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행복과 축복은 어떻게 다른가? 행복경이 아니라 길상경 또는 축복경이라 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13. 4. 22. 15:15

 

행복과 축복은 어떻게 다른가? 행복경이 아니라 길상경 또는 축복경이라 해야

 

 

 

우리말로 번역된 빠알리 니까야가 보급됨에 따라 불자들은 부처님 당시의 원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빠알리 원문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빠알리 삼장을 로마나이즈화된 문자로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The TIPITAKA사이트를 들 수 있다.  또 모르는 단어의 경우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빠알리 사전을 참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불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우리말로 번역된 니까야를 접할 수 있고 더구나 빠알리 원전과 대조하며 부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려 깊지 않은 번역

 

빠알리 니까야를 근거로 하여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빠알리 원전 사이트를 자주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런데 종종 번역자들의 번역실수를 발견하게 된다. 더구나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스님들로부터도 발견된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망갈라경(magalasutta, Sn2.4)이다. 그런 망갈라경의 제목을 무어라고 해야 할까?

 

오로지 테라와다 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망갈라경이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예불문으로 사용되고 있고 라따나경(보배경, Sn2.1)과 멧따경(자애경, Sn1.8)과 함께 생활경이고 또 수호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초기불교를 신봉하는 단체에서 독송되고 있다. 주로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의 제목과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행복경은 길상경(吉祥經)으로 불러야, 망갈라숫따(Mangalasutta, Sn2.4)라는 타이틀로 글을 올린 바 있다. 경의 제목을 행복경으로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또 경의 내용 중에 망갈라에 대하여 행복으로 번역된 것도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망갈라라는  빠알리어가 행복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망갈라는 행운, 축복, 길상의 의미로 쓰여 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행복경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초기불교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사려 깊지 않은 번역에 따른 결과라 보여진다. 특히 초기불교를 전공하거나 빠알리 니까야 번역자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방송과 각종 기고문을 통하여 사용하였을 때 용어는 고착화 되고 만다. 따라서 빠알리 원문을 모르는 불자들은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각묵스님과 미산스님이다.

 

각묵스님의 금생의 행복

 

각묵스님은 각종 기고문, 저서, 방송강연, 음성파일 등에서 행복에 대하여 정의 내린 바 있다. 불교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말하면서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구경의 행복 이렇게 세 가지의 행복이 있다고 하였다. 이중 금생의 행복에 대한 근거로서 각묵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① 금생의 행복

 
부처님께서는 금생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술(sippa, vijjā)을 익혀야한다고 하셨다. 자기 소질에 맞는 기술을 익혀서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를 하고 급여를 받거나 이윤을 창출하여 금생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중요한 행복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금생의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그 사람이 전문직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나쁜 인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사회와 자신을 망가지게 한다. 바른 인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각각 지계와 보시로 강조하셨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익히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므로 해서 금생의 행복을 얻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강조하셨다.

그래서『숫따니빠따』「마하망갈라경」(Sn2:4)에서도 많이 배움(bahusacca), 기술(sippa), 규율[, vinaya], 잘 공부지음(susikkhita), 보시(dāna), 공덕을 쌓음(kata- puññatā) 등을 금생의 행복의 조건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보시, 지계, 학문, 기술이 된다.

 

( 초기불교를 통한 깨달음의 - [전문] 각묵 스님/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

 

 

금생의 행복에 대한 근거로서 마하망갈라경 (Sn2:4)을 들고 있다. 경에서 행복의 조건을 나열 하고 있다고 하였다. 망갈라를 행복으로 번역한 것이다.

 

각묵스님의 큰 행복경

 

실제로 스님의 카페에서 스님이 번역하여 올린 마하망갈라경은 다음과 같다.

 

 

큰 행복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밤이 아주 깊어갈 즈음 어떤 천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따 숲을 두루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그 천신은 세존께 시로써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천신]:

많은 천신들과 사람들은 안녕을 바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엇이 으뜸가는 행복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세존];

어리석은 사람을 섬기지 않고 현명한 사람을 섬기며 예경할 만한 사람을 예경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사부 대중을 볼 수 있는] 그러한 적절한 곳에서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으며 자신을 바르게 확립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많이 배우고 기술을 익히며 계행을 철저히 지니고 고운 말을 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며 생업에 충실한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베풀고 여법하게 행하며 친척들을 보호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위를 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불선법을 피하고 여의며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선법들을 향해 게으르지 않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존경하고 겸손하며 만족할 줄 알고 은혜를 알며 시시각각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인내하고 [도반의 말에] 순응하며 출가자를 만나고 때에 맞춰 법을 담론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감각 기능을 단속하고 청정범행을 닦으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고 열반을 실현하는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세상사에 부딪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 없고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이러한 것을 실천하면 어떤 곳에서건 패배하지 않고 모든 곳에서 안녕하리니,

이것이 그들에게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행복경(망갈라 숫따) 올립니다  2010-12-04  )

 

 

이와 같이 망갈라를 행복이라고 번역함에 따라 초불연 회원들은 모두 망갈라경을 행복경으로 알고 있다. 이는 초기불교전공자이고 빠알리니까야를 번역한 스님의 권위가 작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류의 번역

 

그러나 이런 번역은 나까무라 하지메류의 번역을 답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나까무라 하지메의 일역을 중역한 법정스님의 번역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나까무라 하지메의 번역과 법정스님의 번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나까무라 하지메 (中村元) :

 くの人間とは幸福せをっています

最上幸福いてください

 

2) 법정스님 :

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면서 행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3)각묵스님:

많은 천신들과 사람들은 안녕을 바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엇이 으뜸가는 행복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위 게송은 258번 게송으로서 망갈라경 1번 게송에 해당된다. 나까무라 하지메의 번역을 보면 행복으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번 게송에서도 행복을 바라고(幸福み), 행복을 생각하고(せをって), 행복을 설하여 (幸福いて)라고 표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토씨만 바꾸어 번역한 법정스님은 ‘행복을 바라면서, 행운을 생각하고, 행복을 말씀해’라고 하였다. 중간에 행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시아와세(せ)’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시아와세(せ)는 인터넷 일본어 사전에 따르면 행복, 운, 운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번 게송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안녕을 바라면서, 행복에 대해, 행복인지 말씀해’라고 하였다. 안녕이라는 말만 다를 뿐 모두 행복이라고 번역하였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경의 제목이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망갈라경에 대하여 ‘こよなきせ’라 하였다. こよなき의 동사형은  こよなく’이다. 사전에 따르면 ‘더없이, 비할 데 없이, 각별히’라는 뜻이다. 따라서 ‘こよなきせ’는 ‘더 없는 행복’이라는  뜻이다. 법정스님 역시 ‘더 없는 행복’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각묵스님은 ‘큰 행복 경’이라 이름 붙였다. 모두 공통적으로 망갈라를 행복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행복전도사 미산스님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행복전도사가 한 분 더 있다. 미산스님이다. 현재 상도선원 원장이다. 그런 미산스님의 경력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상도선원 카페에 소개 되어 있는 스님의 약력을 보면, 옥스포드대학교 박사이다. 이전에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를 졸업하였고 인도 뿌나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 상도선원 원장이자 중앙승가대 교수이기도 한 스님은 우리나를 대표하는 초기불교 학자이자 대표적인 학승이다.

 

스님은  행복경이라는 이름으로 십여차레 법문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럴 때 마다 행복에 대하여 강의하였는데 영문으로 된 경과 함께 한글로 번역된 경도 소개 하고 있다. 영문 번역에서는 ‘The Highest Happiness Discourse’라 하여 풀이하면 최상의 행복에 대한 교설이라는 뜻이다. 한글제목은 최상의 행복경이라 하였다.

 

미산스님의 최상의 행복경

 

미산스님이 번역한 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The Highest Happiness Discourse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dwelling at the monastery of Anathapindika, in Jeta's Grove, near Savatthi.

Now when the night was far spent, a certain deity, whose surpassing splendour illuminated the entire Jeta Grove, came to the presence of the Blessed one, and, drawing near, respectfully saluted Him and stood at one side. Standing thus, he addressed the Blessed one in verse:

 

 

1. Many deities and human beings

   yearn after happiness and desire

   Blessings. Tell us the highest

   happiness!

 

2. Not consorting with fools,

   consorting with the wise,

   paying homage to those worthy of homage: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3. Living in a civilized land,

   having made merit in the past,

   directing oneself rightly: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4. Broad knowledge, skill,

   well-mastered discipline,

   well-spoken words: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5. Support for one's parents,

   assistance to one's partner and

   children, consistency

   in one's work: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6. Giving, living in rectitude,

   assistance to one's relatives,

   deeds that are blameless: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7. Avoiding, abstaining from evil;

   refraining from intoxicants,

   being heedful of the qualities

   of the mind: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8. Respect, humility,

   contentment, gratitude,

   hearing the Dhamma on timely occasions: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9. Patience, compliance,

   seeing contemplatives,

   discussing the Dhamma

   on timely occasions: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10. Austerity, celibacy,

     seeing the Noble Truths,

     realizing Unbinding: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11. A mind that, when touched

     by the ways of the world,

     is unshaken, sorrowless, dustless, at rest:

     This is the highest happiness.

 

12. Acting in this way,

    they are wherever invincible,

    keeping in serene joyfulness:

    These are the highest happiness.

 

  

최상의 행복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 사위성의 제따숲에 있는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어느 날 깊은 밤 한 천신이 제따숲을 두루 비추며 나타났다. 세존께 다가와서 인사를 한 다음 한 켠에 서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1.  수많은 천신들과 인간세상은                          

      행복을 소망하고 축복원하니

    최상의 행복한삶 설하옵소서.

 

2. 우매한 사람들과 사귀지않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훌륭한 스승들을 공경하나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3. 알맞은 곳에살며 공덕쌓았고

   스스로 바른서원 세워사는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4. 기술을 숙련하고 많이 배우며

   계율을 잘지키고 늘 실천하며

   유익한 언어생활 하고 있으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5. 동반자 부모자녀 잘 돌보는것

   모든일 정연하여 혼란치않아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6. 베풀며 정의롭게 살고있으며

   친지를 보호하고 보살피나니

   남에게 비난받을 행동안하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7. 악함을 멀리하고 술절제하며

   덕행을 쌓아가고 복을지으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8. 존경과 겸손함을 길러가면서

   만족과 감사함의 마음으로써

   알맞은 때에따라 법문들으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9. 인내와 용서관용 온화함으로

   진지한 태도갖춰 수행을하며

   선지식 친견하여 점검받으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10. 열심히 정진하고 청정히살며

     거룩한 진리세계 관조하여서

     궁극적 열반세계 실현하나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11. 세상의 온갖일에 동요치않고

     안온과 담담함이 충만하여서

     슬픔과 욕심에서 자유로우니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어라.

 

12. 이처럼 수행하며 살아간다면

     그어떤 경우에도 좌절치않아

     언제나 평온함이 함께하리니

     더없는 행복함이 충만하리라.

 

 

(번역: 미산스님, 상도선원 아라한전, 2011 1 15)

 

 

이와 같이 번역된 영문과 한글역을 운율에 맞추어 매일 독송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산스님은 왜 행복이라 번역하였을까?

 

이렇게 초기불교전공자인 스님이 망갈라에 대하여 행복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님의 법문을 녹취하여 올려 놓은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초기경전은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대한 가르침도 설하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숫따니빠따』의 「자애경」과「행복경」이다

 

무엇이 행복인가? '행복하다'라는 술어는 즐거움을 뜻하는 수카 sukha와 길상, 축복, 행운, 행복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망갈라 mangala man '비참함'이란 뜻이고 갈라 gala '그런 상태를 벗어남'을 의미한다. 즉 비참하고 한심한 상태에서 벗어나 평온과 축복의 상태가 지속된다는 말이다삶에서 느낄 수 있는 평안과 소박한 만족감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미산스님, 붓다도 '행복 幸福'을 말했다.)

 

 

스님은 망갈라에 대하여 길상, 축복, 행운, 행복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망갈라의 어원에 따른 뜻풀이가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태를 행복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망갈라에는 행복이라는 뜻이 없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행운의 (lucky), 상서로운(auspicious), 번영하는(prosperous)’ 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문번역을 보면 제목부터 시작 하여 내용에 이르기 까지 The Great Auspices Blessings등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타닛사로 빅쿠(Thanissaro Bhikkhu), 나라다 테라(Narada Thera), 소니 밧사(Dr. R.L. Soni) 그 어디 영문번역자 중에서도 행복으로 번역 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나라 번역에서만 볼 수 있다. 이는 나까무라 하지메류의 번역을 답습한 결과라 보여진다. 더구나 초기불교를 전공하고 빠알리 니까야를 번역한 스님들이 망갈라에 대하여 행복이라고 번역하여 유통시키고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구업을 짓고 있다고 보여진다.

 

각번역자들의 번역을 비교해 보면

 

그렇다면 왜 행복으로 번역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각 번역자의 번역을 모아 1번 게송에 대하여 비교표를 만들었다.

 

 

 

1 번 게송

  

빠알리어

Bahu devā manussā ca

magalāni acintayu,

Ākakhamānā sotthāna

brūhi magala muttama.

 

바후 데와 마눗사 짜

망갈라니 아찐따융

아깐카마나 솟타낭

부루히 망갈라 뭇따망

magalā

sotthāna

magala

전재성박사

(위대한 축복의 경)

많은 하늘나라 사람과 사람들,

최상의 축복을 소망하면서 행복에 관해 생각하오니,

최상의 축복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소서.

축복

행복

축복

영문1

(The Great Auspices)

Many gods and men do not know the auspicious

We desire well being, may the auspices be told.

Auspicious

well being

auspices

영문2

(Blessings,

Narada Thera

, Buddhanet)

"Many deities and men, yearning after good, have pondered on blessings. Pray, tell me the greatest blessing!"

Good

Blessings

blessing

영문3

(Protection , Dr. R.L. Soni)

 

Many deities and human beings

Have pondered what are blessings,

Which they hope will bring them safety:

Declare to them, Sir, the Highest Blessing.

Blessings

Safety

Blessing

영문4

(Protection,

Thanissaro Bhikkhu)

Many devas and human beings

give thought to protection,

desiring well-being.

Tell, then, the highest protection.

Protection

well-being

protection

한문역

(吉祥經)

 

諸天與世人,思維吉祥事,渴望諸吉祥,何謂最吉祥 

吉祥

吉祥

吉祥

나까무라 지메 (中村元)

こよなき

くの人間とは幸福っています最上幸福いてください

幸福

幸福

 

법정스님

(위 없는 행복)

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면서 행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행복

행운

행복

각묵스님

( 행복 )

 

많은 천신들과 사람들은 안녕을 바라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엇이 으뜸가는 행복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안녕

행복

행복

미산스님

(최상의 행복경)

수많은 천신들과 인간세상은

행복을 소망하고 축복원하니

최상의 행복한삶 설하옵소서.

행복

축복

행복한삶

 

 

비교표를 보면 번역자 마다 모두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영문번역계통이고 또하나는 나까무라 하지메를 비롯한 한글역 번역 계통이다. 전재성박사의 번역과 한역을 포함한 영문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망갈라에 대하여 ‘Auspicious(상서로운)’길상(吉祥)’의 의미로 번역하였고, 나까무라 하지메류는 행복(幸福)’의 의미로 번역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길상과 행복은 어떻게 다를까?

 

그렇다면 길상과 축복 그리고 행복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길상 [吉祥]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

 

축복 [祝福]

남 또는 남의 일이나 미래가 행복하기를 빌거나 그것을 기뻐하여 축하함.

 

행복 [幸福]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

 

 

길상과 축복은 미래의 일이다. 그래서 길상은 좋은 일어날 조짐 또는 상서로운 일 또는 좋은 징조를 말한다. 축복의 경우 남이 잘 되기를 바라거나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미래 또는 현재의 일에 대한 것이고 남이 하는 것에 대하여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행복은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행복감이다. 남이 잘 되기를 바란다거나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조짐과 거리가 먼 것이다. 사선정에서 행복(, sukha)이 이에 해당된다.

 

행복에 대한 빠알리어는 수카(sukha)이다. 이처럼 행복으로 번역되는 수카는 망갈라와 다른 말이다. 망갈라(magalā)행운의 (lucky), 상서로운(auspicious), 번영하는(prosperous)(영문 빠알리 사전)’ 또는 ‘1) 길조의, 행운의 축제의  2)왕의  3) 좋은 징조. 행운, 길상  4)축제(한글-빠알리 사전, 성전협회)’으로  번역 되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행복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감인데, 망갈라에  그런 뜻은 없다.

 

심각한 오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불교전공자인 각묵스님과 미산스님의 번역을 보면 망갈라에 대하여 행복이라고 번역한 것은 심각한 오역이라 보여진다. 이는 나까무라 하지메의 일역과 이를 중역한 법정스님의 번역을 답습한 결과라 보여진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망갈라가 행복의 뜻이 아님에도 행복으로 번역하였다면 빠알리 원어를 보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예가 있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幸福み、せをっています。最上幸福いて’라고 하였다. 세 번에 걸쳐서 ‘幸福 ,せ, 幸福’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모두 행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빠알리 원문에 따르면 ‘Bahu devā manussā ca magalāni acintayu, Ākakhamānā sotthāna brūhi magala muttama”로 되어 있다. ‘magalā-sotthāna -magala’순으로 되어 있다. 이를 해석하면 길상-행복-길상이 된다. 여기서 sotthāna는 사전에 따르면 ‘1.행복   2. 안전   3. 축복, 가피, 길상로 번역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magalā-sotthāna -magala’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최상의 축복 (magalā) 을 소망하면서 행복(sotthāna)에 관해 생각하오니, 최상의 축복 (magala) 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소서”라고 번역하여 비교적 원뜻대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까무라 하지메는  幸福(magalā)をみ、せ(sotthāna)をっています。最上幸福(magala) をいて”라 하여 모두 행복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이를 그대로 번역한 법정스님은 “행복(magalā)을 바라면서 행운(sotthāna)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복(magala) 을 말씀해 주십시오” 라 하여 나까무라 하지메 번역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sotthāna에 대하여 행복이 아닌 행운으로 번역한 것은 동어 반복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sotthāna 행복이라는 뜻이고, magalā라는 행운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빠알리 원어와 다른 번역이 되고 말았다. 만약 법정스님의 번역을 고친다면 “행운(magalā)을 바라면서 행복(sotthāna)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운(magala) 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전공하였다는 미산스님의 경우 수많은 천신들과 인간세상은 행복(magalā)을 소망하고 축복(sotthāna)원하니 최상의 행복한삶 (magala) 설하옵소서”라고 하였다. magalā를 행복으로 번역한 것은 자의적 해석이라 보여진다. 더구나 magala에 대하여 ‘행복한삶’이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심한 의역이라 보여진다. 망갈라에 삶이라는 뜻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각묵스님의 번역이다. 각묵스님은 “안녕(magalā)을 바라면서 행복(sotthāna)에 대해 생각합니다. 무엇이 으뜸가는 행복(magala) 인지 말씀해주십시오”라고 번역 하였기 때문이다. magala에 대하여 안녕과 행복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안녕이란 무엇인가? 국어 사전에 따르면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다’가 안녕의 뜻이다. 이는 magala의 ‘행운의 (lucky), 상서로운(auspicious), 번영하는(prosperous)’  뜻과는 거리가 먼 뜻이다. 빠알리 니까야를 번역한 스님의 글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유통되는 행복경

 

두 차례에 걸쳐서 망갈라경에 대하여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이유는 망갈라라는 말이 잘못 사용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망갈라경에 대한 제목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경의 제목을 보면 망갈라숫따에 대하여 법정스님은 ‘더없는 행복’이라 하였고, 각묵스님은 ‘큰 행복경’이라 하였고, 미산스님은 ‘최상의 행복’이라 하였다. 모두 망갈라를 행복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의 내용 역시 망갈라에 대하여 모두 행복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런 제목과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명백한 오역이다. 망갈라는 행복의 뜻이 아니라 길상의 뜻이기 때문이다.

 

망갈라는 상서러운또는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현대 중국의 한역을 보면 망갈라경에 대하여 길상경(吉祥經)이라 하였다. 구글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吉祥經(길상경)은 있어도 행복경은 없는 것이다. 행복경이라는 제목은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경의 이름이다. 따라서 망갈라숫따의 경이름은 행복경이 아닌 길상경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이름 없는 보통불자가 유명스님들을 대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한 번 이름 지어진 경의 명칭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 취득한 일류명문대학의 박사학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초기불교를 전공한 스님의 말이 더 권위가 있을 것이고 또 빠알리 니까야를 번역한 스님의 한 마디가 더 잘 먹혀 들어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도 하신 말씀이다. 디가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다른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가르침을 비난하고, 참모임을 비난하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그대들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이와 같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브라흐마잘라경-Brahmajāla Sutta-하느님의 그믈의 경, 디가니까야 D1,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하여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잘못된 번역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번역이 잘못 되었으면 잘못 되었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번역자가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고 번역한 것일 수 있고, 오역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로 잡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후학들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잘못을 지적하는 님

 

그래서 이런 지적에 대하여 오히려 고마워 해야 하고 감사 해야 할 것이다.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잘못을 지적하는 님,

꾸짖어 충고하는 님, 현명한 님.

숨겨진 보물을 일러주는 님을 보라.

이러한 현자와 교류하라.

그러한 사람과 교류하면,

좋은 일만 있고, 나쁜 일은 없으리.(Dhp 76)

 

 

 

 

2013-04-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