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교회 안 다니면 고집 센 사람? 지역기반을 상실한 한국불교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 28. 12:00

 

교회 안 다니면 고집 센 사람? 지역기반을 상실한 한국불교

 

 

 

예측불허의 조사(弔事)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있다. 좋은 일은 결혼식과 같은 즐거운 날이고, 슬픈일은 장례식과 같은 침울한 날이다. 이를 경조사라 하는데,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 나는 일이다. 특히 조사(弔事)의 경우 경사(慶事)와 달리 언제 일어 날지 알 수 없다. 결혼식과 같은 경사는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이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나, 장례와 같은 조사의 경우 예측불허이다.

 

고집이 센 사람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는 법우님의 조사가 있었다. 법우님의 어머니가 노환으로 돌아 가신 것이다. 그래서 총무법우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다른 법우님들과 함께 병원을 방문하였다.

 

병원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이제까지 보던 것과 달랐다. 모두 교회식이었기 때문이다. 법우님의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분위기 자체가 기독교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법우님만이 불교신자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법우님은 식구들로부터 교회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생의 권유에 마지 못해 교회에 따라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나 여동생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교회라는 S교회 신자라서 지역의 교회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가본 교회에서 분위기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목사가 신자들에게 따뜻하게 잘 대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더구나 일대일로 신자의 고민과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분위기에 감명받았다고 하였다.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마치 신자들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고, 그에 따라 신자들은 목사의 감동 깊은 설교에 따라 은총과 은혜를 잔뜩 입은 것처럼 모두 행복해 보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동생이 이야기 하기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복작한 문제를 안고 있을지라도 교회 한 번 갔다 오면 모든 것이 다 풀리더라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獻身)’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감동에서일까 동생은 언니에게 교회에 다닐 것을 여러 차례 권유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우님은 자신의 신앙을 끝내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법우님에 대하여 집안에서는 고집센 사람이라고 농담삼아 부른다고 한다. 모두 교회다니는 분위기에서 혼자 절에 다니는 것이 고집이 센 사람이 된 것이다.

 

다섯 번 찾은 목사

 

이렇게 교회식 장례절차이다 보니 방문한 법우들이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망자에 대한 삼배를 올리고 식당 한켠에서 식사하는 것 외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교회식 장례 절차가 아닌 경우 법우님 들끼리 서로 모여 간단한 의식을 진행 하곤 하였다. 의례를 집전할 수 있는 총무법우님의 주관으로 목탁소리에 맞추어 천수경 등을 낭송하는 등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었던 것이다.

 

법우님의 어머니는 편하게 돌아 가셨다고 한다. 암에 걸려서 고생은 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가족과 교인들의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임종을 맞이 하였다고 한다. 마치 좌탈(座脫)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임종에서 입관, 그리고 모든 장례 절차에 대하여 교회목사가 빠짐 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식으로 치루어지는 장례절차에서 3일장임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다섯 차례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교인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찾아와 찬송하는 등 모든 것이 기독교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목사와 교인 들이 매우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에 임종이 다가 올 때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역에 뿌리 내린 교회공동체

 

이렇게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 만큼 교회가 지역에 뿌리내렸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지역에 뿌리내린 기독교가 이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모든 일이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돌아 가는 것이다.

 

매주 예배를 통하여 친교를 맺게 하고  지역의 주민을 위하여 유치원, 청소년 공부방, 노인들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강좌와 바자회 등을 열어 끊임 없이 유대관계를 강화한다. 더구나 장례와 같은 슬픈 일을 당했을 땜 목사부터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나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이를 교회생활 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절을 중심으로한 지역공동체를 찾아 보기 힘들다. 도시에서 구멍가게 보다 더 많다는 교회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쩌다 보이는 절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 불교는 생소한 종교이다. 산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종교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에서는 교회는 익숙하고 절은 낯선 곳이다. 그래서일까 교회의 벽면에 예수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바이블 문구가 커다랗게 쓰여 있어도 사람들은 별로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어쩌다 하나 있는 절 출입구에 울긋 불긋 단청이 되어 있는 일주문 형식의 문을 하나 만들어도 아파트 주민들이 집단 행동을 보일 정도로 불교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 오늘날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조손불교(祖孫佛敎)같은

 

도시에서 불교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인연을 끊은 스님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스님들의 출가라는 것이 세상과 인연을 끊는 것부터 시작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과 주변 모두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 출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 불교가 없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처럼 보여진다. 이처럼 스님들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한 것에 대하여 도시의 불자들은 ‘조손가정(祖孫家庭)’과 같다고 묘사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조손가정이란 최근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부모 없이 아이들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가정을 말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부모가 떠나 버렸을 경우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가정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극빈층에 해당된다.

 

이렇게 스님들이 살지 않는 도시에서 불교는 황무지나 다름 없다. 경사나 나도 조사가 나도 함께 할 공동체가 없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교회가 도 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도시에서는 교회는 넘쳐나도 절을 보기란 가물에 콩나듯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불교는 지역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보여진다. 지역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모두 산중에 있다보니, 정치적 표현을 쓴다면 전국구 불교가 된 것이다. 산에 가야만 불교를 볼 수 있고, 불교를 만날려면 험한 산길을 걸어 올라 가야만 한다. 그나마 나이 들어 관절염 등으로 인하여 건강이 악화 되면 산에 올라는 것은 포기 해야 한다. 도시에서 교회는 넘쳐 나는데 나이 든 불자들, 임종을 앞에 둔 불자들이 갈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년에 임종을 앞두고 개종하는 이들이 속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모두가 지역에 뿌리 내리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부모가 가출한 조손가정과 같은 조손불교(祖孫佛敎)’로 보는 것이다.

 

불자공동체를 만들어야

 

스님들이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수십안거를 하여 공부가 다 되었다면 이제 저자거리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서 지역에 뿌리를 내려 절을 중심으로 한 불자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위하여 봉사도 하고 경조사 닥쳤을 때 함께 하는 것이다. 특히 조사의 경우가 그렇다.

 

목사는 입관의식 등 모두 다섯 차례 장례식장을 찾는 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스님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할 경우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들이 저자거리로 못 내려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공부가 덜 되어서라고 답할지 모른다. 그래서 여름철 한 번, 겨울철 한 번 하여 일년에 두 차례씩 안거에 드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일년 중 반년은 선방에서 보내게 된다. 중간에 산철이 있기 하지만 사실상 거의 대부분 산에서 공부하며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년에 두 차례 있는 안거를 한 차례로 줄인다면 충분히 지역에 내려와 불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다면 산에서 내려와 민중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런 자비심이 없다면 평생 산에서만 살게 될 것이다.

 

고집 센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스님들이 산에서만 평생 살고자 한다면 불자들과 무관한 삶이라 보여진다. 스님들의, 스님에 의한, 스님을 위한 공동체의 삶이라 볼 수 있다그들만의 리그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런 불교라면 도시의 불교는 부모가 가출한 조손가정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다.

 

이제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다면 지역에 내려와 지역불자들과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평생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공부만 하고자 한다면 한국 불교는 한 세대만 지나면 소수 종교로 전락될 것임에 틀림 없다. 한국불교가 부모가 가출한 조손가정처럼 되었을 때, 주변에 모두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보게 되었을 때, 불자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교회 가자는 권유를 받을 것이다. 이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고집이 센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임에 틀림 없다.

 

 

 

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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