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하미(哈密)행 기차를 기다리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3. 7. 12. 11:52

 

하미(哈密)행 기차를 기다리며

 

(실크로드 불교유적 성지순례 12, 하미행 기차, 2013-06-1)

 

 

 

 

 

다시 유원역으로

 

 

유원역에 도착하였다. 유원역은 벌써 두 번째이다. 여행이 시작 될 때 처음 왔었기 때문이다. 우루무치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셋째날 아침에 도착한 곳이 유원역이다. 이는 돈황에서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원역은 돈황에서 동북쪽으로 약 130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북경-우루무치간 열차가 유원역을 경유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음 여정이 시작되는 하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황-유원역 130Km

A가 돈황이고 B가 유원역이다.

 

 

 

사막도 아니고 초원도 아니고

 

돈황에서 유원역으로 가는 길은 일자로 죽 벋어 있다. 고비사막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거친 땅’이라는 뜻의 고비 또는 고비탄은 사막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원도 아니다. 그 중간의 것이라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낙타가시풀이 드믄 드믄 보이기도 하고 마치 초원처럼 가득 차 보여서 사막인지 초원인지 햇갈릴 때도 있다. 

 

 

 

 

 

 

 

 

 

 

 

검은 지형의 산

 

유원역으로 가까이 갈수록 일망무제의 지평선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산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평탄한 사막지형을 벗어나 산록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 색깔이 까맣다. 그리고 적막해 보인다.

 

 

 

 

 

이를 위성지도로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유원역 부근 위성지도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산은 산인데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 마치 세상이 텅 비어 있는 듯이 보인다.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 어디에도 삶이 보이지 않는다. 텅빈 적막만이 끝 없이 펼쳐져 있다. 그것도 검은 산들의 연속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외계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천에서 채굴하는 석탄

 

이런 지형의 영향이서일까 유원역 부근에는 석탄산업이 발달하였다. 노천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화물열차도 보인다. 그래서 도시전체가 시커멓게 보인다. 또 전반적으로 지저분해 보인다. 아마 중국에서 보는 최악의 환경이라 본다.

 

 

 

 

 

 

 

 

유원역 부근의 노천 석탄 채굴 현장

 

 

 

 

 

유원역 철도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한 기차가 보인다.

 

 

 

하미(哈密)행 기차를 타기 위하여

 

유원역으로 가는 것은 하미(哈密)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이다. 돈황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음 여정인 하미에서 일정을 소화 하기 위하여 밤기차를 타는 것이다. 유원에서 하미까지 보면 다음과 같다.

 

 

 

 

유원-하미 일반지도

 

 

 

유원에서 하미까지 300Km로 되어 있다. 지도서비스 사이트에 따르면 자동차로 4시간 37분 걸리는 것으로 표기 되어 있다. 그런데 자동차 길 뿐만 아니라 철로도 있다 감숙성에 있는 유원에서 신강성의 하미로 이동하는 것이다. 문화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이드가 신신당부한 사항

 

열차를 타기 전에 가이드가 신신당부한 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열차가 비좁고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가급적 짐을 줄이라고 하였다. 회족 기사가 하미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우루무치에서 돈황으로 이동할 때 꼭 필요한 짐만 가져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큰 가방은 버스 안에 넣어 두라는 말을 강조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모두 야간침대열차를 탄 것이다.

 

야간침대열차는 가격이 비싼 만큼 쾌적하였다. 짐을 놓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원역에서 하미로 이동하는 저녁열차는 침대차가 아니었다. 현지인들이 타는 일반열차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호 개념이다.

 

못사는 쪽으로 평등한 중국

 

기차타는 비용은 17.5위안이다. 우리돈으로 2,600원 가량이다. 유원에서 하미까지 300Km에 달하고 열차시간은 거의 5시간 달함에도 3000원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교통비가 매우 저렴함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도시에서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1위안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 150원 가량이다. 그래서 중국의 경우 의식주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해결해 주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는 아주 싸게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지만 못사는 쪽으로 평등하다고 말한다.

 

기차는 정확하다는데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여행객들은 유원역 대합실에 도착하였다. 1828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이다. 열차를 타면 거의 5시간 걸리는 2330분에 하미역에 도착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이제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마치 톱니바퀴 돌아 가듯이 일정이 스무스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돌발변수가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원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기차가 연착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2시간 20분 늦게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중에 하나가 기차는 정확하다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전철, 일반기차의 경우 제 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신뢰한다. 자동차를 탓을 경우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차만큼은 틀림 없이 약속을 지켜 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유원역에서도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차가 오기 한시간 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환경이 열악할지라도 일반기차를 타고 5시간 여행을 한 후 호텔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차가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바람에 그런 희망은 깨졌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에 가장 길고 지루하고 힘든 일을 겪게 되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18시 28분에 도착하는다는 기차가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온다는 소식이 없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유는 사막에 모래폭풍 때문이라 한다. 기차가 오는 도중에 강력한 모래 폭풍을 맞아 못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차를 운행한다면 기차가 넘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렇게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기차를 마냥 기다렸다. 몇 시간이 걸릴 것이라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장기전으로 들어갈 태세를 갖추었다. 이왕 늦은 것 마음 느긋하게 기다리자는 것이다.

 

유원역에 대합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현지인들의 차지이었다. 대체로 시커멓게 보인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들을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짐보따리는 크고 종류도 많아 보인다. 한족이 다수이지만 종종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도 보인다. 대부분 행색이 초라해 보인다.

 

현지인들이 대합실을 차지 하였기 때문에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합실 밖에서 앉아 있었다. 의자가 없어서 대충 앉아 있었지만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딱딱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구나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려 하니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여유로워 보였다. 그런 점이 우리와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잡담을 해가며 일부는 담배를 피우고, 또 일부는 그 와중에 포커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유원역 대합실 밖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함께 여행한 이들은 급속하게 친하게 되었다. 주로 끼리끼리 어울리던 사람들이 다른 그룹과 대화를 시도 하는 것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그 초조함과 지루함을 잡담으로 해소하는 듯 하다. 만일 그런 일이 없었다면 서로 말 걸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유원역의 비천상

 

 

 

엘리베이터인생

 

 엘리베이터인생이 있다.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처럼 인생이 스무스하게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식을 낳고 교육시키고 정년 퇴임을 하여 인생을 여유롭게 보내는 것을 말한다. 마치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타듯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인생이다.

 

하지만 인생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그럴까? 제행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그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삶의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을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시련에 봉착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해야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M131)”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3~4시간 연착은 애교이구요

 

유원역에서의 연착사건이 그랬다. 순조로웠던 여행이 단번에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건은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있는 일이라 한다. 함께 여행을 하였던 분이 글을 주셨는데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였다.

 

 

전 인도여행을 여러차례 다녀왔습니다
그곳이 워낙 넓은 나라라 기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동시간과 비용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차등급은 2A→3A→SL로 나뉘는데 배낭여행객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SL을 탔죠

인도 기차는.... 정말 타보지 않고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철도망을 가지고 있는데 기본 탑승시간 10시간이구요 연착은 밥먹듯이 합니다
3~4시간 연착은 애교이구요 어느 여행객은 24시간을 연착한적도 있다 합니다
기찻길은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구요 시끄럽고 덥고 더럽고....

델리에서 라자스탄주 자이살메르(사막투어)까지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20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고 창문 사이로 모래가 들어 오는데 장난 아니더라구요

기차안은 마치 포로 수용소의 한 장면을 연출합니다ㅎㅎ

창문에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쥐들이 왔다 갔다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선풍기는 언제 닦았는지 모를 정도로 시커멓고~당연히 에어컨은 없습니다
휴지나 쓰레기는 달리는 기차 창밖으로 던져버리고....나중엔 저희들도 자연스럽게 버리게
되더라구요

또 배낭이나 가방을 와이어가 있는 자물쇠로 꼭 채워 두어야 도난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인도여행 중 설사는 기본적으로 경험합니다
이런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인도가 그립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기차입니다
두려움보다는 저에겐 설레임이 더 강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자연히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구요...No problem...인도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입니다
정말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실크로드 여행은 누원서 떡먹기(?)입니다

 

(S님)

 

 

인도여행 중에 겪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에서 기차가 연착하는 것에 비하면 이번 실크로드여행에서 유원역의 3 시간 연착은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최고 24시간 연착도 있기 때문이라 한다.

 

사형수처럼 언제 죽을지 몰라 쩔쩔매는

 

하염없이 기다리던 끝에 마침내 기차가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불과 3시간도 안되는 기다림 이었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막연한 미래는 불안을 야기한다. 차라리 확정 되어 있다면 그런 줄 알고 기다리면 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는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마치 사형수가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불안 심리와 같은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들은 늘 죽을까 봐 항상 겁내며 살아 간다. 언제 어떻게 될 지 자신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형수처럼 죽음이 분명 있긴 있는데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nimittamanaññāta maccāna idha jīvita,
Kasirañca parittañca tañca dukkhena saññ
āta.

 

Nahi  so upakkamo atthi yena jātā na miyare,
Jarampi patv
ā maraa evadhammā hi pāino.

 

Phalānamiva pakka na pāto patanato bhaya,
Eva
jātānamaccāna nicca maraato bhaya.

 

[세존]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애처롭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있습니다.

 

태어나 죽지 않고자 하나, 그 방도가 결코 없습니다.

늙으면 반드시 죽음이 닥치는 것입니다. 뭇 삶의 운명은 이런 것입니다.

 

결국 익은 과일처럼 떨어져야하는 두려움에 처합니다.

이처럼 태어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Sallasutta-화살의 경, 숫따니빠따 Sn3.8, 전재성님역)

 

 

천상과 달리 인간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업대로 살기 때문이다. 많은 공덕을 지어 천상에 태어난 존재는 수명과 복덕이 보장 되어 있다. 그래서 수명대로 살고 온갖 복을 누리며 산다. 그러나 몸과 입과 말로 지은 행위에 대한 업으로 사는 인간은 수명과 복이 보장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인간에게서 최대의 축복은 수()와 복()이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사는 것이 인간의 소망인 것이다. 천상의 존재가 누리는 그런 수복을 말한다.

 

이처럼 인간은 업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nicca maraato bhaya, Sn3.8)”라 하셨다. 마치 사형수처럼 언제 죽을지 몰라 쩔쩔 맨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기차를 고집한 이유

 

그렇다면 가이드가 왜 기차를 고집하였을까? 가이드 말에 따르면 끔찍한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몇 년전 돈황에서  하미까지 자동차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비사막을 지나는 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대형트럭이 자주 다니는데 한 번 고장나면 꼼짝 없이 사막 한가운데 갇혀 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무려 30시간을 갇혀있었다고 하였다. 그 일로 난리가 났었는데,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기차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 현장스님의 구법여행기가 생각이 났다.

 

500리 막하연적(莫賀延磧)

 

현장스님의 구법여행기 중에 고비사막을 넘는 이야기가 있다. 옥문관에서 하미까지 500리길이다. 소설 서유기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던 막하연적(莫賀延磧)이라 불리우는 사막을 건너는 이야기이다. 그런 막하연적은 어떤 곳일까?

 

 

 

 

 

막하연적

막하연적은 돈황과 하미사이에 있는 사막이름이다.

 

 

 

 

 

 

유원역에서 하미까지 300km

A가 유원역이고 B가 하미시이다.

 

 

 

첸원중의 현장서유기에 따르면 막하연적은 황량하고 인적없는 대사막이라 하였다. 그리고 앞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뼈무더기를 방향삼아 전진하는 것이라 하였다.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현장스님 역시 뼈무더기 방향으로 늙은 말 한필에 의지하여 500리 사막을 건넜다, 그런데 도중에 생명과도 같은 물을 실수로 쏟아 버렸다. 앞서 가던 자의 뼈무더기처럼 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보면 유치환 시인의 생명의 서가 생각난다.

 

 

생명의 서 일장(一章)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

 

 

 

 

 

이처럼 죽을 위기에 처한 현장스님은 사막에서 갖가지 특히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신기루를 보고 요괴를 보았다고 하였다. 이는 사막에서 겪을 수 있는 환각과 환청에 대한 것이라 한다. 이런 것이 소설 서유기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고비사막에서 본 회오리바람

 

이처럼 하미로 가는 길은 옛날부터 매우 험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도 건너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차의 연착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막에서 부는 강력한 모래 폭풍이다.

 

모래 폭풍이 불면 달리던 기차가 넘어질 정도라 한다. 그러나 모래 폭풍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양관에 가는 도중에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향하여 갔다. 거친 땅으로 표현되는 고비사막이다. 그런데 평온한 곳이 아니었다. 늘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트여 있기 때문에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끊임없이 회오리 바람이 일고 있었다. 마치 작은 토네이도를 보는 것처럼 회오리 바람이 여기저기에서 일아 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그러나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 한다.

 

 

 

 

 

이렇게 사막에서는 바람은 늘 부는 것이다. 비는 볼 수 없지만 늘 부는 것이 바람이다. 그런데 강력한 바람이 불 때 기차를 쓰러뜨릴 정도라 하였다. 그런 바람 때문에 기차가 연착 된 것이다.

 

고대하던 기차가 도착하고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고대하던 기차가 도착하였다. 그 동안 기다림에 지친 피로가 싹 가신듯 하다. 마치 피난 행렬처럼 기차 타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에스컬레이터가 없기 때문에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오르내려야 했다. 그럴 경우 큰 대형트렁크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난감 하다. 더구나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열차는 한량이 할당되었다. 현지인들은 다른 칸에 타고 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온 세 팀이 탄 것이다. KAL 연합팀 26, KRT 20여명, 비구니 스니팀 20여명이다. 좌석이 지정 되어 있어서 스님팀이 중간이고, 나머지 두 팀은 양 사이드이었다.

 

그러나 타는 과정에서 입구를 잘 못 지정해 주는 바람에 큰 혼란이 일어 났다. 크고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엉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시간이 꽤 걸렸다. 이 과정이 마치 피난민 행렬 같았고 돗대기 시장이 연상되었다.

 

돗대기 시장 같은

 

짐이 정리 되고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 않았다. 그 때가 20 50분이었다. 이제 5시간 동안 타고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기차안의 모습은 우리나라 육칠십년대를 연상시켰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3인용과 2인용 좌석이 있다. 좌석은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가장 싼 일반열차 이기 때문에 낡고 오래 되고 냄새가 심하였다. 특히 화장실이 있는 입구 쪽 좌석의 경우 특유의 화장실 냄새 때문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시끄러운 잡담을 피하기 위해서이었다.

 

일부는 잠자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끊임 없이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가로 누워 잠자는 사람들의 불평이 매우 심했다. 떠드는 사람을 향해 잠도 자지 않고 떠들기만 한다고 불평한다.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한 것이 돗대기 사장 같았다.  

 

 

 

 

 

위구르족 부부와 간난아기

 

입구쪽에 있다보니 어느 현지인 부부를 볼 수 있었다. 여자는 머리에 스카프를 하고 있었는데 생김새를 보니 위구르족 같다. 남자는 모든 면에 있어서 지저분해 보였다. 특히 양말에서 냄새가 지독히 풍겼다. 그 냄새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냄새 보다 더 심하였다.

 

이 젊은 부부사이에 강보에 쌓인 간난아기가 있었다. 위구르 여인은 너무 피곤하였던지 아기를 뉘어 두고 바로 옆자리에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가 뒤척이더니 의자에서 떨어질려고 하였다.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남자가 받아 내었다. 만약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끔찍하였다. 그러나 아이를 받은 남편은 한 번 씨익 웃고 만다.

 

길고 지루하였던 하루

 

하미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었다. 다시 버스로 갈아 타고 호텔로 이동하였다. 새벽에 보는 하미의 풍경은 신선했다. 잘 정리된 가로와 가로수, 그리고 예술적으로 디지인된 가로등이 인상적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되었다. 너무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에 이날 일정은 오전 늦게 시작 되었다. 길고 지루하였던 하루가 마무리 되려 하는 것이다.

 

 

 

 

2013-07-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