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우주의 종말, 안전지대는 어디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2. 4. 23:48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우주의 종말, 안전지대는 어디인가?

 

 

 

 

얼굴 가죽만 웃는 정치인

 

아침에 TV를 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TV를 켜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방해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종 TV를 켜는 경우가 있다. 그때 볼 수 있는 것이 아침뉴스이다.

 

아침 뉴스를 보면 전날 발생한 사건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 등장하는데 보기가 참으로 역겹다.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이 갈등하다 마침내 합의점에 이르게 되어 악수하는 장면이 있는데 항상 웃는 모습이다. 그러나 웃는 모습을 보면 얼굴 가죽만 웃는다. 이런 웃음을 영어로 페이크(fake)라 할 것이다. 가짜웃음을 말한다. 서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 가죽만 웃는 모습이다. 그래서 정치인들 보기기 역겹다.

 

언제 보아도 유익한 EBS다큐

 

정치인들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리고 뉴스같지 않은 뉴스를 보기 싫어서 방송을 멀리한다. 그러나 보는 것이 있다. 그것은 EBS이다. 언제 보아도 유익하기 때문에 항상 채널은 EBS에 고정되어 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살아 가는 모습, 그리고 자연, 환경, 생태 등 매우 다양한 다큐프로를 보면 TV볼 맛이 난다.

 

이른 아침에 EBS에서 본 것은 자연다큐이었다. ‘치명적인 재앙-지진이라는 제목의 자연다큐프로이다. 지진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떻게 지진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진과 사람의 운명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에 있다. 이는 전세계 지각판이 형성되어 있는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여러 개의 지각판이 서로 충돌하고 있어서 지진이 끊이지 않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각판이 지나는 곳이 없어서 지진에 관한한 안전지대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각판이 만나는 지점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지진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언제 재앙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재앙-지진(EBS 큐)

 

 

지난 2010년 아이티에서 진도 7.0의 지진이 났을 때 무려 23만명이 죽었다. 그런데 지진 그 자체로 죽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건물이 붕괴 되어 죽었다. 내진 설계가 되어 않은 집이나 건물에서 살았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자 한 순간에 쑥대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프로에 따르면 지질학자는 아이티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리는 것을 수년 전부터 예측하였다고 한다. 수년간의 자료 분석에 따르면 지층속에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 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예측할 수 없었을 뿐 진도7.0과 같은 대규모 재앙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예측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질학자는 언제 지진이 일어나게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절대 피해 갈 수 없죠.”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운명 또한 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지질학자에 따르면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역에서 지진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예측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일이 될지, 1년후가 될지 100년후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진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의 죽음을 떠 올리게 한다. 지금 평온한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는 죽는 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일 죽을지, 일년 후에 죽을지, 30년 후에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피로가 누적 되면 죽음에 이르듯이

 

또하나 자연 다큐에서 감명깊게 본 것은 약한 지진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약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진동이 일어나면 몇 주간 지속 되는데 진동이 매우 약해서 지금껏 아무도 인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동이 지표면에서 작은 진동을 감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 보다 민간한 동물들이 이를 느끼고 미리 이동하는 모양이다. 지진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면 개미때가 이동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프로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땅속 깊은 곳에서 지각판이 충돌할 때 흔들림이 있는데 이런 흔들림이 축적 되다 보면 더 큰 흔들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피로가 누적 되면 죽음에 이르듯이. 또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폭발하듯이 지표면에서 관측되는 작은 진동은 커다란 진동이 되기 위한 하나의 신호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자연현상이나 사람들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종종 지진에 대한 뉴스를 듣는다. 아이티의 대지진,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쓰나미, 그리고 사천성의 대지진 같은 것이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하늘을 날아 다니는 비행기를 만들고 초고층빌딩을 세웠어도 2012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쓰나미 와 지진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도시가 초토화 되었을 때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땅속에서도 제행무상의 법칙이

 

흔히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자연무상을 느낀다. 또 사람이 살아감에 따라 늙고 병든 모습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무상은 자연과 인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지각판이 꿈틀대고 있다면 이것 역시 무상한 것이다. 지각판의 충돌로 인하여 땅이 출렁거렸을 때 평온하던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을 때 신이 노하였다거나 신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의 자연현상이다. 그래서 땅밑 역시 제행무상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땅위나 땅속이나 인간이나 자연이나 어느 것 하나 무상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것이 없다.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다큐프로 첫 장면에서는 아이티 지진을 보여 주었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진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지구에 종말이 왔어!”라고 말한다. 마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초기경전에서도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장면이 있다. 우주가 멸망하는 장면에 대한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에 다음과 같이 묘사 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런데 오랜 기간이 경과되면 언젠가 한번은 일곱 번째의 태양이 나타나는 때가 닥친다. 수행승들이여, 일곱 번째의 태양이 나타나면, 이 대지는 산의 제왕 수미산과 더불어 불이 붙고, 불타오르고, 온통 불꽃에 휩싸인다.

 

수행승들이여, 이 대지가 산의 제왕 수미산과 더불어 불이 붙고, 불타오르고, 연소되면서 불꽃이 바람에 날려 하느님의 세계에 까지 도달한다. 수행승들이여, 산의 제왕 수미산과 더불어 불이 붙고, 불타오르고, 연소되고 파괴되면서 커다란 불더미에 제압되어 백 요자나 크기의 봉우리도 괴멸되고, 이백 요자나 크기의 봉우리도 괴멸되고, 삼백 요자나 크기의 봉우리도 괴멸되고, 사백 요자나 크기의 봉우리도 괴멸되고, 오백 요자나 크기의 봉우리도 괴멸된다.

 

수행승들이여, 이 산의 제왕 수미산이 불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버터나 참기름이 불이 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듯, 수행승들이여, 이 산의 제왕인 불타서 연소되면, 결코 재나 검댕이를 남기지 않는다.

 

(일곱개의 태양의 출현에 대한 경, 앙굿따라니까야 A7:66,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우주가 멸망할 때 일곱 개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남김 없이 태워 버린 다고 하였다. 마치 버터나 기름을 태우면 흔적이 남지 않듯이 큰 불이 나서 흔적도 없이 우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종말론이라 볼 수 있다.

 

주기적으로 파괴되는 우주

 

청정도론에 따르면 우주는 주기적으로 파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불환자들이 태어나는 색계 4선천인 정거천 이상은 안전하다. 그래서 색계 3선천 까지는 일겁(또는 일대겁)마다 주기적으로 파괴되는데 성주괴겁을 거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성주괴공

성주괴공

기 간

1

수축하는 것

()

1 아승지겁

1대겁

 

2

수축한 상태로 머무는 것

괴주(壞住)

1 아승지겁

3

팽창하는 것

()

1 아승지겁

4

팽창하는 상태로 머무는 것

성주(成住)

1 아승지겁

 

 

그렇다면 왜 우주는 주기적으로 파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세계가 파괴되는가?

세 가지 해로운 뿌리 때문이다.

해로운 뿌리들이 치성할 때 이와 같이 세계는 파괴된다.

 

탐욕이 치성할 때 그것은 불로 인해 파괴된다.

 

성냄이 치성할 때 물로 인해 파괴된다.

 

어떤 자들은 성냄이 치성할 때 불로 인해 파괴되고,

탐욕이 치성할 때 물로 인해 파괴된다고도 주장한다.

 

어리석음이 치성할 때 바람으로 인해 파괴된다.

 

(청정도론, 13장 초월지 64 )

 

 

세상이 주기적으로 파괴 되는 이유에 대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본다. 탐욕이 ‘치성’하였을 때 겁화가 일어나 불로 파괴되고, 성냄이 치성하였을 때 물로 파괴 되고, 어리석음이 치성하였을 때 바람으로 파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탐진치 삼독이 치성하면 우주가 파괴 되는데 색계 삼선천 까지이다. 그래서 불(탐욕)로 인한 파괴 되는 세상은 색계 초선천까지이고, (성냄)로 인한 파괴는 색계 2선천까지 이고, 바람(어리석음)에 따른 파괴는 색계 3선천까지라 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의한 파괴가 가장 무서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바람은 바로 어리석음으로 비유된다.

 

SF환타지 소설이라고?

 

초기경전과 주석에 따르면 우주는 성주괴공을 거듭한다고 한다. 하늘에 일곱개의 태양이 등장하여 형성된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리고, 마치 쓰나미와 같은 어마어마한 물이 밀려와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리고, 마지막으로 메가톤급에 달하는 큰 바람이 불어와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소설이나 문학작품 또는 SF환타지라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환타지 소설을 쓴 것일까?

 

종종 법문을 들어 보면 수행담에 이야기를 듣는다. 한 개인의 정신적 체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스님은 법문에서 선정에 들면 세포 하나 하나가 숨을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은 선정에 들어면 자신의 몸안에 있는 장기들, 32가지 신체기관을 마치 TV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모두가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체험을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고, 정신세계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말씀 하신 우주의 성주괴공에 대한 이야기도 정신세계의 체험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신통을 말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부처님의 신통

 

부처님은 신통을 말씀 하셨다. 상윳따니까야에서도 별도로 신통모음이 있을 정도이다. 51상윳따의 신통의 기초모음(Iddhipādasayutta, S51)이 바로 그것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이와 같이 네 가지 신통의 기초를 닦고 익히면, 전생의 여러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한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천 번 태어나고 십만번 태어나고 수많은 파괴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의 발생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 파괴와 세계 발생의 겁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그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그 자신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한다.

 

(원인의 경, 상윳따니까야 S51:12, 전재성님역)

 

 

사람들은 이전 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신을 계발하면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몇 생 이전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기억할 수 있지만 우주의 성주괴공하는 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우주전체를 꽤뚫어 보는 것은 일체지자인 부처님의 지혜로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부처님은 경에서 수많은 파괴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의 발생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 파괴와 세계 발생의 겁을 지나면서 (S51:12)”라고 말씀 하셨다. 이는 일체지자로서 우주의 성주괴공을 수 없이 기억해 내는 부처님의 신통에 대한 지혜이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하여 영지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라 하여 명행족(Vijjācaraasampanna)’이라 하였다. 일체지를 구족하신 부처님은 삼명 육신통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의 지혜로 본 것이 우주의 성주괴공이다. 초기경전에서 신통에 대한 이야기, 초월적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여 후대에 지어낸 것이라거나 단지 중생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오감의 인지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따라서 초기경전에 쓰여 있는 이야기가 소설이라거나 문학작품이라거나 SF환타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매우 경솔한 행위라 하니 아니 할 수 없다. 삼보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불자라면 의심 없이 받아 들일 수 있고, 설령 자신의 인식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잠시 판단을 유보 하면 되는 것이다.

 

왜 미래영화는 핵폭발로 망한 것이 주류일까?

 

청정도론과 같은 주석서는 철저하게 경전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논사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경전을 근거로 쓴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나 청정도론 등과 같은 논서가 논장으로서 율장, 경장과 함께 빠알리삼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청정도론에서는 불과 물과 바람에 의한 세상의 파괴를 언급하였다. 그래서 불은 탐욕으로, 물은 성냄으로, 바람은 어리석음으로 대비하여 설명하였다. 대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미래에 대한 영화를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혹성탈출이나 90년대 세상의 관심을 모았던 터미네이터를 보면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 그것은 핵폭발로 인한 인류문명의 멸망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미래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암울한 인류멸망을 다루고 있는 것은 영화제작비가 싸게 먹혀서라는 말이 있지만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끝 없는 욕심과 탐욕이 결국 핵전쟁으로 이어져 인류가 이룩해 놓은 문명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인간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치성하면

 

청정도론에는 인간의 탐욕이 치성하면 겁화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불로서 세상의 종말을 맞게 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것이다. 오로지 성장만이 살길이다라 하여 자원을 개발하여 고갈시키고 그로 인한 환경 오염으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었을 때 파국을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오존층이 파괴 되어 지구가 뜨거워졌을 때 기온의 상승이 되면 하늘에 태양이 일곱개 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릴지 모른다.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고 흉년이 되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는 시대가 될지 모른다. 또 자원확보를 위하여 사람들은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지도자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핵폭탄이 사용될지 모른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늘 미래영화의 주제가 되듯이 인류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했을 때 불로서 우주가 파괴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런 불은 다름 아닌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대한 상징어이다.   

 

지구 온난화가 되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뉴욕이나 도꾜 등 저지대의 도시는 물에 잠겨 버릴 것이다. 마치 물로된 수소폭탄을 맞은 듯 세상은 초토화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일까 청정도론에서는 물에 의한 우주의 파괴가 될 것이라 한다. 그런 물은 성냄으로 비유되고 있다.

 

핵폭탄도 무섭고 수소폭탄도 무섭다. 그러나 인간들은 끝 없이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핵폭탄이 터졌을 때 인류를 몇 번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자연고갈과 환경오염 등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인류문명이 위기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을 모두 사용하였을 때 인류가 이룩해 놓은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탐욕이 극에 달했을 때, 지도자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인류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어리석음을 바람의 상징어로 사용하였다. 지진과 해일, 쓰나미를 동반하여 태풍까지 불었을 때 모든 것을 날려 버리듯이 인간의 어리석음이 치성하였을 때 우주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 한다.

 

불과 물과 바람에 의한 파괴에 대하여 지구의 예를 들었다. 그래서 자연과 환경 파괴에 따라 지구온난화가 진행되어 결국 불과 물과 바람에 파괴로 귀결 될 것이라 하였다. 또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핵폭탄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를 우주로 확장하면 어떨까? 우주도 역시 훼손되고 오염된다면 불과 물과 바람에 의한 파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우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스스로 자멸할지도 모른다. 세상이나 우주의 종말이라는 것이 신이 노해서 자신이 창조한 것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모두가 인간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결과라 한다.

 

생주이멸하는 마음

 

, , 바람에 의한 세상의 파괴에 대하여 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보는 세상을 말한다. 이는 부처님이 초기경에서 수행승들이여, 세상이 생겨 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S35:107)”과 같이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이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 등으로 세상이 존재함을 말한다. 그런 세상이 생겨 났을 때 세상의 세상 파괴 또한 일어날 것이다.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기반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성냄을 예로 든다면 지금 누군가에게 화를 내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파탄난다. 특히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사이에서 그렇다. 이렇게 화를 내면 이제까지 쌓은 모든 공덕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이는 욕심도 어리석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탐욕이라 불, 성냄이라는 물, 어리석음이라는 바람에 의하여 세상은 파괴 되고, 또 탐진치로 인하여 세상이 생성된다. 마치 우주가 주기적으로 성주괴공하듯이 한존재의 마음속에서도 지금 이순간 수 없이 생주이멸한다고 볼 수 있다.

 

절대로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그런데 탐욕이라는 불, 성냄이라는 물, 어리석음이라는 바람에서 안전지대가 있다. 그것은 색계 4선천이다. 색계 4선천에 사는 존재들은 불, , 바람의 파괴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왜냐하면 탐욕과 성냄을 여읜 불환자들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탐진치를 소멸하는 수행의 결과로 태어 나는 정거천은 아무리 우주가 성주괴공을 거듭해도 절대로 안전한 곳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고,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견고하지 않고, 수행승들이여, 형성된 것들은 불안정하다.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한, 일체의 형성된 것들에서 싫어하여 떠나야 하며, 사라져야 하며, 해탈해야 한다.

 

(일곱개의 태양의 출현에 대한 경, 앙굿따라니까야 A7:66,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해탈해야 된다고 하였다. 한번 형성된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에 우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큰 우주라도 형성 된 것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 한다. 하물며 인간들이 이룩해 놓은 초고층빌딩 같은 문명 역시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지금 땅속 깊은 곳에서 꿈틀 거림이 증폭 되었을 때 한 순간에 초토화 될 수 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말이다. 그런데 2600년 전에 이미 부처님은 이런 사실을 이야기 하셨다. 땅속의 꿈뜰 거림도 무상한 것이고, 우주도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형성된 것들은 결국 부서지고 말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운명 역시 마찬 가지일 것이다. 지질학자가 언제 지진이 일어나게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절대 피해 갈 수 없죠.”라고 말했듯이, 이를 패러디 하면 우리는 언제 죽을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절대 피해 갈 수 없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질학자의 말은 이미 초기경전에도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숫따니빠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존]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하는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애처롭고, 짧아 고통으로 엉켜있습니다. (stn574)

 

태어나 죽지 않고자 하나,

그 방도가 결코 없습니다.

늙으면 반드시 죽음이 닥치는 것입니다.

뭇 삶의 운명은 이런 것입니다. (stn575)

 

 

 

2013-12-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