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국불교는 2009년 이전과 이후로,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과 진정한 승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18. 11:37

 

한국불교는 2009년 이전과 이후로,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과 진정한 승가

 

 

 

불자들은 허탈하다

 

불자들은 허탈하다. 그렇게 바뀌기를 원하였건만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4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또다시 자승스님이 당선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309명의 선거인단 중에 179표를 받아 한국불교를 대표 하는 자리에 다시 올랐다. 직할교구를 빼고 모든 교구에서 주지에게 선거권을 일임한 결과에서 비롯 된 것이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를 보면서 느낀 점은 교구본사 주지만 공략하면 누구라도 총무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그가 은처승의혹을 받건, 도박승의혹을 받건, 폭력승의혹을 받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권승들 명단을 보면

 

자승스님은 33대에 이어 34대 총무원장이 되었다. 이렇게 연속으로 소임을 맡은 경우는 드믈다고 한다. 대부분 중도에서 그만 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청담스님이나 성철스님과 같이 고승도 아니고, 법륜스님처럼 불자들에게 인기 있는 스님도 아닌 각종의혹을 받고 있는 일개 사판승이 어떻게 총무원장이 되었을까? 이는 해단식에서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불교닷컴에서 전하는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자승스님 선대위는 해단식에 이어 사찰음식 전문점바루에서 점심 공양을 같이 하는 것으로 선대위 활동을 회향했다. 이날 해단식에는 고문 종상 스님, 공동선대위원장 원행(보광·영배·원행() 스님과 선대위원인 원학·성직·성월 스님, 집행위원인 정묵·정도 스님, 홍보본부장 지현 스님, 대변인 일감 스님, 종책본부장 정념 스님, 중앙선관위원회 간사 원오 스님, 삼혜 스님(상황실),활중·덕수·견진·정인·함결·활중·성행·혜일·탄원·종민·삼보·등목 스님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34 총무원장 고불식 8 조계사서, 불교닷컴 2013-10-16)

 

 

34대 총무원장선거에서 승리한 자승스님을 축하하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에서 선보인 스님들의 면면이다. 대부분 한국불교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권승들이다. 그 중 눈에 띈 것은 종상 스님이다. 기사에 따르면 고문으로 되어 있다. 이번 자승캠프의 고문인 것이다.

 

우리는 중이 아니에요, 도박꾼이지

 

종상스님은 자승스님과 함께 도박승 의혹을 받고 있는 16인중의 한사람이다. 이는 장주스님이 폭로한 신동아 9월호에 기사에 근거 한다.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종상스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여행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내가 고발한 16명의 승려 중에 OO이라고 있어요. 그 사람이 주로 준비를 맡았죠. 혼자 도박하러 갈 때는 여행사에 맡기고요. 불국사 전 주지 종상 스님과 같이 갈 때는 여행 준비를 따로 해주는 여자가 있었어요. 미국에 사는 강OO라는 여잔데, 종상 스님의 비서 노릇을 했어요.”

 

( 상습도박, 도박장 개설, 판돈 대여…” “종회의원 금권선거 특혜주고 고발 마” , 점입가경! 조계종 비리 폭로전, 신동아 2013-9월호)

 

 

장주스님은 종상스님의 비서노릇을 하였다고 하였다. 도박을 하러 라스베가스에 가면 늘 함께 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화장실로 달려가 사복을 갈아 입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우리는 중이 아니에요, 도박꾼이지.”라고 하였다. 머리만 삭발하였을 뿐 속복을 입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승려로 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 한다. 

 

블랙잭을 좋아 하는 스님

 

이처럼 중에서 도박꾼으로 변신한 종상스님에 대하여 장주스님은 다음과 같이 폭로한다.

 

 

해외 카지노에서는 주로 어떤 게임을 즐겼나요.

 

머신게임도 하고요. 나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제일 많이 간 종상 스님은 블랙잭을 좋아해요, 바카라도 하지만. 난 주로 포커를 합니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포커판이 세계에서 가장 재밌어요. 10달러짜리 판도 있고, 100달러짜리 판도 있어요. 나는 주로 10달러짜리 게임을 해요. 그것도 하려면 5000달러 정도 필요합니다. 거기는 워낙 판이 커서.”

 

( 상습도박, 도박장 개설, 판돈 대여…” “종회의원 금권선거 특혜주고 고발 무마” , 점입가경! 조계종 비리 폭로전, 신동아 2013-9월호)

 

 

종상스님은 블랙잭을 좋아 한다고 한다. 그런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판돈이 5000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박을 하기 위한 판돈은 어느 정도 필요할까? 이에 대하여 장주스님은 해외원정 도박을 나갈 때 보통 1만달러(1100만원) 가량 가지고 나간다고 한다. 이렇게 일년에 여섯 차례 정도 나가면 연간 6000만원이 도박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박을 즐기는 종상스님에 대하여 장주스님은 현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였다.

 

종상스님을 본 적이 있다

 

종상스님을 본 적이 있다. 멀리서 보았다.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의왕시에 있는 청계사에서 보았다. 그때 당시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법문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몰랐던 시절이고 정식으로 불자가 되기 이전에 일이다.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종상스님은 법문을 하였다. 90년대 말에 청계사 주지를 하였고 그 이후에 ()’자 항렬의 스님에 물려 주었는데, 청계사 회주 격으로서 법문하였다고 보여진다.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 멀리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청계사가 서로 어떤 관계가 있길레 청계사가 불국사 문중에 속해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청계사 주지는 자항렬의 스님들이 맡고 있다. 이번 자승스님의 해단식에서도 성직. 성월. 성행 등 성자 항렬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종상스님의 법문에서 기억나는 것은 내용이 아니다. 법문하는 모습과 태도이다. 큰스님이 법문한다고 하여 수 많은 불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종상스님의 자세는 당당해 보였다. 풍채가 좋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그런데 마치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는 듯한 하였다. 때로는 큰소리로 호통치는 듯 하였다. 이른바 호통법문이다.

 

공생관계를 유지 하기 위하여

 

불국사는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연중 관람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그래서 불국사와 석굴암은 관람료 사찰의 대명사격이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듯한 입장료 사찰은 종상스님 문중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스님들은 부자인 것 같다. 불국사 경내에 골프장을 만들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해외원장 도박까지 다니는 것이다. 이런 기득권은 빼앗기지 않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34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종상스님을 비롯하여 성자 항렬 스님들은 모두 자승스님 캠프에 몸담았다. 그리고 승리를 일구어 내었다. 기득권이 보장 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불교포커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자승스님의 후보등록 시점에서 예상한 득표분석이 끝까지 갔다. 표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기득권화된 세력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2번을 선택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1번은 4년 전부터 표 관리를 해왔는데, 거기에 맞서는 2번 후보가 그에 맞는 경쟁력 갖추지 못했다.

 

(총무원장선거 평가 좌담, 불교포커스 2013-10-14)

 

 

이번 34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캠프가 승리한 것은 기득권 승려들이 밀어 주었기 때문이다. 교구본사를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스님들이 기득권 보장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다. 그래서 ‘그 밥에 그 나물’ 격인 기호 2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불교포커스에서 공생구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 상태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본다.”라고 표현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당겨 주는 공생관계를 유지 하기 위하여 기득권 승려들이 똘똘 뭉쳤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한국불교에서 아무리 도박승, 은처승, 폭력승 척결을 외쳐 보았자 먹히지 않는 다. 한국불교는 이렇게 기득권을 가진 승려집단에 의하여 장악 되었다. 그런 스님을은 불자들에게 귀의의 대상일까?

 

양립할 수 없는 비구계와 보살계

 

불교저널에 한국불교 승단의 계맥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마성스님의 논문을 인용하여 “한국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사분율》에 의한 삼사칠증(三師七證)을 완전히 갖춘 구족계 전통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맥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불교저널 2013-10-17)”라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다. 한국불교의 계맥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성스님은 왜 이와 같은 놀라운 주장을 하였을까? 이어지는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마성스님은 “그러나 대승계경(大乘戒經)에 의한 보살계 전통은 분명히 존재했는데 이마저도 조선중기에 이르러 단절되었다”며 “서상수계(瑞祥受戒)라는 비상수단을 통해 계맥을 다시 복구시킨 역사가 있는 만큼 대승불교의 승단에서 구족계의 율맥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서상수계의 전통을 계승한 한국불교의 승단에서 계맥을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 "한국불교 승단서 '계맥 따지기' 우스워", 불교저널 2013-10-17)

 

 

 

마성스님에 따르면 한국불교의 승가는 비구승가가 아니라고 하였다. 스님들이 비구계를 받지만 비구계를 지키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하였다. 또 삼사칠증 제도에 따른 비구계를 받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불교 스님들은 계를 두 번 받는다. 한번은 대승보살계이고 또 한번은 비구계이다. 이렇게 두 번 계를 받는 것은 모순이라 한다. 대승보살계와 비구계는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은 결국 승려들의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한국불교 스님들은 비구계를 받았기 때문에 비구라 하지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전혀 비구같지 않다. 왜 그런가? 비구계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보살승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서 승려들이 비구계를 받는 것은 승려의 신분을 얻기 위한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키지도 못할 비구계를 받는 것은 스님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재가불자와의 차별을 시도하기 위해서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이나 공통으로 계를 받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승보살계이다. 10가지 대계외 48가지 가벼운 계로 이루어져 있는 대승보살계는 불자라면 누구나 받는다. 그래서 스님이나 불자들이 모두 보살계를 받기 때문에 보살승이라 볼 수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모두 대승보살계를 받으면 문제가 생긴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출가한 스님들은 계를 하나 더 받는다. 그것이 구족계라 불리우는 비구계이다. 스님들이 흔히 소승계라 말하는 비구계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백개의 계로 이루어져 있는 소승계를 받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재가불자와의 차별을 시도하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지키지도 못할 소승계를 받음으로서 출가자와 재가자와 구분을 짓기 위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두 개의 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비구승인가 보살승인가?

 

부처님 당시 타락한 브라만을 보는 듯

 

최근 포항공대 강병균 교수는 자승스님 캠프의 승리로 끝난 34대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 하여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조계종 스님들은 마치 브라만처럼 행동을 합니다. 음주, 도박, 해외 원정 도박, 절땅 팔아먹고 도망가기, 폭력 등 온갖 비리 추문을 저지르고도 스승을 자처합니다. 사방의 비난과 꾸짖음에도 음산한 부동심을 발휘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한 번 브라만이면 행위에 관계없이 영원히 브라만이듯이 한 번 승려가 되면 그 행위에 관계없이 영원히 승려인 듯 행동합니다. 그 행위가 여법하지 않을 때 즉각적으로 승려지위가 박탈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일부 승려들은 힌두교의 브라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후흑학(厚黑學)이라는 흑마술의 달인들이 아닌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대한민국 스님은 브라만 계급인가?, 강병균 포항공대 교수, 불교닷컴 2013-10-17)

 

 

글에서 강교수는 한 번 승려가 되면 그 행위에 관계없이 영원히 승려인 듯 행동합니다.”라 하였다. 은처, 도박, 폭력 등으로 오계를 저지르면 승단추방에 해당하지만 추방은 커녕 그들끼리 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켜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부처님 당시 타락한 브라만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재가승가

 

음주, 도박, 해외 원정 도박, 절땅 팔아먹고 도망가기, 폭력 등 온갖 비리 추문을 저지르고도 스님신분을 보장해 주는 곳이 한국불교이다. 모두 승단추방에 해당되는 범계행위에 해당 되지만 승단에 남아 있는 것은 비구계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계를 받아 비구라 하지만 비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 승단은 비구승가가 아니라 보살승가로 본다. 그런 보살승가는 다름아닌 재가승가이다. 왜 재가승가인가? 그것은 대승보살계때문이다. 대승보살계는 출가한 스님이나 재가불자 모두 공통으로 수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구계를 지키지 않는 한국불교 승단은 명백히 재가승가인 것이다.

 

은처승, 도박승, 폭력승도 귀의처인가?

 

빠알리니까야에 따르면 재가자가 재가신도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삼보에 귀의 하는 것이다. 이때 삼보는 붓다, 담마, 상가를 말한다. 특히 상가는 성스런 상가를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신 성자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래서 상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성스런 상가공동체에 귀의함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 상가개념은 변질 되었다. 스님을 승보로 보기 때문이다. 개별 스님일지라도 삼보 중의 하나인 승보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불교에서는 한글삼귀의문에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였다. 명백히 스님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표현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거룩한 스님들이라는 말에 대하여 승가와 같은 뜻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스님들과 승가공동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승가공동체는 비구계를 지키고 자자포살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가공동체에서 도와 과를 이루신 성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스런 승가공동체를 승보로 보고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는 것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스님을 승보로 보기 때문에 부처님과 동급으로 본다. 그래서 스님을 마치 부처님처럼 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넌센스이다. 승가에 대하여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스님을 승보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스님을 승보로 본다면 은처승, 도박승, 폭력승도 승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은처승, 도박승, 폭력승을 부처님처럼 보아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아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스님에 대하여 결코 승보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재가자가 재가자에게 귀의?

 

한국불교 승가는 비구승가가 아니다. 한국불교 승가는 재가승가이다. 비구계를 받았다고 하지만 비구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비구계와 동시에 보살계를 받았기 때문에 보살승가라 볼 수 있다. 보살승가는 다름 아닌 재가승가이다. 재가불자도 보살계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불교 승가는 귀의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불교는 재가승가이기 때문에 재가자가 재가자에게 귀의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한국불교에서 재가승가는 재가자에게 결코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어떤 승가에 귀의 하여야 할까?

 

1973년 태국계맥의 전수

 

한국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대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왔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한국불교는 비구승가가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대승보살계에 따른 보살승가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사칠증제에 따른 구족계를 받은 비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비구승가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불교에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1973년에 있었던 태국불교 율사들에 의한 테라와다 불교 수계사건을 말한다. 이는 마성스님의 논문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블로그에 올린 바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각묵스님의 논문을 인용하여 1973 태국계맥의 전수, 쾌거인가 헤프닝인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바가 있다.

 

불교평론에 기고된 마성스님의 논문에 따르면 1973년 당시 한국불교에서는 태국율사를 초청하여 수계를 받았다. 이유는 비구계맥을 복원하기 위해서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대처식육제도에 의하여 비구계의 맥이 단절된 것으로 보고 완전히 끊긴 비구계맥을 복원하기 위해서라 하였다.

 

그래서 73년 당시 통도사의 홍법·상우, 부산 선암사의 석암, 쌍계사의 고산, 송광사의 보성·학산, 해인사의 혜암·도견·일타·종진·운산·현우·도성, 대구의 수산, 법주사의 혜정 스님 등무려 40여명이나 되는 스님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들이 태국율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스님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스님들이다. 현재 송광사 방장인 보성스님, 쌍계사 조실인 고산스님, 입적하신 전 은해사 조실 일타스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태국 비구계를 받은 스님들

 

마성스님의 논문을 근거로 하여 태국의 비구계를 받은 스님의 명단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테라와다 비구계 수계자 명단

No

이름

소속사찰

테라와다 비구계

비 고

1

홍법

통도사

수계함

2

상우

통도사

수계함

통도사 전부방장

3

석암

부산 선암사

수계함

조계종 원로의원

4

고산

쌍계사

수계함

현쌍계사 조실, 전총무원장

5

보성

송광사

수계함

송광사 방장

6

학산

송광사

수계함

7

혜암

해인사

수계함

8

도견

해인사

수계함

9

일타

해인사

수계함

전은해사 방장

10

종진

해인사

수계함

11

운산

해인사

수계함

12

현우

해인사

수계함

13

도성

해인사

수계함

현 한국테라와다불교 종정

14

수산

대구

수계함

15

혜정

법주사

수계함

16

고암

수계설있음

17

경산

수계설있음

전총무원장

18

천장

천축사

한 발은 계단 안에 한 발은 계단 밖에 두고 수계설

 

출처: 한국불교와 상좌불교의 만남의 역사와 과제 / 마성, 불교평론 2011-9-6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한국불교계에서는 부끄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 쉬쉬한다는 것이다.

 

태국계맥의 전수가 왜 쾌거인가?

 

그러나 각묵스님은 자신의 논문에서 1973년의 태국계맥의 전수는 1700년 한국불교 역사에 있어서 쾌거라 하였다. 왜 쾌거인가? 이에 대한 불교신문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 이유로 스님은 1973년 한국의 중진 스님들이 태국의 비구계를 수지한 역사적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율사 스님들은 태국 승단으로부터 37증을 초빙했고 종단 주요 스님들은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각묵스님은 “한국불교 2000년사에 가장 획기적이고 위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이것이야 말로 한국불교가 중국의 대륙불교를 넘어서서 초기불교의 정통 계맥을 한반도에 다시 복원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또 “스리랑카에 계를 전한 태국계맥은 남방상좌부불교에서도 중요하다”며 “이것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부처님 계맥에 대한 모독”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구계 수지…수치스럽다면 ‘모독’ 남방 부파불교의 받는다는 것은 ‘위험’ , ‘한국불교의 계맥, 초기불교 영향인가 대승 특징인가’, 불교신문 2012-10-16)

 

 

각묵스님이 쾌거로 본 것은 한국불교가 세계불교의 일원이 된 역사적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불교 1700년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계를 받은 당사자들은 철저하게 숨기거나 부끄러워 한다고 한다.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태국계맥이 전승되지 않은 것이다.

 

2009년 한국테라와다 불교 창립

 

그러나 단 한사람 예외가 있다. 그분은 다름 아닌 ‘도성스님’이다. 1973년 태국율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40여명의 스님 중 한 분이다. 그래서 비구계를 받은 이래 계속 비구로 살아 왔다. 그래서일까 지난 2009년 새로 창립된 한국테라와다불교의 ‘상가라자(승가의 왕)’가 되었다. 그런 도성스님은 어떤 분일까? 현대불교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도성 스님은 1919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 해 전쟁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석방된 스님은 부산 선암사 지월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출가 후 56회의 안거를 마치고 1972년 태국 방콕 벤자마보핏 사원에서 프라담마 딧띠소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미얀마 마하시 선원, 태국 위웩아솜 위빠사나 수행처, 스리랑카 비구 아일랜드에서 위빠사나 수행 후 한국에 위빠사나를 전파했다.

스님은 1977~1979년 해인사 주지, 1990~1993년 대흥사 주지, 1991~1993 조계종 전국 본사주지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밖에도 스님은 태국 마하 쭐라롱콘대학 한국분원 학장을 지내면서 국제적인 교학증진에도 기여하는 등 전 세계에 테라와다불교를 선양하고 있다.

 

( 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 도성 스님, 현대불교신문 2009-11-06)

 

 

 

 

도성 스님(왼쪽) 10 31일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법회에서 상가라자로 추대됐다.

사진: 현대불교신문

 

 

 

1973년 태국계맥의 전수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에서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보고 있다. 그때 당시 수계하였던 스님들 다수는 쉬쉬하며 부끄러워 하고 있다. 하지만 도성스님은 40여명의 수계자 중에 태국의 계맥을 전승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2009년 한국에서 최초로 테라와다불교가 창립되었을 때 상가라자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테라와다 불교가 창립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국불교는 2009년 이전과 이후로

 

한국에서 테라와다불교가 창립되었다는 것은 한국불교 전래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왜 그런가? 진정한 승가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승가가 탄생된 것이다. 그래서 불, , 승 삼보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런 삼보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귀의처이자 의지처이고 피난처이다. 그래서 한국불교는 2009년 이전과 이후로 갈릴 수 있다.

 

 

 

2013-10-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