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반야심경 만트라는 아라한 찬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 21. 23:19

 

반야심경 만트라는 아라한 찬가

 

 

 

반야심경을 대승경전의 정수라 한다. 반야부경전을 매우 짧게 요역한 경전이 반여심경인데, 마지막 후렴구가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만트라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이다. 이를 한문으로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라고 번역 되어 있다.

 

반야심경을 번역한 삼장법사는 반야심경의 만트라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하게 음역하였다. 그래서 산스크리트어로 gate gate pāragate pārasagate bodhi svāhā라 한다. 우리말로 음역하면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가 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와 비교하면 전혀 다른 말처럼 느껴진다. 이를 중국어로는 Jiēdì, jiēdì, bōluó jiēdì, bōluósēng jiēdì, pútí suōpóhē라고 표기되고, 일본어로는 “Gyatei Gyatei Haragyatei Harasogyatei Boji Sowaka”라고 발음된다. 모두 원음과 동떨어진 말처럼 보인다.

 

가떼(gate)와 빠라가떼(paragate)

 

반야심경 만트라인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는 우리 말로 무슨뜻일까. 미디어붓다에서 정찬주 작가의 글에 따르면 가신 분이여 가신 분이여 피안에 가신 분이여 피안에 온전히 가신 분이여 깨달음이여 행운이 있으라.”라고 번역하였다.

 

이 때 가신 분이라는 말이 가떼(gate)’이다. gata는 빠알리어 사전에 따르면 ‘[pp. of gacchati] gone; moved; walked; passed; arrived at; having come to a condition’로 표기 된다. 과거분사형으로 ‘가버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떼(gate)’에 대하여 ‘가신 분이여’라고 번역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빠라가떼이다. 피안으로 가신분이라는 뜻으로 번역된 빠라가떼(paragate)의 경우,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면 pāragata: [adj.] one who has gone to the end or the other shore’라고 설명 되어 있다. pāragata 라는 말이 끝에 다다른 자또는 다른 해안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빠라가떼(paragate) 에 대하여 피안으로 가신 분이여라고 번역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

 

저 언덕이 있다면 이 언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가기를 염원하는 것이 반야심경 만트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만트라를 독송할 때 벅찬 감동을 받는 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하여 반야심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른 대승경전에서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 반야심경 만트라의 원형으로 보이는 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먼저 경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 때에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여기 커다란 물이 있는데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지만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으로 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내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면 어떨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시위소빠마경-Āsivisopamasutta-독사뱀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8(4-1), 전재성님역)

 

 

 

 

Raft

 

 

 

어떤 사람이 맹독을 뿜어 내는 네 마리의 뱀을 두려워 하고 다섯 명의 살인자를 두려워 하여 도망치고 있었다.그런데 여섯 번째 살인자인 가까운 친구가 살인자가 칼을 들고 머리를 밸 듯이 덤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멀리 도망쳐 나왔는데 앞에는 강이 놓여 있다. 저 언덕으로 건너 가야 안전하지만 건널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럴 경우 뗏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뗏목에 의지해서 건너가면 어떨까?”라고 도망자는 생각한 것이다.

 

뗏목을 만들어

 

독사와 살인자에 쫒겨 다니는 이 언덕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가고자 하는 것이다. 강을 건너 가기만 하면 공포와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자는 강을 건널 뗏목을 만들었다. 풀과 나무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만들어 강물에 띄우고,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마침내 저 언덕으로 건너 가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 나는 그 의미를 설명하려고 비유를 들었다. 그 설명은 이와 같다.

 

수행승들이여, 광채가 치열하고 맹독을 내뿜는 네 마리의 뱀은 네 가지 광대한 존재, 즉 땅의 세계, 물의 세계, 불의 세계, 바람의 세계를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다섯 명의 살인자인 원수는 존재의 집착다발, 즉 물질의 집착다발, 느낌의 집착다발, 지각의 집착다발, 형성의 집착다발, 의식의 집착다발 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여섯 번째의 칼을 빼든 살인강도는 환락과 탐욕을 말한다.

 

(아시위소빠마경-Āsivisopamasutta-독사뱀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8(4-1), 전재성님역)

 

 

도망자는 네 마리의 뱀과 다섯명의 살인자와 살인강도에 쫒기고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 사대와 우리와 몸과 마음을 나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오온과 갈애를 추구하는 환락-탐욕그리고 텅빈 마을로 표현된 여섯가지 내적 감역, 도둑으로 표현된 여섯가지 외적 감역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가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는 드 넓은 거센 강물이 흐르고 있다.

 

피안으로 건너 가신 거룩한 님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커다란 넓은 물이라는 것은 네가지의 거센 물결 즉 감각적 쾌락에 대한 거센 흐름, 존재의 거센 흐름, 견해의 거센 흐름, 무명의 거센 흐름 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두렵고 위험한 이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개체를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안온하고 평온한 저 언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열반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뗏목이라는 것은 바로 여덟가지의 고귀한 길이다. 그것은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수행승들이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한다는 것은 바로 정진과 노력을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건너서 피안으로 가서 땅위에 서 있는 거룩한 님이라는 것은 아라한을 말한다.

 

(아시위소빠마경-Āsivisopamasutta-독사뱀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8(4-1),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강을 건너 갈 때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

 

 

  언덕

(Orima tīra)

강물

저 언덕

(Pārima tīra)

두렵고 위험한 이 언덕

(지수화풍 사대, 오온, 환락과 탐욕, 내적 감역과 외적 감역)

1)감각적 쾌락에 대한 거센 흐름 (kāmoghassa)

2)존재의 거센 흐름 (bhavoghassa)

3)견해의 거센 흐름 (diṭṭhoghassa)

4)무명의 거센 흐름 (avijjoghassa)

안온하고 평온한 저 언덕, 열반(nibbāna)

 

개체(sakkāya)

뗏목

(여덟가지의 고귀한 길

 

거룩한 님(아라한)

 

 

두렵고 위험한 이 언덕에서 안온하고 평온한 저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센 강물을 건너 가야 하는데, 이 때 뗏목이 필요하다. 그 뗏목이 바로 팔정도라 한다.

 

그렇게 뗏목을 타고 두 손과 두 발로 노를 저어 거센 강물을 건너 저 언덕에 도착하였을 때 이를 고귀한 님이라 하였다. 바로 아라한을 말한다. 그래서 반야심경 만트라에 나오는 빠라가떼(pāragate)에 대하여 피안에 가신 분이여라고 인격화 하여 번역하였는데, 이와 똑 같은 말이 상윳따니까야에도 있다. 그 말이 바로 빠라가따(pāragata)’ 인데, 경에서는 건너서 피안으로 가서 땅위에 서 있는 거룩한 님 (Tiṇṇo pāragato thale tiṭṭhati brāhmaoti)이라고 표현 되어 있다. 그 분이 바로 아라한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상윳따니까야에서는 피안으로 건너 가신 님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야심경 만트라는 아라한 찬가

 

이와 같은 면으로 보았을 때 대승경전에 실려 있는 비유나 중요한 표현들이 모두 빠알리니까야에서 근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야심경 만트라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gate gate pāragate pārasagate bodhi svāhā)”는 다름 아닌 아라한 찬가라 볼 수 있다.

 

 

가신 분이여(gate),

가신 분이여(gate),

피안에 가신 분이여(pāragate),

피안에 온전히 가신 분이여(pārasagate),

깨달음이여(bodhi),

행운이 있으라(svāhā).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Imee Ooi창송)

 

음성:
http://file.goodweb.cn/music/musicdownload_all/musicdownload/Prajnaparamita_huang.mp3


 

 

2013-01-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