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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모임은 작은 ‘재가상가’, 여법하게 치룬 열번째 송년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2. 8. 11:05

 

 

재가불자모임은 작은 재가상가’, 여법하게 치룬 열번째 송년법회

 

 

 

12월은 각종 모임이 있는 계절이다. 예전에는 망년회라 하여 모임을 가졌으나 이제는 송년회라는 명칭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결산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직장이나 단체에서는 크고 작은 모임이 12월에 집중으로 열린다. 송년회에 참석하였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모임은 종교모임이다. 불교교양대학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한 법우님들과의 모임이다. 이런 모임이 벌써 9년째이다.

 

아홉 번째 송년법회

 

2004년 처음 열린 이래 열번째 열리는 송년법회모임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불과 20여명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2004년 당시 처음 송년 모임을 가졌을 때와 비교된다. 그때 당시는 처음 맞는 송년 모임이어서인지 10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수용하려면 커다란 장소가 필요하였는데 그 때 당시 부페식당을 이용하였다. 그래서 노래방시설이 갖추어진 넓직한 별도의 공간에서 치루어졌다. 물론 여법하게 법회의식을 치루고 여흥시간이 마련 된 것이다.

 

9년이 지난 지금 열번째 송년모임은 이제 남을 사람만 남고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 모양새이다. 그래서 현재 참석하고 있는 사찰순례 등 꾸준히 모임에 나오는 3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하고 무상하듯이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도 세월에 따라 변동이 생긴 것이다.

 

송년회는 늘 그렇듯이 여법하게 치루어진다. 준비된 부처님 상을 방의 전면에 걸어 놓고 삼귀의 등으로 법회의식을 먼저 한다. 그리고 경과보고 등 한해를 결산하는 시간을 갖고 식사를 하고 여흥시간을 갖는다. 끝날 때는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마무리한다.

 

 

 

 

 

마치 친척을 보는 듯

 

이번 송년회는 중국식당에서 열렸다. 인원이 20여명 밖에 되지 않아 둥그런 테이블 네 개가 준비되었다. 참석한 인원을 보면 늘 그렇듯이 여성법우님들이 훨씬 더 많다. 부부팀도 네 쌍 있었다. 9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40대는 50대가 되었고, 50대는 60대가 되었다. 어느 법우님은 20대에 처음 불교를 접하였는데 작년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세월이 흘러 벌써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생겨날 정도로 세월이 흘러 간 것이다.

 

이렇게 9년동안 매년 몇 차례씩 얼굴을 마주 대하다 보니 이제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만나면 언제나 반갑고 마치 친척을 보는 듯 하다. 흔히 사회모임이라는 것이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깨지는 것이라 하는데 이처럼 오래 모임이 지속되는 것은 아마도 같은 불자라는 공통의식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렇게 모임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은 총무법우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 보여진다.

 

헌신적인 총무법우님

 

오늘날 까지 모임이 있게 된 것은 총무법우님의 노력이 매우 크다. 처음 모임을 가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이 모임은 오래 전에 없어졌을지 모른다. 연중 행사일정을 잡고 실행하고 각종 경조사를 챙긴 총무법우님이 있음으로 인하여 모임이 유지 된 것이라 본다.

 

모임은 도중에 어려움도 겪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법우님의 반발로 인하여 모임이 깨질 뻔한 적도 있었고, 또 법우님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모임이 9년 째 유지되어 온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회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것은 종교라는 카테고리와 한 법우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임이지만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는  하나의 코뮤니티(공동체)’가 형성된. 재가불자로 이루어진 불자 공동체 모임은 각종 불교행사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경조사도 함께 하고 있으므로 일종의 작은 재가상가라 볼 수 있다.

 

작은 재가상가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법우님들은 매우 다양하다. 주로 강남에 거주 하고 있는 법우님들이 많지만 수도권 도시에 사는 법우님들도 많다. 또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이들 법우님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놓는 것은 종교이다. 모두가 불자라는 이름으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은 평등하다. 분명히 빈부귀천이 있고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모임에서만큼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부처님 당시 상가의 구성요건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교단은 수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고대 인도사회에서 사성계급이 있어서 차별이 있었으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상위계층인 브라만의 태생의 원리를 부정하였다. 그대신 행위가 그사람의 현재 위치를 결정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부처님의 교단과 승단에서는 계층을 달리 하는 수 많은 사람들로 구성 되었지만 모두 똑 같이 받아 들여졌고 모두 평등하였다. 그래서 최상위 계층인 바라문 출신이든 귀공자 출신이든 또는  최하위 계층인 노예들이나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하면 모두가 똑같이 성스런 상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평등한 상가는 화합만 있을 뿐이다. 부처님 법에 따른 평화와 질서만 있을 뿐 세간적 법은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재가불자들로 이루어진 모임일지라도 출신배경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를지라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전통적인 상가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 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모임은 일종의 재가상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생음악으로 노래를

 

언제나 그렇듯이 송념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여흥시간이다. 대게 노래방 기기를 이용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부른 사람에게 시상하는 형식으로 이제까지 진행 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는 노래방 기기가 없었다. 모임이 열린 중국식당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와 노래방기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음악으로 하기로 하였다.

 

생음악으로 노래를 하다 보니 기억을 되살려 노래를 부르는 식이 되었다. 그러나 노래방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다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가사를 몰라 도중에 그만 두기 일쑤이었고, 어떤 이들은 가사를 몰라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하며 고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반주도 없이 기억을 되살려 노래를 불렀는데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이런 점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렇게 웃다 보니 모두다 스트레스가 해소 된 듯 보였다. 그래서 모두 다 마음껏 웃었다고 말한다.

 

음주를 하였어도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음식과 음주와 노래이다. 이런 형식은 종교모임이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재가불자들의 송년 모임에서 음주와 노래는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거룩하고 신성한 분위기로 모임을 갖는 것도 아직까지는 어색하다. 한해를 결산하고 마무리 하는 자리에서 엄숙한 분위기 보다는 즐겁고 흥겨운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재가와 출가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승려 술판 사건에서 보듯이 스님들이 밤샘 술판을 벌이고 노래로 밤을 지샜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출가자는 재가가와 달리 엄격한 계율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가자가 마치 재가자 따라하기라도 하듯이 술판을 벌였다면, 그것도 밤새 음주가무로 지샜다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록 재가자의 송년 모임에서 음주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밤샘하는 것도 아니고 비록 노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지킬 것은 지켜가며 하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어서서 귀가를 하기 때문에 이번 승려 들의 동창회 모임 성격의 밤샘 술판과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법하게

 

재가자의 송년 모임이라 할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 삼귀의부터 시작하여 모임이 끝날 때는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하며 여법하게 마무리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가자의 송년모임이 비록 음주와 여흥으로 흐르긴 하였지만 누구하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술을 마시긴 하였지만 모두 다 마신 것이 아니고 마시지 않은 사람도 있고 건배할 때 입에만 조금 대는 사람도 있었다.

 

만일 모임이 술판으로 흘러서 누군가 추태를 부렸다면 다음 모임에 나오지 못할 것이다. 흔히 사회생활하면서 술주정을 하면 같이 술도 못 마실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술로 인하여 실수를 하게 되면 사회생활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마시게 된다. 더구나 서로 알고 지내는 종교모임에서 흥청망청 만취하여 추태를 벌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송년법회모임은 웃고 스트레스를 해소 하며 보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여법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번 승려들의 밤샘술판 사건은 여법하게 치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출가수행자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해서도는 안되지만 밤샘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것은 아무리 스님들의 동창회성격의 모임이라고 할지라도 삼귀의로 시작해서 사홍서원으로 마무리하는 법회의식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절대 이를 뽑지 말라

 

이번 송년법회는 조촐하게 치루어졌다. 비록 음주를 하고 여흥을 가졌지만 시종일관 여법하게 치루어졌다. 그것은 부처님을 앞에 모셔 놓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기 위한 송년회가 아니었고 놀기 위한 송년회가 아니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친교를 위한 송년회 모임의 성격이었다.

 

어느 법우님은 자신의 건강 비법을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이빨 관리를 예를 들면서 절대 이를 뽑지 말라든가 절대 임플란트를 하지 말라고 말한다. 치과의사들이 임플란트를 권유하는 것은 돈벌이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라 한다. 임플란트의 경우 80프로는 해도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의사들의 말을 다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허리 아프다고 하여 디스크 수술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의사들이 수술을 권유하는 것은 병원유지를 위하여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을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빨과 허리를 어떻게 하면 수술하지 않고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이렇게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받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 절 던져 버렸어요

 

모임에 참석한 법우님들은 다양하다. 어느 법우님의 경우 절을 가지고 있다. 몇 해전에 절을 산 것이다. 20대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은 보살님은 절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어서 남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작은 절을 샀다고 한다. 원래는 서울에 절을 갖기 희망하였으나 알고 지내는 스님이 추천해서 샀다고 한다. 그래서 소유주는 보살님이지만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스님인 것이다. 최근 그 보살님에게 물어 절 잘 됩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절의 소유주로서 관리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의 답을 들었다. 보살님은 그 절 던져 버렸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평생 원력으로 절을 가졌는데 포기하였다는 말을 듣자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였는지에 대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대신 큰 공덕 지으셨읍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럼에도 그 보살님은 전혀 서운해 하거나 아까워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사찰순례 등 모임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전형적인 한국스타일의 대보살이다.

 

모임이 오래 되다 보니 일부법우님들에게 블로그를 알려 주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시간이 있으면 볼 것을 권하였다. 이렇게 권하면 대부분 법우님들은 처음 몇 번 보다 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빠짐 없이 보는 법우님도 있는 것 같다. 참석한 어느 법우님에게  혹시 글 보고 있나요?”라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통하여 속내를 다 보여 주고 있는데 더구나 얼굴까지 알고 있고, 그것도 9년 동안이나 지켜 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들통난 것처럼 느껴 졌다.

 

 

유일하게 참가하는 종교모임

 

 일인사업자로서 늘 집과 사무실을 왕래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전화와 메일을 통하여 일을 처리하다 보니 대면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임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참가하는 모임이 종교 모임이다.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빠짐 없이 참석하는 유일한 모임이다. 비록 절에 나가지 않지만 모임만은 빠지지 않는다. 교회다니는 사람중에 교회는 싫지만 그 동안 맺어 놓은 인연이 있어서 모임에는 참석한다는 말이 있듯이 절은 마음에 들지만 모임만은 참석하는 것은 그 동안 맺은 인연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짐 없이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많이 하고 떠들다 보니 삶의 균형이 깨진 것 같다. 그래서 알아차리려고 노력하였다.

 

 

 

2013-12-08

진흙속의연꽃