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경전적 도그마에 빠졌다고? 빠알리 니까야를 의심하는 자들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 25. 12:52

 

경전적 도그마에 빠졌다고? 빠알리 니까야를 의심하는 자들

 

 

 

녹음한것도 아니라는데

 

글을 쓰다 보면 격려의 글도 받지만 때로 비판적인 글도 받는다. 주로 경전에 근거한 글쓰기를 하다보면 흔히 듣는 말 중의 하나가 경전을 맹신한다는 비판이다. 어느 법우님이 다음과 같은 댓을 주셨다. 

 

 

연꽃님 글을 애독하고 있지만 가끔은 경전의 도그마에 빠져있는 것같기도 합니다. 경전은 100% 옳지는 않습니다.
.

.

 

따라서 불교의 어떤 사정(사상의 변화나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첨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없습니다..

.

.

 

성경도 똑같습니다.   어떤 경전이든 비슷합니다. 녹음기로 녹음해서 녹취하는 방식이 아닌 이상 사실 마태복음 요한복음이든 뭐든 다 제자들 기억속에서 다시 재구성한 대화내용이지, 예수가   실존인물이든 아니든은 둘째 문제고 실제 100% 육성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

.

경전의 도그마에 빠지면     "성경의 일점 일획이라도 혹시 의심하면 불신자" 라는 소위 개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키는 똑같은 사회적 반발심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H법우님)

 

 

경전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충고의 글이다. 더구나 빠알리 니까야가 100%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녹음해 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빠알리 니까야를 100% 확신하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 니까야에 표현된 단어하나, 문구 하나, 문장 하나에 집착하는 것에 대하여 경전적 도그마에 빠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조성택 교수가 말하기를

 

이와 같은 지적은 학자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다. 2011년 종교평화를 위한 불교인 선언, 소위 21세기 아쇼카선언의 초안을 주도 하였던 고려대 조성택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럼, 현존하는 엄청난 분량의 불교 경전은 언제 만들어진 것들인가? 현존하는 대부분의 경전들은 초기불교 경전이든 대승경전이든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 후 5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들이다. 앞서 언급하대로 근대불교학은 이 경전들의 모본(母本) 텍스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모본의 시기는 빠르게는 붓다 입멸 후 100년경을 기준으로 그 직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거나 또는 늦어도 2차 결집 당시에는 성립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대로 우리는 모본(母本) 텍스트의 존재를 증명해 줄 역사적 자료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할 만한 불교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나 정황적 증거도 없다.

 

(최초 경전 편찬은 문자의 영향, 조성택교수, 법보신문,2009-09-30)  

 

 

조성택 교수는 빠알리 니까야가 문자화 된 것이 기원전 1세기 부터라고 한다. 그 이전에 구전 된 것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문자로 표기 된 것 이전의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학자로서의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하지만 이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의심하게 하게 하는 대목이다. 빠알리 니까야가 스리랑카에서 문자화 되기 이전에 이미 아쇼카 비문에 구전된 니까야의 일부 경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전 되었음을 증명하는 여러 문구가 또한 아쇼카 비문에 기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아스님이 지은 아소까를 보면 알 수 있다.

 

또 조성택 교수는 빠일리 니까야에 부처님이 말씀 하신 때가 정확하게 기록 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몇 살때 어떤 경을 설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다만 어느 때라든가 한 때라든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등의 두루뭉실한 표현이 보여서 후대에 편집될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 또한 맞지 않다. 과연 빠일리 니까야를 다 읽어 보고 한 소리인지 의문스럽다. 빠알리 니까야와 주석에 따르면 부처님의 젊을 때 설법하였는지, 나이 들어 늙어서 설법하였는지 문장을 통하여 정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진리라는 것이 젊었을 때 말한 것과 나이 들어 말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일체지자로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깨달은 직후나 열반에 들어서나 변함 없는 진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빠일리 니까야에 몇 살 때 설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겨 놓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다면 조성택 교수는 왜 기원전 1세기에 문자화 되었음을 강조할까. 이는 이 시기에 최초로 문자화된 대승경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 최초로 불교 경전이 편찬되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1세기경 그리고 그 이후라면 이 시기는 곧 대승경전이 ‘만들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승경전이 만들어지는 시기와 초기경전이 편찬되었던 시기는 거의 동시대인 것이다. 그리고 리차드 곰브리치(Richard Gombrich) 등이 주장하고 있듯이 불교 경전에 있어 ‘문자’ 사용은 대승경전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불교 경전의 편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초 경전 편찬은 문자의 영향, 조성택교수, 법보신문,2009-09-30)  

 

 

결국 조성택 교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기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빠알리 니까야와 대승경전의 편찬 시기가 기원전 1세기 에서부터 시작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술에 의해 일관성 있는정전’(正典) 체계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구전에 대하여 의문

 

구전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편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억들은 ‘단편적’이거나, 다른 기억들과 ‘불일치’ ‘상충’되는 것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단편적 이야기를 다른 자료를 통해 ‘보충’하거나, 때로는 ‘삭제’ 혹은 ‘창작’하는 등 소위 ‘편집 재량권’(editorial discretion)을 발휘하는 것이 불가피 했을 것이다.

 

(최초 경전 편찬은 문자의 영향, 조성택교수, 법보신문,2009-09-30)

 

 

빠알리 니까야가 구전 되어온 과정에서 구술자 또는 송출자에 의하여 편집될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구전 전승을 설득력 있게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나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기억 장치의 존재만을 가지고 곧모본의 구전을 언급하는 것은 별 설득력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구전에 전승된 빠알리 니까야에 대하여 완전한 부처님의 친설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선법을 이야기하면

 

이렇게 구전에 대하여 의문을 표하고 대승경전과 동시대에 문자화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대승경전에 표현된 불설에 대한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또다른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 교수는 대승불교인들이 “불설(佛說)이 선설(善說)이 아니라 선설이 불설”이라고 선언했듯 우리도 단지 경전의 말씀만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여기는 불설에 대한 좁은 이해를 벗어나 우리 시대에 ‘유용하고 적절한’ 가르침은 다 불설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전통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전통을 지키고 불교를 버림으로써 진정한 불교를 실천하고자하는 불교적 상상력이 대승정신의 원천이었으며 ‘선설불설(善說佛說)’은 그 대승정신의 가장 구체적인 선언이라는 것이다.

 

( [학자를 말하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 , 법보신문 2009-12-4)

 

 

조성택 교수는 경전에 쓰여 있는 것 만이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다. 비록 경전에 쓰여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선법을 이야기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고스란히 아쇼카 선언문에 나타난다.

 

조성택 교수가 초안한 21세기 아쇼카선언문

 

조성택 교수가 초안을 작성한 21세기 아쇼카선언문에 “종교가 다른 것은 서로의 진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법이 다를 뿐입니다.”  라든가,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불교를 통해서만 평화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좋은 예이다.

 

이런 관점은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다. 조성택교수가 말한  유용하고 적절한가르침은 다 불설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기독교의 교리가 선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당연히 불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성택 교수는 타종교의 교리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주된 이유는 빠알리 니까야의 문자주의와 전적 도그마에 빠지지 말자는 것과 같다. 그 결과로서 어떻게 되었을까.

 

깨달은 자가 말하면 모두 불설?

 

대승론자들은 빠알리 니까야에 대하여 맹신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한다. 깨달은 자이면 누구나 부처인데, 그 부처가 한 말이면 모두 불설로 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승경전이 편찬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한 누구나 새로운 경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선법을 말하는 자는 모두 부처이고 그가 말한 것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불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일신교의 교리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21세기 아쇼카선언문에서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이렇게 근본 가르침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볼 수 없다.

 

담마 아닌 것이 득세 하기 전에…”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깟사빠존자는 담마 아닌 것이 득세 하기 전에 담마를 함께 외웁시다.”라고 하여 결집을 주도 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대중들이 합송하여 오늘날 볼 수 있는 빠알리 니까야가 성립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담마 아닌 것이 섞여 들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로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문자로 보전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전승과정에서 편집이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이 니까야 저 니까야에 부처님의 말씀이 종횡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담마 아닌 것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짜여 있는 것이다.

 

부처님 재세시 이미 암송되었다!

 

일반적으로 빠알리 니까야 실려 있는 부처님 말씀은 부처님 열반후에 500명의 아라한이 합송한 것으로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부터 이미 제자들에게 암송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에 남아 있는 사띠의 뜻이라 볼 수 있는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한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는 녹음기도 없었고 필기구도 없었기 때문에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이를 되새겨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수행방법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45년 동안  부처님 재세시 제자들은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되새기고 사유하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좋은 예가 숫따니빠따의 제4(Aṭṭhaka Vagga) 5(Pārāyana Vagga)을 주석한 닛데사(Niddesa)를 들 수 있다.

 

닛데사는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자 법의 사령관이라 불리우는 사리뿟따 존자가 주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부처님 재세시 폭 넓게 암송 되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이전에 이미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되새기고 사유하고 암송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후대에 편집되거나 조작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사견(邪見, 삿된 견해)이 되는가

 

그러나 빠알리 니까야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은 대부분 읽어 보지도 않고 남의 한 이야를 듣고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만일 의심나는 부분이 있다면 경전적 근거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 스님이 그렇게 말해서라든가, “교수 논문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라고 말한다면 이는 개인적인 견해(ditthi)’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론할 때는 반드시 경전적 근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견해는 니까야를 기준으로 한다면 사견(邪見, 삿된 견해)이다.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오늘날 한국에서 불자들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되돌아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불교가 근본 가르침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알리 니꺄야 원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어 하나, 구문 하나, 문장 하나에 이르기 까지 원문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여기에 다른 해석이 달라 붙으면 안된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경전적 도그마라고 해도 상관 없다. 왜냐하면 경전에 의존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원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원음을 멀리 함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되어 왔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볼 수 있는 각종 비불교적 행위나 사상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서 멀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모두 불교근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들이지만, 불교근본주의자들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기 때문에 가장 평화로운 자들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씨앗이고

 

빠알리 니까야를 맹신하여도 좋다. 그리고 아무리 맹신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오히려 접하면 접할수록 맹신이라기 보다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Saddhābīja tapo vuṭṭhī

paññā me yuganagala,
Hiri
īsā mano yotta

sati me phālapācana.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제어가 빗물이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라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이고

새김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이네.

 

(까씨의 경- Kasīsutta, 상윳따니까야 S7:11(2-1), 전재성님역)

 

 

 

 

 

이 경은 숫따니빠따의 까시 바라드와자의 경(Sn1.4)에도 실려 있는 게송이다. 게송에서 부처님은 믿음이 씨앗이라고 하였다. 이때 믿음은 어떤 것일까.

 

이해를 바탕으로 확신에 찬 믿음(Saddhā)

 

불교에서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믿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대신 와서 보라(ehipassika)”라고 말한다. 초대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와서 보고 들으면 확신이 서는 것이다.

 

불교에서 믿음은 확신에 찬 믿음이다. 이런 믿음을 삿다(Saddhā)’라 한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확신에 찬 믿음을 말한다. 따라서 빠알리 니까야에 실려 있는 글자 하나, 자구 하나, 문장 하나에 대하여 원문에 집착하는 것은 확신에 찬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도그마에 가득 차서 경전 그자체를 믿는 맹신과 다른 것이다.

 

설령 후대에 암송하기 쉽게 또는 내용이 보완 되어 있다고 편집 되어 있을지라도 가르침에 대한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믿음에 있어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늘사람이 나오고, 야차가 등장하고, 악마가 등장하더라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하면

 

그런데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이나 신비적인 내용이 경에 들어 있다고 하여 빠알리 니까야에 대하여 선별적으로 믿겠다고 한다면 이는 큰 틀에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의심으로 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은 결코 부처님의 깨달음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라따나경에서도 볼 수 있다.

 

 

10.

Sahāvassa dassanasampadāya              사하-왓사 닷사나삼빠다-야
Tayassu dhamm
ā jahitā bhavanti,         따얏수 담마- 자히따- 바완띠
Sakk
āyadiṭṭhi vicikicchitañca            삭까-야딧티 위찌낏치딴짜
S
īlabbata vāpi yadatthi kiñci,        시-랍바땅 와-삐 야닷티 낀찌
Cat
ūhapāyehi ca vippamutto              짜뚜-하빠-예히 짜 윕빠뭇또
Cha c
ābhihānāni abhabbo kātu         차 짜-비타-나-니 아밥보 까-뚱
Idampi sa
ghe ratana paīta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통찰을 성취함과 동시에,

개체에 실체라는 견해

매사의 의심, 계행과 맹세에 대한 집착의 어떤 것이라도,

그 세 가지의 상태는 즉시 소멸되고,

네 가지의 악한 운명을 벗어나고,

또한 여섯 가지의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

 

(라따나경-Ratanasutta-보배경-寶石經, 숫따니빠따-Sn 2.1, 전재성님역)

  

 

 

 

라따나경 10번 게송(Imee Ooi 창송)

 

 

 

라따나경 10번 게송에 따르면 의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매사에 의심(vicikicchitañca)하는 자들은 성자의 지위에 올라 갈 수 없다고 하였다.

 

회의론자들은

 

오늘날 빠알리 니까야가 번역되어 많이 읽혀지고 있는 시대에 니까야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별적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빠알리 니까야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전승과정에서 다른 사상이 혼입 되었다든가, 편집자의 생각이 실렸다든가 하여 100% 부처님의 원음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자신의 여섯 가지 감각능력(깜냥)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는 초월적 존재나 신비한 내용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다 빼고 나면 수행과 관련된 몇 개의 경만 남는다. 그래서 하는 말이 부처님은 현세의 가르침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였지 내세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윤회와 업에 대하여 서슴 없이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 내는 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유물론적 단멸론자들이다.

 

이런 회의론자들의 특징은 경전을 신뢰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경전적 근거 없이 남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모두가 빠알리 니까야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 견해(邪見)에 지나지 않는다.

 

 

 

2013-0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