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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서부극인가, 중드 ‘대돈황(大敦煌)’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3. 6. 30. 12:04

 

중국판 서부극인가, 중드 대돈황(大敦煌)’을 보고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처음 들어 본 말이다. 여행객 중에 40여년을 기업체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임한 분이 있었다. 60년대 이른바 박정희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우리나라 근대화에 이바지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월급쟁이로서 올라갈 때 까지 올라 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년퇴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분은 대항항공 탑승회수가 무려 1700여회에 달한다고 하였다. 입사 당시부터 해외를 다니기 시작하였고 인도, 중국 등 해외지사에서도 근무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남은 여생을 여행을 통하여 보내는 있는데, 버킷리스트 이야기를 하였다. 앞으로 다녀야 할 곳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분기에 한 번 나가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였다. 그런 계획 중의 하나로서 이번 실크로드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 자신이 해야 할일을 미리 적어 보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실크로드 여행기를 작성하였더니 어느 법우님은 자신의 버킷리스트안에 돈황여행을 집어 넣어 놓았다고 하였다. 돈황과 실크로드가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정도로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중드(중국드라마) 대돈황

 

돈황에 대하여 여러편의 글을 작성하고 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하여 재미있게 작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자료를 찾게 된다. 주로 인터넷검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돈황에 대한 자료를 검색중에 드라마를 하나 발견하였다. ‘대돈황’이라는 대하시대드라마이다. 중국에서 만들었는데 언젠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자막이 제공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중드(중국드라마) 대돈황에서 유심히 지켜 본 것은 장경동에 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경동폐쇄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장경동을 왜 폐쇄한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중드 대돈황에서 보여 주고 있다.

 

 

 

 

 

 

장경동을 폐쇄한 이유

 

장경동을 폐쇄한 이유에 대하여 위키피디아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장경동

1900년 6월 22일 둔황 석굴을 지키던 태청궁 도사 왕위안루(왕원록)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이상한 공명음을 듣고는 막혀 있던 밀실을 발견하였다. 길이가 2.6m, 높이 3m의 이 석굴에는 5만 점의 고문서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둔황 유물의 정수이자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제17굴(장경동)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의 유물은 4세기에서 11세기에 걸친 오호십육국 시대에서 북송까지의 고문서와 고대악기, 고화, 고서 등등이었다.

변경 지역이라 잦은 이슬람 등 이교도의 침입에 파괴될까 봐 아예 중요 문화재들만 모아서 제16굴의 보조굴에 모아서 폐쇄를 했던 것이 몇 백년 동안 발견되지 않다가 발견된 것이다.

 

1907 오렐 스타인이 이곳을 관리하던 도사 왕위안루(왕원록)에게 소액의 기부금을 주고 장경동에서 약 7,000점의 유물을 유출하여 대영박물관에 가져가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연구는 다시 둔황학이라고 이름 붙여지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08 프랑스인 펠리오가 또 한 번 7,000점의 유물을 프랑스로 유출하게 되는데, 혜초왕오천축국전도 여기에 묻어져 나간 것이다.

 

(막고굴, 위키백과)

 

 

 

 

 

 

한글 위키백과에 따르면 장경동을 폐쇄한 이유에 대하여 이슬람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슬람 등 이교도의 침략으로부토 막고굴의 귀중한 보물을 지켜내기 위한 조치이었음을 말한다. 이런 이유가 타당하여 후기를 작성할 때 이슬람이 원인일 것이라고 썼다.

 

장경동 폐쇄의 수수께끼 세 가지

 

그러나 장경동 폐쇄에 대하여 여러 이유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크로드와 돈황전을 전시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장경동 폐쇄의 수수께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피난설이다.

서하 또는 이슬람 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불경등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 되었다는 주장이다.

 

둘째, 폐기설이다.

돈황문서는 당시 이미 실용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폐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경동에는 완전한 불경이나 진귀한 물품이 거의 없고, 앞뒤가 결락된 단편들이나 기한이 지난 문서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셋째, 서고개조설이다.

11세기 이후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절첩식 불경이 보급되면서 사용이 불편해진 두루마리식 불경들과 잡다한 물건들을 석굴 안으로 넣어 봉했다는 주장이다.

 

피난설, 폐기설, 서고개조설 모두 가능성 있는 이야이기다. 이중 특히 피난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에서는 이슬람으로부터 피난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중드 대돈황을 보면 이와 다르다. ‘서하’의 원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돈황 천년문화의 흥망성쇠를 다룬 대하드라마

 

중국정보를 알려주는 중국의 사이트에 따르면 중드 대돈황(大敦煌)’ 2006 CCTV에서 방영되었다. 모두 46부작으로 금으로 숨겨진 대장경 금자대장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돈황의 형성과 발전, 쇠퇴, 재생을 그린 드라마라 한다. 천지아린이 감독을 맡은 드라마 대돈황은 중국 최초로 돈황 천년문화의 흥망성쇠를 그리는 대하드라마라 한다.

 

드라마는 크게 상부, 중부, 하부로 나누지는데, 상부는 송나라시대 돈황 장경동에 보물이 수장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고, 중부는 청나라 말기 서구열강 침입시기의 막고굴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부는 1936년 시점의 중화민국 시대의 이야기라 한다.

 

이렇게 세 개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 중에 상부의 해당되는 드라마를 보았다. 장경동이 어떤 이유로 폐쇄 되었는지에 대하여 알아 보기 위해서이다.

 

대돈황은 드라마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특유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상부를 보면 우전국(코탄) 공주가 등장하고 공주를 사모하는 서하의 장군이 나타난다. 송나라 시절 ‘서하(西夏, 1032년~1227년)’가 발흥할 때 상황이다.

 

 

 

 

이원호의 야심에 따라

 

돈황은 송나라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송나라는 돈황을 지킬만한 여력이 없었다. 1시 방향에서 거란족이 발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민위주의 정책을 편 결과 유목민족의 발흥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이때 11시 방향에 있던 티벳과 간쑤성 사이의 유목민족 탕구트족(당항족)이 발흥하였다. 역사에서는 이를 서하라 한다. 특히 이원호시대에 크게 발흥하였다. 그래서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는 돈황을 위협하였다.

 

 

 

 

 

 

 

  

 

 

 

 

이원호의 야심에 따라 돈황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다. 서역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황을 반드시 수중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이원호는  오랑캐의 칸이다. 그래서 거칠고 야만스럽고 용맹스럽게 묘사 되어 있다. 중국역사에 있어서 서하는 어떤 나라일까?

 

서하는 어떤 나라이었나

 

서하는 1032년부터 1227년까지 195년간 존속된 나라이다. 그러나 남겨진 기록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오랑케나라의 역사의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럼에도 서하는 서하문자라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가진 문화민족이었다. 그리고 대대로 불교를 숭상하는 불교국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몽고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칭기스칸에 끝까지 저항한 결과 탕쿠트족은 거의 전멸하여 후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금자대장경을 손에 넣기 위하여

 

드라마 대돈황은 서하의 칸인 이원호가 돈황을 넘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드라마에서 이원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금자대장경이다. 송대에 만들어진 대장경이라 한다.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금자대장경을 돈황의 석굴에 봉안하려 하는데, 정세가 급변하여 금자대장경을 숨기는 과정에서 장경동이 만들어진 것이다.

 

드라마에 따르면 이원호가 금자대장경을 손에 넣으면 서역지배의 정당성을 띠게 된다. 마치 육조의 가사의 발우를 가지고 있으면 정통성을 인정 받듯이 금자대장경을 손에 넣으면 서역지배자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다.

이원호의 야심에 따라 돈황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송나라 황제의 명에 의하여 금자대장경을 가져 왔던 화가출신 대신은 이를 숨길 계획을 세운다. 그래서 막고굴에 새로운 동굴을 파고 그곳에 숨긴다. 동시에 3만여점에 달하는 경서도 숨긴다. 그리고 벽으로 막아 버리고 그곳에 벽화를 그려 넣는다. 이것이 드라마속에서 보는 장경동이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장경동이 폐쇄된 이유가 서하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이제까지 이슬람의 침공에 대비하여 봉쇄 하였다는 위키피디아 식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것이다.

 

중국판 서부극인가

 

미국 서부영화를 보면 장쾌하다. 주로 말타는 장면이다. 드넓은 황야를 배경으로 말타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서부영화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서역에 대한 드라마이다.

 

 

 

 

요즘 케이블채널을 보면 중국드라마 전성시대인 것 같다. 이곳 저곳에서 갖가지 중드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역사드라마들이다. 그래서 서역의 초원이나 사막, 황무지를 배경으로 한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측천무후가 등장하는 일월능공에서도 금산부락이라는 유목부족이 등장하고, ‘태평공주에서도 초원의 칸이 등장한다.

 

 

 

 

중드 대돈황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무협적인 요소와 미국서부영화처럼 말타는 장면, 그리고 유목민족과 한족과의 사랑과 갈등과 전쟁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대돈황 상부는 중국판 서부영화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중드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돈황의 낙타 종소리

전생의 기억을 깨우고

윤회를 부르는 범어는

멈출줄 모르네.

대장경을 읊으며

그대를 기억하고

가혹한 숙명을 떠올리네.

 

(대돈황 메인테마곡)

 

 

 

 

 

2013-06-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