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장상(馬陰藏相), 음욕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서쪽 바다로
수도권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의 거의 절반이 모여 사는 서울과 수도권 도시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서쪽으로 가는 것이다. 거미줄 처럼 발달되어 있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한시간 안팍으로 바다에 도착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날 바다를 찾았다. 서쪽으로 계속 가기만 하면 바다가 보이는데 새로 개통된 제3경인 고속도로를 이용하였다. 제3경인고속도로는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세 번째 고속도로로서 세 고속도로 중에 가장 남쪽에 있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는 영종도에 있는 인천국제공항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강남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고속도로이다.
여름에는 산을 찾고 겨울에는 바다를 찾는다. 바다를 보면 탁 트인 것이 마음도 시원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 ‘호연지기’도 길러지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거나 풀리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기분전환도 할 겸 바다를 찾는다.
그런데 수도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대부도나 강화도이다. 대부도의 경우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시화방조제를 건너야 한다. 대부도에 가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육교가 있어서 몇 개의 섬이 서로 연결 되어 있는데 거의 서해 바다 깊숙히 이른다. 그러나 문제는 차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휴일 한꺼번에 밀려 드는 차량으로 인하여 장시간 교통체증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방향을 영종도로 돌렸다. 제3인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죽 가다 보면 인천대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이기 때문이다.
모도를 목표로
인천과 영종도를 잇는 매우 긴다리가 있다. 인천대교라 한다. 총14키로미터에 달하는 인천대교를 건너면 공항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또 다른 섬으로 가는 길도 있다. 목적지는 신도-시도-모도이다. 세 개의 섬이 서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거리는 페리호로 약10분 걸린다.
겨울바다는 차갑다. 그럼에도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갈매기이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낚아 채기 위하여 근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바다에 접하면 가장 먼저 갈매기가 맞아 준다. 겨울이어서일까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부도, 강화도 등 다른 곳에서는 교통체증이 일어날 정도로 붐비지만 이곳 신도-시도-모도 가는 길은 한산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일것이다.
세 개의 섬 가운데 선착장이 있는 신도에 도착하였다. 세 개의 섬중에 가장 큰 섬이다. 그러나 서해안의 어느 섬이 다 그렇듯이 그다지 크게 볼 것이 없다. 다만 세 개의 섬중에 가장 끝에 위치한 모도가 그래도 볼만하다. 그곳에는 조각예술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도를 목표로 달려 갔다.
배미꾸미 조각공원
모도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조각공원이다. 이름 하여 ‘배미꾸미 조각공원’이라 한다. 섬의 서쪽 끝에 있으니 더 이상 차로 나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배미꾸미조각공원(모도)
그런데 입장료를 받고 있다. 물어 보니 사유지라고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조각공원인 것이다. 그래서 어른 이천원 하여 두당 금액이 정해져 있다. 마치 통행료를 받는 것 같다. 우리 땅을 지나기 때문에 돈을 내야 지나 갈 수 있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먼길을 달려 왔으므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유지의 조각공원에는 여러 점의 작품이 해변에 전시 되어 있다. 모두 현대 조각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카페 앞에 있는 탁자이었다. 해골바가지 모양의 탁자와 의자가 눈에 띄었다.
멀리 외진 곳이서일까 사람도 별로 없는데 밤이 되면 스산해 보일 것 같다. 더구나 달빛도 없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이라도 된다면 괴기스럽게 보일 것임에 틀림 없다.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조각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해변으로 나가 보니 바다를 배경으로 여러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는데 작품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이 보였다.
괴상하고 기이한 작품들
작품을 보면 이상하고 괴기스럽다. 그러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작품의 제목도 없고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설명해 주는 해설사도 없다. 다만 작품을 보고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수밖에 없다.
조각작품을 보면 난해 하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현대조각 기법에 따라 만들어진 현대예술품이라는 것이다.
그런 작품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매우 괴상하고 기이한 ‘그로테스크’한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 팔과 다리가 보인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신체적 구조가 한 작품 속에 모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세하게 보면 두 다리가 있고 그 사이에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성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여성성기를 상징한 것을 보면 이빨이 있는 입으로 표현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남성의 성기가 표현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배미꾸미에 대하여 검색을 해 보았다. 팬션 소개 사이트에 따르면 ‘배미꾸미’라는 말은 예부터 내려오는 지명이라 한다. 모도가 배모양으로 생겼는데 배의 밑구멍 같은 해변이 있다 하여 배미꾸미라 한다. 이곳에 ‘이일호’ 조각가 초현실주의 계열 작품 100여점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로 하였다.
남녀성기가 함께 있는 조각작품을 보자
남녀성기가 함께 있는 조각작품을 보자 조준호교수의 논문이 생각났다. 논문에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무시무시하고 독을 품은 뱀 아가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검은 뱀의 아가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활활 타오르는 숯 구덩이에 집어넣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 [열린논단] 불교는 성적욕망을 어떻게 보는가 / 조준호, 불교평론 2011년 10월 17일)
그로테스크한 조각작품에 남자와 여자성기가 함께 표현 되어 있다. 이 작품을 보자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조준호 교수는 경전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무시무시하고 독을 품은 뱀 아가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라고 표현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구절이 어느 경전에 해당되는지 알 수 없다. 경전적 근거를 표기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정도론에서 계에 대한 항목이 있다. 거기에서 조준호 교수가 언급한 내용과 유사한 대목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차라리 시뻘겋게 불타는 쇠막대기로 눈의 감각기능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에서 표상(nimitta)을 취하지 말라.(S.IV.168)”라는 방법으로 불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청정도론, 제1장 계, 100절)
청정도론에서는 경전을 근거로 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시뻘겋게 불타는 쇠막대기로 눈의 감각기능을 파괴할지언정”이라 하였는데 이는 조준호 교수가 근거로 드는 경의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무시무시하고 독을 품은 뱀 아가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와 유사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빠알리니까야에서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라는 표현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빠알리니까야 도처에서 ‘전체상’과 ‘부분상’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형상을 보고 그 특징을 취하지 말고 그 속성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시각능력을 수호하지 못해서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우울과 죄악의 건강하지 못한 법들이 그를 공격한다면, 그는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S35.127)”와 같은 정형구로 표현 되어 있다.
김진태 교수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고
이와 관련 하여 최근 불교닷컴에서 김진태 교수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김진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김 교수는 “살인·절도·성행위·대망어의 4바라이죄만 짓지 않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머리카락을 길게 하고 승복을 입고 있지 않더라도 비구”라고 했다.
이어 “네 가지 가운데 하나만 어겨도 삭발하고 승복 입고 있어도 비구가 아니다. 나머지 죄들은 일정한 형식을 갖춰 참회하면 된다”고 했다.
( 승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진태 교수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서 불음계 꼽아, 불교닷컴 2013-12-26)
김진태 교수는 놀라운 주장을 하였다. 그것은 사바라이죄만 짓지 않으면 비록 ‘유발’이라 하더라도 모두 ‘빅쿠’로 본다는 것이다. 왜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을까? 이는 음계를 지키기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기사에 따르면 “음욕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열반을 얻을 수도 없고 윤회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성욕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이전에 해탈이니 열반이니 하는 것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비록 재가자일지라도 성욕에서 해방된자는 빅쿠와 다름 없고, 지금 머리깍고 승복을 입은 비구라도 성욕에서 해방되지 못하였더면 영원히 해탈과 열반은 불가능함을 말한다.
‘마음장상(馬陰藏相)’에 대하여
또 김진태교수는 32상 80종호에서 남성의 성기에 대하여 전에 들어 보지 못한 설명을 하였다. 이를 ‘마음장상(馬陰藏相)’이라 하였는데 기사에서는 “전생에 몸을 삼가 색욕을 멀리함으로써 성기가 말의 그것처럼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어 있는 모양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불자들이 알고 있는 32상에 대한 상식과 다른 것이다.
부처님의 32상 중에 성기에 대한 것을 보면 말의 그것처럼 크다라고 대부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공중파 방송 강연에서 “XX가 말XX만 하다”라는 식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기경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 하였을까? 디가니까야 ‘위대한 사람의 특징의 경(D30)’에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위대한 사람은 몸속에 감추어진 성기를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위대한 사람이 몸속에 감추어진 성기를 가지고 있다면, 수행승들이여, 그것이 위대한 사람이 지닌 위대한 사람의 특징이다.
(Lakkhaṇasutta- 위대한 사람의 특징의 경, 디가니까야 D30,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분명히 성기는 감추어져 있다. 밖으로 돌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마치 말의 그것처럼 표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 본다. 이는 부처님도 신체건장한 남자이고 아들까지 보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김진태 교수는 “성기가 말의 그것처럼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어 있는 모양”이라 하였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사람의 특징은 특징은 성기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음을 말한다. 이는 성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뜻한다.
송출자의 게송을 보면
그런데 경에서는 이와 관련된 게송이 있다. 송출자의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송출자]
“이전에 예전에 전생의 삶에서
오래 함께 살다가 오래 떠나 사는
친지와 친구와 동료를 다시 만나
함께 만나서 크게 기뻐했다.
그는 이러한 행위로 천상에 가서
즐겁게 유희하며 보냈다.
거기서 사후에 다시 이곳으로 와서
몸속에 감추어진 성기를 얻었다.
그러한 자에게 많은 아들이 있게 되니
그에게서 태어난 자들이 천명이 넘는다.
영웅들, 용맹한 자들, 적을 쳐부수는 자들
효성스러운, 재가의 기쁨을 낳는 자들이 된다.
그가 출가하면 더욱 많은
아들들이 말씀을 따르는 자들이 되리.
재가에서 지내든 출가하든
그 특징은 그러한 의미를 밝혀 주는 것이다.”
(Lakkhaṇasutta- 위대한 사람의 특징의 경, 디가니까야 D30, 전재성님역)
위대한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가 몸속에 감추어진 성기를 갖는 것인데 그럼에도 많은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다름 아닌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그래서 아들이 천명도 넘는다고 하였다.
김진태교수와 인연
김진태교수와 인연이 있다. 김진태 교수의 강연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약 1년간 들었다. 그러나 한달에 한 번이었다. 그래서 약 10회 가량 들었다. 그런데 이 강연을 듣고 비로소 ‘초기불교’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김진태 교수는 1990년대 초에 미얀마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였는데 강연중에 설명에 따르면 한국불교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 하였다. 한국불교로서는 도저히 되지 않아 돌파구를 찾은 것이 미얀마라 하였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김진태교수는 미얀마에서 수행법을 배워온 ‘일세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김진태 교수를 강사로 초청하여 십회 가량 강연을 들었는데 그때 느낀 소감문을 ‘‘불교는 위대한 종교 이자 위대한 가르침’ 김진태교수 특강(2007-06-15)’라는 제목으로 남겼다.
김진태 교수의 강연은 매우 재미있다. 특히 걸쭉한 입담이 특징이다. 경상도 특유의 말로 사람들을 웃기게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이것이 김진태 교수의 최대 매력이다. 그런 걸쭉한 입담이어서일까 아직까지 방송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김진태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 불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불교를 종교로 택하기를 참 잘했다’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는 불자들을 주늑들게 만드는 법문과 대조적이다. 어느 스님은 기독교의 헌금과 비교하면서 불자들이 보시를 많이 하지 않아서 늘 가난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이렇게 기독교 비교하여 불자들을 질타하였을 때 주눅이 들고 열등감이 들게 하였다. 그런데 김진태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 ‘부처님법 만나기를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불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언젠가 강연이 끝나고 김진태교수와 대화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여러 법우님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모임을 가진 것이다. 이때 김진태 교수는 책을 쓸 예정이라 하였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역작을 준비중이라 하였다. 그런데 최근 불교닷컴 기사를 보니 ‘천당과 지옥은 번지수가 없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무려 6년만에 책이 나온 것이다. 김진태 교수와 안면이 있기에 책이 기대된다.
넷상에서 만난 김진태교수
크리스마스날 서쪽으로 달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모도에 다다랗다. 그곳에서 본 초현실주의적 조각작품은 초기불교 경전의 가르침을 떠 오르게 하였다. 남자성기와 여자성기가 함께 표현된 작품을 보고서 “그대의 성기를 여인에게 집어넣느니보다는 차라리 무시무시하고 독을 품은 뱀 아가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성욕을 극복하지 못하면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김진태 교수는 “불음계를 가장 중요한 계율로 꼽는 이유는 비구는 생사윤회를 두려워하는 존재로서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출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음욕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열반을 얻을 수도 없고 윤회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성취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성적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인류가 존속하는지 모른다. 이에 대하여 김진태 교수는 “중생은 부모의 음욕에 의해 태어나고 그들의 음욕은 다시 자식들을 출생케 하는 원인이 된다. 수행은 성욕과의 싸움이고 성욕 다스리기”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의 책을 출간한 김진태 교수를 다시 넷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2013-12-2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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