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는 세상의 유일한 신이다”하미(哈密) 회왕묘역
(실크로드 불교유적 성지순례 14, 하미회왕묘, 2013-06-1)
6월 1일 하미에서 첫 번째 일정은 시내의 하미박물관과 하미왕능이다. 그런 하미에 대하여 가이드는 ‘서역의 동대문’이라 하였다. 본격적으로 서역이 시작 된다는 말이다. 동대문에 들어 섰다는 것은 서울에 들어 갔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하미에 들어 섰다는 것은 서역에 들어 왔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하미의 공기는 청량하고 산뜻했다. 덥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더위이다. 그것은 습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늘에만 들어 가면 선선하다. 그런 하미는 이미 여름 날씨이다. 3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크 형식의 하미 박물관
호텔 인근에 있는 하미 박물관으로 갔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우루무치 박물관, 양관박물관, 돈황박물관에 이어 하미박물관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이다.
박물관의 외관은 다른 박물관과 달랐다. 바로 옆에 모스크가 있어서일까 하미박물관은 원형의 모스크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미박물관
박물관 옆에는 모스크가 보였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하미에서 가장 큰 모스크라 한다. 주위를 둘러 보니 박물관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보였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
공동묘지
자연사박물관을 보는 듯
박물관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하미에 출토된 유물과 문화재를 시대순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다른 박물관에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공룡의 화석이다. 중국이 신강성을 점령하고 난 후 1950대 말부터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 하였는데 다량의 공룡화석이 출토 된 것이다. 특히 익룡이 출토 되어 화재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미 박물관에는 마치 자연사 박물관 처럼 갖가지 공룡 화석이 전시 되어 있다.
한상 가득히 전시된 돌상
공룡화석과 함께 또 하나 특색 있는 전시물은 돌이다. 갖가지 돌이 마치 음식물처럼 한상 가득히 전시 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이라 한다.
“하미과가 참 맛있구나”
하미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미과’이다. 하미과란 무엇일까?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참외의 일종이라 한다. 그러나 참외 보다 크고 맛이 달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 건조지역은 일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모든 과일이 단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하미과는 무척 달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지배한 청나라 시절 청나라 황제에게 이곳의 특산품인 하미과를 조공하였다고 한다.
하미과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은 하미에서 생산된 과일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런 하미과는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미과와 관련하여 재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청나라 속국이었던 하미국은 청나라 황제에게 하미의 특산품인 이 과일을 조공 바쳤다고 한다. 조공을 바친 사신이 청나라 황제 건륭제에게 “이것은 하미과 입니다”라고 말하자, 청나라 황제기“하미과가 참 맛있구나”라고 말하면서부터 ‘하미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하미과는 하미를 대표하는 브랜드 상품이다. 그래서일까 호텔의 로비에도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박물관에도 하미과가 진열되어 있다.
가격달호텔(JIAGEDA HOTEL) 로비의 하미과
하미박물관의 하미과
하미회왕묘
박물관 견학을 마친 후 도로 건너 편에 있는 하미회왕묘로 향하였다. 청나라 시대 하미를 지배하던 위구르족 왕능이다.
하미지역은 신장성에 속해 있지만 위구르족 비율은 높지 않다. 한족이 68%로서 다수이고 이 땅에서 영화를 누렸던 위구르족들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광지는 모두 위구르족과 관련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미 회왕묘를 들 수 있다.
수령 4백년의 은백양
회왕묘 출입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래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들이다. 표지판을 보니 은백양으로 되어 있다. 수령이 400년이라 한다. 나무 밑은 마치 오아시스처럼 시원하다. .
하미왕국영역
회왕묘 입구를 들어 가자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청나라 시절 회왕이 통치하던 하미지역이 지도로 표시 되어 있다. 오늘날 하미자치구 영역에 해당된다.
통치자 연대표를 보니
또 다른 표지판에는 역대 하미왕들의 명단이 실려 있다. 1세부터 9세까지이다. 연도를 보니 1697년부터 통치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9세의 통치기간이 1930년으로 되어 있어서 청나라 시절과 겹친다.
한국판인데 일본어 표지판이
이런 연대기 표지판은 한문과 영문과 일본어 이렇게 세 개의 언어로 되어 있다. 한국어로 된 것은 없다. 돈황에서는 한국어로 된 안내 표지판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곳 하미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람들은 넘처난다. 어느 관광지를 가나 한족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다.
이날 역시 한국판이었다. 한국 관광객과 한족 관광객은 볼 수 있었지만 일본관광객은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어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이 마치 지나간 세월의 흔적처럼 보였다.
일본어 안내표지판
공원처럼 꾸며진 회왕묘역
회왕묘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마치 궁전처럼 보이는 모스크와 정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원에는 6월의 햇살아래 과일이 익어 가고 있다.
전형적인 이슬람 양식의 회왕묘
회왕묘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회왕묘가 있는 모스크이고, 또 하나는 예배볼 수 있는 모스크이고, 마지막으로 회왕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실이다. 먼저 회왕묘를 보았다.
회왕묘는 전형적인 이슬람 모스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 중앙에 돔이 있고 사방에는 작은 첨탑이 세워져 있다.
벽이나 천장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보인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에서 그 어떤 형상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묘가 있는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회왕의 무덤이 마치 관처럼 보였다. 커다란 관위에 천을 둘러 싸고 있는 모양이다. 무덤을 보니 8세(1867-1882 재위)의 것이다. 회왕 주변에 왕비와 아이들의 무덤도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슬람교도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신을 그대로 관에 넣어 두는 것이다.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에 썩지 않아 미이라가 되는 것이다. 모스크에는 왕들의 묘가 안치 되어 있으나 밖에는 대신들의 묘도 있었다.
“알라는 세상의 유일한 신이다”
다음으로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이다. 지금도 예배를 볼 수 있다고 하는 모스크는 겉보기에도 크고 화려하고 웅장해 보였다. 입구에는 위그르어(아랍어)글자가 써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알라는 세상의 유일한 신이다”라는 뜻이라 한다.
위구르어 문자로 “알라는 세상의 유일한 신이다”라고 쓰여 있다.
내부를 보니 겉보기와 딴 판이다. 겉보기에는 이슬람풍이지만 내부는 동양적 정서가 물씬 풍긴다. 마치 중국이나 우리나라 궁전의 내부가 연상될 정도이다. 한문으로 된 안내판이 있는데 ‘청진사(清真寺)’라고 쓰여 있다. 중국에서는 회교사원도 절 ‘사(寺)’를 쓰는 모양이다.
연꽃 문양의 기둥
특히 기둥과 천장과 맞닿는 부분은 연꽃 문양으로 되어 있다. 불교풍이 가미된 건축물이다. 하미모스크는 이슬람문화와 불교문화 그리고 한족문화가 복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미지역은 이슬람이 들어 오기 이전에는 불교문화가 번성하였다.
회왕들의 일대기
마지막으로 회왕들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역사전시실을 보았다. 건물 외관을 보니 이슬람식이 아니다. 중국식 건축물인데 명칭은 ‘하밀왕역사진열관’으로 되어 있다.
진열관 안에는 1세부터 9세까지 하미왕의 행적이 멋진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생김새가 한족과 다르다. 전형적인 위구르족 얼굴이다.
하미왕 1세(1697-1709재위)
청나라의 속국
역사적으로 청나라 시절 하미왕국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다. 청나라 군대가 직접 출병하여 점령 하지 않았지만 자치권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래서 17세기 말부터 200년간 9대에 걸쳐 회왕이 하미지역을 통치하였다. 이런 방식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와 유사하다. 그러나 조선은 청나라 영토에 포함 되지 않았다. 청나라 지배를 받지 않은 독립국가이었던 것이다. 반면 하미국은 청나라의 속국으로서 청나라의 일부이었다.
청나라 사신을 맞이 하는 하미왕(오른쪽)
카레즈를 정비하여 민생을 챙긴 3세
하미왕 2세의 재위기간을 보니 2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3세의 경우 1711년부터 1740년까지 무려 29년간이다. 사실상 하미국 전성시대라 볼 수 있다.
하미왕 2세(1709-1711 재위)
어느 시대나 처음 왕조가 시작 되었을 때 활기가 넘친다. 힘이 곧 정의라고 불리던 시절 힘이 넘쳐 나는 시기가 왕조 초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역사이든지 공통적으로 3대 째 전성기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손자대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하미국에서도 3세 때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하미 3세는 가장 중요한 국책사업이라 볼 수 있는 카레즈, 즉 설산으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인공수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민생을 챙긴 군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미왕 3세(1711-1740 재위)
4세부터 9세까지
이후 하미왕들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하미왕 4세(1740-1766 재위)
하미왕 5세(1766-1780 재위)
하미왕 5세 부터는 청나라 풍이 유행하였던 것 같다.
군주도 청나라풍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하미왕 6세(1780-1813 재위)
하미왕 7세(1813-1867 재위)
하미왕 8세(1867-1881 재위)
하미왕 8세는 지능이 낮은 군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복 어머니가 섭정하였는데 결국 자신의 자식을 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미왕 8세 섭정
하미왕 9세(1881-1930 재위)
하미왕과 관련된 유물
하미왕 역사진열관에는 하미왕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 되어 있다. 왕이 앉았던 의자와 자리, 옷 등이다.
역사만 남아 있는 하미
하미왕이 살았던 궁전에 대한 복원도를 보니 청나라풍이다. 후대로 갈수록 청나라에 동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5세 때부터 청나라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하미에 위구르족은 18%로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박물관에 가야 전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미에서 박물관과 왕묘를 보니 유물과 유적만 남아 있다. 위구르의 역사와 문화는 박물관이나 전시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불교 역시 이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불교를 접하려면 산사나 박물관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찰입장료는 폐지 되어야
우리나라 산사에 가면 입장료를 받는 곳이 많다. 문화재가 많은 전통사찰이다. 성보박물관이 있는 경우 역시 입장료를 받는다. 이처럼 조상이 물려준 민족문화유산 대부분을 사찰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사찰 입장료가 제대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입장료에 의존하면 어떻게 될까? 불교의 자생력이 상실될 것이다. 입장료 수입으로도 사찰이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교에 소홀히 하게 되어 종교로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입장료는 약이 아니라 ‘독’이라 볼 수 있다.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면 할수록 점점 한국불교는 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편 입장료를 받는 다는 것은 비불교적이기 때문이다. 주지 않는 것을 갖게 되어 오계를 어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조상이 물려준 막대한 토지와 문화유산을 이용하여 담을 쌓고 문을 만들어 입장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명백히 ‘투도죄’에 해당된다. 따라서 모든 사찰의 입장료는 폐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재는 국가에서 관리 해야 한다.
문화재는 소중한 민족문화 문화라 하였다. 더구나 70%가 불교문화재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절에 사는 승려들이 문화재를 관리 한다는 명목으로 입장료 수입을 챙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히 불교적 윤리 관점에서 그렇다. 민족문화유산은 국가에서 관리 하는 것이 맞다.
승려들이 문화재를 관리하고 입장료 수입을 챙기다 보니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된 사찰의 경우 마치 봉건시대 영주들처럼 관리권을 대물림 한다. 이렇게 특정 문중에서 이권을 독차지 하다 보니 갖가지 추문이 나돈다. 골프, 도박 등 갖가지 비리 이야기가 끊임 없이 흘러 나오는 것도 입장료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찰 입장료는 폐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은 국가에서 관리하여야 한다.
2013-07-1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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