpsed the state of perfect peace, Should be able, honest and upright, Gentle in speech, meek and not proud. |
구 분 |
자애경 2번 게송 |
Santussako ca subharo ca appakicco ca sallahukavuttī,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만족할 줄 알아서 남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몸과 마음 고요하고 슬기로우니, 가정에서 무모하거나 집착하지 말지이다. |
(각묵스님) |
만족하고 공양하기 쉽고 일 없고 검소하며 감관은 고요하여 슬기롭고 거만 떨지 않고 신도 집에 집착하지 않네. |
(Acharya Buddharakkhita) |
Contented, he ought to be easy to support, Not over-busy, and simple in living. Tranquil his senses, let him be prudent, And not brazen, nor fawning on families. |
구 분 |
자애경 3번 게송 |
Na ca khuddaṃ samācare kiñci yena viññū pare upavadeyyuṃ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다른 양식있는 님들의 비난을 살만한 어떠한 사소한 행동이라도 삼가 하오니, 안락하고 평화로워서, 모든 님들은 행복해지이다. |
(각묵스님) |
현자가 나무랄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니 원컨데 모든 중생 즐겁고 안녕하여 부디 행복할지라. |
(Acharya Buddharakkhita) |
Also, he must refrain from any action That gives the wise reason to reprove him. (Then let him cultivate the thought:) May all be well and secure, May all beings be happy! |
구 분 |
자애경 4번 게송 |
Ye keci pāṇa bhūtatthi tasā vā thāvarā vā anavasesā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살아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나, 동물이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 길다랗거나 커다란 것이거나, 중간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미세하거나 거친 것이거나, |
(각묵스님) |
약하거나 강하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치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통통하거나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모두 다 |
(Acharya Buddharakkhita) |
Whatever living creatures there be, Without exception, weak or strong, Long, huge or middle-sized, Or short, minute or bulky, |
구 분 |
자애경 5번 게송 |
Diṭṭhā vā yeva addiṭṭhā ye ca dūre vasanti avidūre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멀리 사는 것이나 가까이 사는 것이나, 이미 생겨난 것이나 생겨날 것이나, 모든 님들은 행복하여지이다. |
(각묵스님) |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그 모든 중생 부디 행복할지라. |
(Acharya Buddharakkhita) |
Whether visible or invisible, And those living far or near, The born and those seeking birth, May all beings be happy!
|
구 분 |
자애경 6번 게송 |
Na paro paraṃ nikubbetha nātimaññetha katthaci naṃ kañci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서로가 서로를 헐뜯지도 말지니,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서로에게 고통을 바라지 않나이다. |
(각묵스님) |
남을 속이지 않고, 어떤 곳에서 어떤 이라도 경멸하지 않으며 성냄과 적개심으로 남의 불행을 바라지 않네. |
(Acharya Buddharakkhita) |
Let none deceive or decry His fellow anywhere; Let none wish others harm In resentment or in hate. |
구 분 |
자애경 7번 게송 |
Mātā yathā niyaṃ puttaṃ āyusā ekaputtamanurakkhe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 이와같이 모든 님들을 위하여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 |
(각묵스님) |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친아들을 목숨으로 보호하듯 모든 중생들을 향해 한량없는 마음을 개발할지라. |
(Acharya Buddharakkhita) |
Just as with her own life A mother shields from hurt Her own son, her only child, Let all-embracing thoughts For all beings be yours. |
구 분 |
자애경 8번 게송 |
Mettaṃ ca sabbalokasmiṃ mānasaṃ bhāvaye aparimānaṃ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그리하여 일체의 세계에 대하여,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게 하여지이다. |
(각묵스님) |
온 세상 위, 아래,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증오를 넘어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을 개발할지라. |
(Acharya Buddharakkhita) |
Cultivate an all-embracing mind of love For all throughout the universe, In all its height, depth and breadth — Love that is untroubled And beyond hatred or enmity. |
구 분 |
자애경 9번 게송 |
Tiṭṭhaṃ caraṃ nisinno vā sayāno vā yāvatassa vigatamiddho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서있거나 가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거나 깨어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이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청정한 삶이옵니다. |
(각묵스님) |
섰거나 걷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깨어있을 때는 언제나 이 자애의 마음챙김을 개발할지니, 이를 일러 거룩한 삶(梵住)이라 하네. |
(Acharya Buddharakkhita) |
As you stand, walk, sit or lie, So long as you are awake, Pursue this awareness with your might: It is deemed the Divine State here. |
구 분 |
자애경 10번 게송 |
Diṭṭhiñca anupagamma sīlavā dassanena sampanno | |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삿된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 계행을 갖추고, 통찰을 갖추어 감각적인 욕망을 다스리면, 결코 다시 윤회에 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
(각묵스님) |
계행을 지닌 자, 사견을 따르지 않고 바른 견을 구족하여 감각적 욕망에 집착을 버려 다시는 모태에 들지 않으리. |
(Acharya Buddharakkhita) |
Holding no more to wrong beliefs, With virtue and vision of the ultimate, And having overcome all sensual desire, Never in a womb is one born again. |
멧따경-Imee Ooi창송
자애경은 부처님의 자애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경전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경에서 세 번째 게송에 있는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이 한 구절에 다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님들은 행복하여지이다”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더욱 더 구체화 된 것은 ‘마따 야타 니양 뿟땅 아유사 에까뿟당 아누락케(Mātā yathā niyaṃ puttaṃ āyusā ekaputtam anurakkhe)’라는 구절이다.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 자애의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전재성박사의 번역을 보면 “~하여지이다” 또는 “~이옵니다”로 끝나는데 이는 매우 ‘공손한’ 표현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한 것이지만 이렇게 공손하게 표현한 것은 각주에 따르면, 게송들이 고층의 아리야(Arya) 운율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슬로까(Sloka) 운율을 취하기 때문에 표현된 것으로 보여 진다.
아리야운율과 슬로까운율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번역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였는데, 각묵스님의 경우 “~하네” 나 “~일지라”식으로 ‘겸손하게’ 표현하였고, 법정스님의 경우 “~한다” “~하라” 등으로 ‘명령조로’ 표현하였다.
빠알리원문 외우기
이 멧따경은 현재 테라와다불교권에서 라따나경(보배경), 망갈라경(행복경) 등과 함께 예불문으로 사용되고 있고 동시에 ‘수호경(paritta,護呪)’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법회를 하면 항상 독송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초기불교가 도입되어 크게 관심을 끌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에서도 독송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번역문을 보면 모두 달라서 어느 번역문을 사용해야 하는지 망설일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차라리 빠알리원문을 외우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실제로 멧따경을 빠알리 원문으로 외웠다. 번역문은 단지 참고만 하고 빠알리 원문으로 외우니 독송하는 맛이 났다.
우리 불자들은 “나모라 다나다라~”로 시작되는 그 말이 그 말 같은 신묘장구대다라니도 척척 외울줄 안다. 그래서 법회를 하면 힘차게 독송하고 심지어 108독 하며 철야기도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정성이라면 빠알리어로 된 멧따경을 외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다나에 대한 것이다.
감흥어린 싯구란?
우다나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열반에 대한 감흥어린 시구와 인연담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우다나-감흥어린 시구’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깨달음과 열반에 대한 감흥은 어떤 것일까. 머리말에 소개 되어 있는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은 사라진다.
(우다나, Ud.1-1, 전재성님역)
부처님이 깨달음에 대한 진리를 감흥으로 읊은 것이라 한다. 부처님이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 언덕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어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체험하면서 이레 동안을 앉아 있다가, 이레가 지나자마나 그 삼매에서 일어나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십이연기에 대하여 순관으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인 이후에 그 감흥을 읊은 것이라 한다.
우다나(Udāna)란 말은 어원적으로 ‘숨을 내쉬다, 발언하다(udāneti)’는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라 한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감흥어린 신성한 발언 또는 환희로운 앎에 기초한 시구를 뜻한다고 한다. 연못에 물이 넘치면 넘쳐 흐르듯, 흘러 내리는 기쁨의 진동으로도 묘사 되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반은
그렇다면 부처님은 열반에 대해서는 어떻게 묘사하였을까. 우다나 중에 열반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atthi bhikkhave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o ce taṃ bhikkhave abhavissā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na-y-idha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etha.
Yasmā ca kho bhikkhave
atthi ajātaṃ abhūtaṃ akataṃ asaṅkhataṃ,
tasmā jātassa bhūtassa katassa s
aṅkhatassa nissaraṇaṃ paññāyatī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없다면,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질 수 없다.
그러나 수행승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부터의 여읨이 알려진다.
(우다나, Ud.8-3, 전재성님역)
일반적으로 열반에 대한 것은 묘사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이 언설로 표현한 것은 제자들을 교화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첫 번째 게송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ajātaṃ), 생겨나지 않은 것(abhūtaṃ), 만들어지지 않은 것(akataṃ), 형성되지 않은 것(asaṅkhataṃ)은 각주에 따르면 모두 같은 말, 즉 동의어라고 한다. 특히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의 ‘아상카타(asaṅkhataṃ)’라는 말은 형성되지 않은 것을 본질로 하는 열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렇게 원인들의 조화에 의하여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열반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 게송에서는 형성되는 것이 없다면 여읨도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모든 형성된 것들은 조건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원인과 조건과 결과라는 연기법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조건에 따라 발생한 것은 조건이 소멸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를 ‘여읨(nissaraṇa)’이라 하였다. 따라서 생겨난 것, 형성된 것이 없다면 여읨이니 열반이니 하는 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세 번째 게송에서 ‘여읨이 알려진다’라고 하였다. 이는 생겨난 것, 형성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건에 따라 발생한 것은 무엇이든지 소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염원이 남아 있다면 그 오염원을 조건으로 하여 다시 일어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다시 일어남의 조건을 소멸시킨다면 더 이상 형성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팔정도를 닦아 오염원을 남김 없이 제거 하였을 때 일체의 윤회의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 하였다.
‘노랑형광메모리펜’을 이용하여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하였을 때 마치 교과서를 받는 듯한 기분이다.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새교과서를 받았을 때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며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다. 이렇게 하나 둘 능력껏 사 모은 빠알리니까야 번역서를 대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다. 절대 책에 낙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신 ‘노랑형광메모리펜’을 이용한다. 중요도에 따라 강약을 조정하는 것이다. 또 책을 접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컬러풀한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페이지 구분을 해 놓는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함부로 훼손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목구멍에 넘어 가는 순간
책은 사 두면 남는다. 맛있는 음식의 경우 먹으면 그만이지만 책은 닳아 없어지지 않는 한 끝까지 남는다. 그런 책이 한 권, 두 권 쌓일 때마다 뿌듯하다. 안 먹어도 배부르듯 하고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책을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빠알리니까를 너무 사보지 않는 것 같다.
요즘 TV를 보면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방영하는 먹거리에 대한 프로를 보면 마치 사람들이 먹기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예술품과도 같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황제와 같은 식사를 한다. 하지만 예술품 같은 음식도 목구멍을 넘어 가는 순간 모두 나오는 것은 모두 똑 같다. 수 만원짜리, 수 십만원 짜리 저녁을 근사하게 먹었다고 할지라도 나오는 것은 변으로 나온다. 모두 똥으로 변하고 남는 것이 없다. 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실 한켠에 양주나 와인 병을 가득 진열해 놓는다. 그리고 조금씩 홀짝 홀짝 마시며 그 맛을 음미하며 즐긴다. 그러다 보면 느는 것은 술병밖에 없다. 술 역시 목구멍을 넘어 가는 순간 나오는 것은 모두 똑 같다. 값이 싼 막걸리를 마셨건, 수십만원 짜리 양주를 마셨건 간에 나오는 것은 모두 소변이다. 소변으로 나오는 것 외에 남는 것이 없다.
사람들이 예술품과 같은 음식을 즐기거나 값비싼 양주를 애호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식당주인이나 술집주인의 배를 불려 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번돈으로 무엇을 할까. 아마도 식당을 더 확대하거나 술집의 규모를 늘릴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종원을 둘 것이고, 더 많은 접대부를 고용할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악순환이다.
능력에 맞게 책을 사면
하지만 책을 가까이 하면 어떻게 될까. 독자들이 책을 많이 사보면 가장 좋은 것은 책을 통하여 지식과 지혜가 축적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사면 남는 다는 사실이다. 책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 한 항상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이다.
책을 사보게 되면 책의 저자와 출판사의 이익이 증대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익금으로 무엇을 하게 될까. 책을 팔아 식당을 개업하거나 술집을 차릴까? 아니다. 책을 팔아 이익이 나면 책과 관련된 일에 더 투자할 것이다. 따라서 책의 저자나 출판사는 더 좋은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책에 다시 투자할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인 선순환이다.
돈이 있으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쓸 것이 아니라 책을 사야 한다. 그것도 빠알리니까야를 사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한 권 두 권 사 모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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