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티벳식 전체투지와 테라와다식 오체투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 6. 13:25

 

 

티벳식 전체투지와 테라와다식 오체투지

 

 

 

합장하는 이유

 

불자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중의 하나가 합장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스님을 만났을 때 그렇다. 불교교양대학에서 불교입문 교육을 받을 때 스님을 만나면 반드시 합장의 예를 표하라고 한다. 법당에서나 길거리에서나 아는 스님이든 모르는 스님이든 스님과 마주쳤을 때 합장하며 반배의 예를 올리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출가자들이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세속을 떠날 때 세상과 인연도 끊었지만 부모와 형제 자매와도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것이고, 더구나 버려야 겠다는 마음까지 버렸다면 완전히 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버리고 버려서 구족계를 받은 스님이라면 당연히 공경의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설령 스님이 계에 어긋난 행위를 하거나 출가자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일지라도, 버렸다는 그 하나 만큼은 재가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합장할 만 하다는 것이다. 또한 합장의 예를 받은 출가자는 과연 내가 절을 받을 만한 것일까?”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승가에 최상의 예를 표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복전의 의미는?

 

우리나라 법당에 가면 불전함이 있다. 불상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복전함이라고 표기 되어 있기도 하다. 보시하면 복을 밭는 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자들은 절에 가면 법당에 들러 부처님에게 삼배하고 복전함에 보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불자들이 알고 있는 복전에 대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40가지 명상주제가 있다. 그 중에 승수념 (Saghānussatikathā)이 있다.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명상주제이다. 명상주제로서 승가는 사쌍팔배의 성자의 무리를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쌍팔배의 성자가 되면 공양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명상주제로 삼는 것이다.

 

공양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보시를 한다. 보시를 하는 것은 사쌍팔배의 성자에 대하여 복밭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자에게 보시를 하면 커다란 공덕을 쌓는 다고 보기 때문에 복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복전(福田)’ 이라 하고 빠알리어로 뿐냣껫따(puññakkhetta)’ 라 한다. 빠알리어 뿐냐(puñña)가 선행을 의미하고, 켓따(khetta)가 밭을 의미하기 때문에 뿐냣켓따를 복밭이라 부르는데, 이는 사쌍팔배의 성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전은 법당안에 있는 불상이라 아니라 살아 있는 성자가 복전인 것이다.

 

성자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는다

 

살아 있는 성자에게 보시 하면 커다란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초기경에도 언급되어 있다. 라따나경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Ye puggalā aṭṭhasata pasatthā          예 뿍갈라- 앗타사땅 빠삿타-
Catt
āri etāni yugāni honti,             짯따-리 에따-니 유가-니 혼띠
Te dakkhi
eyyā sugatassa sāvakā         떼 닥키네이야- 수가땃사 사-와까-

Etesu dinnāni mahapphalāni,             에떼수 딘나-니 마합팔라-니
Idampi sa
ghe ratana paīta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

참사람으로 칭찬 받으니,

바른길로 가신님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 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

참모임안에야 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라따나경-Ratanasutta-보배경-寶石經 6번 게송, 숫따니빠따-Sn 2.1, 전재성님역)

 

 

네 쌍으로 여덟(Cattāri etāni yugāni)’ 이 되는 사람들이 사쌍팔배의 성자를 말한다. 이를 참사람이라 하였다. 이들 참사람의 모인 것을 참모임(sagha)’이라 하였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분 들께 공양하면 커다란 과보(mahapphalāni)’ 를 받게 될 것이라 한다. 이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성자에게 최상의 예를 표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삼배하는 예법은 언제 생겼는가

 

우리나라 불자들은 스님을 찾아 뵐 때 삼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해방후 성철스님이 만든 제도라는 설도 있다. 그 이전에는 이런 예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불교신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볼 수 있다.

 

 

여섯째, 신도가 스님에게 삼배하는 예법을 시행했다. 당시까지도 조선조 오백년간의 억불숭유정책의 잔재가 남아 유력한 신도들은 절에 와서 스님들을 종 부리듯이 했다. 이러한 때에 스님들이 승보(僧寶)로서 삼보(三寶)라는 위상을 세우고 신도가 귀의 3배하는 의식을 마련했다. 이것은 승가의 위의를 확립하려는 고육지책이었고, 또한 스님들에게는 불법의 전승자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취지였다.

 

(봉암사 결사와 현대 한국불교의 과제, 불교신문 2291호/ 1월1일자)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땅에 떨어진 스님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만든 것 중의 하나가 삼배제도라 한다. 1947년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이삼십대 청년 비구승들이 모여 결사를 한 것이 시초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자!”출가 수행자의 본본사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몇 가지 실천사항을 제창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신도들이 스님에게 삼배를 하게 하는 제도이었다.

 

1947년 이전에는

 

땅에 떨어진 승가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 삼배제도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방편이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마성스님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그 중에서 승속(僧俗)의 관계에 한정하여 말하면, 승속간에 높은 장벽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출가자와 재가의 엄격한 신분 구분이 없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승려중심의 불교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1947년 시작된 봉암사결사 이후부터 한국불교의 풍속도는 급격히 달라졌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가 출가자 중심의 불교로 바뀌게 된 것은 봉암사결사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승려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는 관습도 없었다. 그것을 강조한 분이 성철스님이다.

 

(승속간의 장벽이 너무 높다. 마성스님)

 

 

마성스님의 1947년 이전과 이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947년 이전에는 출가와 재가의 신분구분이 엄격하지 않았으나, 1947년 봉암사 결사 이후 엄격하게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로서 스님에 대한 삼배의 예를  들고 있다.

 

양손을 머리에 얹어 합장하는 예법

 

존경하는 스님을 만나면 삼배가 아니라 구배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스님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는 것은 망설여 진다. 그럴 경우 합장하며 반배의 예를 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빠알리삼장에서는 최고의 예를 올리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청정도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빠알리어

(Chattha Sangayana Tipitaka 4.0)

Dakkhiāti pana paraloka saddahitvā dātabbadāna vuccati. Ta dakkhia arahati, dakkhiāya vā hito yasmā na mahapphalakaraatāya visodhetīti dakkhieyyo.

Ubho hatthe sirasmi patiṭṭhapetvā sabbalokena kayiramāna añjalikamma arahatīti añjalikaraīyo.

(Visuddhimaggo , 7. Chaanussatiniddeso , 3. Saghānussatikathā)

 

초불연

(대림스님역)

§97

보시란 다가올 내생을 믿고 베푸는 보시를 말한다. [승가는] 그런 보시를 받을만하다. 혹은 보시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큰 결과를 얻게 하여 공양물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시받아 마땅하다(dakkhieyya).

 

모든 세상 사람들이 양손을 머리에 얹어 합장받을만하기 때문에 합장받아 마땅하다(añjalikaraīya).

 

(청정도론, 7장 여섯 가지 계속해서생각함(隨念), 97, 대림스님역)

영역

(Bhikkhu Ñáóamoli)

[FIT FOR OFFERING]

97. ”Offering” (dakkhióa) is what a gift is called that is to be given out of faith

in the world to come. The Community is worthy of that offering, or it is helpful to

that offering because it purifies it by making it of great fruit, thus it is fit for

offerings (dakkhióeyya).

[FIT FOR SALUTATION]

It is worthy of being accorded by the whole world the reverential salutation

(añjali-kamma) consisting in placing both hands [palms together] above the head,

thus it is fit for reverential salutation (añjalikaraóìya).

 

 

 

 

청정도론 제7장 승수념에서 보시에 대한 것이다. 보시 받아 마땅한 승가에 대한 최상의 예를 표하는 것에 대하여 양손을 머리에 얹어 합장받을만하기 때문에라고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나 5세기 붓다고사 시절의 스리랑카에서 사쌍팔배의 복전에 대하여 최상의 예우가 머리(sira, the head)’ 위에 합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수리(crownhead)와 앞이마(forehead)

 

우리나라 불자들은 합장을 하면 가슴 바로 앞에 두손을 모은다. 그런데 테라와다 법회에서는 두손을 모아 코 앞에 가까이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점이 합장하는 북방과 남방불교에서 보는 합장자세의 차이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청정도론에 따르면 머리 위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것이 최상의 예를 표하는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조사해 보았다.

 

머리위에 합장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수리(crownhead)’에 얹는 방식이고, 또하나는 앞이마(forehead)’ 위에 얹는 방식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정수리에 합장하는 방식은 티벳식 예법이고, 이마에 합장하는 방식은 테라와다식 예법이라 한다.

 

하트()모양을 만들어

 

티벳의 경우 앞이마가 아닌 정수리에 두손을 모은다. 이때 두손바닥을 밀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무리는 형태이다. 초펠스님의 글에 따르면 두 손바닫을 딱 붙이는 방식은 외도들이 기도할 때나 하는 합장방식이라 한다. 그래서 손바닥 가운데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 안에 두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이를 하트()모양이라고 하고 연꽃모양이라고도 한다.  

 

 

 

 

티벳식 합장

 

 

 

4단 터치 방식

 

이와 같이 하트모양으로 만든 두 손을 정수리 위로 죽 올린다. 그리고 정수리(crown head)를 터치하고 이어서 차례로 눈썹사의 이마(brow), 목(throat),가슴(heart) 순으로 터치한다.

 

이와 같은 4단 터치 방식에 대하여 초펠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정수리를 터치하는 것은 부처님의 32상 중에 가장 뛰어난 정수리의 육계에 대한 것이고, 눈썹사이를 터치하는 것은 는 이마에 나 있는 흰털때문이고, 목을 터치하는 것은 부처님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가슴을 터치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지기를 바래서라고 하였다.

 

3단 터치 방식

 

그런데 위키피디의 Prostration에 따르면 3단 터치 방식을 소개 하고 있다. 3단 방식은 정수리와 목과 가슴에 대한 터치를 말한다. 정수리를 터치 하는 것은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 의 깨달은 에 귀의하는 것을 말하고, 목을 터치 하는 것은 구루 린포체의 깨달은 , 가슴을 터치 하는 것은 구루 린포체의 깨달은 마음에 귀의 하고 공양을 올리는 행위라 한다. 이는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구루 린포체는 일반적으로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지칭한다.

 

전체투지(全體投地)

 

이와 같이 4단 터치 또는 3단 터치를 한다음 예배를 하는데, 마치 나무를 자르면 쓰러듯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몸을 던지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전체투지(全體投地)라 한다. 자신의 옷이나 몸을 아끼지 않고 몸을 죽 펴서 전신이 땅바닥에 닿게 예배하는 방식이다.

 

 

 

티벳식 예배 전체투지

 

 

 

테라와다식 오체투지

 

티벳식 합장이 정수리에 합장을 하고, 그것도 하트모양으로 만든 것과 비교하여 테라와다식 합장방식은 앞이마에 두 손을 모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테라와다식 합장 방식은 두손을 펴서 손가락을 밀착 시킨후 앞이마(forehead)로 올린다 (one's hand in añjali [palms together, fingers flat out and pointed upward] are raised to the forehead )’라고 표현 되어 있다. 이는 청정도론에 표현 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최상의 예를 표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두손바닥의 손가락을 밀착시킨후 두손을 앞이마위로 올린다. 그다음에 앞팔 전체가 바닥에 닿도록 몸을 구부린다. 이때 팔꿈치는 무릎에 닿는다.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앞이마와 충분히 떨어 뜨려  6인치 앞에 놓는다. 발은 무릎꿇은 자세를 유지한다. 이런 예법을 patitthitapanca 라 하는데, 우리말로 오체투지에 해당된다.

 

 

 

 

테라와다식 오체투지

 

 

 

테라와다식 오체투지는 우리와 다르게 일어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하고, 또 엎드린 상태에서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바닥에 닿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테라와다 삼배

 

이렇게 하여 삼배를 하게 되는데, 다음의 표와 같이 불법승 삼보에 대한 찬탄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테라와다불교의 삼배

구 분

빠알리

영어

우리말

첫 번째 예배

First Prostration

Araham samma-sambuddho bhagava
Buddham bhagavantam abhivademi.

The Noble one, the fully Enlightened one, the Exalted one,
I bow low before the Exalted Buddha.

존귀한 님, 완전히 깨달은 님, 고귀한 님, 고귀한 부처님 앞에 고개 숙여 예배합니다.

두 번째 예배

Second Prostration

Svakkhato bhagavata dhammo
Dhammam namassami.

The Exalted one's well-expounded Dhamma
I bow low before the Dhamma.

고귀한 님께서 잘 설한 가르침에 고개 숙여 예배합니다.

세 번째 예배

Third Prostration

Supatipanno bhagavato savakasangho
sangham namami.

The Exalted one's Sangha of well-practiced disciples
I bow low before the Sangha.

고귀한 님의 잘 훈련된 제자들의 상가에 고개 숙여 예배합니다.

 

 

 

 

합장한 두손을 앞이마 위로

 

테라와다에서 존귀한 분에 대한 예법이 두손을 합장한 다음 앞이마 위로 올리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대한 사진을 아깍까소비구의 포토스트림에서 발견하였다. 아깍까소 비구가 2006년 스리랑카 웨삭일에 찍은 사진이다.

 

 

 

아깍까소비구의 포토스트림

 

 

 

 

사진을 보면 여자신도가 불상 앞에서 합장하는 장면이다. 두손을 모으고 앞이마에 합장하며 예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깍까소비구의 포토스트림

 

 

 

사진을 보면 남자신도가 불상앞에 예배드리는 장면이다. 두손을 합장하고 앞이마에 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청정도론에 표현되어 있는 Ubho hatthe sirasmi patiṭṭhapetvā sabbalokena kayiramāna añjalikamma arahatīti (모든 세상 사람들이 양손을 머리에 얹어 합장받을만하기 때문에 합장받아 마땅하다)”라는 내용에서, 머리(sira)는 정수리(crownhead)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앞이마(forehead)’를 의미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01-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