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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테러리스트, 왜 정어(正語)를 해야 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23. 11:09

 

페이스북과 테러리스트, 왜 정어(正語)를 해야 하는가?

 

 

 

올린 글에 책임을 지고자

 

매일매일 흔적을 남긴다. 또 하나의 생활공간인 인터넷에 거의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지난 수 년간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검색하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심지어 외국 사이트에서도 발견 되는 것을 보았다. 자료 검색을 위하여 일본야후에 들어 갔더니 블로그에 올린 글이 한글로 그대로 노출이 되는 것이 아닌가!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서명을 한다. 날자와 블로그필명을 반드시 기입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올린 글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한번 올린 글은 가상공간을 떠 다니기 때문에 어느 때 누가 접할지 알 수 없다. 글을 읽고 공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개인적인 견해 보다도 경전을 근거로 한 이야기를 올린다. 부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EBS국제다큐영화제

 

요즘 EBS에서 전에 보지 못하던 프로가 방영되고 있다. 저녁시간에 정규프로를 모두 중단하고 보여 주고 있는 것은 EIDF이다. 자막에는 ‘제10회 EBS국제다큐영화제’라 소개 되어 있다. 기간이 2013년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보고 있는 프로가 그 영화제에 해당된다.

 

EIDF에서 보여 주고 있는 영화는 독특하다. 이제까지 보던 영화와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다큐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사적인 이야기, 소외된 제3세계의 살아 가는 모습 등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혀 재미 없는 영화들이다. 그런 다큐영화중을 연속으로 두 편이나 보았다. 나중에 본 것이 ‘EDIF 2013 기술과 문명이다.

 

, 그분이 들어왔구나!”

 

인터넷은 생활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들락 거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접속할 때 마다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이는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로그인 하여 들어 왔다면 누가 들어 왔는지 알 수 있다. 비록 글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관리자 모드에 들어 가면 확인 된다. 그래서 낯익은 필명을 보면 “아, 그분이 들어왔구나!”라고 마음속으로 말을 하면서 올린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본다. 혹시라도 잘못된 것이 없는지 불편하게 표현한 것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현대판 업경대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기록은 남는다. 이는 정보가 디지털화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오래 전에 무심코 올린 글도 남는다. 익명으로 올린 댓글을 우연하게 발견하였을 때 얼굴이 화끈 거릴 때도 있다. 숨기고 싶었던 지난날 행적이 사이버 공간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은 마치 자신의 과거 행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업경대’처럼 보인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인터넷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인터넷은 ‘현대판 업경대’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

 

EBS다큐영화 ‘기술과 문명’을 보면 현대판 업경대로서 인터넷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자신의 모든 행적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서비스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에서는 개인정보를 취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과 페이북을 고발한다. 그 중에서도 개인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 되는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 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공짜가 아닌 이유는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라는 서명을 유도하는 약관에 있다. 그래서 동의를 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 무심코 서명을 한다는 것이다.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는 많은 내용을 읽어 보고 동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위 약관에 동의합니다” Terms and Conditions May Apply

감독 : 컬른 호백(Cullen Hoback)

EBS  2013-10-22일 방영

 

  

당신의 영혼을 가져 가겠습니다

 

EBS 다큐영화에서는 약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어느 영국사이트에서 약관에 당신의 영혼을 가져 가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장난으로 슬쩍 끼워 넣었다고 한다. 단 하루 실험적으로 시행한 것인데 무려 7000명이나 동의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대부분 접속자들이 약관을 읽어 보지 않는 맹점을 노린 것이다. 이처럼 약관을 읽어 보지 않고 동의 버튼을 눌렀을 때 그 약관안에 어떤 불리한 내용이 있는지 어떻게 악용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한다.

 

이렇게 약관에 동의 하고 회원에 가입하면 그 때 부터는 신상이 모두 털리기 시작한다고 한다.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에 접속하여 피해를 본 사례 두 가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검색 때문에 구글은 하지만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신상이 공개 되기 때문이다. 친구에 친구가 공개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메일이 날아 온다. 당신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입하라는 취지의 메일이다.

 

EBS다큐에서는 페이스북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를 여러 건 소개하고 있다. 무심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곤욕을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느 영국인은 장난으로 “미국에 있는 비행기를 폭파해 버리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올린 글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국으로 휴가를 갔었는데 공항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비행기 폭파용의자로 체포 되어 여러 날 조사를 받았는데 그로 인하여 휴가를 망쳤다고 한다.

 

또 어떤 미국인은 그 날 기분이 상해서 술의 힘으로 페이스북을 했다고 한다. 마침 드라마에서 총기 관련대화가 있어서 이를 그대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몇 시간 후에 무장한 경찰들이 집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취중에 무심코 올린 장난글로 인하여 테러용의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심코 동의한 약관 때문이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수집된 정보는 국가겅보기관에서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테러와 관련된 키워드 몇 개만 집어 넣으면 범죄를 저지를 용의자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러와 범죄예방을 목적으로 용의자를 사전에 검거하는데 있어서 구글과 페이스북이 활용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이 남의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데

 

촛불시위가 매주 열리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댓글사건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국가기관이 여론 조작을 하여 대선에 개입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를 처벌하는 촛불시위가 문화제 형식으로 서울 도심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고 있다. 이렇게 매주 촛불시위가 열리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없는 일이라 하여 애써 피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슈털어주는 남자 김종배424회- 경계를 뛰어넘다, 감성좌파 목수정에 따르면 알 수 있다. 목수정씨에 따르면 프랑스의 언론에서는 지난해 대선은 국가기관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언론에서는 박근혜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철저하게 정보가 통제되고 방송이 정권에 장악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국민만 모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지난해 선거에 부정이 있었고 부정으로 당선된 것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구글에서 현 대통령의 이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떳다고 한다.

 

 

검색엔진 구글에 ‘박근혜’를 검색해 나오는 인물 설명에 ‘부정선거로 당선’이라는 말이 버젓이 드러나있다 삭제되어 논란이 되었다.

26일 오후까지 구글 검색창에 ‘박근혜’를 입력했을 때 오른쪽 화면에 뜨는 인물설명이 “박근혜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한민국의 제 18대 대통령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이 인물설명은 사용자들이 직접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위키백과’와 직접 연동되어 있다. 당시까지 위키백과 사이트의 ‘박근혜’ 키워드의 본문에는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이다”라고 재수정되어 있었으나, 구글 검색에는 수정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구글 박근혜 인물검색,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파문, 조선일보 2013-09-26)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구글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라는 내용이 뜬다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선거로 만든 국기문란행위

 

그럼에도 당사자인 국정원은 이리저리 빠져 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있지만 메인 뉴스에서는 보도가 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는 국군사이버사령부에서 댓글을 통한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지난해 대선은 국가기관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하였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국가기관에서 대선에 개입한 것은 국기문란 행위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선거를 무력화 시키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서 선거에 개입하여 영향을 끼친다면 그 선거는 하나마나한 선거가 되어 버린다. 투표로써 선거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데 국가가관이 개입하면  가능성을 차단시켜 버리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의 참정권이 박탈당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여

 

지난 8월 더위가 절정일 때 촛불문화제에 참석하였다. 그 때 당시 서울광장이 꽉 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자 처음으로 메인 뉴스시간에 보도 되었다.

 

촛불문화제를 보고 인터넷에 올렸다. 블로그에 ‘그들은 촛불을 들었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라는 제목으로 올린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흔적이 남게 되었다.

 

모든 정보는 정보기관에 수집되기 때문에 민감한 이슈에 대한 글 역시 수집 되었을 것이다. 특히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같은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고발성 글은 타겟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감시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판적인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럼에도 글을 올리는 것은 진실때문이다. 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투사는 아니지만 글을 통해서라도 잘못된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키는데 일조를 하고 싶어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치적인 글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교블로그에서 부처님 말씀 보러 왔지 정치글 보러 오지 않았다고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비판적인 글을 올리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하나의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힘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진리와 역행하는 것을 보았을 때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불교블로그임에도 종종 정치나 사회현상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을 올린다.

 

필업(筆業)과 과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래서 글쓰기가 생활화 되어 있다. 대부분 일상에서 느낀 생각에 대하여 경전속의 가르침과 연계하여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때로 시사에 대한 글쓰기도 한다. 그럴 경우 역시 가급적이면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어느 날 갑자기 무장한 요원들이 들이닥칠 염려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에 테러용의자로 둔갑하는 것은 정어(正語)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심코 올린 글, 기분 나쁘다고 올린 글, 취중에 올린 글이 결국 자신을 옭아 매는 예를 EBS다큐에서 보았을 때 팔정도에서 정어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올릴수 있는 사적인 사이버공간일지라도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키워드 검색만 하면 위치가 파악된다. 그래서 필업(筆業)’에 따른 과보를 받게 된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이 사이버세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어는 무엇인가?

 

그래서 글을 쓸 때는 팔정도의 정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정어는 무엇일까?

 

 

Katamā ca bhikkhave, sammāvācā: yā kho bhikkhave, musāvādā veramaī pisunāya vācāya veramaī pharusāya vācāya veramaī samphappalāpā veramaī aya vuccati bhikkhave, sammāvācā.

 

수행승들이여, 올바른 언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1) 거짓말을 하지 않고

2) 이간질을 하지 않고

3)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4)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으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언어라고 한다.

 

(Vibhagasutta-분별의 경, 상윳따니까야 S45:8, 전재성님역)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어는 거짓말(musāvādā), 이간질(pisunāya), 욕지거리 (pharusāya), 꾸며대는 말(samphappalāp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정어는 현실공간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도 유효하다.

 

입에 도끼가 생겨나고, 입에 칼을 물고

 

가상공간에서는 익명이 보장된다. 그래서 오물을 배설하듯이 마구 말을 쏟아 낸다. 그래서 욕설, 비아냥 등 비방과 비난이 난무한다. 특히 자신과 견해가 맞지 않는 경우 거의 폭력적이다. 이와 같은 언어폭력의 결말은 어떤 것일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Purisassa hi jātassa

kuhāri jāyate mukhe,
Yāya chindati attāna

bālo dubbhāsita bhaa

 

[세존]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

 

(Kokāliya sutta-꼬깔리야의 경, 숫따니빠따 Sn3.10, 전재성님역)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입에 도끼를 물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이는 말에 의한 언어폭력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졌을 때 또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을 찍는다.

 

이런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처님 당시에도 육사외도로 대표되는 이교도들이 논쟁을 벌일 때 마치 입에 도끼를 문 것 처럼 서로 죽일 듯이 논쟁을 벌였다. 이는 우다나에서 싸우고 다투고 논쟁하면서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 (Ud6.4)”라는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손에 도끼와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입으로는 도끼와 칼을 들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런 결과는 어떤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입에 도끼가 생겨난 것처럼 또는 입에 칼을 물고 논쟁하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만을 해칠 뿐이라 하였다. 이는 정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 (bālo dubbhāsita bhaa , Sn3.10)”라 하였다.

 

정어가 되지 않았을 때 받는 과보

 

숫따니빠따 꼬깔리야 경에서는 중상모략하고 이간질하고 험담하는 자의 과보에 대하여 표현되어 있다. 꼬깔리야라는 제자가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 대하여 시기와 질투를 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부처님이 자제를 요청하였다. 그것도 세 번이나 꼬깔리야여,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져라. 싸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자애롭다.( Sn3.10)” 라고 세 번이나 말했지만 꼬깔리야는 듣지 않았다. 그 결과 꼬깔리야는 구업에 대한 과보를 받아 홍련지옥에 떨어졌다. 그래서 부처님은 정어가 되지 않았을 때 과보를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세존]

 

1.

Purisassa hi jātassa kuhāri jāyate mukhe,
Yāya chindati attāna
bālo dubbhāsita bhaa.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

 

2.

Yo nindiya pasasati ta vā nindati yo pasasiyo,
Vicināti mukhena so kali
kalinā tena sukha na vindati.

 

비난받아야 할 것을 찬양하고,

찬양해야 할 것을 비난하니,

입으로써 불운을 쌓고

그 불운으로 안락을 얻지 못한다.

 

3.

Appamatto aya kali yo akkhesu dhana parājayo,
Sabbassāmipa sahāpi attanā ayameva mahantataro kali,
Yo sugatesu mana
padosaye.

 

도박으로 돈을 잃거나,

모든 재산과 함께 자기 자신마저 잃어도,

그 불운은 오히려 작은 것이다.

바른 길을 가신 님에게 적의를 품는다면,

그 불운이야말로 참으로 큰 것이다.

 

4.

Sata sahassāna nirababudāna
Chatti
sati pañca ca ababudāni,
Yamariyagarahi niraya
upeti
Vāca
manañca paidhāya pāpaka.

 

입으로 마음으로 악함을 기도하여,

거룩한 님를 비난하는 사람은

십만 삼천 니랍부다와 오압부다를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

 

5.

Abhūtavādi niraya upeti
Yo cāpi katvā na karomiti cāha,
Ubhopi te pecca samābhavanti
Nihinakammā manujā parattha.

 

거짓을 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한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내세에 동일한 자들이 된다.

 

6.

Yo appaduṭṭhassa narassa dussati
Suddhassa posassa ana
gaassa,
Tameva bāla
pacceti pāpa
Sukhumo rājo pa
ivātava khitto.

Yo lobhague anuyutto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고 죄악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자,

그 어리석은 자에게, 바람을 거슬러서 미세한 먼지가 불어오듯,

반드시 그 악함은 되돌아온다.

 

7.

Yo lobhague anuyutto
So vacasā paribhāsati aññe,

Assaddho  kadariyo avadaññu
Macchari pesuniyasmi
anuyutto.

 

갖가지 탐욕의 대상들에 빠져,

믿음도 없고 이기적이고, 불친절하고,

인색하고 중상을 일삼는다면,

그 사람은 말로써 남들을 매도하는 것이다.

 

8.

Mukhaduggavibhūta anariya
Bhunahu pāpaka dukkatakāri,
Purisanna kali avajāta
Mā bahubhā
idha nerayikosi.

 

입이 험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특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여,

비루하고 불행하고 비천한 자여,

이 세상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진 자이다.

 

9.

Rajamākirasi abhitāya
Sanne garahasi kibbisakāri,
Bahuni ca duccaritāni caritvā
Gañachisi1- kho papata
ciraratta

 

죄악을 짓는 자여,

그대는 불이익을 위해 먼지를 뿌리고,

참사람들을 비난한다.

온갖 나쁜 일을 하고 나서,

오랜 세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다.

 

10.

Nabhi nassati kassaci kamma
Iti ha ta
labhate va suvāmi,
Dukkha
mando paraloke
Attani passati kibbisakāri.

 

결코 어떤 행위도 없어지지 않는다.

때가 되면 그 임자가 그것을 받는다.

죄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내세에 자신 안에서 그 괴로움을 발견한다.

 

11.

Ayosakusamāhataṭṭhāna
Ti
ahadhāra ayasulamupeti,
Atha tattaayogu
asanniha
Bhojanamatthi tathā patirūpa
.

 

그는 쇠꼬챙이로 꿰이는 곳에서

날카로운 날이 달린 쇠창에 찔린다.

그곳에서 거기에 알맞은 불에

달군 쇳덩이 같은 음식이 주어진다.

 

12.

Na hi vaggu vadanti vadantā
Nābhijavanti na tā
amupenti,
A
gāre santhate senti2-
Agginisama
jalita pavisanti.

 

말 건네는 자들은 상냥하지 않고,

서둘러 그를 구해주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는 숯불이 뿌려진 곳에 누워

불붙는 화염 속에 들어간다.

 

13.

Jālena ca onahiyānā
Tattha hananti ayomayaku
ehi,
Andha
va timisamāyanti
Ta
vitata hi yathā mahikāyo.

 

그들은 그곳에서 그를 그물로 덮어서

쇠로 만든 망치로 내려친다.

그리고 어둠이 안개처럼 펼쳐져 있는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그를 이끈다.

 

14.

Atha lohamaya pana kumbhi
Agginisama
jalita pavisanti,
Paccanti hi tāsu ciraratta

Agginisamāsu samuppilavāso.

 

그리고 화염처럼 불타오르는

구리로 만들어진 가마솥에 들어간다.

오랜 세월 그 화염처럼 불타오르는

가마솥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괴롭힘을 당한다.

 

15.

Atha pubbalohitamisse
Tattha ki
paccati kibbisakāri,
Ya
ya disata adhiseti
Tattha kilissati samaphusamāno.

 

또한 고름과 피로 섞인 것이 있어,

죄악을 지은 자는 그 속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어느 쪽으로 피신하든 거기에 닿아서 더렵혀진다.

 

16.

Puavāvasathe salilasmi
Tattha ki
paccati kibbisakāri,
Ganatu
na hi tiramapatthi
Sabbasamāhi samannakapallā.

 

해충들이 사는 물이 있어,

죄악을 지은 자는 그 안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나오려 해도 언덕이 없다.

그 가마솥은 둘레가 모두 한결 같기 때문이다.

 

17.

Asipattavana pana tiha
Ta
pavisanti samacchidagattā,
Jivha
baisena gahetvā
Ārajayā rajayā vihanatti.

 

날카로운 칼 잎으로 이루어진 숲이 있어

팔다리가 잘린 채 그곳에 들어간다.

낚시 바늘로 혀를 꿰어 찌르고 또 찌르면서 괴롭힘을 당한다.

 

18.

Atha vetarai pana dugga
Ti
hadhāra khuradhāra mupenti,
Tattha mandā papatanti
Pāpakarā pāpāni karitvā.

또한 예리한 면도칼이 있는

건너기 어려운 베따라니 강에 이른다.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은

죄악을 범하고도 그곳에 떨어진다.

 

19.

Khādanti  hi tattha rudanne
Sāmā sabalā kākolaga
ā ca,
So
ā silālā paigijjhā
Kulalā vāyasā ca vitudanti.

 

그곳에는 갈가마귀, 검은 개, 점박이 개,

승냥이 떼들이 있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또 독수리와 까마귀들도 살을 쪼아 먹는다.

 

20.

Kicchā vatāya idha vutati
Ya
jano passati kibbisakāri,
Tasmā idha jīvitasese
Kiccakāro siyā naro na pamajje.

 

죄악을 지은 자가 만나는 이 세상의 삶은

실로 비참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사람은 해야 할 일을 하고 방일하지 말라.

 

21.

Te gaitā viduhi tilavāhā ye padume niraye upanitā,
Nahutāni hi ko
iyo pañca bhavanti
Dvādasa ko
i satāni punaññā.

 

홍련지옥에 끌려와 사는 기간은

깨알더미 만큼이라 현자들은 헤아렸으니

실로 오 나유따 꼬띠하고도

또한 천이백 꼬띠나된다.

 

22.

Yāva dukkhā nirayā idha vuttā
Tatthāpi tāva cira
vasitabba,
Tasmā suci pesala sādhu gu
esu
Vāca
mana satata parirakkheti.

 

여기서 말한 지옥의 고통이

아무리 오래 지속하더라도 그곳에서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청정하고 어질고 착한 성품의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언어와 마음을 수호해야한다.

 

 

 (Kokāliya sutta-꼬깔리야의 경, 숫따니빠따 Sn3.10, 전재성님역)

 

 

 

2013-10-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